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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이는 강
강은 도시의 허리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른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물은 넉넉한 품으로 하늘의 빛깔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명암이 짙어진다. 밝은 빛이 어두움과 맞닿는 순간 하늘은 붉어짐으로 한차례 노을 파도가 세차게 출렁거린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듯 낮과 밤의 대치 후엔 고운 어둠이 강물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강물은 가로등과 형형색색의 조명이 비치며 물빛 무도회장이 되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강은 세월을 역행하듯 물줄기는 더 세차게 흘렀고, 키 작은 능수버들은 어느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었다. 견고하게 자란 나무들과 깨끗한 모래로 채워진 강변의 풍경이 어머니의 품처럼 마음에 익숙한 평온이 찾아든다.
출렁거리는 물살 너머로 숨길이 필요한 듯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오른다. 강물은 등이 굽은 물고기 허리를 말없이 감싸 안는다. 서천 둔치 둑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 터널을 이루었다. 강물의 습기를 머금고 생명력이 넘쳐 보이는 벚꽃 나무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여러 갈래의 가지를 타고 터트린 꽃잎에 쉼 없이 양분을 댄다. 벚꽃 터널이 끝날 즈음 삼판서고택 앞 조형물에 불이 켜졌다. 초승달 모양의 조형물은 어둑해진 강가에 유난히 빛을 발하며 발걸음을 이끈다. 고택 담장 너머로 아슴아슴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팔각지붕 위로 어른거리는 노송의 그림자도 같이 숨죽이며 잠잠이 귀를 기울인다. 고택을 지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를 유난히 그리워했던 어린아이는 강물에서 꿈을 꾸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다. 아이는 어머니 품이 간절할 때마다 따스한 백사장에 얼굴을 비비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의 흔적은 이젠 물안개처럼 희뿌옇다. 상념은 어릴 적 아이를 만나고픈 그리움과 어머니의 수 없는 눈물을 씻고 흘려보냈던 강물과 일직선으로 맞닿는다.
어둑어둑해진 강가에 벌써 둥지로 돌아가고도 남아야 할 왜가리 한 마리가 애처롭게 사냥을 하고 있다. 제 새끼에게 먹일 먹잇감을 찾지 못한 모양새다. 종종걸음으로 초조해하며 어두워진 물밑을 한번 바라보고, 허공을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어머니 또한 칠 남매를 위해 곡식을 일구는 땅에 달빛이 내려앉기까지 혼을 불어넣었다. 아이들 고아 만들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생때같은 자식들을 어쩔 수 없이 동생네 집에 맡겨두고, 몸이 부스러지게 일을 해야만 했다. 철없는 아이는 어쩌다가 보게 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야 했다.
그리운 어머니의 손부채질 같은 시원한 물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은 군데군데 바닥이 깊어지며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소용돌이 이는 강물은 어머니의 삶과 닮아 보인다. 어머니의 삶 또한 눈물샘을 원천으로 큰 강물을 이루었고,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만나 요동치며 삶 전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젊은 날 배냇저고리를 입은 여린 벚꽃잎 같은 막내딸을 낳은 지 삼칠일 만에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병약한 당신 아들 목숨 잡아먹었다며 으름장을 놓는 시부모님을 섬기며 흐르는 눈물을 강물에 씻어내곤 하셨다. 그렇게 효심으로도 버텨내기 힘들 즈음 밀가루 두 포대와 조랑조랑 어린 칠 남매는 마당에 내동댕이쳐졌다.
살길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젖을 떼지 못한 아이를 등에 업고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행상 짐을 머리에 이며 수십 리 길을 걸었다. 발뒤꿈치가 깨져 철철 흐르는 핏물을 강물에 씻어 보내며 고단한 삶의 의지는 발그레한 모성애 연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자식들 굶길세라 쉼 없이 흘린 땀방울은 기구하게도 버스 바퀴에 흘러 오른팔을 내어주며 세찬 위기의 소용돌이가 또 한 번 크게 일었다. 발을 타고 넘어가 동강동강 나는 아픔 뒤에 버스는 한 번 더 어머니의 오른팔을 넘어버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한쪽 팔을 내주고야 말았다. 심성이 고왔던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둔 사고 가해자의 선처를 스스로 구하셨다. 어머니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출산의 고통을 넘는 그 아픔을 버스 바퀴 밑에서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사고 후유증이 깊었던 탓에 어머니는 밤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버스에 치이는 악몽에 시달렸다. 절단된 팔 끝은 더딘 혈액순환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통을 수반하며 소용돌이치는 삶을 탓할 만도 한데 어머니의 도량은 천공해활(天空海闊)만큼 깊고 광활했다. 속으로만 삼켰던 그 수많은 어머니의 눈물은 바라보고 있는 강을 지나 이미 바다의 눈물로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용돌이의 물살에도 돌부리를 잡고 버텨내야만 했던 어머니 삶의 원천은 바로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이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칠 남매를 끌어안은 등에 이는 물보라를 오롯이 견뎌낸 어머니. 그 희생으로 깊은 강물은 칠 남매의 젖줄에 고루 흘러내렸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자식들 걱정이 전부였던 어머니의 일기장에 칠 남매의 눈물이 베어 일곱 줄의 강을 이루었다. 일곱 줄의 강은 크고 작은 삶의 소용돌이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깊은 강물의 수혈을 받으며 잔잔해지곤 했다.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없었다. 병충해의 피해로 한 해 농사의 수확이 없을 때도, 나무 땔감을 지게에 지고 중심이 맞지 않아 벼랑에 굴렀을 때도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았다. 훌훌 털고 늘 꿋꿋하게 다시 일어났다. 어머니의 소용돌이는 내 삶에도 투영되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자식들 입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위해 때때로 먹잇감을 찾는 왜가리의 몸짓이 되기도 하고, 좌절 앞에서 주저앉기보다는 빠르게 털어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부모의 한숨과 아픔은 자식들에게 심연의 고통으로 치 닿을 수 있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일까. 소용돌이 앞에서 의연하게 딛고 일어나는 모습을 은연중에 자식들이 답습하며 삶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 삶의 소용돌이는 여러 갈래의 파장으로 회오리치며 깊은 한줄기의 강으로 만나 어느새 내 삶의 디딤돌이 되어 흐른다.
소용돌이로 이는 물보라를 양분 삼아 생명력 넘치는 나무 한 그루가 어두운 강어귀에 꼿꼿이 서 있다. 만개한 벚꽃 터널을 돌아 나오며 어머니 생각으로 맺히는 촉촉한 물기를 꽃잎에 가두어 흘려보낸다.
사막화
내 영혼은 사막화
뜨거운 태양 스카프를 온몸에 둘렀다
타들어 가는 혀끝은 한 방울의 물기를 원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모래는 무참하게도 발바닥을 짚고
몸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물음에 답변할 수 없었던 하갈처럼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것일까
해가 저물지 않은 탓에
모래알처럼 무수한 상념들을 밟고
제멋대로 폭주하며 내달린 길
되돌아가려 찾은 발자국은
모래바람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지친 몸 실어 나를 낙타 한 마리 간절하다
독기어린 전갈들이 치근거리는 사막에 누워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아시스를 가슴에 품은 영혼의 입술이
목마름으로 읊조린다
마크라메, 매듭을 나누며
곡선으로 휘어진 나뭇가지에 면로프를 한 올 한 올 걸어 매듭을 엮는다. 월행잉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이사 온 지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벽은 휑하고 베란다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상자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현상 속에 혹독하게 버티고 있는 사업장을 신경 쓰느라 늘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로 인한 피로감에 새 보금자리의 짐 정리는 늘 저만치 밀려나고 말았다.
휴일을 맞아 밀려있던 짐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 뉴스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드는 순간 TV 너머로 보이는 휑한 타일 벽이 심하게 눈에 거슬린다. 무언가 온기를 불어넣어야만 할 것 같다. 베란다 한쪽 귀퉁이에 비스듬히 세워진 곡선의 나뭇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을 쿡쿡 내리쳐 본다. 추장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비장한 각오로 사냥을 떠나자는 신호를 보내듯이, 나뭇가지를 든 이상 나 또한 추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냥에 실패하면 부족들 허기를 달랠 수 없기에 차마 돌아오지 못하는 추장만큼이나 거실 타일 벽을 더 이상 차갑고 휑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곡선의 나뭇가지는 이사를 오기 전 구매해 두었다. 주인이 찾지 않는 동안 나뭇가지는 베란다에서 햇빛과 차가운 온도를 견뎌내며 저 스스로 단단하고 견고하게 말라 있었다. 여느 공예에 비해 마크라메 준비물은 비교적 단출하다. 면로프, 가위, 나무 봉만 있으면 그만이다.
마크라메macramé는 서양 매듭 공예다. 13세기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고 아랍어로 ‘베를 짜는 사람’이라는 뜻의 ‘migramah’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크라메의 시초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17세기 무렵 아랍인들이 낙타 안장을 매듭공예로 만들어 사용하면서 그 시초가 되었다고도 한다. 떡볶이 골목을 지나다 보면 간판에 원조집, 내가 원조, 원조 1호 집 등 재미난 문구로 최초의 집이었다는 것을 저마다 강조한다. 마크라메 또한 그 어원의 대치는 커피의 역사에서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슬람 사제 오마르Oma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서로 비슷해 보인다. 어원을 정의하고서라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합이 클수록 실의 굵기는 굵어진다. 인생으로 대입해 본다면 그 굵기가 48합은 유년기와 같고 60합은 청소년기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90합은 청년기와 같고 120합은 중년기와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120합 이상도 있지만 그 굵기는 매우 굵고 견고하여 대작을 만들 때 사용하려 아껴두고 있다. 내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인생을 단단한 그 줄에 대입하여 거론할 수 있지 않을까. 매듭을 엮기 위해 줄 하나를 선택했다. 120합의 줄은 중년기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기하학적 모양의 패턴으로 한 땀 한 땀 매듭을 엮기 시작했다. 한 모양을 고집하며 과하게 매듭을 지은 탓에 줄 하나가 짧아졌다.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넘어갈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올 정도로 모질게 아팠다. 매듭 줄을 잇듯 끊어질 듯한 생명줄을 연장받을 수 있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의 ‘손에 쥔 밧줄이 미끄러질 것 같다면 매듭을 묶고 매달려라’라는 명언처럼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 까닭에 신도 끈질긴 근성에 못 이겨 생명 매듭 줄을 다시 이어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정도 스스로 몸을 추스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소유보다는 무소유가 이해되었고, 죽음이 두렵기보다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일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 들었다.
마크라메의 짧아진 한 줄을 복원하기 위해 하고자 했던 패턴을 포기했다. 덕분에 도드라져 팽배해졌던 마크라메의 짧은 줄은 나의 생명줄처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평매듭, 종달새 머리매듭, 감아매기 매듭법을 적용해 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사색의 면로프 줄에도 쉼 없이 마찰이 가해진다. 그 결정체로 성찰의 보풀들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기대여명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꽃꽂이 봉사를 나가게 되었다. 강의실에 참석하지 못한 환우를 위해 병실을 순회하던 중 한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성은 시한부 환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침대에 기대고 앉아 힘겹게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왜 그리 힘들게 뜨개질을 하세요.”하고 물었을 때 그 여성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채 생생하다. “뜨개를 하면서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저를 위한 것보다는 제 작품을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 기쁨은 배가 되었지요. 이젠 어느 정도 베푼 것 같아 마지막 가는 길에 목을 따뜻하게 둘러 줄 제 목도리 하나를 짜는 중이랍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던 그 여성, 힘없이 마구 떨리는 탓에 제 코를 못 찾는 코바늘 든 손이 숭고해 보였다. 그 숭고한 여린 손을 나도 모르게 감싸 안았다. 더는 그 여성을 볼 순 없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내 심장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누는 삶은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여성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심성이 고와 매사에 마음을 다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옛 생각으로 공예품이 완성되어 갈 즈음 마크라메의 향방도 이미 정해졌다. 아무래도 차가운 거실 타일 벽은 당분간 그대로 놔둬야 할 것 같다.
창문 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더니 모바일폰 카톡 창에도 눈이 내린다. 올해 들어 내리는 첫눈이다. 코로나 19로 모든 사람들이 지쳐 있을 때 내리는 눈은 토닥토닥 위로와도 같게 느껴진다. ‘카톡’ 하고 들어온 메시지 하나가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한다. 마크라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사업장으로 방문하겠노라고. 운 좋게도 나눔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설렘을 마음이라는 봉에 나눔 매듭법을 엮어 멋들어지게 걸어놓으련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걸작품이 될 수 있도록.
김수현 시·에세이집 『사막화』
1976년 경기도 양평 출생, 영주.시흥에서 거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학 학사, 영남대학교 문학예술과정 수료. 제36회 영남문학 신인상 수필 등단. 2021 청송객주문학대전 장려상. 2021 경북관광체험 전국 문학공모전 금상. 2022 전국죽계백일장 장원. 2023 문경새재문학상 우수상. 2023. 6. 9 암 투병 중 소천(향연 48세),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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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글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부디 고통 없는 곳에서 평안하시길..
도저히 끝까지 못 읽겠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이신데.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