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유치원 반장선거 / 최영애
두 해 전쯤이었나. 키우는 강아지의 사회성 교육을 위해 강남 최고 수준의 애완견 유치원에 보낸다는 지인 아들의 말을 들었다. 강아지 유치원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오늘은 애완견 유치원 반장 선거가 있었다는 기사가 조간신문 실렸다.
경기도 어느 애견 유치원에서 강아지 반장 선거가 있었다. 견생 30마리 중 수업에 적극적인 네 마리 후보가 경쟁하게 되었다. 자격은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거나 “기다려!”라고 했을 때 오래 버티고, 출석률이 높거나 다른 견생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강아지가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자식같이 귀하게 여기는 강아지가 반장으로 뽑혔으니 견주는 기분이 좋아 유치원에 개껌을 돌렸다고 한다. 퇴근한 아들에게 신문 기사를 들려줬다. 종일 혼자 삐쭉거리며 참았던 웃음으로 아들과 함께 호탕하게 웃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반려견을 자식처럼 애지중지 여기는 가정의 수가 늘어난다. 실제로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점점 줄어들고 반려견 유치원은 상승세를 타는가 하며, 이로 인해 펫 사업이 발달하는 추세다. 애견 전문 기관에서는 애견 유치원 교사 양성, 전문 훈련사, 놀이 지도법, 미용 기술, 행동심리학 등을 교육해 배출한다. 강아지 호텔이 생겨나고 전용 카페와 놀이동산, 용품 판매점, 동물병원, 심지어 화장장까지 성업 중이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영리한 견들이 있다. 마약 탐지견, 재해구조견, 맹인 안내견, 군견, 추적견 등이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애견 대학도 생겨날 판이다. 그때는 학식이 풍부하고 교양 넘치는 대학 출신의 멋진 견들이 전공 분야에서 성실하게 직분을 다할지도 모른다.
나도 오랫동안 애완견을 키웠다. 애들이 용돈을 모아 무턱대고 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키웠던 하얀 말티즈 쫑이다. 귀찮다고 생명이 있는 것을 내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내가 애완견 치다꺼리까지 떠맡은 셈이다. 무엇보다 예쁘기도 하고 온갖 귀여운 재롱에 푹 빠져 점점 정이 들어 애완견이 식구가 되었다.
당시 처지는 낮에는 온 가족이 집을 비워야 했다. 쫑이는 종일 홀로 빈집을 지켜냈다. 강아지 유치원이 있다 해도 빠듯한 형편으로는 원비가 엄청나 유치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 못마땅하면 돌봐주는 주인 손을 사정없이 물어버렸다. 심지어 잘생긴 아들 코까지 물어 병원으로 달려갔던 적도 있다. 난폭하다고 내친다면 누가 성질머리 고약한 사나운 녀석을 돌봐주겠는가. 내가 조심하고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에 보낸다 한들 원생들을 괴롭힐 것은 뻔하다. 요즘 인사청문회에서 아들 학폭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들의 공세에 곤욕을 치르는 장관후보자처럼, 나 또한 훈육을 잘못시킨 탓으로 견주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해 견주 앞에 머리를 숙여 용서를 구하는 일이 잦았을 테고, 비싼 치료비까지 지불하는 경우도 빈번했지 싶다.
강아지 18년은 사람의 수명으로 치자면 이미 백 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인간도 세월이 더할수록 몸이 말하듯, 강아지 역시 온갖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기력 회복으로 영양제를 맞기도 하며 복용하는 약 종류도 늘어갔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동물이니 엄청난 치료비가 들었다. 부모의 경제 사정을 알 리 없는 철없는 애들은 오직 강아지의 아픈 고통만 안타까워 울고불고 병원가기를 채근했다. 나 역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한밤중에 다급하게 응급실을 찾아가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날 어느 모임 식사 자리에서다. 밤잠을 설쳤으니 노곤하고 연달아 하품을 해댔다. “어젯밤에 어르신이 위독하여 응급실에 다녀오느라 밤잠을 못 잤다”는 내 말에 모두가 한 마디씩 던진다.
“에구 우짜노? 어르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가요?”
“올해 연세가? 어르신 모시고 산다고 큰 욕 봅니더.”
내 처지가 힘들고 딱하게 여긴 분들이 저마다 위로차 한마디씩 건넨다. 졸지에 시부모께 정성을 다하는 지극한 효부가 되었다. 결국 나이가 많이 든 애완견으로 밝혀져 모두 배를 잡고 쉽게 멈춰지지 않는 긴 웃음을 웃었다.
강아지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았던 쫑이의 생도 끝이 왔다. 화장을 진행하는 분이 강아지 몸을 깨끗이 닦고 최고급 삼베 수의를 입혀 관속에 뉘였다. 종교에 따라 제상을 차려 예를 올리고 또 다른 순서까지 진행한 다음에야 화장에 들어갔다. 장례 예식의 뻔한 상술인 줄은 알지만 쫑이가 떠나는 마지막 길이라 최선을 다했다. 진행하는 분은 조화로 잘 치장해 놓은 납골당을 권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숲에 뼛가루를 뿌렸다. 외출할 때나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이다. 짐승도 영원한 이별은 견디기 힘들다. 한동안 빈자리가 허전하고 슬펐다. 어떤 경우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는 기르지 말라고 아들딸에게 일러두었다. 내가 한 이 말은 자손 대대로 전할 것을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개 팔자가 상팔자다’라는 옛말이 지금 이 시대를 알려주는 예언 같다. 공원을 갈라치면 애완견을 아기 띠로 업고 다니거나, 귀엽고 예쁜 옷을 입혀 고급스러운 유모차에 태워 다닌다. 심지어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면서 여행길을 같이한다. 명품 의상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애완견을 제법 보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 아니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개가 그렇게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버렸는지. 간혹 차들이 질주하는 위험한 대로를 가로질러 가는 떠돌이견이나, 먹을 것을 찾아 시장바닥을 누비는 애완견도 있다. 쏟아지는 비를 맞은 후줄근한 개들을 흔하디흔하다. 애완견을 기른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귀엽고 예쁜 모습만 보고 무턱대고 입양했다가 냉정하게 내치는 가슴 아픈 경우를 더러 보았다. 입양이라면 끝까지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험자인 내 생각이다.
반장을 뽑는 애완견 유치원 소식에,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개판이 된 희한한 세상을 산다 싶어 그저 헛웃음이 난다.
첫댓글 와! 애완견 반장 선거. 상상도 못한 일이네요. 재밋게 읽고 갑니다
시의적절한 소재를 다뤄 재밌게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단순 동물로서 집을 지키는 기능만으로 그저 이름이나 지어 불러주더니 어느 시기부터 호칭이 애완견으로 바뀌어 개들도 사회적 공동체로 인정받아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식용 등 학대받으며 사회적 이슈로 관심을 끌더니 이젠 독립된 인격체나 다름없는 생명체로 인간과 공존하며 그 역할이 늘어나기에 반려견이라는 최상의 호칭을 붙이고 있으니, 개가 사람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개가 국회에 입성할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ㅎㅎ
사족이지만, 개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한 달에 적지 않는 비용을 지출하며 돌보고 꾸미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이웃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개에게 쏟을 비용의 1/10이라도 사회적으로 보람된 일에 쓰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애완견을 길러본 경험이 있어 적어본 글입니다.
이삼우 선생님, 최성원 선생님 읽어 주시고 댓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