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보라서 퍼왔습니다
고매화 탐매기
# 언제 : 2016.3.12, 3.20, 4.2
# 어디 : 산청(산천재, 대원사 등), 함양(일두고택), 거창(동계고택), 구례 화엄사, 승주 선암사, 송광사, 담양 지실마을, 소쇄원, 창평삼지내 등
매화 옛 등걸에 봄졀이 도라오니
옛 픠던 가지에 픠엄즉 하다마는
춘셜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고매화 탐매(探梅)
3월이 오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다들 맥쩍다지만 탐매(探梅)를 즐긴답시고 한 달 내내 강동거리게 됩니다. 너무 일찍 서두르면 꽃망울만 볼 뿐이고, 이 때다 싶으면 소란스러운 상춘객과 진사들 차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선인들은 松·竹·梅를 추운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귀하게 여겼고, 매화를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으며, 매화는 '사귀(四貴: 稀희, 老노, 瘦수, 雷뇌)'라 하여 "꽃은 무성하지 않고 드문 것을(稀), 어린것보다 늙은 노목을(老), 살찐 것보다 야윈 것을(瘦), 활짝 핀 것보다 꽃봉오리를(雷) 귀하게 여기는 꽃"이라 합니다. 또한 매화는 망울 때, 만개 때, 낙화 때 세 번은 봐야한다고도 합니다.
옛 선비들이 매화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는 고귀한 꽃과 은은하게 베어나는 향기, 즉 매향 때문이라지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고혹적인 매향을 따로 암향이라 일컫는데,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는 바늘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어둠속에 떠 있는 향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명매
일제강점기 때 개량된 매실나무가 아닌 토종 古梅는 현재 전국에 대략 200여 그루가 있으나 대부분 노쇠하여 고사되어가고 있는데, 문화재청이 2007년도에 전국의 토종 고매를 조사하여 그 중 4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어요,
그때 지정된 古梅는 강릉 오죽헌 율곡매(484호), 구례 화엄사 화엄매(485호), 장성 백양사 고불매(486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488호)로 약 600살인 율곡매가 가장 나이 많은 천연기념물 古梅라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탐매가들에 의해 호남5매, 산청3매, 경북2매 등으로 불리는 고태미가 뛰어난 명매가 있지요. 호남5매는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전남대 대명매, 소록도 수양매를 이르는데, 안타깝게도 수양매는 태풍에 쓰러진 후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매와 우리나라 고매 중 꽃이 가장 검붉어 흑매라 불리며 많은 탐매객들의 사랑을 받는 화엄사 홍매도 호남 5매에는 들지 못했어요.
산청3매는단속사지 정당매, 남사 하씨고택의 원정매, 덕산 산천재의 남명매를 이르고, 송광사 송광매, 금둔사 납월매, 선암사 선암매를 순천3매, 도산서원의 도산매, 하회마을 충효당의 서애매를 경북2매라 하는데 왜 안동2매가 아니라 경북2매라 하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퇴계선생이 임종 때 “저 매화나무에 물 주거라”고 했다는 기생 두월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도산매는 아직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 외 명매로는 통도사 자장매, 수덕사 수덕매, 무위사 만첩홍매, 대흥사 초의매, 김해 와룡매, 창덕궁 성정매와 만첩홍매, 남산 와룡매, 쌍벽당 고매, 동계종택 백매, 소쇄서원 분홍매, 거제 구조라 춘당매 등이 고태미를 다툰다고 합니다.
관공버스 줄 서는 매실농장의 매화도 좋지만, 오래된 절집이나 사대부집 마당가 혹은 담장 곁에 고고하게 늙어서 구불구불 용트림하는 둥치와 함부로 살찌지도 않고 번성하지도 않은 가지 끝에 고아하고 담백한 자태로 피는 古梅花의 그 고고한 아름다움과 기품은 매실나무 꽃과는 비길 바가 아니지요.
언감생심 탐매가라 할 수는 없지만, 관광버스와 상춘객들로 도떼기시장 같은 매실농장 대신 오랜 세월을 견디며 늙고 뒤틀린 가지 끝에 힘들여 피워 올린 소박하되 기품 있고, 노쇠하되 정갈한 토종 매화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서 그 느낌을 적어 봅니다.
호남5매
선암매 (천연기념물 제488호, 호남5매)
조계산에 위치한 태고총림 선암사에는 선암매라는 2그루 매화가 천연기념물인데요. 원통전 뒤편의 백매와 무우전 돌담장가의 4번째 홍매가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그러나 그 2그루 외에는 많은 고매화가 있어 절에서 매년 매화가 필 때 ‘선암사 홍매화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죠.
선암사는 매화가 아니더라도 승선교와 누운 소나무(와송), <간 뒤>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옛 해우소가 있죠. ‘ㅺ 뒤’은 ‘뒷간’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중략)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했는데 뭔 깊은 뜻이 있는지 가서 한번 쭈그려 앉아볼 일입니다.
# 선암사 가는길에 승선교 밑으로 내려가면 강선루가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다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백매
# 가지끝에 핀 고매의 기품
# 무우전 돌담장 옆 홍매
# 홍매 한그루 가지가 부러졌어요
# 절집 군데군데 고매가 매혹적인 향기를 흩날리고 있다.
# 무우전 돌담장 옆 고매(상춘객은 화려한 나무 앞에, 진사들은 부러진 나무 앞에 모여있다)
#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해우소
# 쭈그리고 앉아 볼려다가...
-안내판-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한다.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 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불매 (천연기념물 제486호, 호남5매)
고불매는 백양사 우화루 곁에 서 있는 홍매화로 수령 360년으로 원래는 홍매화와 백매화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백매화가 죽어버려 홀로 남았다고 합니다. 기품 있고 단아한 자태에 고풍스런 담홍색 꽃을 피우는 고불매는 1947년 만암 큰스님께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한 후 청정하고 모범적인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고불매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고불은 ‘부처 본래의 모습, 인간 본래의 면목’을 뜻한다고 합니다.
백양사와 고불매는 남부지방 매 중에서 가장 늦게 만개합니다. 그래서 고불매를 보기 위해서 날짜를 잡으면 다른 매화는 다 지고 말죠. 고불매는 난생처음 가 본 절집이고 매화였으며 장성은 오래 전 홍길동마라톤대회에 한번 참석했던 고장입니다.
# 백양사 고불매(전연기념물로 지정된)
# 3월말이나 4원초에 만개하는데(4.2 아침에)
# 고불매는 고혹적인 분홍매
# 반대편에는 수많은 진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요
# 연못에 비치는 상계루와 백학봉 풍광에 취해서 DSLR 연못에 빠트려 먹통이 되었다.ㅠㅠ
계당매(호남5매)
담양군 남면 지실마을을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본 고장이라고 하죠. 가사문학관과 식영정(息影亭) 등이 있는 이 마을의 가사문학관 뒤 큰 은행나무를 지나 동네 깊숙이 들어가면 송강 정철의 넷째 아들이 냇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계당(溪堂)이라는 당호가 걸린 낡은 빈집이 있어요.
계당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 돌축대 위에 자리 잡은 두 그루의 고매화를 계당매라 부릅니다. 앞은 홍매고 뒤가 백매인데, 노쇠한 나무를 관리하지 않아 곧 고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계당과 계당매가 폐허처럼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더니 안내해 주시던 계당의 16대(14대?) 후손이시라는 광주NGO시민재단 정구선 이사장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군청에서는 대나무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또 자신이 모저축은행 사장으로 2~3년 근무하다가 전재산이 모두 남에게 넘어가 버렸다고 하신다.
동네에는 넓은 빈터와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6.25한국전쟁 때 온 동네가 불태워졌다고... 동네를 나오다가 어느 한집 마당에 홍매를 발견하여 주인 허락을 받고 구경했는데 수령 약 80년의 만첩홍매로 가사문학관에 근무하는 정택수 씨의 와룡매라 합니다.
가사문학관에는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으리으리한 건물에 기가 질려 들어가지 않았고, 대신 식영정에 올라 돌에 새겨진 성산별곡을 읽어보고 발아래 드넓은 광주호를 바라본 후 인근 환벽당도 둘러봅니다.
# 계당매(앞은 홍매고 뒤가 백매)
# 계당의 후손이신 광주NGO시민재단 정구선 이사장
(지난해는 꽃봉오리만 보고 올해는 늦었다니까 내년엔 전화해 주신다고...)
# 백매는 좀 튼실한다(가운데는 배롱나무)
# 홍매
# 홍매는 올여름 넘기기 힘들듯....
# 정택수씨댁 와룡홍매
대명매(호남5매)
전남대학교에 가면
1621년 월봉 고부천이 진문사 서상관(사신)으로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 희종황제로부터 홍매 1분을 받아서 담양군 창평 고향에 심고 대명매라 이름지어 키우던 것을 1961년 11대손 고재천 농과대학장이 농과대학에 기증하여 현 위치에 이식하였다. -안내문-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매화라 대명매인가? 대학에서 관리해서인지 수세가 아주 강하고 모양이 매우 아름다운 연분홍의 만첩홍매화로 캠퍼스 가운데 뿌리를 내렸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청춘들로부터 사랑받는 매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지난해 모습(올해는 시기를 놓쳐서 가지 않았다)
수양매(호남5매)
소록도 수양매는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12개 가지의 모습이 마치 용트림하는 것처럼 장관이었다고 하나 오래전 폭우로 쓰러졌다가 고사했다고 합니다.
화엄매 (천연기념물 제485호)
화엄매는 화엄사 뒤 모과나무 기둥으로 유명세를 타는 구층암을 돌아나가면 계곡가 대나무 숲 속에 자라는 들매화(野梅)로, 원래 4그루가 있었으나 2그루는 죽고 지금은 2그루만 남았어요. 이 들매화(野梅)는 사람이나 동물이 매실의 과육을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 터서 자란 나무로
안내판에는 수령이 450살로 추정 된다는데 나무는 키가 크고 모양이 자못 웅장합니다. 온통 파란 이끼가 덮은 나무둥치는 굵고 용트림하는 듯하며 성근 가지 끝에 듬성듬성 피는 꽃은 백매로 향기가 매우 짙어요.
화엄사 주지로 계시던 부용영관대사께서 포행길에 이 들매화를 보고 순백한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에 매료되어 “너와 내가 다르지 않구나”라고 하셨다하여 부용매(芙蓉梅)라고도 하며 또한 일명 화엄사 연화장 세계에 있다 하여 연화매(蓮華梅)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사의 요염(?)한 홍매의 인기에 비해 찾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세속을 떠나 외진 암자에서 수행하는 고승처럼 고고한 기품이 넘쳐나죠.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매(홍매에 비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 그러나 야매로 기품이 고고하다
# 작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 두그루 남았다..
화엄사 홍매(일명 장육화, 흑매)
조선 숙종 때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桂波仙師)가 심었다고 전해는 약 350살의 홍매화로 두 갈래 둥치는 자연스레 휜 모습이 고풍스러워 마치 수묵화를 보는듯하지만,
양옆의 크고 높은 전각들(각황전과 원통전 사이 나한전 문 앞) 틈새에 갇혀있는 모양세가 많이 답답하죠. 장육화(丈六花)라고도 하지만, 가지 끝에 피는 꽃이 짙다 못해 검붉은 색인지라 흑매(黑梅)라 불리며 진사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매화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매년 3월 말경에 만개합니다.
#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매화나무가 아닐까 생각된다.
# 너무 검붉어서 흑매라고도 불린다
# 해뜰 때 진사들 촬영이 끝나면 유람객들 차지가 된다.
소쇄원 분홍매
소쇄원은 소쇄옹 양산보가 조성한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절묘한 원림이라고 합니다.
하서 김인후가 지은 마흔여덟의 오언절구 소쇄원 48영에
「梅臺邀月(매대요월) 매대에 올라 달을 맞으니(12詠)
石趺孤梅(석부고매) 돌 받침 위에 외롭게 핀 매화(28詠)」이 있으므로 조성 당시 매화나무를 심은 언덕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제월당 담장밖에 수령 약 100년쯤 된 백매화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 글씨고 뜻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 광풍각은 ‘비개인 뒤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고 합니다.
# 가사문학관(큰 콘크리트 기와집 좋아하는 우리 공무원들의 작품...)
# 주차장을 나서면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본거지가 있다.
# 부용당을 돌아서 언덕을 오르면
# 솔숲에 단정한 식영정이 있다
# 식영정에서 내려다 본 부용당과 서하당
# 식영정에서 앞개울을 건너면 환벽당이 있다.
# 환벽당 옆에도 고매화 한그루가 훌쩍하게 서 있고...
# 다시 조금 걸어가면 작은 언덕위에 취가정이 있다.
환벽당과 취가정 모두 마당과 마루를 청소하여 깨끗하니 참 좋다..
# 취가정. 술 취할 때 노래 부르는 정자?
# 다시 소쇄원으로 간다.
#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
# 제월당에 걸린 소쇄원48영(하서 김인후가 지었다고...)
#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 한다.
# 제월당 옆에 키 큰 매화와
# 담장 밖에 키 낮은 매화 한그루가 있다.
# 광풍각
'비 개인 뒤 부는 청량한 바람' 이라는 뜻(00아파트 00동 00호 보다 월씬 좋다)
# 광풍각 앞 개울은 자연 그대로...
슬로시티 담양 창평의 삼지내 백매
담양 창평은 신안 증도, 완도 청산, 하동 악양, 영월 김삿갓 등과 함께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된 동네다. 21세기 자고나면 변하는 광속의 빠른 변화 속에서 느리게 사는 것은 뭘까? 지난해 악양에 갔을 때 지역 리더에게 대충 듣기는 했는데...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질,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으로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리듬을 지키며 사는 것>이라 한다.
전형적인 부자동네로 전남에서 가장 앞서 가던 고장이라는 창평 삼지내 마을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고 그 전통한옥과 동네 담장길을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동네, 그러나 기와집들은 쇠락해가고 흙길은 먼지가 풀풀거리고 또 비오면 질척거릴텐데 주민들은 불평이 없을까? 昌平縣廳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기와집은 우리나라 기와집 중에 가장 크다나?
그 동네의 매화나무집이라는 민박집 장독대 옆에 백매가 한그루 서 있다. 수령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지만 둥치가 자못 고매의 품격을 나타내고 있지만 매화나무집민박이라는 주인장께서는 정작 매화나무는 방치하고 있는 듯하다.
#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 깨끗하게 단장한 담장과 곧 무너질것 같은 솟을대문의 조화?
# 도지정문화재라는데 기와가 곧 무너질것 같다.
# 쇄락해가는...
# 문화재는 곧 허물어지려고 하지만, 관청은 으리으리하네..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라고?
# 신혼부부인듯...
# 주민들이 불편을 잘 참나보다..
# 삼지내에 제법 오래된 매화나무 한그루가 서 지만,
# 관리는 소흘한듯하다..
# 시장에 가서 국밥 한그릇 먹고... 창평국밥이 아주 유명하다.
하심당 홍매
창평 삼지내 마을에서 하심당까지는 십리가 안 되는 지척이지만 호남고속도로와 고창담양고속도로의 2개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하심당! 마음을 내려놓는 집, 그 내력이 특이하다.
조선 중기 20년 유배생활 후 부제학, 대사헌, 관찰사, 참판 등을 지낸 미암 유희춘은 호남 5현으로 평가받는다는데 선생의 부인 송덕봉은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조 4대 여류시인이라니 호남의 명문가임이 분명한데 하심당은 부인 송덕봉의 종택으로 현재 12대손 송영종이 거주하며 민박도 한다고 한다. 많은 손님보다는 소수의 손님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종가 집터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 하심당 뒤에 수령이 약 300년인 홍매화가 송시인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가 이제 그 삶을 다해가는 듯... 사랑채 마당에는 자식나무 두 그루가 늙은 어미나무의 대를 잇고 있다.
# 하심당 골목을 들어서면
# 사랑채 마당 좌우에 홍매 두그루가 서 있다.
# 모두 홍매
# 하심당 당호는 안채에 걸려 있다.
# 하심당 홍매는 그 수명이 다해 가는듯...
# 대를 잇고 있는 홍매
산청 삼매
남명매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난세에는 벼슬살이 하지 않는다며 평생을 벼슬과는 담쌓고 한평생 갈고 닦은 학문으로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여생을 마친 남명선생께서 지리산 자락에 ‘제자를 크게 키운다’는 뜻의 산천재를 짓고 그 마당에 심었다는 남명매는 450여년을 한결같이 눈 덮힌천왕봉 바라보며 강직한 선비의 기개를 한껏 내뿜고 있습니다.
<임금의 정사가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망했으며 인심도 떠났다. 대비는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선왕의 고아일 뿐...>이라는 직언(단성소)은 감투싸움이나 일삼는 작금의 게접스럽고 야마리 없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란 말일까?
산천재 또한 선생의 깨끗하고 단정한 선비의 위엄이 서린 옛 모습은 오간데 없고 값싼 분칠 덕지덕지한 되모시 꼴로 많은 돈 들여서 겉치레해 놨어요. 그래서 기둥 주련에 새겨놓은 선생의 시 德山卜居 보기가 부끄럽지요.
春山低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십 리 은하 같은 물 마시고도 남으리.
# 산천재 마당의 남명매
# 남명선생의 고고한 기품을 닮은듯...
# 분칠한 산천재에 마루바닥은 엉망진창이다..
담양에 가서 좀 배워와야 할 듯...
# 자랑스러워하는 신식 콘크리트 기와집(옛집은 방치해 두고서...)
# 기념관 옆에 매화 몇그루 서 있다.
#산천재에서 바라 본 천왕봉
원정매
대원군이 글씨를 써줬다는 원정구려(元正旧廬, 원정의 옛집)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남사예담촌 하즙선생 고택 마당의 원정매는 고사하여 화석으로 만들어졌고... 그 뿌리 곁에 후계목을 심었는데 원줄기 밑둥치에서 가지가 하나 뻗어 나와 후계목과 함께 자라며 붉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원정매는 분양매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는데 이는 고택이름이 ‘큰 빛이 드는 집’이라는 분양고가(汾陽古家)로 불리기 때문이라 합니다. 원정공 하즙은 고려후기 문신이라는데 매화나무 아래 그의 매화시비가 있어요.
元正公詠梅詩
舍北曾栽獨樹梅(사북증재독수매) 집 양지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臘天芳艶爲吾開(납천방염위오개)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明窓讀易焚香坐(명창독이분향좌)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未有塵埃一點來(미유진애일점래)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 원정매
# 죽은 둥치에서 가지 하나가 살아 나왔다.
# 대원군의 글씨라고?
# 집 뒤안가 밭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는데...
정당매
단속사지 정당매는 고려말 정당문학이란 벼슬을 지낸 통정공 강회백(원정공 하즙의 외손자)이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어서 정당매(政黨梅)란 이름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강회백이 죽은지 100여년이 지난 뒤 탁영 김일손이 단속사에 갔을 때 정당매는 이미 죽고 썩은 등걸만 남아 있더란 이야기를 탁영집에 기록하고 있다니 후손이나 그 절집 스님이 심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옆에 政堂梅閣이라는 비각까지 서 있지만 매화나무는 고사하여 시멘트화석으로 변해버려서 안타까울 뿐이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밑둥치에서 뻗어 나온 한 가지가 꽃을 피웠는데...그러나 가지에서 채취한 접순으로 후계목을 키워 고사목 밑둥치에 심었으니 정당매는 대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죠.
# 정당매는 말라 죽어서 박제되었고, 옆에 후계목 3그루를 둘러 심었다.
# 지난해 심은 후계목에서 매화 한송이 피웠다.
# 단속사지 3층석탑
# 2013년에는 가지 하나 살아 있었다
# 단속사지 오가며 보는 히어리
그 외 산청의 고매
운리 야매
구름마을 단속사지 뒤에는 정당매가 있고 그 서쪽으로 마을과 작은 개울 건너에 네댓 그루의 들매화가 있어요. 논 밭두렁에 누가 심었을까? 자생매화일까? 큰 나무는 3~400살을 족히 되었을 것 같은 백매인데 둥치와 가지가 고매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워요
# 우리나라 야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 가지 끝도 기품이 넘치고...
# 운리 야매 인근에 3~4그루의 야매가 있다.
광제암문(廣濟岩門)
단속사의 동문으로 ‘넓게 세상을 구제하는 바위 문’
단속사지에서 한참을 내려가면 개울가 큰 바위에 각자가 있는데 예전에는 찾아가기가 어려웠지만, 지난해 진주사는 사람이 바로 옆에 집을 지었어요.
경주최씨 중앙종친회에서는 “<동국여지승람> 진주조에 의하면 「단곡사는 지리산 동쪽에 있으며 입구에 최치원이 쓴 「광제암문」이란 네 글자를 새긴 돌이 있다.”고 하여 이 암각글씨를 고운 선생께서 쓰셨다고 하지만, 글씨 옆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화13년 을미(서기 995년)에 승려 혜원이 쓰고 승려 청선이 새겼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 단속사지 오가는 길 아래 광제암문 각자
# 누군가가 인근에 집을 지어 남근석과 각자가 새겨진 바위를 정원처럼...
최씨고택 홍매
양반들 말 타고 드나들 때 보이지 않게 높이 쌓은 돌담장 고샅길을 돌아 들어가는 남사예담촌의 최씨고택은 사대부 주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앞 마당가에 수령이 약 100년 되었다는 홍매화 한그루가 진한 향기를 흩날리고 있어요. 원 둥치는 잘리고 한 가지만 남아서 나무모양은 볼품없지만 진향 향기가 오래 머물게 하죠.
# 말 타고 드나들 때 들여다 보이지 말라는 높은 돌담을 들어가면,
# 사랑채 앞에 홍매 한그루가 있다.
# 향이 짙고 색이 매우 곱다.
# 남사예담촌 주차장 뒤 이씨백매
# 빈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담장너머로 구경할 수 밖에 없다..
도천서원 노산매
고려후기 사신으로 갔던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대에 감추어 와서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삼베옷 입던 우리 민족에게 따뜻한 무명옷과 솜옷을 입게 했던 삼우당 문익점을 모신 도천서원 앞마당가에 후손들이 심은 매화나무라는데, 도천서원이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손된 후 사람들이 노산정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니 노산매란 이름은 아마도 노산정사 건립 때 심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50살 정도 되었을까?
문익점은 ‘부족한 자신의 도를 근심하고, 민초의 살림을 근심하며 나라의 어려움을 근심한다.’는 뜻으로 호를 삼우당(三憂堂)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공천이니 탈락이니 계파니 탈당이니 이삭줍기니 진박이니 빨강당, 파랑당, 녹색당, 노랑당 등 감투싸움이나 일삼는 우리 정치인들이 본받을 일이지요.
# 도천서원 마당의 노산매
# 성철스님의 생가지 겁외사 뒤에는 홍매 한그루와
# 백매 한그루가 있다.
대원사 백매
운문사, 동학사, 수덕사, 석남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도량 대원사는 지리산 전통 종주길인 화대종주의 종점이자 시점이죠. 봉상루 들어서기 전 절집 오른편 담장 밖 높은 곳, 마당에 들어서면 종루 담벼락 뒤에 두 줄기로 훌쩍하게 키 큰 백매는 청아한 향기가 아주 황홀합니다.
또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로 화려하게 치장한 대웅전 문살, 대웅전과 천광전 사이 원통보전의 특이한 건물형태를 살펴보는 재미도 옹골차죠. 아쉬운 점은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보물 1112호 다층석탑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사리전 마당에 서 있기에 멀리서 담장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 대원사 봉상루 바깥 백매
# 마치 강냉이 튀밥 같다..
# 온 절집에 매화향이 가득~
# 매화나무 둥치에 겨우살이가 돋아났다.
# 대원사에 가거든 대웅전 문살을 꼭 구경하시길...
대웅전과 천광전 사이의 원통보전도 구경하시고,
# 사리전 앞 붉은색의 다층탑은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 대원사 오가는 길가의 면사무소 마당에는 오래된 능수벚나무가 있고
# 그 면사무소 돌아 들어가면 동네에 제법 오래된 백매 서너그루가 있다.
# 서당마을 경로당앞을 지나면 팽나무 한그루 서 있고..
# 산아래 야매 한그루 있다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과 개평 고매
내 고장 함양이 ‘선비의 고장’이니 ‘좌안동 우함양’이니 하는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는 데는 일두 정여창을 빼놓을 수 없죠. 그러나 태어난 후 지금까지 함양에서 살아온 나는 일두 정여창에 대해 잘 모릅니다.
호가 ‘한 마리 좀’이라는 일두 정여창은 조선 전기 성리학자로 점필재 김종직을 스승으로 공부하였기에 정몽주,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도통을 계승하였다고 합니다.
1490년 나이 40이 되어서 과거에 급제하고, 1494년 안음(안의)현감이 되었으나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고(연산군이 세자시절 스승이었으나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1504년 유배지에서 향년 54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유림 동료 친지들이 두 달에 걸쳐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해와 장사지냈으며, 그 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라는 극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복관되고, 의정부 우의정에 추증되고, 문헌공의 시호가 내려졌고, 1610년 정몽주,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와 더불어 동방5현, 동국 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 함양 남계서원, 나주 경현서원, 상주 도남서원, 합천 이연서원, 거창 도산서원, 종성 종산서원 등 9개의 서원에서 모시는 성리학의 대가라고 합니다. (위키백과 등에서 요약함)
일두선생이 태어난 개평마을은 남도지방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일두선생의 후손들이 조선 후기에 지은 일두고택(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풍천 노씨 대종가, 오담고택, 노참판댁 고가 등 고래등 같은 한옥들이 즐비하여 과히 한옥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그런 전통한옥마을을 살기좋은지역만들기사업(행안부 시범사업) 한답시고 이것저것 분칠한 내가 부끄럽다. 그러나 내 딴에는 역사와 전통은 살리되 주민의 생활편의를 도모한다며 많은 고민을 했었고, 또 시범사업과 연계한 우리마을 보물찾기사업에 ‘전통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일두 정여창 선생과 고택’, ‘우리나라 최초의 국수 노사초선생과 생가’, ‘동안과 당송’, ‘임금님께 진상한 개평두리곶감’ 등을 발굴하고 응모해서 전국 최우수상을 받는 영광도 있었지요.
그런 전통 깊은 마을에 고매는 노참판댁 사당 뒤 탱자나무 울타리에 단 한그루뿐입니다. 도 문화재로 지정된 노참판댁은 구한말 우리나라 최초의 국수 사초 노근영 선생이 태어난 집이고, 우리마을 보물찾기로 발굴한 사초선생을 기리기 위해 맞은편 언덕에 사적비와 정자를 세웠고, 매년 노사초배 전국아마바둑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죠.
# 일두고택의 사랑채
# 개평에는 사초 노근영 생가(노참판댁) 탱자나무 울타리에 백매 한그루 있다.
# 사초 노근영선생 사적비
# 개평마을에서 안의 가는 길가 봉곡마을에도 홍매 한그루 있는데...
# 50년 남짓 되었을 듯...
동계종택 백매
내 탯자리 安義에는 안의 삼동(심진동, 화림동, 운학동)이라는 빼어난 절경이 세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거창에 편입되어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운학동 수승대 앞에 동계 정온선생의 고택이 있어요.
동계선생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는 등 패륜을 저지를 때 <전하께서 그런 짓을 저지르고 죽어서 무슨 낯으로 종묘에 들어가 선왕들을 만날 수 있겠나이까?...> 라는 상소를 올린 후 제주에서 10년이란 세월동안 위리안치 유배생활을 했는데, 훗날 추사 김정희가 그곳으로 유배 갔을 때 그곳(대정)사람들로부터 동계선생의 선비다운 유배생활 얘기를 전해 듣고서 거창 동계종택을 찾아와서 충신당(忠信堂)이라는 편액을 써주고 갔다 합니다.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이라는 정려가 걸려있는 대문을 들어서서 마주보이는 사랑채에는 추사가 쓴 忠信堂과 함께 某窩(모와), 鶴庵(학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某窩는 의친왕 이강이 40여일을 이 집 사랑채에 머물 때 써준 글씨고, 鶴庵은 어느 한 선조의 휘호라 합니다. 한국관광공사가 명품 고택으로 선정한 동계종택의 종부는 12대 만석꾼 집안으로 한국판 노블리즈 오블리제의 상징이라는 경주 최부잣집 따님이셨다고 합니다.
동계종택의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눈썹지붕이라는 이중 구조의 지붕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고, 지금은 사랑채와 중문채, 대문채의 방에 냉난방시설을 설치하여 고택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돈 주고 숙박을 할 수 있죠. 참고로 정부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한옥체험숙박을 할 수 있는 전국의 명품고택은 100여 곳이라는데 안동 농암종택, 북촌댁, 노송정고택, 경주 향단, 충의당, 논산 명재고택, 강릉 선교장 등이 있다고 합니다.
동계종택 사랑채 누마루 앞에 백매 한그루가 높다란 단 위에 심겨져 있어요. 당초 사랑채 마당에는 가운데와 좌우에 화단이 있었고 매화나무는 왼편 중문채 앞 담장가에 있었던 것을 지난해(?) 화단을 다 없애고 매화나무를 오른편 누마루 앞으로 옮겨 심었나 봅니다. 옮겨 심을 때 가지치기로 단정해진 가지 끝에 듬성듬성 매화가 피었어요.
# 거창 동계종택 사랑채
# 사랑채의 현판(충신당, 모와, 학암)
# 지난해 가을쯤에 옮겨 심은 듯...
정리하고 보니 두서가 없네요...
첫댓글 매화가 이렇게 예쁜줄 몰랐네..
명품매화꽃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매화의 종류가 상당히 많은걸 이제 알앗네요. 사진 한장,한장, 모두가 기품이 있어보입니다.
옛날 선조들의 시를 읊는 정서적인 가락들이 느껴지네요. 물에 빠뜨린 DSLR 카메라는 이상이 없는지 걱정이되네요. 값좀 나갈텐데~ㅎ
귀한 자료네요. 가본곳도 있고 ......
다 가보고 싶은 곳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