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에 하루 종일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악자전거(MTB)를 탈 수 있는 숲길이 있다. 대마도 북섬 히타카츠(比田勝). 100년간 조림된 울울창창한 삼나무, 편백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미답지 숲길 위주로 70㎞ 라이딩이 가능한 구간이 여럿 있다니! 삼림욕을 즐기며 마운틴바이킹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게다가 숲 사이로 난 임도를 달리지만 현재 임업이 중단된 상태라 달리는 차를 거의 만나지 못한다는 대목에서 쾌재를 불렀다. 이건 바퀴의 질주 본능을 위한 천혜의 조건이 아니고 뭔가!
즉시 히타카츠 삼나무, 편백나무 숲길 원정 라이딩 팀을 꾸렸다. 대마도 원정 초창기인 지난 2006년 김해MTB연합회 회원들을 이끌고 대마도 300㎞ 일주 대기록을 세웠던 위승진(57) '빛디자인' 대표가 동참했다. 현지에서는 MTB 마니아 아비루 스미오(62) 씨가 합류해서 한·일 동반 라이딩에 나서기로 했다. 두 사람은 본업이 인테리어인데 부업으로 음식을 만들고, 취미가 프로급 MTB라이더라는 점이 빼닮았다.
단풍길~메보로 댐 곳곳 '눈 샤워 마음 샤워'
하늘 뒤덮은 울창한 삼나무·편백나무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향기에 풍덩~
50년 역사 '시로시 선' 시간마저 멈춘 곳 또 현지에서 MTB와 숲길 트레킹 안내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우리들펜션' 최용오(47) 대표가 안내를 맡아 주기로 했다. 푸른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어느 가을날, 대아고속해운의 '오션플라워'에 자전거를 싣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단풍길 거쳐 댐으로 숨막히는 '업힐' 히타카츠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라이딩 채비를 갖췄다. 오후 1시께 항구 출발. 슈시(舟志)에 있는 '모미지가이도(단풍길)'까지 달린 다음 '가이도코로(飼所)' 숲길을 거쳐 '메보로 댐'으로 오르기로 했다. 사스나(佐須奈)의 숙소까지 예상 거리는 70㎞. '모미지가이도'는 맑은 날 특히 운치있는 풍광을 자랑한다. 길섶에 단풍나무들이 지천이라서다. 국내에서도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11월 중순 단풍이 절정일 때면 꽤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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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니지 않는 길만 MTB로 달렸다. 가이도코로 숲길. |
하지만 단풍길은 알아도 이어지는 '메보로 댐 마사공원'의 매력까지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계곡을 막아 만든 호수(댐)와 승마공원인데 둘레가 10㎞쯤. 인적이 드물고 청정 구간이라 안구가 정화되고 정신이 맑아진다. '모미지가이도'에서 '메보로 댐'으로 넘어가기 위해 공원시설에서 뒤쪽 산쪽으로 뚫린 오르막길에 도전했다. 15도 이상의 가풀막길이 체력의 한계를 시험했다. 단 한 사람도 '끌바(오르막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간다는 은어)'하지 않고 3㎞ 업힐 구간을 뚫어냈다. 터널을 빠져나가 정상에 우뚝서니 성취감이 밀려왔다.
어느새 거대한 숲길에 빠져들었다. 키 큰 삼나무, 편백나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길이 어두컴컴할 정도다. 검붉은 몸피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워낙 빼곡하다보니 신령스런 느낌이 들 정도다. 가이도코로 임도. 코 끝을 알싸하게 자극하는 특유의 향내를 즐기며 느릿느릿 저었다. 몇 시간 숲길을 달렸지만 지나가는 차를 거의 맞닥뜨리지 못했다. 마주치거나 뒤따라오는 차량에 신경을 쏟거나, 짜증나는 경적을 들을 일이 없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철커덕철커덕. 헉헉. 대신 기어를 바꾸는 마찰음과 거친 숨소리만 나무 사이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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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니지 않는 길만 MTB로 달렸다.삼나무보다 편백나무가 더 많은 시로시 선 임도. |
메보로 댐에서 내려와 '세타(뢰田)'의 작은 가게 앞에 퍼질러 앉아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도로로 떨어진 뒤로는 숲길의 여운이 아스라해서 아쉬움이 커졌다. 괜히 꾀를 부리고 싶어졌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예요?" 재미 없어진 도로 주행 구간을 단축하자고 떼를 썼다. 바로 북상해서 사스나의 숙소로 달렸다. 도착하니 오후 6시. GPS를 보니 히타카츠항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북쪽으로 올라오는 47㎞ 구간을 5시간 동안 달렸다.
■고요한 피톤치드의 바다에서 '힐링' 히타카츠항에서 서쪽으로 13㎞ 떨어진 한적한 어촌 사스나 마을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부산을 바라보는 히타카츠 서부의 산림과 해안가를 훑기로 했다.
오전 11시 사스나 우리들펜션 출발. 국도 382호선을 타고 남쪽 이즈하라 방향으로 달리다 동반 라이딩을 하기로 한 아비루 씨와 합류했다. 운동을 즐겨서인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게다가 자전거 부품을 최고급 사양으로 직접 세팅한 본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마도 현지인들 중에 MTB 동호인이 없으니 늘상 나 홀로 라이딩을 즐기다 부산 원정팀을 만나니 무척 반가워했다.
고개를 넘어 이구치하마 해수욕장을 스쳤다. 인적이 없어 적막한 느낌이다. 온 힘을 다해 고갯길을 저어 올랐다. 바다 위로 삐죽이 돌출된 전망대에 섰다. '이국이 보이는 언덕'. 관광지가 된 '한국전망대'보다 부산이 실제로 더 가까운 곳이다. 부산과 직선거리로 49.5㎞. 광안대교 불꽃축제 명당자리로 현지인과 사진작가들이 몰린다고.
대마도의 곡창지대인 사고(佐護) 평야를 거쳐 다시 국도 382호선에 올라탄 다음 숲길로 빠져들었다. 임도'시로시 선'. 50년 전 조성된 숲길인데 지금은 지역주민들에게도 잊힌 상태다.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으니 사슴 가족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을 뿐이다. 시계가 멈춘 곳이라고 할까. 이 임도는 숲 규모가 엄청나서 하루종일 삼림욕을 하고 싶은 곳이다.
고개를 내려가 고등어 어장으로 유명한'이나(伊奈)'를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북상하면 어촌마을'시타루(志多留)'에 닿는다. 방파제에 퍼질러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나카야마(中山) 마을로 가는 길은 다시 고개다. 오르락내리락이 끝없이 반복되니까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내리막 도로에서 우회전하다 사고가 날 뻔했다. 꺾는 반경을 줄이려 오른쪽 차로로 내려섰는데 곡각지에서 같은 차로로 올라오는 차량과 정면 충돌할 뻔한 것이다. 최대한 느리게 내려가고 있어서 얼른 왼쪽 차로로 피할 수 있었다. 대마도 자전거 투어 경험이 많은 위 대표가 "주행 방향이 한국과 거꾸로라서 가끔 사고가 난다"고 주의를 줬다.
다시 사고 평야로 되돌아간 다음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질주. 오후 5시께 사스나 숙소로 원점회귀했다. GPS롤 보니 6시간 동안 47.5㎞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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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니지 않는 길만 MTB로 달렸다. 대마도의 곡창지대인 사고 평야. |
"울창한 편백나무, 삼나무 숲 사이 임도를 따라 경쾌하게 질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최 대표는 히타카츠 라이딩의 가장 큰 매력이 숲길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악 지역과 바닷가를 동시에 달릴 수 있는데다 낙타 등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아비루 씨도 "차량에 방해 받지 않고 원시림 같은 숲길을 질주할 수 있는 MTB 구간은 일본 다른 곳에서도 드물다"고 자랑했다. 위 대표도 기존 국도를 따라 종주하는 로드바이킹을 대체할 매력을 고루 갖췄다고 평가했다. 글·사진=대마도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TIP
■교통편
대아고속해운(1644-9604) 오션플라워호는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주 4회 화·수·목·일 오전 9시 히타카츠로 출항했다가 그날 오후 3시40분 출발해서 부산으로 돌아온다. 1시간 10분 걸린다. 남쪽 항구인 이즈하라로는 월·금·토 배가 떠났다가 역시 그날 오후 4시 출발해서 되돌아온다. 2시간 10분 소요.
요금은 운항 시간과 상관없이 히타카츠, 이즈하라 모두 왕복 15만 원. 대아고속해운 홈페이지(intlkr.daea.com)나 소셜커머스를 이용하면 할인 승선권을 구할 수 있다. 자전거를 실으려면 수속할 때 창구에서 1만 5천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오션플라워호는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는게 강점이다. 정원이 445명인데 주말에 손님이 붐벼도 장비를 들고타는 자전거와 낚시 손님 70~80명씩을 수용한다. 부산 근교뿐만 아니라 서울 원정 MTB동호인들까지 단체로 애용하고 있다.
■숙박
북섬 히타카츠에 올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펜션이 생겼다. 히타카츠항에서 서쪽으로 13㎞, 차로 10분 거리의 '사스나'에 위치한 '우리들펜션'(blog.naver.com/zontag). 21년간의 일간지 기자 생활을 마친 최용오 대표가 교류와 힐링의 거점으로 펜션을 차렸다. 숲 트레킹과 MTB 가이드 등 자연을 만끽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박 4천 엔(우리돈 4만 원). 일본 가정식 된장국정식 600엔(6천 원). 010-2588-9300. 일본 휴대전화 +81-80-8582-6596.
■먹을 곳
히타카츠항 주변에서는 일본식 회를 즐길 수 있다. '미나토스시'(0920-86-3710)는 날치, 부시리, 고등어, 붕장어 등을 제대로 숙성시킨 선어회 모둠(1인분 1천80엔)을 차려낸다. 이자카야 '히데요시'(0920-86-2970)에서는 다금바리 코스(6천 엔)나 장어튀김덮밥 등을 맛 볼 수 있다.
사스나 쪽에는 '소바 도장'(0920-84-2340)에 가볼만 하다. 메밀의 주산지인 점을 활용해서 메밀 반죽을 직접 만들고 제면하는 체험을 한 다음 먹을 수 있다. 사전예약제. '기류켄(起龍軒)'(0920-84-2873)에서는 일본식 라면, 짬뽕, 군만두(야키교자)와 중화요리를 즐길 수 있다.
대마도 부산사무소 홈페이지(www.tsushima-busan.or.kr) 참고. 김승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