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덕혜옹주의 생모는 귀빈두 귀비두 아닌 귀인 복녕당 양씨입니다...
귀인은 첩지구요... 복녕당은 왕이 후궁이 사는 곳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때 내려준 당호예요...
2.귀비는 중국 당나라에서는 귀빈·귀인과 더불어 3부인이라 일컬었으며, 그 위치는 상국(재상)에 상당하여, 황후 다음의 서열에 있었어요... 그 존재는 현종이 총애한 양귀비의 예로 짐작할 수 있죠...
한국에서는 고려 문종 때 내명부제도를 정비하면서 왕후 다음의 서열로 귀비·숙비·덕비·현비를 두고, 귀비를 내명부의 으뜸으로 하였는데 품계는 모두 정1품이었어요...
조선 전기에도 고려의 내명부제도를 이어 왕후 다음의 후궁을 귀비라 하였어요... 그러나 1411년(태종 11) 비빈제를 정하여 비는 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 현재나 과거의 왕후들에게만 사용하죠... 고종이 대한제국을 건립하면서 황제라 칭하는데... 이는 청나라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래서 귀비를 다시 들이죠... 귀비는 바로 중전의 바로 밑
내명부에서는 두번째 서열을 가지고 있어요...
3.귀인 이씨라는 사람은 있었어요... 이제는 안나오는데...
고종의 총애를 첨으로 받은 사람으로 영보당이라는 당호를 받죠...
원래는 후궁이나 중전은 이씨가 있을 수 없었어요... 왕이 이씨니...
근친간이라해서 그랬죠... 하지만 간혹가다 왕들의 후궁을 보면 이씨가 있는데 이들은 궁녀출신의 후궁들이예요...
영보당 이씨는 완화군을 출산하구 대원군의 총애를 한몸에 받죠...
명성황후는 이를 시기하구요... 그래서 궐밖으로 쫓겨나는데...
1880년 완화군이 홍역으로 갑자기 죽자... 실성해요... 1914년 죽는데... 고종이 이때 귀인이라는 첩지를 함께 내리고 장례비를 거하게 내리죠...
4.순헌황귀비 조씨는 없어요...
고종에게는 순헌황귀비라 불리는 후궁이 엄씨 외에는 없었어요...
존재하지 않는 인물에게 관심두지 마세요...
그리구... 고종의 자식 중 어려서 죽지 않은 사람은 완화군은 얘기했죠... 명성황후의 소생인 순종, 귀인 장씨 소생인 의친왕, 순헌황귀비 엄씨 소생인 영친왕, 귀인 복녕당 양씨 소생인 덕혜옹주 외에는 없으니 괜한 이상한 글 믿지 마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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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후궁중 복녕당 귀인 양씨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