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
“나는 불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햇빛과 바람과 구름을 당신 눈 속으로 담는
시의 언어를 감춤으로 드러내는 윤선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경북 의성에서 과수원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꽃과 나무를 유별나게 좋아하셔서 우리 집은 사계절이 아름다웠습니다. 집 안팎으로 봄부터 꽃이 지천으로 피고 가을까지 여러 가지 과일이 익었고 늘 책이 가까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몸소 체득한 것과 유복했던 유년이 제가 글쓰기의 재산이란 걸 새삼 깨닫습니다. 한글을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형제들은 인접한 도시로 유학을 떠났고, 막내라서 형제들과 일찍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책과 친해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막내로서 가족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은 편이었고 대학에 입학하고 집성촌에서 자라면서 보고 겪은 우리 집안 서사만으로도 몇 권의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소설을 썼으나 결실을 이루지 못했고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늦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현실과 꿈의 거리는 지구 한 바퀴 거리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독서 논술 강사로 지내다가 청소년수련관에서 독서 논술지도자과정 성인 강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큼 제 삶의 변곡점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경험을 통해 강의 노트를 만들고 일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전문 강사 생활은 그렇게 몇 년 지속되었습니다. 실증이 날 때 쯤, 남편 직장 파견근무로 서울을 떠났다가 몇 년 후 다시 돌아와서 지금 직장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안정을 찾게 되자, 20대에 놓아버린 꿈이 스멀스멀 살아나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벌써 저에게는 시를 필사한 노트가 여러 권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를 선택했습니다.
다시 글을 쓰는 리듬을 기억해 내는 일은 지나온 슬픔의 몇 배였는지 모릅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 자신과 싸움 끝에 2018년 시 전문지 <시와 반시>로 등단을 하고, 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은 해 2021년에 앤솔러지 『누군가 이미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청색 종이 2021.8)를 냈습니다.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걷는 사람 2023.9)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집 소개 및 소회
정체성 위기와 가치 혼란으로 방향타가 되어줄 기준점을 상실한 유동 사회에서 표류하는 우리들의 삶을 성찰의 자세로 바라보았습니다. 모바일을 비롯한 테크놀로지까지, 휴대폰과 소셜 미디어에 갇혀있는 고독하고 외로운 우리를 고정시켜 줄 닻을 꿈꾸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바이러스로 인해 파편화 되어 가는 일상에서 타자에 대한 존중과 환대가 절실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같이 고민해 보는 일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현대인들의 고독한 일상을 조명했습니다.
시는 제 존재의 방식입니다. 시집을 내고 나서 일주일간 잠을 설쳤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함 때문이었습니다. 시집을 펼치면 흔히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들을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과분하게도 초청 낭독회와 선생님들의 리뷰를 많이 받았습니다. 시집 보내드린 분들께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도 생각 외로 많이 받았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더 잘 쓰라는 응원으로 다가와서 어리둥절합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닻을 생각하며 연대하기를 꿈꿉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시집을 내게 된 동기
등단 이후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이 모여서 시집을 엮게 되었습니다. 제 시와 삶의 새로운 변곡점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
시는 나의 고백입니다. 첫 시집이라는데 큰 의미를 둡니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그간 써왔던 시들을 정리하면서 퇴고했습니다. 시집의 물성이 손에 잡히는 순간 제 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와 바람을 맞고 있던 제 시에 튼튼한 집을 지어주어서 든든합니다. 시집 제목 정하는 일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교정이 끝날 때쯤, 결정적인 구절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많이 들여다보면서 매만졌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을 추천하신다면?
시집 1부에 실린 시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입니다.
월담을 주제로 쓴 시입니다. 이제는 어떤 월담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로 제 경험에 비추어 미학적인 표현을 빌려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유월이 월담을 한다
어제보다 커진 이파리의 박수 소리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터진다
울타리를 깁고 있는 덩굴장미
솔기마다 화장이 들뜬 얼굴들이
담장을 기웃거린다
당신은 내 심장이다
가슴보다 조금 높은 담장
유월이 몸을 털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마음들
마음을 준다는 것은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복기한다는 거
오르다가 떨어지고
꽉 잡은 손아귀가
맥없이
또 흘러내리고
붉은 질투가 수북히 떨어져 내리던 담장 아래
긴꼬리딱새가 알을 낳는 동안
당신의 잠의 꼬리를 잘라
내 침목 위에 두고
밤새 가위눌린 심장 위에
담장을 세운다
한 뼘 더 자란 밤의 정원은
무성히 얼굴만 붉히고
숲들이 일제히 두 팔을 흔들어
초록의 가지를 켠다
먼 산에 얹힌 저녁 해가
쑥스러워 눈을 감을 때까지
저녁은 초원을 부슬부슬 밟고 올라와
당신에게 닿지 못한 시간은
가시에 걸려
솔기마다 울음이 비어져 나오고
사유의 저쪽
붉은 울음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
월담을 꿈꾸는 나는
당신의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오를
굽이 높은 빨간 구두를 신고
-시집을 내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100일간의 기다림’
메이저 출판사에 시집 투고를 했는데 모두 거절 메일을 받았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 없어도 잘 살아 왔는데, 그만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변죽을 부렸습니다. 그때 만난 출판사가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투고 후, 3개월 후에 답신을 받았습니다. 작품이 너무 밀려서 1년 후 출간을 계획하고 출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차 3차 교정이 끝나고 표4를 받아놓고 출간 날을 제 생일날로 잡아서 해설만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붕공장(해설)이 너무 바쁘신 거예요. 봄이 지나고 여름도 지나버렸습니다. 내 시의 집의 운명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해설을 기다리던 봄과 여름이 내 인생에 있어서 기나긴 우울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긴 시간만큼 해설자는 숙독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저는 충분한 퇴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설을 받아 든 순간 그간의 기다림이 한꺼번에 날아갔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서 말의 구슬을 보배처럼 꿰어주셨습니다. 출간예정일에서 딱 100일 만에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내용물에 튼튼한 골격과 지붕을 얹어 주신 김대현 평론가, 손택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계획
이번 시집은 등단작과 발표작을 묶은 시집이라서 뚜렷이 나타나는 경향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집은 표현과 발상을 지나서 말을 좀 절제하고 사유의 깊이와 폭을 염두에 두고 행간이 읽히는 시를 담고 싶습니다. 모던하면서도 부드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한 여백의 힘을 보여주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아름다움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 가까워지려고 뷰티라이프를 펼친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본인의 향기를 살짝 토핑하세요. 책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찾듯이 뷰티라이프를 찾은 당신은 아름다움에 물든 분이십니다. 거기에다 시의 향기에 젖으면 행복한 시간도 더해질 거예요. 시와 함께 행복한 계절로 떠나봐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뷰티라이프> 202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