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부터 고승 진영을 공부하고 있다. 빔프로젝터로 고승 진영을 감상하고 진영에 붙은 찬문과 관련된 일화, 선시, 임종게를 공부한다. 이런 비슷한 강의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일대사를 해결하고자 세연을 끊고 오롯이 구도의 길을 걸어서 마침내 열반의 언덕에 오른 고승들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행적과 글을 남겼던가. 오묘한 지혜와 자비의 달빛을 머금고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펴서 인간과 천상의 중생을 제도하는 고승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법열이 번진다. 지금까지 자장율사, 의상대사를 시작으로 서른세 분의 고승 진영을 공부했다.
고승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오른쪽으로 얼굴을 살짝 돌린 좌안칠분도이며, 고승의 옷은 요즘 스님의 옷보다 색상이 곱고 알록달록하다. 신발도 새색시 꽃신 같다. 요즘 스님의 가사와 장삼은 해방 후 성철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서 정해졌다고 한다. 고승의 옷과 신발은 단청을 칠한 법당, 그 안에 연화좌에 앉아계신 황금빛 부처님과 아리따운 보살님들, 엄결화려한 닫집, 수미단 위에 그려진 온갖 기화요초와 상서로운 동물과 잘 어울린다. 그것은 정각을 이룬 화엄정토의 아름다운 세계.
가장 많이 그린 진영은 사명대사이다. 전국 절집에 무려 24개나 소장되어 있다. 그만큼 풍전등화와 같은 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공이 지대하고 백성들에게 깊은 믿음과 존경을 받았다는 증표이리. 가장 뛰어난 진영도 또한 보물로 지정된 <동화사 사명유정 진영>이다. 관우같이 검고 윤기 나는 긴 수염에 대추같이 붉은 입술, 위로 치켜 올라간 예리한 봉안과 회색 장삼에 고운 무늬를 아로새긴 다홍빛 가사를 입었다. 17세기 그림이라 낡고 벗겨지고 색이 바래었지만,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듯 고요하면서도 형형한 안광은 금방이라도 사자후를 토할 듯하다. 그 뜨거운 충정과 눈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통도사 사명유정 진영> 찬문에,
“甁錫空山 索然若枯木死灰 何其靜也.
정병과 석장을 가지고 빈산에 머물 때, 쓸쓸한 모습이 고목이나 죽은 재와 같다. 어찌 그리 고요하셨던가.
一日杖釼而起 斫賊如麻 何其勇也.
어느 하루 칼을 잡고 일어서서, 적을 베는 것이 삼을 베는 것과 같다. 어찌 그리 용맹스러우셨던가.”
<통도사 우운진희 진영>은 봄바람처럼 인자한 모습이다.
진영 찬문에,
“潮海閃電 晴天迅爍 振五宗綱 碎三關鑰
파도치는 바다에 섬광 같고, 비 갠 하늘에 번득이는 빛과 같다.
오종의 요지를 떨치고, 세 개의 관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삼관약三關鑰’이란 글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삼관약은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이 넘어야 할 세 개의 관문으로, <무문록 47칙>에 나온다.
제 1관문,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묘한 것을 찾는 것은 단지 견성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당신의 성품은 어디에 있는가.
제 2관문, 성품을 얻었다면 생사를 벗어날 터인데, 죽을 때 어떻게 벗어날까.
제 3관문, 생사를 벗어났으면 문득 가는 곳을 알 텐데, 사대가 분리될 때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삼관문은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엄마 저고리 끈을 검지에 돌돌 말아 꼭 쥐고는 “엄마, 내가 깰 때까지 어디 가지 마.”라고 다짐을 받고는 스르륵 잠이 든다. 단잠을 깨고 나면 엄마는 없다. 황혼이 내리는 어슴푸레한 저녁, 광막한 공간에 까무룩 나 홀로 둥둥 떠 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되었을까. 나의 심층 의식에는 지금도 그때의 풍경이 베이스로 깔려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를 기웃거리다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절에 다녔다. 경전을 암송하고 기도하고 절하고 염불하고 참선했다. 세 개의 관문이 살포시 열리는 듯도 하지만, 아직도 세 개의 관문 사이로 기우뚱 자맥질한다. 세 개의 관문을 여는 열쇠는 분명 있을 테지만, 고승들의 게송을 보면 아리송하다. 즉답을 피하고, 애매모호, 동문서답, 두 주먹을 감싸기도 하고, 혹은 침묵한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묻는 이의 근기와 맥락에 따라서 수많은 방편으로 답을 하신 것이리.
해인사 부휴선수 스님의 임종게에,
“七十餘年遊幻海 今朝脫殼返初源 廓然眞性元無碍 那有菩提生死根
70여 년 허깨비 같은 바다에 노닐었네/ 오늘 아침 껍질을 벗어버리고 애초의 근원으로 돌아가네/ 확연히 툭 트여 진성은 원래 걸림이 없나니/ 어찌 보리 생사의 뿌리가 있겠는가”
표충사 기암법견 스님의 임종게는,
“打破虛空埋日月 山河大地一坑藏 病中不病者何去 溪水金剛今古聲
허공을 깨뜨리고 해와 달을 묻어서/ 산하대지를 한 구덩이에 갈무리하네/ 병 든 속에 병들지 않는 그놈은 어디로 갔을까/ 금강산 시냇물은 예나 지금이나 소리 내어 흐르네”
참으로 멋있다. 매일 암송하는 <반야심경>에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라는 구절과 ‘삼관문’과 ‘유년의 오랜 기억’이 하나의 보배 구슬로 모이는 것 같다. 삶이란 한 바탕 연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것처럼, 인연에 순히 따르면서 보살행으로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리.
삶은 연극이요 노동이고, 죽음은 귀향이요 휴식이 아닐까.
첫댓글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가을 장맛비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봅니다.
🙏🙏🙏
나무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불~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집에서 부처님처럼!
-()-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보내세요^^
늘 공부하시는 자세에 감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 사이에 거리가 없을 때
행복하다는 말울 생각하지요~
_()()()_
감사합니다.
모자라고 오버하는 글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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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가을장마가 잠시 소강 상태에 들자,
풀벌레들이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공기도 한층 시원하고요~
...()...
감사합니다.
작지만 성실과 선행을 잊지 않고 불국토을 장엄할 것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을이 살곰살곰 다가오니,
부처님 품안이 새삼 그립습니다.
부모님 품이 생각납니다.
감사드립니다
_()_
감사와 찬탄, 공경, 믿음, 열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폭염, 폭우가 지나가가 그 자리에 예전처럼
삽상한 가을이 방긋방긋~
날마다 좋은 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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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행복~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건강하고 화락하게 지냄이 새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