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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 문제인 외모 지상주의를 다룬 <두근두근 체인지>(이하 <두두체>)가 10대들의 시트콤으로 수용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노도철 PD는 그때부터 가족 이야기를 구상했다. “나와 신정구 작가도 가족을 떠나 혼자 오래 살아왔다. 오늘날의 가족은 한달에 1시간도 마주앉아 대화하기 힘들다. 눈뜨면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다투는 장면 자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신정구 작가도 말한다. “우리 세대나 더 어린 세대는 가족을 불편해한다. 가족들이 가족임을 느끼려면 친구를 사귀듯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뿐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흔들리고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미움의 핑계로 삼기도 한다.” 5번째 에피소드 ‘묘하게 미끌거리고 낯선 명절’의 도입부를 보자. 짐짓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를 걸고 깜짝 귀가로 가족을 기쁘게 하는 정겨운 남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두일은 문득 부러워져 프란체스카에게 전화를 건다. “어, 난데.” “(차갑게) 근데?” “오늘 회식이 있어서 늦어.” “(싸늘하게) 그래서?” “먼저 저녁 먹으라고.” “(냉랭하게) …미친 거야?”
<안녕, 프란체스카>가 건드리는 두 번째 공감대는 가난이다. 따지고 보면 가난은 오늘날의 가족이 거의 유일하게 공동으로 감당하는 과제다. 일찍이 분유 절도와 세뱃돈 가로채기를 감행했던 두일과 식구들은 조만간 부동산 사기를 당해 중고 승합차 한대를 집삼아 떠도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이 미국 시트콤이었다면 시민권자 한 사람에 빌붙어 위장 가족으로 사는 불법 체류자들의 이야기를 했을 거라는 신정구 작가의 말은 <안녕, 프란체스카>의 본색을 짐작게 한다. 2월28일 방영된 5회에서 두일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피자 배달 늦는다는 소식에 “죽여버리겠다”고 격분하던 프란체스카는 두일의 교통사고 소식에는 덤덤하다. 한술 더 떠 뱀파이어라 죽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보험금을 노리고 병실까지 폭파한다. 판타지에 기댄 잔혹한 은유다. “죽지는 않아. 하지만 아파”라는 두일의 말처럼 가족은 죽지 않을 만큼 서로를 다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쨌거나 수백년을 홀로 잠들었던 뱀파이어들과 외톨이 두일은 자꾸 서로에게 익숙해져가고 있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라는 프란체스카의 말에 두일의 콧등이 시큰해지는 날도 있지만 지속적 위안은 없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말하는 바는 스위트 홈 예찬이 아니라, 가족이 줄 수 있는 것은 찰나의 온기뿐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서 삶에서 중요하다는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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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적인 장면 구성, 내적 서사를 면밀히 뒷받침하는 선곡, 스탠딩 코미디에 육박하는 또렷한 캐릭터와 열연, 패러디 대신 직선적인 풍자를 선호하는 우직함 등등 <안녕, 프란체스카>는 <두두체>의 양식을 이어받고 있다. 그렇다면 <안녕, 프란체스카>의 전작을 훌쩍 넘어서는 반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흡혈귀는 진부한 듯하면서도 무의식에 강렬히 호소하는 캐릭터이고 선명한 장르적 도상이다. 즉, 스타일화(化)가 용이하다. 음울한 가족사진과 로고음악인 고지마 마유미의 <Study in A-minor>는 쉽고 빠르게 <안녕, 프란체스카>를 인지시켰다. 주연 대부분이 신인이었던 <두두체>와 달리 중견 배우 심혜진, 이두일이 무게중심을 잡은 가운데 캐릭터들도 5회에 이르러 대부분 안착했다. 게다가 개성적 외양을 가진 <안녕, 프란체스카>의 인물들은 인형이나 액션 피규어처럼 어필한다. 월요일 밤 11시로 옮겨온 방영시간의 이점도 있다. “11시는 성인 시트콤 시간대다. 성인 시트콤 하면 흔히 섹스코미디를 떠올리는데, 사실 같은 시간에 케이블 채널 돌리면 진짜 성인영화를 볼 수 있으니 그것은 장점이 못 된다.” 심야 시간대가 <안녕, 프란체스카>에 주는 프리미엄은 은근한 금기의 선을 넘나드는 여유다.
<두두체>에서도 원조교제, 동성애를 그린 작가와 PD의 배포는 여전하다. 어려서 가출 못하겠다는 슬기에게 희진은 “너 아직 멘스 안 했니?”라고 묻는다. 분유를 훔친 두일과 원조교제에 말려든 슬기가 파출소 신세를 지기도 한다. 동성애도 밝은 코미디에 담긴다. “다들 시치미 떼고 있는 거야 뭐야, 그런 기분이다. 모든 여자가 생리를 하고 그걸 나이든 세대는 멘스라고 부르는데 뭐 그리 조심스러운가. 원조교제도 있는 걸 안 다룬다고 사회가 밝은 건가.” 신정구 작가는 어떤 현상을 정색하고 비판한다기보다 엄연한 현상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복남매, 운명적 사랑, 고부갈등 등 기존 드라마의 전형을 꼬집은 의도도 비슷하다. “그걸 왜 블랙 유머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중에는 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도 많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신정구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오히려 집주인에게 동생을 상납하다시피 보내는 프란체스카 가족의 태도나 모범적인 척하지만 속으로 금이 간 이웃 가족의 모습이다. 뱀파이어라는 조건이 낳는 전복의 즐거움도 뺄 수 없다. “볼 때마다 소름 끼쳐”라는 두일의 말에 “고마워”라고 답하는 프란체스카나, 인간으로 돌아가고픈 두일에게 “지식 검색해보니까 군대 가면 사람된대”라고 가르쳐주는 켠이 주는 웃음의 맛은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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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철 PD는 <스타워즈> <영웅본색> <에반게리온>의 세대를 자임한다. 그리고 그 세대의 눈으로 프레임을 그린다. 예컨대 썰렁한 상황이 벌어지면 보자기 쓰고 구석에서 구시렁대는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어른거리고, 주인공이 몽상에 빠질 때면 갑자기 뻗는 무지갯살을 본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화면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감수성에 감응하는 시청자들이 <안녕, 프란체스카>에 박수치고 있다. “언제까지 이 감성이 먹힐지는 모르겠다. 남다르게 하려고 작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논다.” 4회를 편집하면서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노 PD와 신 작가의 거리낌 없는 도취는 전염성이 막강하다.
현장에서 만난 박희진은 대본이 나오는 수요일을 연재만화처럼 두근거리며 기다린다고 했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당할 장사가 없다. 얼마 전 단합의 술자리에서 이두일은 “내가 근사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이 느낌, 그게 배우에게 정말 소중한 거다”라고 후배들에게 일렀다고 한다. 24회로 기획된 <안녕, 프란체스카>는 뱀파이어 대주교 앙드레가 도래하는 12회에서 이야기를 일단락짓고 나머지 12회를 약간 달라진 평면에서 전개한다. 제작진은 루마니아 로케이션 촬영도 욕심내고 있다. 캐릭터가 무르익어 캐릭터끼리만 모아두어도 저절로 이야기가 풀립 무렵 끝나버리는 시트콤의 수명에 아쉬움을 품어온 신정구 작가와 노도철 PD의 어렴풋한 소망은 <안녕, 프란체스카>가 국내 최초로 시즌을 거듭하는 시트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즌2는 아직 먼 훗날의 일. 당장 <안녕, 프란체스카>의 제작진은 매번 다음 회가 최고 걸작이라는 용감무쌍한 약속을 시청자와 스스로에게 남발하며 뱀파이어마냥 밤잠을 설치고 있다.
<안녕, 프란체스카> 어처구니없는 순간들“저런 더러운 것이 평화의 상징이라니!”
비둘기 난데없는 뮤지컬 시퀀스 음악광 엘리트 프란체스카의 고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