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이루라
느 2:1-8
성경에서 눈물의 회개기도를 했던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하나가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불에 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수일 동안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느 1:4)
느헤미야는 당시 페르시아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는데, 왕의 최측근이었습니다. 당시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을 독살할 수도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왕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는 조국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정직함을 내세워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나 조상들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것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가 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조국 이스라엘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그의 주인의식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죄를 먼저 보게 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비전으로 삼고 헌신의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 자신의 명예나 권세나 안락한 삶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회복을 비전으로 삼습니다. 느헤미야의 영적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주님, 종의 간구를 들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주님의 종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제 주님의 종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왕에게 자비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그 때에 나는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느 1:11)
그는 크고 위대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회개기도’는 이처럼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비전의 기도’로 이어졌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겠다는 ‘헌신의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최측근이자 포로 2세대인 느헤미야가, 75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사람이 되겠다니, 그것은 사실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도 여러 어려움에 부딪쳐 중간에 포기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것을 가지고 먼저 끈질기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루 이틀이나 몇 주도 아니고, 4개월 동안이나 금식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면 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1)라는 기도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느헤미야였지만, 그는 성실하고 정직한 신하로서 한 번도 왕 앞에서 금식하는 티를 내지 않으며 자신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서 결근하거나 업무를 대충 본 것이 아닙니다. 항상 밝고 성실하게 일을 감당하던 느헤미야였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 비친 수심이 왕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첫째 : 기도로 문제를 극복하라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1-2절)
왕이 질문했을 때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근동 지역에서는 절대 군주 앞에서 슬퍼하거나 우울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불길하다는 이유로 추방되거나 사형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주실 것을 믿으며 평소의 성품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말합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3절)
이처럼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은 위기 상황에 처하더라도 술수를 쓰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슬쩍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태도를 귀하게 여기시며 반드시 인도해주십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조상들의 묘가 있는 성읍 예루살렘이 황폐해져서 슬퍼한다는 느헤미야의 대답에 대해 왕은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4절)
이때 놀랍게도 왕이 “그러냐? 그럼 내가 너를 위해 뭘 도와주랴?”라고 묻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왕에게 솔직히 대답을 했는데, 왕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응답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곧바로 왕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대답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합니까?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4).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왕이 호의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곧바로 자기의 소원을 아뢰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 잠시 묵도부터 드립니다.
둘째 : 기도로 마음을 움직여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4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특별금식기도를 했지만, 평소에도 기도가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중요한 순간에 왕 앞에서도 잠시 묵도하며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이 움직이신 것입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가 어떤 기도를 드리던 사람이었는지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 간절하고 비장한 마음을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소한 일, 작은 일상의 일들도 늘 기도로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로 마음을 정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동시에, 매순간의 상황 속에서도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왕이 뜻밖의 반응을 보일 때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잠시 묵도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을 그르쳤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놓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비장한 각오로 날을 정해놓고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어도 평상시에 따로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도 상황이 좀 잘 풀리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것 같으면, 그 순간에 기도하기를 그냥 잊어버리고 바로 결정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일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주 일상적인 일 가운데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셋째 : 기도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5절)
느헤미야는 묵상기도를 한 후, 왕에게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하는 내용은 사실 굉장한 일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평소에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에스라 4장에 보면, 그는 에스라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서 성벽 재건 공사를 할 때, ‘성벽이 재건되면 이스라엘이 세금도 바치지 않고 말썽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상소를 받고 유대인들에게 성벽 쌓는 일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 조서를 내린 상황에서 누군가 다시 예루살렘 성 재건을 언급한다면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되고, 왕은 자신이 이미 내린 조서 때문에라도 허락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닥사스다 왕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6절)
놀랍게도 왕은 언제까지 가서 그 일을 마치고 오겠느냐고 흔쾌히 허락해줍니다. 그뿐 아니라 필요한 모든 물자까지 다 지원해줍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7-9절)
무엇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입니까? 느헤미야의 말재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4개월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의뢰했던 느헤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완고했던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이 열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