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장난으로 한 것이다. 악의는 없다. 아니, 역시 쪼끔 정도는 있을래나.
다음날 아침 감기는 아직 회복하기엔 일렀지만 나는 출근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강제로 병원에 실려갈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어제 쓴 편지는 출근도중에 역앞
에서 우체통에 넣었다.
"에취!"
한층 더 큰 재치기가 메아리칠 때마다 관내의 열람자들이 나를 힐끗 보았다. 그 날의 나
는 하루종일 맹렬한 재채기가 기침이 덮쳐,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은 알고 있었어도 이미
어쩔 수 없었다. 보다보다 못한 동료 아야코(綾子)가 관장에게 말해 준 덕분에 오후엔 서고
정리로 보내졌다.
"뒤에서 자."
아야코는 그렇게 말하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서고는 책의 품질관리상, 항상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오래된 책만 모인
그 장소는 역시 곰팡이 냄새가 풍기고, 어쩐지 보이지 않는 포자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듯
한 느낌이 들어 생각만 그러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생각하니 이미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재치기가 멈추지 않게 되었다. 아야코의 친절이 오히려 해가 되어 버린 거지만 손님
한테 폐를 끼치는 것은 이걸로 회피되었기 때문에 이걸로 그녀의 속마음은 달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사고정리전문의 하루미(春美)가 재치기가 심해서 일을 할 수 없는 내 턱밑을 가리켰
다.
"마스크 안 할거야?"
"응?"
"그거"
손으로 더듬어 보니 어느틈엔가 벗어제친 마스크가 만져졌다.
"여기에 있는 책은 코를 찌르니깐 조심해."
서고정리전문인 하루미는 여기서는 "터줏대감"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여자답지 않게 "터
줏대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시립도서관 제일의 괴짜였다. 그건 나도 이해가
가지만 넘버 2가 나라고 하는 소문은 납득이 안 갔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괴짜냐고 하면
아야코 주변의 견해로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가 괴짜스타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터줏대감"수준에는 근처도 못 가지만,,,"
그건 그랬다. 본인한테는 미안하지만 "터줏대감"과 똑같이 여겨지면 견딜 수 없다.
"난 이렇게 생각하거든. 이 놈 무쟈게 무책임하다고"
"터줏대감"은 얘기하는 내내 책장에 책을 꽂는 손을 쉬지 않았다.
"누구 말하는 거야?"
"이 책 쓴 사람."
"잉?"
"여기 있는 책말야!"
살짝 강한 어조로 "터줏대감"은 서고 속의 책을 가리켰다.
"그러니깐 그렇겠지? 이 놈은 자기 맘대로 쓰고서 나중에 정리할 우리들 생각은 아무것
도 해 주지 않냔 말이야. 봐 봐, 이 엄청난 양. 누가 읽겠어?"
그리고 "터줏대감"은 책장 속에서 한 권을 빼내 내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핵폐기물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어쩌자는 건지. 핵폐기물처리 문제를 이러쿵저러쿵하기 전에 자기 책의 나중 처리를 똑
소리나게 생각했으면 하고 여기지 않니?"
"그래? ,,,,,,,,,콜록,,,콜록"
나는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책을 돌려주었다. "터줏대감"은 그걸 받아들자 한 페이지를
짝짝 찢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터줏대감"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걸 돌돌 말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콜록, 콜록, 콜록,,,, 방금 무슨 짓 한 거야?"
그러자 "터줏대감"은 이거보란듯이 일부러 책을 찢기 시작했다. 책장에 책을 꽂는 작업
에 덧붙여서 각각 페이지의 한 장을 찢어, 돌돌 말아 주머니에 던져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스트레스해소에 꽤 좋아, 이거"
"콜록"
"해볼래?"
"콜록, 콜록,,,,,,,, 왜 그런 짓,,,콜록,,, 하는 거야?"
"재밌어서."
"터줏대감"은 좀 잔혹한 웃음까지 띄우고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나는 또 그 편지를 생각해 냈다. 속마음을 말하면 우체통에 넣고
나서부터 여태까지 나는 그것만 신경 썼다. 미지의 상대에게 그런 짓을 해서 도대체 앞으로
그건 감도 안 잡힐뿐더러 공포였다. 일단 그 생각이 들자 이미 눈앞의 "터줏대감"의 기이한
행동보다 자기의 장난의 말로가 심각한 문제였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걸까.'
책을 계속 찢는 "터줏대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심한 나는 손 쓸 수 없는 후회에 기
세가 꺾였다.
히로코가 그와 알게 된 것은 단기대학 때였다. 그는 코베시내의 미대에 재학중이고, 유
채화전공으로 산악부였다. 단기대학의 히로코가 1년 일찍 사회인이 되고, 그는 이듬해 고등
학교 미술교사가 되었다.
토쿄출신의 히로코에 있어서 코베 생활은 그가 전부였다. 그와 지낸 나날들, 언제나 함
께 했던 날들, 때로는 홀로 독수공방했던 날들, 그래도 그만을 생각하고 있던 날들, 그리고
또 그가 있는 날들, 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들, 그리고 영원히 그가
없는 나날.
그를 산에서 잃고 코베에 살 이유가 없어졌을 때도 히로코는 도쿄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돌아오라고 하는 집의 권고에 대해서도 어물쩍 어물쩍 말끝을 흐리면서 독신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자신의 의지를 히로코는 발견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직 여기에 있네, 그러한 실감에 스스로 흠칫 놀란 적
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매일 오로지 회사와 맨션을 왕복할 뿐이었다.
그것은 三回忌부터 4일째의 토요일 저녁이었다. 에 돌아온 히로코가 우편함을 여니, 쓸
모 없는 DM과 광고지에 섞여 작고 네모난 봉투가 있었다. 뒤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었
다. 봉투를 열어보니 속에는 1장의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히로코는 4번 접힌 그 편지지를
편 순간, 자기가 쓴 편지로 여겼다. 三回忌 밤의 그 편지. 어딘 가로 배달돼서 반송된 걸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한순간의 착각. 그리고, 동시에 히로코는 심장이
멈출뻔 했다.
----------------------------------------------------------------------
안녕하세요. 와타나베 히로코씨
저도 건강합니다.
하지만 쬐끔 감기기운이 있습니다.
편지는 그로부터의 답장이었다. 하지만 정녕 그럴 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장난친 걸까?
그 편지를 누가 읽은 걸까? 어떻게 그게 배달된걸까? 히로코는 잠시 가슴의 고동을 억누르
지 못한 채 그 짧은 편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해도 이게 그 편지의 답변인 것에는 틀림없었다. 그 자체가 히로코
한테는 기적같이 여겨졌다. 어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우연에도 히로코는 그의 숨결을
느꼈다.
'시 이건 그의 편지다.'
히로코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한번 더 편지를 읽었다.
히로코는 문득 그 편지를 아키바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막 돌아온 히로코는 코트를 벗을
겨를도 없이 아키바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아키바는 젬스(ジェ-ムス)근처의 유리공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히로코가 찾아갔을 때에
는 다른 작업인 들은 이미 돌아간 후로, 아카바외에 뒷정리 때문에 남아있는 조수 스즈미
(鈴美)가 있을 뿐이었다. 아키바는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의 『푸른 산호초를』흥얼거리며
세공용의 긴 파이프를 돌리고 있었다.
"엇갈릴 뻔 했군, 히로코, 나도 막 돌아갈려던 참인데."
히로코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면서 아키바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로부터 아무리 기다
려도 그의 작업은 꽤 끝나지 않았다.
아키바는 자칭 유리작가라고 하지만, 보통은 도매상한테 도매로 넘기는 유리와 꽃병을
만드는데 쫓겨서 자기 작품을 만드는 시간의 거의 없었다.
"좀만 기다려, 이제 10개 남았어."
끝에 물엿상태의 유리가 붙은 긴 파이프를 돌
리면서 아키바는 히로코에게 그렇게 말했
다.
"괜찮아. 천천히 하셔."
히로코는 막 만들어 낸 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흔해빠진
평범한 컵이었다.
"여전히 시시한 것만 만들지"
아키바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했다.
"학생 때가 좋았지. 좋아하는 작품 맘대로 만들 수 있어서."
학생 때에는 학생시절의 과제에 쫓겨 프로가 아니면 거의 좋아하는 작품 같은 건 못 만
들어 라고 투덜거린 것을 히로코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스즈미는 어느 틈엔가 돌아갈 채비를 끝냈다.
"그래!"
"히로코씨, 먼저 갈께요."
"조심해서 가세요~"
스즈미가 가버리자 아키바가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사인을 보냈다.
"뭐?"
히로코는 능청떨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두사람만의 신호였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응?"
"어쩐지 그런 얼굴로,"
"그래?"
히로코는 그걸 속이려는 듯이 아키바 등뒤로 돌아가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묘에 갔다 왔어."
"한밤중에?"
"오잉? 어케?"
"후배들에게 물어보았지롱"
",,,글쿠나"
"어땠어?"
"참배?"
"응"
"그런걸 우찌 말하면 좋은 걸까. 좋았더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나?"
"그렇구나."
"하지만, 여러 가지로"
아키바는 또다시 작업을 계속했지만 뭐가 신경 쓰이는지, 히로코를 돌아 보았다.
"?"
히로코는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아키바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거야. 무슨 일 있지?"
"어째서?"
"왜냐면, 얼굴에 써 있어."
"그래?"
아키바는 생글생글 거리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작업이 한 단계 끝나자 마자 히로코는 문제의 편지를 아키바에게 보였다.
"그이한테 편지 썼었어. 그러니깐 답장이 왔어."
그렇게 말하면 아키바가 이해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히로코는 아키바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처음부터 설명했다. 그의 집에서 본 졸업 앨범이
야기, 거기서 발견한 옛날 주소, 그한테 쓴 편지, 그리고 이 답장.
"이상하지?"
"헌데 이런 건 필시 누군가의 장난일거야."
"아마도"
"빙신같이. 그런 한가한 짓 하는 놈이 있을까."
"그래도 기뻤는걸."
히로코는 솔직히 그런 듯 했다. 하지만 아키바는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헌데 왜 그런 괴상한 편지를 쓰는거야? 히로코"
"응?"
"역시 그것 때문인가?"
"?"
"못잊는거지? 그놈"
"아키바는? 잊었어?"
"그런 게 아니라니깐. 나하
고 너하고의 관계정의 때문에"
",,,,,,,,,,,으응"
"응? 히로코"
아키바는 일부러 심각한 얼굴을 만들어 히로코에게 조금씩 다가 갔다. 히로코는 엉겁결
에 작은 비명을 질렀다.
"꺄-!"
"꺄-가 아냐"
"꺄-악, 꺅!"
"난 진지한 얘기하려 그래"
쑥스럽게 웃는 히로코의 입술을 갑자기 아키바의 입술이 붙잡았다. 히로코는 망설이면서
도 이윽고 받아들였다.
그가 죽은 후 2년 동안 둘은 어느 틈엔가 이런 거리까지 좁혔다. 하지만 몇 번이나 키스
를 하면서도 히로코는 어딘가 자기가 자기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가
마의 벌건 불이 보였다. 뺨의 뜨거운게 불 탓인가, 라고 히로코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두사람의 시간을 방해한 것은 조수인 스즈미였다. 잊어먹고 안 가져간 물건을 가지러 돌
아온 스즈미는 뜻밖의 장면에 입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 뭐야, 왜 왔어?"
아키바도 목소리가 격앙돼 있었다.
"아, 안 갖고 간 게 있어서 물건 가지러,,,,,,,,"
"어떤 건데?"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스즈미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큰일이군, 들켰어."
"어떻하지?"
"할 수 없지, 이걸로 기정 사실 성립이라고 손뼉 칠까?"
"큰일이네. 스즈미 입막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히로코에게 아키바가 말했다.
"그 놈한테,,,,, 후지이에게 부탁하고 왔어. 참배할 때"
아키바의 눈은 진지했다.
"결혼 시켜 달라고. 너하고"
히로코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젠 적당히 그놈을 놔 줘도 되지 않겠어?"
",,,,,,,,,,,,,,,,,"
"너도 자유롭게 되어야지."
",,,,,,,,,,,,,,,,,"
히로코는 편지에 시선을 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감기는 어떻습니까?
무리하지 말고 빨리 나으세요.
히로코는 이런 편지를 써서 또 다시 그 주소로 보내 보았다. 속에 감기약을 같이 넣었
다. 상대방도 반드시 놀라겠지. 히로코는 내심 킥킥거렸다.
며칠 후, 답장이 왔다.
----------------------------------------------------------------------
안녕하세요. 와타나베 히로코씨
감기약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례이지만, 당신은 어떤 와타나베씨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납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후지이 이츠키인양 행세하는 이 가짜는 어쩐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쪽에 자기 소개를 조
르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할까?"
라고 말하면서 히로코는 내심 이상하게도 기뻤다. 서로 얼굴로 모르는 펜팔이 탄생해 버
렸다. 어쨌든 천국의 그가 맺어준 사람이다. 반드시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히로코는 이
기묘한 만남에 대해서 그와 신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옛날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모르는 상대와의 펜팔 친구가 알고 보니 노인이었다는 얘기를 히로코는 기억해냈다. 그리고
이 편지 주인의 얼굴을 여러가지 상상해 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평범한 직장인. 혹시 초
등학생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와타나베입니까?" 라면서 자기는 완전히 후지이 이츠키
인척 시치미 뚝 떼는 초연함은 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그러한 것을 좋아
하는 때라고 하면 학생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초로의 대학교수이거나 하면 멋있을 텐데. 등
등 맘대로 공상의 날개를 펴면서 히로코는 드디어 열중하기 시작했다.
편지를 아키바에게 다시 보여주러 갔다.
"감기약을 보냈다고? 히로코 꽤 매너가 좋은데,,"
그리 말하고 아키바는 크게 웃고, 히로코에게 편지를 돌려줬다. 아키바의 흥미는 거기까
지 였다.
"응~, 뭐라고 답장 쓰면 좋을까?"
"잉? 답장? 히로코 또 쓸 생각이야?"
"응"
"뭐가 재밌어서? 둘 다 할 일이 없구만."
아키바의 지혜를 빌려서 3번째의 편
지가 완성되었다. 그렇다기 보다 이건 아키바가 써준
편지이다.
----------------------------------------------------------------------
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당신은 절 잊어버렸나요?
너무 심해요! 실례가 돼요.
생각날 때까지 안 가르쳐 줄래요.
그래도 살짝 힌트.
아직 독신입니다.
히로코는 그 문장을 읽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걸 어떻게 보내."
"상관없어. 얘도 완전히 후지이인 체 하잖아. 후지이 모방품에게는 이 정도가 딱 좋아."
그래도 이런 품위 없는 편지를 보낼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히로코의 머릿속에 이 편지를
보고 맛간 초로의 대학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히로코는 우선 봉투에 넣고 나중에 몰래 다시 썼다. 무의식으로 초로의 대학교수를 의식
한 나머지 좀 중후한 편지가 되어 버렸다.
----------------------------------------------------------------------
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감기는 이제 나았습니까?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에서 벚나무의 봉우리가 불룩해진 걸 보았습니다.
여기도 슬슬 봄이 되나 봅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편지 내용이 될 지도 모른다. 히로코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솔직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생각은 히로코는 오랜만에 느꼈다.
하지만 답신편지는 히로코가 예상하고 있던 내용은 아니었다.
----------------------------------------------------------------------
안녕하세요. 와타나베 히로코씨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뭏튼 코베같은데는 간 적도 없을 뿐더러 친척도 아는 사람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짜로 저를 알고 있습니까?
"어째 좀 진지한 편지네."
편지를 읽은 아키바가 말했다.
"그렇지?"
"어떻게 된 거지? 이건"
"그래도 진심이라면 어떻게 하지?"
"진심이란 게 어떤 진심일까"
그렇게 듣자 히로코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진지한 경우, 어떤 진지함이 생각했지만
히로코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얘 여자야."
"응?"
"봐, 여기"
그렇게 말하면서 아키바는 편지의 한 줄을 가리켰다. "당신은 진짜로 저를 알고 있습니
까?"라는 문장이었다.
"저(あたし)라네"
",,,,,,,,,진짜네."
"아니면 후지이를 여자라고 생각 할 지도 몰라. 이츠키라는 이름 여자도 있잖아."
"응"
"일이 복잡하게 돼 간다."
"그래."
"어떤 앨까,,"
아키바는 편지에 시선을 둔 채로 무엇인가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에
아키바가 묘한 말을 꺼냈다.
"근데 이 편지, 어째서 얘가 있는 곳으로 배달 됐을까?"
"응?"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어?"
",,,,,,, 뭐가?"
"여기서 보낸 편지가 배달 됐으니깐 이렇게 답장을 썼을 거 아냐."
"응"
"근데 확실히 그 주소엔 이젠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했잖아."
"그래. 확실하게 국도가 생겨서,,,,,,,"
"얘는 국도에 살고 있다는 거야?"
"설마."
"그렇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된 걸까?"
그런데 아키바가 황당한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가령 얘가 국도 딱 한가운데 살고 있다고 해보자."
"뭐?"
"가정이야. 중앙분리대 한가운데에 오두막이라도 짓고 살고 있다면."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거야?"
"그래. 실제로는 있을 수 없지만 그렇게 가정을 해보면."
"응."
"우편배달부가 그 주소의 편지를 가지고 온다. 하지만 배달부는 그 편지를 그 사람한테
전해 주지 못하겠지."
"그래."
"왜?"
"응?"
"왜냐고?"
"국도에 함부로 사람이 살면 안되니깐"
"그게 아냐. 그건 예를 들어서 하는 얘기잖아."
"?"
히로코는 아키바의 얘기를 잘 몰랐다.
"봐라, 이렇게 해보자. 가령 국도가 없었다고 하자."
"국도가 없다고? 이거 수수께끼?"
"아무렇게나 해. 수수께끼라고 해도 좋겠지. 국도는 없어. 따라서 후지이 집은 아직 있는
거야. 누군가 새로운 집주인이 살고 있지. 거기에 우편배달부가 간다고 하자. 그러면 편지가
전해질까?"
"응,,그러면 배달되지."
",,,,,,,,,,,,,,,,,,"
"배달 안되나?"
"어느 쪽이야?"
"배달 안된다"
"진짜로?"
"
음,,,,배달된다."
"땡~ 배달되지 않어."
"잉? 왜?"
아키바는 히로코는 속아서 좋은 듯이 생글거리고 있다.
"모르겠어?"
"응,,,,,,,모르겠어."
"배달 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깐 이름이 틀리잖아. 아무리 주소가 맞
다고 해도 이름이 다른 집으로 편지가 갈까?"
",,,,,,,그래?"
"그래. 그 주소까지 갔다고 해도 다른 문패가 있었다면 우편배달부가
우편함에 넣을 리가 없지."
"과연 그렇네,,"
"거기가 국도라도 마찬가지야."
"잉? 어째서"
"집이 어디 있건 간에 이름이 틀리는 한 얘에게 편지가 영원히 전달될 리가 없잖아. 아
킬레스와 거북이같이. 그건 좀 아닌가."
"?"
"아이고, 어쨌든 반송된다거나 하는 게 뻔하잖아."
"하지만 잘못해서 우편함에 넣을 수도 있잖아."
"확실히 그건 있을법할지도."
"그렇지?"
"그래도, 집배원이 2번3번이나 틀릴까."
",,,,,,그러네."
"그렇다고 하면,,,,,,"
",,,,,,,,,,,,,,,,,?"
"혹시 얘 진짜로 이런 이름일지도 몰라."
"어머."
"그러니깐 얘는 진짜로 후지이 이츠키라는 거지."
역시 히로코는 그러한 얘기가 믿어지려 하지 않았다. 아키바는 자기 이론을 억지로 끼워
맞춰, 어딘가가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게 분명하다고 히
로코는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우연이라기엔 너무 그렇지 않어?"
"맞아."
"허지만, 적어도 후지이란 이름이 아니라면, 편지는 전달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거지?"
"응."
히로코는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야스요의 얘기가 옳다면 그 주소는 국도가 되어 더 이상 없을 터 였다. 그런데도 거기로
떡하니 편지가 가서, 떡하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이것이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해도 그 누군
가라는게 아키바의 추론에 따르면 후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예전부
터 후지이가 살고 있던 집에 또 다른 후지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게 우연이라도
있을법한 얘긴가? 그것도 국도 위에.
"결론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란게 맞지?"
"그래. 그래도, 편지가 딱딱 오고 가는 것도, 사실이잖아."
",,,,,,,,,있잖아."
히로코가 말했다.
"역시 그이가 쓴거야."
아키바는 반쯤 어이가 없어져서 아키코를 보았다.
"히로코,,,,,,,,,,,"
"그걸로 이치가 딱딱 맞아들어 가잖아."
"그런걸 이치라고 하지않아."
"그래도 꿈은 있는걸."
"꿈은 있지만서도,,"
"그래."
"그렇친 않아, 히로코!"
아키바는 약간 화가 나 있었다. 히로코는 뭔가 기분 상한 말이라도 했나하고 몸을 움츠
렸다.
"좋아! 좋다고!
히로코는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거야. 나는 나대로 자초지종을 밝히는데
힘을 다 할테니깐."
그리고 하키바는 귀중한 증거물이라며 히로코에서게 편지를 몰수했다.
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