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인에게/김현숙(수영) 시인
아름다운 여인 레베카
너는 얼마나 긴 기다림 끝에
꽃보다도 보석보다도 더 귀한
생명의 씨앗을 품었던가?
S라인도 좋다지만
D라인도 귀하디귀하고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잉태의 시간을 누리는
여인은 복되고 복되다
투정 부릴 자격도
배불뚝이로 살 자격도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가 될까?
생명의 존귀함에
순종하는 여인아 행복하여라
너로 인해 세상엔
생명의 싹을 틔우는 기적을 낳고
아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의 기도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결실이다
꼭 오지 마을이 아니어도 웬만한 소읍 마을에서 아이들을 보는 일은 우연처럼 낯선 시대가 되었다.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엔 개와 고양이도 심심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통계청은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2(잠정)라고 발표했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1963년 5.57이던 수치가 1993년 1.65로 떨어지더니 2023년 역대 최저, 세계 꼴찌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섬뜩하다. 우리는 스스로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숙(수영) 시인의 「D라인에게」는 이런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배경으로 한다.
시인은 한국인의 소멸이라는 정해진 미래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생명 사랑의 신성神聖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성경』-「창세기」에서 불러온 “아름다운 여인 레베카”는 성스러운 생명 사랑의 상징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마흔일 때 결혼하여 그가 예순이 되었을 때 쌍둥이(에사우, 야곱)를 낳아 두 민족 수천만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니까 레베카의 신성을 이어받은 “귀하디귀”한 “D라인” 여성의 “투정”과 “배불뚝이” 모습을 찬양하는 이 시의 언술은 뻔한 상투어라기보다 신성이 육화肉化된 쉽고 친밀한 언어로 들린다. “생명의 싹을 틔우는 기적”, “아이 웃음소리”는 이삭과 레베카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었던 것처럼 “눈물의 기도가 아니면/이루어질 수 없는 결실”이기 때문이다.
좋은(잘된) 시는 새로운 시다. 모든 새로운 시가 좋은(잘된) 시일 수는 없겠으나, 새로움은 좋은(잘된) 시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런데 새로움이란 지금까지 없던 것이 불현듯 생겨나는 것일 수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고 겪는 모든 것과 오래된 이야기도 새로운 시선의 얼개로 엮어내면 진짜 새로움이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무엇’을 찾아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일 것이다.
「D라인에게」의 감동은 우리 사회의 당면한 사회현상과 오래된 성경의 이야기를 엮어 새롭게 짜낸 신선한 울림에서 온다.
-월간 신문예 124호(2024. 7)-차용국 시인의 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