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어린 국립현충원 숲 길
10월19일 아름다운 5060카페 노래동호회에서 오후 두시에 7호선 이수역사내
상설공연장에서 노래공연이 있다고하여 참석했다가 1부공연이 끝난 후 사십여년 전에
잊지 못 할 추억의 장소인 동작동국립현충원에 갔는데 현충관에서 남녀혼성 합창단이
출연하는 군가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하고는 추억어린 현충원 숲길을 걸었습니다.
1969년4월17일 새벽 아픈 사연이 많은 고향을 떠나살아야 겠다는 계획을 하고
공부하던 서제의 책들과 책상 의자 등을 팔아서 여비를 마련하여
결행을 하는 날 새벽 네시반에 일어나서 고향 사람들 눈을 피해 선착장에 나와
나룻배를 타고 읍내에 가서 버스를 타고가다 영산포에 내려서 목포에서 올라오는
오후 17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는데 완행이라서 무려 열 한시간 반동안 자리가 없어
서서 오다가 새벽 네시 반에 노량진역에서 내려 결혼을 해서 딸 하나를 낳아 단칸
전세방에서 살고 있는 고향 선배님을 찾아가니 10월19일
노래동호회에서 공연을 하던 바로 그자리 이수교였습니다.
선배님은 그 때 한창 라디오 광고를 하면서 알려지던 아리랑모사505 쉐터 실을 생산하는
동광기업사원이였고 그 회사가 이수교 건너 말죽거리 가는 도로변에 있어서 출근길이
걸어서 5분이며 좋은 회사였고 꾀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어서 나도 입사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전세방이라도 얻어야 될 형편이 안되서 직장을 구하는 동안 선배집에서
기거하면서 낮엔 같이 있기가 미안해서 일주간동인 말로만 듣던 국립묘지에 들어가
파월장병 전사자 합동장례식이 치뤄지는 현충관에 들어가서 구경하곤 하다가
6일이 지난 후에 하숙을 하면서 돈벌이를 할 수있는 직장을 구해서 간 곳이 국립묘지
앞 강건너 반포동에 있는 "연해기업"이란 회사였는데 한강에 대형 철선을 띠워 건축
자재인 자갈을 채취하여 소형 철선에 받아서 노를 저어 선착장에 대어주면 이백원을
받는데 하루 평균 열 번을 실어나를 수가 있어서 고향 선배님 한 달 월급이 3만원에
비하면 배 이상 버는 샘이여서 돈 잘 번다고 고향까지 소문이 났고 내 하숙집이
국립묘지 앞 한강에 떠있는 뱃집인데 주인 내외가 본 집은 대전에 두고 식당을
하면서 하숙도 치곤 하는 중에 대전에 살던 열아홉살 된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서울에서 취업을 한다면서 올라와 엄마일을 도우면서 구직활동 중인데 어찌
하다 나하고 눈이 맞아 몰래 나와서 데이트 하는 장소가 국립묘지의 묘역 갓길을
같이 걷기도 하고 숲속에 앉아서 대화도 하고 포옹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그러다가
순찰하는 국립묘지 관리직원한테 들켜서 정숙해야할 장소에서 풍기문란죄를
저질렀다며 파출소에 넘긴다고 하니 겁이나서 하숙집에 알렸는데 국립묘지
직원들이 하숙집에 종종 와서 대포잔도 들이키고 하던 사람이라서 아주머니가
사정하니 놓아줘서 하숙집에 가자마자 아저씨한테 귀싸데기를 얻어맏고는 쫓겨
났지만 다행히 옆집에서도 하숙을 할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그 아가신 대전
본댁으로 쫓아 내려보내지고 나 또한 얼마 지나서
병역문제로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국립현충원 앞 길
↓ 현충원 담장 안 쪽
↓ 현충원 현충관 건물
↓ 현충관 앞 아름다운 자연 조경
↓현충관
2013-10-2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