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전체주의 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1984> 미래사회를 통해 현실을 비판하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독재 권력이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체제 유지에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전체주의 독재 권력의 정점에 있는 빅브라더(Big Brother)는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사상경찰을 이용하여 인민들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소설에서 쓰이고 있는 감시기술들이 현대사회에서 실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혹자는 이 소설을 ‘사생활 침해가 문제되는 고도의 정보사회에 던지는 경고’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혹은 《1984》가 쓰인 1948년 당시의 소련 스탈린주의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반공소설로 분류하기도 한다.
유토피아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디스토피아는 인간이 예견해 볼 수 있는 최악의 미래상황이다. 그렇게 본다면, 《1984》는 환멸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던 당시의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의 오세아니아라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대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하려 했을까?
조지오웰(Georg Orwell, 1903~1950)
1903년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에 귀국하여 이튼 학교를 졸업했지만, 출세가 보장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미얀마에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도 했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1945년 소련 스탈린 체제를 날카롭게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전체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미래의 가상국가, 오세아니아
1984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개의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세 강대국들은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그것은 국경 부근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일 뿐이다. 오세아니아 당국은 당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기 위해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기구인 당은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송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한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사상경찰 등을 동원하여 당원들을 철저하게 감시하며, 일체의 반항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당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정부에서 내보내는 방송을 사람들에게 시청하게 하는 동시에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다.
최고 권력자인 빅 브라더는 무오류의 절대자처럼 숭배되고 있다. 그가 행한 연설은 항상 옳고 어떠한 오류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빅브라더와 당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와 당에서 나온 예측과 연설이 틀렸을 경우 해당 신문기사와 문서들은 모조리 회수해 기록을 수정하고 다시 인쇄한다. 이런 식으로 당이 예언한 모든 것들은 문서상으로 증명되고, 어떤 경우에도 거기에 허위가 섞여 있다고 주장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게 된다.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매 분기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구두가 생산되지만, 실제로는 오세아니아 인구 절반이 맨발로 걸어 다니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이처럼 당은 당원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날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의 거짓말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못한다. 당의 통제에 온순하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인민들을 당의 지배에 복종시키고 일체의 비판도 하지 못하도록 당은 개인의 정신과 감정까지 지배하려고 한다. 당은 당원들로 하여금 이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금하기 위해 기존의 언어를 줄이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新語)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또한 반역자 골드스타인을 내세워 주기적으로 그를 증오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대중의 불만과 증오심을 반역자에게로 집중시켜 체제를 유지하려는 당의 계획된 정책이다.
전체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의 사회상은 흡사 구소련과 북한의 체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도 독일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존재했었다. 결국 조지오웰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정신이 사라진 사회는 언제든지 전체주의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사랑을 찾아서
문서 조작을 담당하는 기록국에 근무하는 윈스턴은 숨막히는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낀다. 그는 당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맞춰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 빅 브라더와 당의 거짓말을 누구보다 먼저 접한다. 윈스턴은 자신의 일에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기 이전의 생활은 어땠는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예전보다 더 나아졌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개인에게 금지되어 있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피해 일기를 쓰는 순간, 그는 사상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사상범은 철통같은 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발각되고 만다. 하지만 윈스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기장에 쓴다. “미래를 향해,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저마다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혼자 고독하게 살지 않는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일단 이루어진 것은 없어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빅 브라더를 전능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완전한 것으로 믿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게 된다. 당의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과 같은 모순된 견해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신어로 ‘이중사고’라고 부른다. 즉,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등이 이중사고의 결과다. 결국 이중사고란 스스로 사실을 날조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정신적인 기만체계’인 것이다.
‘이중사고’는 옛말로 ‘현실통제’라고 부른다. 신어보다는 옛말이 더 실체에 가까운 표현인 셈이다. 신어는 사실상 사물의 본질을 흐리고 단어 수를 줄여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당에서 고안한 언어이다. 단어의 수가 줄어들고 단순화되면 사고능력도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사고하는 것은 곧 변혁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배집단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윈스턴의 저항은 왜 실패했을까
윈스턴과 줄리아는 결국 사상경찰에 발각돼 잡히고 만다. 그 과정에서 형제단의 일원이었던 오브라이언이 사실은 7년동안 윈스턴을 감시해 오던 사상 경찰이었음이 드러난다. 윈스턴은 고문을 담당하는 애정부로 끌려가 지독한 고문과 세뇌교육을 받는다. 고문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감을 이기지 못한 윈스턴은 사랑하는 연인인 줄리아에게 자기 대신 고문을 받게 하라며, 사랑마저 배신하고 만다. 윈스턴은 자신의 감정과 속마음까지 당이 지배할 수는 없을 거라는 줄리아와의 약속을 스스로 깬 것에 허탈해하며,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저항할 의지를 상실한 윈스턴은 당의 정책이 무조건 옳다고 믿으며, 결국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윈스턴의 저항은 왜 실패했을까? 혹시 대부분 사람들의 비판정신이 여전히 잠들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오세아니아에는 세개의 계급이있다. 최고권력자인 빅브라더 아래에는 오세아니아 인구의 2퍼센트도 안 되는 인원으로 구성원이 제한된 내부당원이 있다. 그리고 내부당 아래에는 외부당원이 있다. 내부당이 국가의 머리라면 외부당은 그 팔에 해당한다. 외부당원 아래에는 전인구의 85퍼센트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사실상 당에 입당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들은 불만의 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상경찰이 적발하여 제거해 버린다.
윈스턴은 골드스타인의 책을 읽고 나서 말한다. “사실 하늘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채 증오와 거짓의 벽으로 유리되어 있지만, 그리고 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저마다 가슴과 배와 근육에 언젠가 이 세계를 뒤집어 엎을 힘을 기르고 있다. 만약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
윈스턴의 말대로 전체주의 권력에 신음하는 다수 대중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때,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력도 시도하지 않을까.
현대사회는 ‘빅 브라더’의 감시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1984》가 발표된 당시 이 작품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미래를 예언한 미래소설이었다. 하지만 1984년을 훌쩍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은 미래소설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현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오세아니아에서 일상화된 텔레스크린은 누가 보아도 가공할 감시장치이자 강력한 통제기구이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항상 감시할 수 있지만 감시받는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다. 혹은 감시 사실을 눈치 채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자 한다. 빅브라더가 항상 당신을 주시하고 있는 오세아니아처럼, 오늘날 우리도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감시받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은행, 백화점, 관공서, 도로 등 주요한 곳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얼마의 현금을 인출하고, 어떤 물건을 사고, 무슨 공문서를 발급받는지 누군가는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공위성의 초정밀 카메라로는 안방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찍을 수 있다. 뿐만아니라 각종 감청장비들의 감시도 받고 있다. 정보.수사기관은 우리가 전화를 할 때 언제든지 그 내용을 엿들 수 있다. 그리고 휴대용전화기의 전원을 켜놓은 동안에는 우리의 위치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가상공간인 인터넷에서도 우리가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여 무슨 글을 남기는지 일일이 기록으로 남는다. 어쩌면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감시의 사각지대는 점차 사라진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조차도 언제든지 침해당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다.
물론 교통법규의 준수나 범죄 예방과 범죄자 확인 등 정보기술이 가져다 주는 이득을 부정할수는 없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편리함은 양날의 칼처럼 권력을 위한 감시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정보화는 프라이버시 공간을 위협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 그런데도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빅 브라더의 감시 체계를 동원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1984》속 전체주의적 지배체제도 어느 한 순간 확립되지는 않았다. 빅 브라더라는 우상을 만들고 그의 지배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제거해 가는 과정이 있었다. 피의 숙청과정에서 텔레스크린의 감시체계는 저항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여 반란의 싹을 애초부터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빅 브라더란 당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설정한 가공인물 일수도 있다. 사실 빅브라더는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개인집단보다 개인에게서 쉽게 느껴지는 사랑과 공포, 존경과 감동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빅 브라더는 어떤 모습일까?
/김인규 유레카논술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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