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안보보고서 - 국가정보대학원 김영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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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국가정보대학원 김영환교수가 인터넷에 총 70여 쪽으로 올린 글을 제가 22쪽으로 축약, 편집한 것입니다.
김교수는 이 글을 공표하고 강제해직되었고, 2차 대국민안보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글은 아직 제가 입수하질 못했습니다. '반공교육의 희생물(?)'로 살아온 우리세대는 지금 개구리증후군으로 안보불감증에 뺘져 있습니다. 북한이란 나라는 50년 이상을 남침만 준비해온 특이한, 사악한 집단입니다.
그리고 김정일 이후의 정세가 더 걱정됩니다. 김정일이 죽든지, 망명하든지간에 권좌에서 물러나면 강성군부의 과두 지배체제가 시작될 거고, 호전적인 강성군부는 최후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읽어 보시고 '깨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개인의 행복추구는 국운이 뒤틀려 버리면 다 끝입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빌며...
[대국민 안보보고서]
저는 현직 국정원 직원이자 교수로서 해외정보 분야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오랜 동안 해외정보요원으로 활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북한 사람들과 ‘친분’을 나눈 경험이 있습니다)
덕분에 ‘책으로 공부한 것’과는 다른 북한의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 결과 이미 10여 년 전부터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반도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특히 그때는 우리나라도 IMF 위기를 겪던 터라 자칫하면 안보의 IMF도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금의 안보상황은 너무도 위급하게 전개되고 있기에 감히 우리 국민들에게 국가안보보고서를 직접 올리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바람은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 국민들께서 오늘의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함과 동시에 힘을 모아 대책강구에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제가 지난 10여년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바,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도록 이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전파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09년 1월 김영환
《필자의 주요 학․경력》
● 고대 졸 ● 런던대 연수(러시아어 및 소비에트 학) ●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어학연수 ● 駐모스크바 대사관근무 ● 駐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근무 ● 현 國家情報大學院 교수 겸 첩보학팀장
목 차
*「평화적 해결론」의 한계
1.「조-미수교」란?
2. 6.15 남북정상회담의 실상
3. 서해도발(제2연평해전)의 실체
*「남침 임박론」의 근거
- 또 다시 반복되는 「김정일의 오판」
* 북한의 남침능력
1. 남침의 필요조건-장거리 지하터널
2. 남침의 충분조건-무비유환(無備有患)
* 여전히 남는 의문점들
1. 전쟁 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
2. 남침 가능성에 대한 평가
3. 남침 가능성이 모호한 이유
* 국가위기관리의 장애물
1.「합리적 논리」의 함정(Mirror-Imaging)
2. 정보관(Intelligence Officer)의 불리함
3. 정치적 이해관계
4. 모호성 관리
* 대책은?
*「평화적 해결론」의 한계
1.「조-미 수교」란? 북한이 주장하는 ‘조-미 수교’란, 적화통일이 보장된 상태에서 미국과 수교하겠다는 의미이며,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 공조’ 역시 이중화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남한 내 ‘김일성 민족’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지난 2004년 4월에 작성한 ‘전시(戰時)사업세칙’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 당국이 보기에 남한 내 ‘김일성 민족’은 남침에 따른 북한군의 병력보충을 지원할 정도로 그 세력 규모가 확대되어 있다.
2. 6.15 남북정상회담의 실상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성과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대해 김정일이 동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주한미군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불가침조약)를 핵포기와도 연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북한측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먼저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김 위원장은 다시 김대통령을 향해 “내가 무엇을 하려 해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같이 반대한다. 군(軍)도 미군에 대해서는 용순 비서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설명에는 동감하는 면도 있다. 지금 철수는 필요하지 않다. 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미군은 남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김 위원장은, 북측이 보도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한사코 주장하고 있다는 김대통령의 지적에 대해 “내부용이다. 우리의 군도 긴장으로 유지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당시의 김정일과 김용순의 언행이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용순은 그보다 8년 전인 1992년에는 오히려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 하겠다’는 입장을 미측에 전달한 당사자였던 것이다. 둘째, 김정일과 그의 최측근인 김용순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셋째, 일개 비서에 불과한 김용순이 ‘지도자 동지의 방침’에 대해, 그것도 남한의 대통령 일행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특성에 비춰볼 때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장은 김정일의 기만에 속은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서해도발(제2연평해전)의 실체
서해도발이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북방 한계선을 월선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던 무력 도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당시 우리 정부는 ‘우발적 충돌’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 당시 정부의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이 도발직전(2002.4)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걱정 끼칠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다, 도발직후에도 우리 정부에 메시지를 발송, “순전히 아랫사람들끼리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고였음”을 확인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6개월 뒤에 북한이 핵시인(핵보유 선언)을 한 사실에 비춰보면, 그 당시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등의 김정일의 언급 내용은 거짓에 불과하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쯤 김정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침 임박론」의 근거
그렇다면 남침이 임박했다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남침이 임박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단 한 가지, 김정일이 이미 남침을 결심한 상태라는 데에 있다. 김정일이 지난 2000년 8월 방북 중인 우리 언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통일 시기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며, 이런 표현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 경의선 및 동해선 연결
우선 당시에 김정일이 방북한 남한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동해선 연결을 제의한 적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해선도 연결하자, 서쪽(경의선)과 동쪽(동해선) 두 축선의 철도와 도로를 연결함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주장하는 한반도를 물류 중심지로 만들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 대통령 특사에게 한 말)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제의에 대해) 맞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동해선 철도 연결에 남쪽에서 합의해 줘야 한다.”
이미 경의선 철도 연결을 명분으로 서부전선의 지뢰를 제거하였기에 남아 있는 동부전선의 지뢰마저 제거하기 위해 또 다시 면회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반복되는「김정일의 오판」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1994년) 6월16일 오전 안보수석으로부터 내게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 “레이니 주한 대사가 주한 미군 가족과 민간인 및 대사관 가족을 서울에서 철수시킨다’는 것이었다.
미군 가족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시키는 것은 미국이 전쟁 일보 직전에 취하는 조치였다... 더욱이 레이니 대사도 딸과 손자 손녀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지시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유사시 영변을 폭격 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항공모함과 순양함이 북폭에 대비해 동해안에 접근해 있었다. 영변과 평양은 대대적인 미군 폭격기의 공습과 함포 사격의 사정권 안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이 이뤄질 경우 그 즉시 북한은 휴전선 가까이 전진 배치되어 있는 엄청난 규모의 화력을 남한을 향해 쏟아 부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 날 새벽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거세게 몰아붙였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상 우리 60만 군대는 한 명도 못 움직입니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 나는 지금도 1994년 북핵 위기 해소의 커다란 공이 카터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회고록 中.
실제로 그 당시 미국의 북폭 의지는 확고했다고 한다. 즉,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제재(北爆)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단호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당시 미국정부는 주한미군을 증강시키는 한편 한국내 미국인들의 소개(疏開) 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서울의 외국인 학교도 조기방학토록 했다고 한다. 당시에 카터 전 대통령의 극적인 중재가 없었더라면 ‘제2의 한국 전쟁’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작금의 국제정세가, 북한이 핵시인을 했던 지난 2002년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오늘날에는 이라크 대신 이란의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란의 핵개발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한 미국으로서는 중동지역의 미군을 한반도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2008년 10월 28일 북한 군부는 남측이 조금이라도 선제타격하려 할 경우 “핵무기보다 더 위력적인 상상 밖의 선제타격으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
● 2008년 12월 1일 북한은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전면 차단 조치
● 2009년 1월 김정일은 신년 첫 공개 활동으로 6.25 당시 서울에 최초 입성했던 부대인 ‘류경수 제105 탱크 사단’을 방문, “군대를 필승불패의 혁명 무력으로 더욱 강화 발전시킬” 과업을 제시
* 북한의 남침 능력 여부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남침 능력이 있다는 것인가? 북한군은 최근 2년간 지상군의 특수전 수행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미사일 개발 및 잠수함 건조 등 비대칭전력 강화에 주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발간한 ‘2008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현재 119만 명이며, 예비전력은 770만 명이다. 특히 전방에 특수전 사단을 추가로 창설하는 등 특수전 병력을 6만 명 늘려 18만 명으로 확대, 보유하고 있다. 전투임무기는 840대(이중 40%는 평야-원산이남기지에 전진배치)이며, 유류와 탄약 등 핵심전쟁물자의 비축량은 2-3개월 분량이다.
1. 남침의 필요조건-장거리 지하터널
북한의 남침 전략은 소위 ‘3일 전쟁’ 또는 ‘3단계 7일 작전’ 등과 같이 ‘단기속전속결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북한은 개전과 동시에 전후방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한편 기계화 부대를 신속히 부산까지 남진시킴으로써 美 증원군의 도착 이전에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약 100여척 이상의 잠수함 및 잠수정을 동원, 약 2-3천명의 특수부대원들을 우리의 해안지대에 상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내륙지역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습대책을 수립해놓았을까. 그런 점에서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김포 및 연천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이 ‘땅 속에서 돌 깨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를 했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북한의 장거리 땅굴 탐사에 매진해 온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 중 보안사 부사관 출신인 故 정지용씨(2002.12사망)가 대표적 인물인데, 그는 현역 재직 중이던 1980년대 말 우연히 땅굴 관련 제보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숨질 때까지 북한의 장거리 땅굴 찾기에 매진했던 사람이다.
『서울 근교에서 들려오는 地下기계음의 정체 〔월간조선 5월호〕
3초마다 덜거덕거리는 갱차음
취재팀이 김포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김OO씨(35․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였다. 전자기술자인 그는 89년 3월 정씨에게 청음기〔防水用 마이크〕를 제작해주며 시추작업에 깊숙이 빠지게 된 인물이다.
다음은 김OO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지용씨와는 언제부터 알게 됐나. “88년 8월경이다. 정씨는 그 당시 우리 집에서 3백-4백m 떨어진 야산에서 시추작업을 하고 있었다.”
- 언제부터 시추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내가 전자기술자인 것을 알게 된 정씨가 89년 3월쯤 청음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여러 가지를 궁리하다가 물〔지하수〕속에서도 녹음이 가능한 동 파이프로 싼 청음기〔마이크〕를 만들어주게 됐다.”
- 이상소음을 처음 들은 것은 언제인가? “89년 4월초였다. 당시 나는 시추공에다 청음기〔마이크〕를 넣은 후 밖에다 스피커를 연결해놓고 있었다. 이후 갱차 지나가는 소리 등 여러 가지를 녹음하게 되면서 이 지역 지하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 어떤 소리가 녹음됐는가. “착암기가 돌을 깨는 듯한 ‘타타타타’하는 소리, 당시는 뭔지 잘 몰랐지만 나중에 TBM 장비가 돌 깨는 것으로 추정됐던 소리 등이 있는데 그중 탄광에서 쓰는 갱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듯한 소리가 가장 선명하다.”
- 이곳에서 시멘트로 추정되는 물질이 나왔다는데 사실인가. “6, 7차 및 12차 시추공에서 시멘트 성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검출됐다. 그것을 아시아시멘트 시험실에 성분조사를 의뢰했고 나는 별도로 한국화학시험연구소에 맡겼는데 지하 100m 지점에서는 이런 성분이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게 연구소측의 답변이었다.”
- 만일 그 같은 물질이 시멘트라고 확인되면 그것은 지하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구조물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왜 그 시추공에 대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는가. “시멘트로 추정되는 물질에 대해 군 당국은 처음부터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것의 증명가치가 원천봉쇄된 것이 〔정지용씨가〕다른 곳〔연천지역〕을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집이 흔들렸다>
김OO씨는 우연한 기회에 정씨의 시추작업에 관련을 맺다가 그 후 이 작업에 전념하게 됐다. 김씨는 갱차음 등은 91년 상반기까지 들렸으나 그 후는 고압전기 유도음으로 추정되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라고 말한다〔장거리 땅굴의 막장이 이미 김포지역을 통과해서 남하한 상태라는 의미〕.
갱차음 규명을 요구한다
취재팀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져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갱차음이다. 철로 위를 달리는 궤도차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면서 서서히 커지다가 청음장치 바로 앞을 ‘웽’하는 소리와 함께 지나간 뒤 점차 약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장감 넘치는 이런 소리는 기계분석도 할 필요 없이 육청(肉聽)으로도 충분히 궤도차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해주고 있으며 그런 소리가 4-5회에 걸쳐 녹취되었다.
반경 수십km 안에는 지하철이나 철도가 안 다니는 후평리 지하에서 들려온 생생한 이 ‘소리’를 만약 방송국에서 틀어놓는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 갱차음의 철저한 규명을 정부당국에 요구하는 바이다...』
『추적 : 한국의 심장부로 꽂히는 비수〔6월호〕
김포 북쪽 인민군 6사단 소대장 출신 귀순자의 기고문
나는 애초 귀순 당시 김포 일대 서울 근교에 북한 화곡리에서 출발한 남침용 장거리 땅굴이 있다는 것을 진술한 바 있다. 진술한 내용이 정부에 반영되어 구체적인 대책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월간조선 기사를 읽고 나서 허탈감이 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지난 번 월간조선에 났던 그 기사 내용과 내가 알고 있던 서울 근교 땅굴설이 너무도 밀착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비슷한 면이 많아서 월간조선부를 찾게 되었다... 가장 유력한 제공자는 1980년 6월에 월남 귀순한 이OO씨였다.
이씨는 개성시 판문군 일대에서 당 세포비서, 직맹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수행하면서 지도사업차 화곡광산 갱에까지 들어가 본 유일한 증언자이다. [첫째 본인은... 76-77년경부터는 광산이 폐쇄되고 군부대가 광산본부를 인수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일체 금지되었던 바 그것이 제일 의구심 나는 점이다. 둘째, 광산 당위원장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린 지도에서 본 진도현황은 한강중심, 즉 군사분계선까지 남하한 것이었다. 갱이 화곡광산에서 남쪽으로 직선으로 뻗어 있는바 높이, 너비가 2.5t 화물트럭 2대가 어길 수 있다.]
*제1땅굴 목격자인 인민군 민경대 준위 출신 안OO씨의 증언
[국군복장으로 굴진 작업]
안OO씨는 북한군 비무장지대 내에서 근무하는 인민군 제3사단 민경대 준위로 있다가 지난 79년에 남한으로 귀순해왔다... 안씨는 중요한 증언을 하나 했다.
“땅굴 공사부대에 근무하는 간부가 친구였는데, 이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땅굴 속으로 작업반을 들여보낼 때는 한국군 복장을 하도록 하고 말씨도 국군 말투를 교육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작업중 남한측에 붙들리는 일이 생길 때에 대비한 위장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땅굴 굴착 능력
김OO씨〔귀순자〕는 “인민군 5군단지역(철원지역)에서 근무했던 후배들이 ‘탱크가 다닐 정도의 땅굴을 몇 군데씩 지금도 뚫고 있는데 이 공사에 동원돼 총은 별로 쏘지 못하고 일만 하다 제대했다’는 것이었지요.
후배들은 공사의 목적이 ‘대부대를 남조선 후방에 침투시켜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월간조선 취재반은 지난 한달 동안 수 십 명의 한국군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들에게 정지용씨가 지하 시추공 내에서 녹음한 굴착음 소리와 갱차음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너무나 생생한 기계음에,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도저히 지하 자연음이라고 볼 수 없는 그 소리에 충격을 받고 우리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하였다.
땅굴 탐사에 직접 관계한 적이 있는 전․현직 군 인사들은 거의 전부가 북한이 장거리 땅굴을 서울 근교까지 뚫었을 가능성에 동의하고 있었다. 현직 군 고위 인사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대강 이런 하소연이 된다. “땅굴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 근교에 장거리 땅굴이 진출했다고 발표하면... 국민들은 불안해할 것이고 그렇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군의 땅굴 탐지부서는 기자들에게 ‘북한이 장거리 굴착을 할 능력이 없으며 1980년대 초반에 땅굴 굴착을 중단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결코 군 전체의 합의된 견해가 아니다.
김포 관측병의 남하하는 지하굴착음 추적 수기〔7월호〕
저는 지난 88년 봄부터 90년 가을까지 경기도 김포군 OOO 관측소에서 육군 모 부대 소속 관측병으로 근무했었습니다. 처음 이상 현상을 발견했을 때가 지난 88년 겨울. 관측소 오른 쪽에 있는 김포 시암리 앞 한강의 북한쪽 갯벌 가운데에 일직선으로 금을 그어놓은 듯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갯벌 한가운데가 일직선으로 약간 움푹 패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남한 쪽 바로 앞에 있는 좀 작은 갯벌에도 나타났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제가 입대하기 이전에 시암리 맞은 편 북한측 지역인 관산포 앞 갯벌이 2백50-3백m 가량 함몰됐던 적이 있었지요. 부대 선임자들 얘기에 따르면 당시 함몰이 일어나자 북한은 병력을 동원해 메우기 바빴는데 함몰된 곳에서 레일과 갱차가 드러나 보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북한의 장거리 땅굴은 배수문제로(굴착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북쪽으로 흘려보내야 하므로) 휴전선 지역을 통과할 때에는 최소 지하 300-400m 지점을 통과한 다음 후방지역으로 갈수록 지표면 쪽으로 상승하는 구조(北深南淺:북심남천)로 굴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를 찾으려면 지표면에 근접하게 되는 후방지역에서 탐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군이 ‘북한은 단거리 땅굴(총 길이 4km 이하)만을 팠다’는 스스로의 도그마에 사로잡힌 나머지, 휴전선 일대에 한해 기존의 땅굴 깊이(45-160m) 정도로만 탐사한다면, 아무리 ‘벌집 쑤시듯’ 해도 찾을 수 없는 구조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방부가 제4땅굴 이후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개의 땅굴조차 추가로 발견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한편 생전의 정지용씨는 김포지역보다는 연천 지역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땅굴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는데, 이는 정씨가 해당 지역 땅속에서 “막아, 막아”, “위에서 다 들려요”, “너는 이제 그만이다”, “알았어” 등과 같이 생생한 사람목소리를 녹음한 데 이어 해당 지역 땅 속에서 정체불명의 지하공간까지 발견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후 김포 및 연천 지역에 대한 장거리 땅굴 가능성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생전의 정지용씨는 땅 속에서 나는 소리를 채록한 녹음테이프 약 200여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중 김포 후평리에서 녹음된 테이프 중 하나에서 잡음을 제거한 결과,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이거 만지면 일만일천 감전되지”라는 상급자인 듯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고, “예,예”하는 것은 하급자인 듯한 사람의 말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월간조선 취재팀은 세계적 음향 전문가인 일본의 스즈키 박사의 협조로 관련 테이프에 수록된 소리에 대한 음향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테이프에 녹음된 사람 목소리가 3.77m X 3.77m(또는 7.54m) 크기의 갱도 형태를 가진 폐쇄 공간의 막장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추정치도 얻을 수 있었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전 북한 사회안전부 간부인 김정민씨(갱도 굴착작업 지휘 경험자)를 통해 북한의 배전용 전압 중에 1만1000V가 있다는 사실과, 북한이 과거에 TBM을 스웨덴으로부터 수입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다음은 2001년 6월 13일 TBM 전문가 K씨(R사 소속)의 증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R사는 세계적인 터널굴착 전문회사로서 TBM은 장거리 갱도 굴착에 흔히 사용되는 장비이다.
TBM을 이용하여 지하갱도를 굴착할 경우 최대 직경12m짜리 갱도를 하루에 50m까지 굴착할 수 있으며, 단단한 화강암층이라도 Tungsten Carbide 비트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굴착이 가능하다. 갱도 길이는 최장 200km까지 가능한데, 이는 기술적인 한계가 아닌 경제적인 한계를 말한다. 어떠한 용도로 굴착하든 일단 지하갱도가 200km 이상을 초과하면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TBM은 좌우상하로 10도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어서 어떠한 모양의 갱도 굴착도 가능하다. 장거리 갱도를 굴착할 때에는 갱도를 둘로 나눠서(나란한 쌍둥이 갱도) 두 개의 갱도를 연결하는 환기용 통로를 중간 중간에 설치함으로써 환기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
한편 TBM은 500-1000V의 전압을 사용하지만, 외부에서 TBM까지 전기를 공급할 때에는 보통 11,000V로 승압하여 송전하며, 보다 원거리를 송전할 경우에는 22,000V로 승압하기도 한다. 그리고 TBM 가격은 약 2천만 Rand(당시 환율로 약 25억 원)로서 이는 우리 회사(R사)에서 사용하는 독일의 Wirth사 제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지하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북한군의 규모 역시, 과거 단거리 땅굴의 경우처럼 단순한 경보병이 아니라 중무장 기갑부대로 확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1990년대 초에 김포 지역으로 들어와 있던 장거리 지하터널은 그동안 얼마나 더 남하했을까? 이와 관련 월간조선 2003년 3월호가 경기도 화성지역에서도 장거리 지하터널 징후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한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땅속에서도 기계소리와 사람 목소리가 들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굵은 와이어(wire)와 벽돌까지도 땅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땅속에서 와이어 등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민간인 탐사자들이 시추작업을 하는 도중에 땅 속에서 누군가 시추기 로트(rod)를 끌어 올리지 못하도록 강력한 와이어로 묶은 것을, 강제로 끊는 과정에서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003년 2월의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로부터 약 6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장거리 지하터널이 훨씬 더 남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강산댐의 정체-동부전선용 지하터널
평양 방어사령부 정치부 중좌 출신 탈북자 심신복씨가 “김일성은「금강산댐이 완성되면 핵폭탄보다 낫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금강산댐 부근 지하터널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북한이 금강산댐의 물을 동해안으로 돌리기 위한 수로의 길이가 45km에 달하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이 금강산댐을 위한 수로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별도로 또 하나의 45km 길이의 지하터널을 남쪽으로 굴착했다면, 한-미 연합군으로서는 지하터널 굴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버럭〔땅을 팔 때 나오는 돌조각 및 흙 등에 대한 총칭〕과 지하수로에서 발생하는 버럭을 구분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강산댐으로부터 남진할 경우 우리의 1군 사령부가 있는 원주와 곧바로 연결되기에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김포반도와 연천지역은 물론 금강산댐 지역 등을 통해 우리의 수도권과 후방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남침의 충분조건-무비유환(無備有患)
남침용 지하터널이 이미 1990년대 초에 서울 근교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김정일은 왜 그 동안 남침을 하지 못했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지하터널이 단지 개전초기의 기습 달성만을 보장해 줄 뿐, 전쟁 승리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즉, 개전과 동시에 한-미 연합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면 또 다시 6.25때처럼 기습에만 성공하고 전쟁에는 패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기습 방법일수록 그만큼 ‘준비된’ 반격에 취약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천 상륙작전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500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의 고위험을 감수했기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북한군이 그 가능성을 예상하고 제대로 준비를 했더라면 인천상륙작전은 무모했던 만큼의 대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침용 지하터널은 김정일에게 있어 적화통일을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에게 있어 남침의 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이는 개전과 동시에 일거에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의 전략적 차원의 기습이 가능한 상황일 것이며, 김정일에게 있어 남침의 충분조건은 우리의 무방비 상태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남침을 결심했던 지난 2002년 10월을 전후한 우리 내부 상황을 되돌아보면, 김정일로서는 남침을 위한 충분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오판할 소지가 다분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무엇을 근거로 장거리 지하터널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일까? 허술한 옷차림의 민간인보다는 ‘땅굴 탐지과(처)장’이라는 제복을 입은 국방부 실무자들이 더 전문가처럼 보이고 더 믿음직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 동안 정지용씨의 진정을 받은 청와대와 국회 등도 국방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씨는 장거리 지하터널을 찾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지하터널을 찾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에게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남침 능력은 충분히 있으며 또한 그러한 능력은 장거리 지하터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 능력은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를 끝까지 부정하는 우리 국방부의 무사안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여전히 남는 의문점들
1. 전쟁 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무려 150개 사단이나 되는 대규모 병력을 국경지대에 집결시켰음에도, 대부분의 소련 시민들은 전혀 전쟁위기를 느끼지 못했으며, 진주만 기습 때에도 상당수의 미국인들 역시 주말을 맞아 밤늦게까지 춤추며 놀다가 다음날 아침에야 전쟁 소식을 듣게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에도 과거 임진왜란과 6.25 당시 우리 조상들 역시 일본과 북한이 침공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음에도 전혀 전쟁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제1차 핵위기 당시인 지난 1994년 6월,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이다.
『지난 6일 6시 10분 북한관영 중앙방송은 섬뜩한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선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우리에 대한 제재(北爆)는 곧 전쟁이며 전쟁에는 자비란 있을 수 없다” 같은 시각 서울의 중심부는 텅 비어있었다. 현충일이 겹친 황금연휴를 맞아 서울시민 상당수가 휴양지와 유원지로 떠나 집을 비우고 있었다』
2. 남침 가능성에 대한 평가
그렇다면 오늘날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첫째, 북한 체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한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즉, 우리가 햇볕정책을 통해 김정일의 위상을 강화시켜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북한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이 방코델타 은행(BDA) 문제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북한 내부의 경제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북한이 ‘체제보장을 위해 개발했다는’ 핵을,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은 그 만큼 당시 북한의 경제사정이 다급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남침가능성이 모호한 이유
역사상 기습을 당한 거의 모든 국가들은 방어대책을 소홀히 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즉, 임박한 전쟁위기 앞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행위는 사실상 방어대책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서, 이는 곧 경고정보(warning intelligence)의 특성과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고정보의 특성과 한계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故 함석헌 선생이 임진왜란과 6.25 당시에 조상들이 국가안보에 있어 실패한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적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나라를 칠 터이니 길을 비켜라 하며 여러 번 사신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라도 정신만 있었으면 임기응변이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어지러워진 사람에게는 “내년에는 온다”고 전쟁을 선언하는 적국 사신의 말도 한마디 농담으로 밖에 아니 들렸다.
6.25 전쟁은 임진란과 비슷한 점이 있다. 첫째, 도무지 모른 데서 같다. 임진란도 그 날 아침까지 몰랐고, 6.25도 그 날 새벽까지 몰랐다. 또 도무지 준비 없었던 데서도 같다...』
북한이 실제로 남침하기 전까지는 그 가능성이 ‘모호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라는 사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경고정보는 왜 항상 100%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는 경고정보의 경우, 일단 경보를 발령하게 되면, 그 즉시 상대방이 공격 시기를 늦추거나 보류하게 됨으로써 경고정보는, 아무리 정확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발령하는 순간 오경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상 기습 방지에 실패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침략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확실한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망설이다가 끝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 국가위기관리의 장애요소
1. 「합리적 논리」의 함정(Mirror-Imaging)
오늘날 임박한 남침 위기를 정확히 판단함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소위 국제정치이론 등에 입각한 ‘합리적인 주장’이다. 이는 중국 등 한반도 주변 4강이 전쟁발발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는 김정일로서도 섣불리 남침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말한다.
방어국(防禦國)은 보통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입장이기에 상대방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공격국(攻擊國)은 전쟁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기에 승산이 희박하더라도 모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2. 정보요원(Intelligence Officer)의 불리함 국가위기관리에 실패하게 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위기를 경고하는 정보요원이 항상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정보요원으로서는 침략여부 뿐만 아니라 침략의 시기와 장소까지 정확히 맞추어야만 그 정확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보요원 입장에서 볼 때 위기를 경고함에 있어 어려운 문제는 또 있는데, 이는 언제 경고할 것인가 하는 경고시기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이다. 남침경고를 가장 설득력 있게 하려면 남침하기 직전, 즉 북한이 총동원 체제를 가동한 상태에서 경고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럴 경우 북한은 곧바로 남침을 할 것이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3. 정치적 이해관계
기습에 대비하는 것은 [모호한 전쟁가능성 대(對) 확실한 정치적 피해]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며, 그럴 경우 지도자들은 확실한 정치적 피해를 피하기 위해 방어대책을 망설이게 된다.
지하터널의 존재 가능성이 모호한 상태라면, 정치지도자로서는 전쟁가능성이 모호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응책 강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순간부터 민심동요 및 주가폭락 등과 같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정치지도자가 지하터널의 존재에 대해 확신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 내에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면 ‘괜한 소동’을 일으킨 데 대한 비난과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기에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4. 모호성 관리
그렇다면 모호성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전략정보(strategic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과거에 ‘알-카에다’가 트럭(육상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자살공격을 한 데 이어, 소형보트(해상 교통수단)를 이용하여 미 구축함 ‘콜’호 에 대한 자살테러(2000.10)를 감행한 ‘과거사실’을 주목했더라면, 다음에는 ‘공중 교통수단’인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테러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 여부를 규명함에 있어서도 과거자료(월간조선 기사 등)를 되돌아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북한은 장거리 지하터널을 굴착할 기술적․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고, 이 때문에 필자 자신도 남아공 TBM 전문가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국방부 주장을 믿었던 것이다. 북한이 실제로 남침을 하기 전까지는 전쟁가능성이 모호하듯이,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 가능성도 북한의 기갑부대가 실제로 지하터널을 통해 지상으로 상륙하기 전까지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50%에 가깝다는 것은, 곧 남침에 대비할 필요성이 100%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대한 대책(절개작업 및 방어대책 수립)을 강구할 필요성은 100%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계속해서 절개작업을 거부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악의 남침 시나리오] 지하터널의 경우 남침 직전에 마지막 출구부분을 뚫고 나와야 하는데, 이때 TBM 작동음이 지상에 들리지 않게 하려면 교통량이 많고 혼잡한 저녁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보다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남침을 한다면, 새벽시간이 아닌 밤 시간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어느 주말 밤 갑자기 대형 굴삭기(TBM 등)가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그 뒤를 이어 국군 복장을 한 북한 특수 부대원들과 함께 북한의 기갑부대 가 물밀듯 ‘상륙’할 것이다. 이때 인근 주민들이 발견하더라도, 후방 지역에 국군 복장을 한 군인들과 기갑부대 등이 북한군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할 것이다. 땅 속에서 ‘상륙’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우선 한-미 연합군의 첨단 전쟁 능력을 마비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특수 부대원들은 오산 등지로 연결된 지하터널을 통해 기습 상륙, 미 공군 기지 및 한-미 연합군의 레이더 기지 등을 장악할 것이며, 아울러 가능한 많은 수의 미군 포로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동, 서, 남해안 일대에서도 수천 명의 북한 특수 부대원들이 잠수함 등을 이용하여 일거에 상륙을 시도할 것이다.
한-미 연합군의 대북 감시 및 통신 체계를 파괴하면, 그 즉시 북한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이륙해서 밤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을 것이다.
이륙 후 불과 10-15분 만에 서울 등 후방 깊숙한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우리 공군 비행장 및 군부대, 지휘소 및 통신망 등을 선제 폭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까지 공격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의 기갑 부대 및 기계화 부대 등도 진격할 것이다.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장거리 방사포의 포격과 이에 따른 주유소 및 도시 가스의 연쇄 폭발로 서울시내는 ‘불바다’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하터널을 통해 상륙한 북한 기갑부대가 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한-미 연합군의 배후를 공격한다면, 앞뒤로 포위되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 크다.
또한 동부 전선에서도 북한의 기계화 부대가 휴전선 일대를 돌파하여 남진, 하루나 이틀 만에 부산을 점령함으로써 ‘한반도의 문’을 닫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수만에 달하는 주한 미군 및 그 가족들과 관광객 등을 인질로 잡고 미국에 대해 평화 협정을 체결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3일 전쟁’ 또는 ‘3단계 7일 작전’이다.
* 대책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 미 CIA 등이 개발해 놓은 기습 방지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단계 : 상대방 입장에서 어떤 기습방법이 가능할지에 대해 숙고하라 2 단계 : 상대방이 가장 치명적인 기습방법을 선택할 경우 사전에 어떤 징후가 나타날 것인지를 예상하라 3 단계 : 그러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여부를,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하라 4 단계 : 가장 위험한 기습방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어책을 강구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조기 경보라도 발령하라』
그런데 관련 요령 중 1단계부터 3단계까지의 조치는, 김포 및 연천 지역 주민, 그리고 정지용씨와 월간조선 등에 의해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4단계 조치, 즉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어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밟아 관련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럴 경우 국방부는 관련 사항을 이첩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필자의 보고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상할 수 있는 근거는, 과거에도 고 정지용씨 등이 관련 내용을 청와대와 국회 등에 진정했을 때,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방어책 강구가 불가능할 경우 최소한 조기경보라도 발령하라’는 지침에 따라 이글을 우리 국민들에게 직접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은 대통령과 정부, 그 중에서도 특히 국방부에 대해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남침 방지책 수립을 촉구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그 동안 정지용씨 등 민간인들이 요구해온 대로 김포 및 연천 등지의 땅속을 절개함으로써 남침용 지하터널의 실체를 만천하에 공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기습남침을 방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필자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위해 ‘의병’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한다. 과거 임진왜란이나 6.25 때에는 전쟁이 일어난 뒤에 궐기했지만, 이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궐기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왜이리도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지.........
글 올린 사람 군대나 다녀왔는지 궁금하네 ㅋㅋㅋ 한나라당에 국회의원들은 군면제가 얼마나 많은지 ㅋㅋㅋ 군대도 안 갔다 온 것들이 꼭 설레발 치면서 전쟁하고 싶어 안달이지 하여튼 쥐 알바가 이 카페에서도 활동하는군 쥐 알바 소통 위원 ^^
쥐세끼의 삽자루가 왜 생각나지?
에라이~~ 정말, 이런 사람들 때문에.....감사하다는 사람은 진심이신가부네.
잉 ? 이글이 모가 우째서..이러신다요 ??? 전쟁 날지도 모른다..이거 아닌감 ???
그렇게 보이신다면 할 말 읎지유~~~
짜식.............지겹지도 않냐?...........너 군대는 갔다왔어?
북한은 항상 남한과의 전쟁을 전제로 군사적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게 남침이든 북침에 대한 방어든간에..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중요한 건 우리가 하기나름에 따라 그게 숨겨둔 칼날로 끝날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 조금 퍼 주면 어떻습니까.. 그기에 따라 남한도 어느 정도의 이익은 챙기는데.. 외국 자본의 눈에 안정된 것처럼 보여서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고 개성의 싼 임금으로 생산을 할 수도 있고.. 문제는 우리 정부의 정책입니다.. 이 정부의 정책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북한 보다도 더 전쟁을 원하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이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궐기하는 지혜"가 뭥미?... 물론 이 글의 내용도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현 국제정세와 북한의 최근의 일련의 showdown을 볼 때 시의 적절하지 않은 가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글을 옮긴사람이 먼저 전제한게 북한은 50년 넘게 전쟁준비만한 특이한, 사악한 집단이라고 하지않았습니까? 왜 전쟁준비를 하지않으면 않되냐? 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하는 것이 이글을 읽을 만한 것이냐? 아니냐를 금방알 수 있게 해준다는 얘기올시다. 거기다 땅굴 전술이라니>>> 어디 무슨 교수??? 한심하기 이를데 없네요.
참 몹쓸사람들.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