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독과 인욕 / 경봉 대선사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고 이르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사바세계( 娑婆世界)이고,
사바는 감인(堪忍), 곧 '잘 참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 인도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많다.
눈, 귀,코, 혀, 몸, 생각의 육근(六根)에
부딪히는 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의 육경(六境)들에 대해서
좋고 나쁜 감정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 좋고 나쁜 감정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좋은 것에 대해서도 푹 빠지는 것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싫은 것에 대해서도 인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한(漢)나라 때의 명장 한신(韓信)은 천하를 바로 잡을 뜻이 있었으나,
몹시 가난하여 매일같이 회음성(淮陰城) 밖의 냇가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지냈다.
그 냇가에서는 몇 사람의 아낙들이 매일 빨래를 하였는데,
그 중에 한 노파가 한신을 불쌍히 여겨서 자주 끼니를 챙겨주었다.
크게 감격한 한신은 인사를 했다.
"언젠가는 이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러자 노파가 핀잔을 주었다.
"뭐? 은혜에 보답한다고?
육신이 멀쩡한 녀석이 제 입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하도 불쌍하게 보여서 밥 몇 끼를 준 것일 뿐이야.
그따위 소리는 하지도 말아라!"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하루는 회음성 안의 백정 패거리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긴 건달 하나가 시비를 걸어왔다.
"어이, 덩치 큰 친구?! 꼴은 제법인데 배짱은 있는가?
보나마나 빈 껍데기겠지?"
차츰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백정은 더욱 기가 살아서 소리를 쳤다.
"이 쓸모없는 놈!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한신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 백정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 갔고,
이를 본 구경꾼들은 한신을 '바보 천치'라고 불렀다.
뒷날 한신은 한나라 유방(劉邦)을 도와서 천하를 평정하고
제왕이 된 다음에, 회음성으로 가서 표모를 찾아 천금(千金)의 상을 내렸다.
그리고 모욕을 준 백정도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하면서 망신을 준 것!
그것을 능히 참아가면서 공부를 잘 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고맙소."
한신과 같은 인욕이라면,
그리고 그와 같은 모독을 향상(向上)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어찌 성공하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사바세계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참아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무슨 일을 하든지 목표를 이루고 성공을 하려면 꼭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욕(忍辱)이요 인내(忍耐)이다.
그런데 흔히들 인욕이라고 하면
남한테 당하는 것을 잘 참는 것만 생각을 한다.
그러나 참을 인(忍)은 남한테 당하는 것만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나쁜 버릇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나의 급한 성질, 고집, 신경질을 잘 잡아낼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참을인(忍) 자 3개를 가슴에 품고 살아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 '참을 인' 세 개의 뜻이 궁금한지 되묻는 이들이 많다.
"스님, 그냥 잘 참고 살라고 해도 되는 될 것인데
그 왜 '참을 인자 3개를 품고 살아라.' 하십니까?
특별한 까닭이 있습니까?"
그때 나는 그들에게 일러준다.
"봐라, 세상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신경질이 많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잘 살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참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급하게 다그치는 것을 잘 참아내어야 하고,
세게 고집 부리는 것을 잘 참아내어야 하고,
신경질 부리는 것을 잘 참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없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참을 인자 세 개를 가슴에 품고 살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급한 성질에 빠져서 살고, 고집을 부리면서 살고,
신경질을 뿜어내면서 살면 어떻게 되느냐?
될 일도 잘 안 될 뿐더러, 온통 후회되는 일만 저지르게 된다.
그러니 어찌해야 되겠느냐?
참을 인 자 3개를 품지 않고서야
이러한 자신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느냐?
그래서 안과 밖으로
'참을 인 자 3개를 가슴에 품고 살아라.'고 하는 것이다.
급한 성질과 고집과 신경질!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얼굴이 평온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등을 탁 치면서 꾸짖는다.
"무엇 때문에 근심, 수심 보따리를 가슴에 잔뜩 안고 다니느냐!
그 근심 보따리가 다 너의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신경질이 많은 데서 생긴 것이다. 고쳐라.
고무줄이나 용수철은 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오므라든다.
이것처럼 사람도 신축성이 있어야
세상을 살면서 상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버스에 쿠션이 없으면 엉덩이가 어찌 안 상하겠느냐?"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이 "예"하면서 반성을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신경질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품고 있는
탐(貪), 진(瞋), 치(痴) 삼독심(三毒心),
곧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법문이다.
이 삼독의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롭고 착하고
순한 마음(柔和善順心)으로 돌아설 때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신경질이 많다. 고쳐라'는 말로
돌려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느긋한 성격에 고집을 부리지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살면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데,
삼독 때문에 참을 인 자 3개를 품고 살아라. 는 것이다.
탐욕( 貪 )과 성냄(瞋)과 어리석음(痴),
이 삼독(三毒)이 바로 삼계(三界)요 삼악도(三惡道)를 만들어 낸다.
탐욕이 차면 아귀(餓鬼)의 과보를 받고,
성냄이 많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어리석음이 많으면 축생으로 태어난다.
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작용을 하여
모든 악한 세상(惡趣)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삼독 가운데 가장 경계해야 할
성냄(瞋)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마무리를 짓겠다.
예전에 금강산 4대사찰 중 하나인 표훈사의 암자
돈도암(頓道庵)에 홍도(弘道)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수행을 매우 잘하여 큰 스님으로 추앙 받았는데,
어느 날 문득 죽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한 승려가 그 암자를 찾았더니,
푸른 뱀이 나와서 꼬리로 모래밭에 글을 쓰는데,
글이 사람들을 경책하는 내용이다.
幸奉佛法得人身
多劫修行近成佛
松風吹榻眼中柴
一起嗔心受蛇身
내 다행히 사람 몸에 불법까지 만난 덕에
여러 겁을 수행하여 부처될 날 가까웠소
허나 건듯 송풍 불어 티가 눈에 들어가자
성을 문득 한 번 내어 뱀의 몸을 받았다오.
天堂弗刹與地獄
唯由人身作所因
我昔比丘住此庵
今受此身恨萬端
천당 가고 극락 가고 지옥으로 가는 것은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지은 인연 때문이요.
옛날 내가 비구로서 이 암자에 있었는데
지금 뱀이 되고 보니 한스럽기 그지없소.
寧碎我身作微塵
誓不平生一起嗔
願師還向閻浮提
說我形容戒後人
내 차라리 몸을 부숴 가는 티끌 될지언정
맹세컨대 평생토록 성을 내지 않으리다.
원하오니 스님이여 세상으로 돌아가서
나의 형상 설명하여 후인들을 경계하소.
含情口不能言語
以尾成書露眞情
願師書寫懸壁上
欲起嗔心擧眼看
비록 뜻은 품었으나 말을 하지 못하기에
이 꼬리로 글을 써서 참마음을 알립니다.
원하오니 스님이여 이 글 벽에 걸어놓고
성이 나려 하거들랑 부디 한번 바라보소.
이 홍도 비구의 이야기는 성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수행을 잘하여 대오(大悟)를 눈앞에 두었는데,
눈에 티끌이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을 내고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부린 것 때문에 뱀의 몸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처 될 몸이 뱀의 몸을 받았다.'
이처럼 성을 내고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앞길을 크게 그르치는 일이 된다.
한평생을 살면서 성을 내지 않을 수야 있겠냐마는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성냄이다.
성을 낼 일이 있을 때 능히 참아서 성을 내지 않고
고함을 지르지 않으면, 일이 잘 되는 묘한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여도
마음은 태연하게 가져서
동하지 말고, 여유롭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부디 참을 인 자 세 개를 가슴에 품어서
나 스스로가 부리는 '급한 성질, 고집, 신경질'을
능히 참아내고, 바깥에서 부는 시시비비들을 잘 극복하여
대성공을 이루길 바란다.
數片白雲籠古寺
一條綠水繞靑山
몇 조각의 흰 구름이 오래된 절 감싸는데
한 줄기의 푸른 물이 청산 감고 흐르누나.
'할(喝)'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월간 [법공양] 통권 353호 불기 2568년 6월호
<불교신행연구원>
출처 : 금음마을 불광선원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