12월에 핀 나팔꽃
灘川 이종학
올 12월에도 추위를 피해 딸들이 사는 미국 엘에이에 왔다. 아침 기온이 화씨 70도 내외. 캐나다 에드몬톤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아침 산책을 하기에는 더없이 쾌적하다. 나는 버릇처럼 이곳에 와서도 한 40분 정도 호젓한 동네 길을 걷는다. 낙엽이 뒹구는 곳이 있는가 하면 꽃잎이 떨어지는 곳, 더러는 노랗게 익은 오렌지나 레몬이 손이 닿을 듯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밑을 지나기도 한다. 그리고는 하늘 높이 솟은 야자수와 아름드리 가로수의 청청한 녹음의 향연을 만끽한다. 계절(季節)의 혼돈이 세상의 혼돈을 추스를 것만 같은 신선함에 마음을 푹 묻는다.
지난밤에 오래도록 가랑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햇빛이 찬란하다. 나는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 비에 씻긴 만물이 청결하다. 공기도 한결 싱그럽다.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가로수와 주택들과 아파트 사이로 만들어진 인도를 한참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길갓집 긴 담을 뒤덮을 듯이 기세 좋게 뻗은 나팔꽃넝쿨이 지천으로 파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팔 모양의 하늘색 꽃들의 함초롬한 자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놓고도 남았다. 메꽃과에 속하는 나팔꽃은 아침에만 피었다가 해가 기울기 전에 이내 시드는 꽃이라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라 하고, 중국은 견우화(牽牛花), 일본은 아사가오(朝顔)로 부른다. 모양이 나팔처럼 생겨서 나팔꽃이라 이름 하고 더러는 메꽃과 함께 강아지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꽃말은 덧없는 사랑, 매끈한 사랑 등을 갖고 슬픈 사랑의 전설도 전해 온다.
나팔꽃 앞에서 나는 거침없이 어린 시절의 회상에 잠겨 버렸다, 아침 일찍 어섯눈을 비비며 대문 밖 담장으로 뛰어나간다. 이른 봄에 뿌린 꽃씨에서 나온 넝쿨이 담장을 덮을 듯이 무성하게 뻗더니 아침마다 예쁜 나팔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나는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부는 많은 나팔꽃 중에서 가장 예쁜 놈으로 한 송이를 골라 자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 가까이 대고 혀를 빠르게 날름대며 아랫입술을 덜렁거려서 소리를 낸다. 얼 얼 얼~, 얼 얼 얼~ 강아지 부르는 소리다. 정신일도, 온 마음으로 강아지를 부르면 이윽고 나팔꽃 속에 숨어 있던 까만 점 같은 아주 작은 개미 강아지가 슬그머니 기어 나온다. 그러면 야, 나왔다! 강아지가 나왔다!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소리치며 온 동네를 뛰어 누비고 다닌다. 온종일 기분이 만 점이다. 그러나 혓바닥과 입술이 닳도록 부르고 또 불러도 강아지의 기척이 없으면 다른 꽃을 잘라서 다시 얼 얼 얼~ 신명을 다해 불러제낀다. 꼭 삼 세 번까지다. 그래도 강아지 꼬락서니를 보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 시무룩해서 돌아선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는 누구나 놀이 삼아 해 보는 일이었다.
나팔꽃넝쿨 담 너머 집안 여기저기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울긋불긋 요란한 광경을 뒤늦게 보고서야 겨우 나팔꽃에 쏟았던 추억을 거둔다. 지금 춘추가 얼마인데 나팔꽃에 입을 대고 불러내던 강아지에 몰두하다니 주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이 12월이 아닌가. 겨울 한복판에서 나팔꽃이라니?,,,,,,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과 이틀 전에 백설이 분분한 길을 걷던 나를 잊었을 리 만무하다. 서 있는 곳이 다를 뿐 오랜 시차가 생긴 것도 아니다. 이틀 사이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돌변할 수도 없다. 다만 나팔꽃이 아침에만 피어나듯이 나는 지금 내 주변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불과하다.
영원은 세월을 담보로 한다고 말한다. 그 세월이 나에게 있어서는 빛과 소리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2012년도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나를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다. 무엇을 하며 한 해를 보냈느냐고 묻는 것 같다. 올해의 12월은 나에게 특별한 달이기도 하다. 12월 3일은 결혼 50년이 되는 날이고, 7일은 캐나다 이민 만 25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월에 떠밀려 가는 게 인생이라는데 내가 그렇게 부질없이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 살아온 80평생의 약 3할이 타향살이고, 결혼생활의 꼭 절반을 이민생활이 차지했다. 그러니까 캐나다에서 완전히 하오 인생(下午人生)을 사는 셈이다. 대사(臺詞) 없는 조연으로, 유행가 가사 3절 같은 용도 폐기된 상태임을 부인할 용기가 없다. 그렇다고 살아온 날을 제대로 읽어 내는 연륜과 지혜를 간직한 것도 아니다.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삶을 살았왔을 뿐이다.
25년 전 내가 이민 짐을 꾸릴 때 가까운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다. “어딜 가도 나팔꽃 인생인데 그 나이에 왜 이민할 생각을 했는가?” 아침 일찍 피었다가 해가 설핏하면 시들고 마는 나팔꽃에 내 나이를 비유하며 걱정되어 한 말이다. 문화와 언어와 인연이 생소한 이국땅에 가 살기에는 연치(年齒)가 몸살을 앓지 않겠느냐는 동정이 눈물겨웠다. 나는 나팔꽃은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예쁘장한 꽃을 자랑한다는 사실로 답을 대신하고 싶었다. 자식들은 더욱 넓은 세상에서 아침을 맞아야 할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민 3년 차까지도 돌아가고 싶어서 걸핏하면 국제 전화질이고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러다 명대로 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약간 겁이 났다. 이런 심란(心亂)의 증세를 똑같이 가진 아내가 오히려 달래주었고 글쓰는 작업이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어언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상황과 내실이야 어떻든 25년의 이민생활과 결혼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한 획을 긋는 소중한 기간임을 자부한다. 형틀 같은 의자에 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창작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유혹과 강요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살았다는 이유도 꼭 들고 싶다. 인내와 고독이 뒤따를 때 아내와 이웃의 위로와 동참의 고마움을 어찌 잊으랴. 미국의 발명가 휘트니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없는 수천 가지 이유를 갖고 있는데 정작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된다.”. 그래도 나는 두 가지 이유를 갖고 있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제는 마음 놓고 나팔꽃을 입에 대고 얼 얼 얼~ 진돗개 강아지를 불러도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2. 12. 15 엘에이에서>
첫댓글 " 어떻든 25년의 이민생활과 결혼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한 획을 긋는 소중한 기간임을 자부한다. 형틀 같은 의자에 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창작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유혹과 강요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살았다는 이유도 꼭 들고 싶다."
'영원은 세월을 담보로 한다고 말한다. 그 세월이 나에게 있어서는 빛과 소리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2012년도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나를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다. 무엇을 하며 한 해를 보냈느냐고 묻는 것 같다..'
선생님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그곳의 태양도 마무리 하고 넘어가는 건 마찬가지겠지요.
새해에도 더욱 건안 하셔서 좋은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올해의 좋은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큰 성취가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