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염색 샴푸 논란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가발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줄 알지만, 가발도 1~2년에 한 번씩 바꾼다. 인모라도 모낭 없는 모발이어서 오래되면 푸석푸석해진다. 대개 가발 쓰는 나이에 흰머리도 늘기 시작하기에 가발과 생모의 은발 비율을 같게 조정할 필요도 있다. 얼굴에 화장 잘 받는 날이 있듯이 가발 잘 쓰이는 날이 있다니, 이왕 쓰는 거 잘 써야지 싶다. 모발 이식 의사들은 평생 가발 살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 심는 게 낫다고 말한다.
▶머리카락 색은 모낭 속 멜라닌 세포 양으로 결정된다. 많을수록 짙다. 세월 따라 흰머리가 느는 것은 노화로 생긴 활성산소가 두피 모낭의 멜라닌 세포 수와 기능을 떨어뜨린 탓이다. 금발도 은발이 된다. 흰머리는 옆머리, 정수리, 뒷머리 순으로 난다. 나중에는 수염과 눈썹도 하얘진다. 움직일 때 마찰을 줄여주는 겨드랑이나 음모 털은 실버화가 가장 더디다.
▶염색하고 나서 시력이 떨어졌다며 백발로 다니는 어르신들이 꽤 있다. 염색 자주 하면 방광암에 걸린다는 얘기도 있다. ‘dye or die’(염색하느냐, 죽느냐)라는 말이 있듯이, 발암 가능성은 논란이 됐다. 염모제에 방향족 아민 등 화학물질을 쓰는데, 이게 피부 접촉 등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미용사처럼 매일 오랜 기간 염모제에 노출된 경우는 방광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다고 나온다. 가정용 염모제 수준에서는 암 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머리를 감기만 해도 흰머리가 검게 물든다 해서 인기를 끌던 ‘모다모다’ 샴푸가 퇴출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엊그제 샴푸 원료에 유전독성이 있는 ‘00벤젠’ 염모제 성분이 있다며, 이를 화장품 사용 금지 목록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화장품학 박사 출신 기자의 추적 보도로 시작됐다. 샴푸를 쓴 사람들에게서 손도 검어졌다는 불만을 보고, 샴푸에서 유럽서 사용이 금지된 염모제 성분을 찾아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흰머리 염색을 위해 암소 피, 말린 올챙이 기름 등 각종 재료가 쓰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염색의 역사는 깊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면 젊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19세기 말부터 화학 성분 염모제 사용이 본격화 됐다. 고려 후기 문신 우탁은 늙어감을 한탄한 ‘탄로가’(歎老歌)를 쓰며, 아무리 늙지 않으려고 해도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했다. 가는 세월을 그 무엇으로 쉽게 잡을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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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하면 암 걸린다? 이 정도 기간 주면 괜찮다
[헬스 에디터 김철중의 건강 노트]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일러스트=김도원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이 은발로 변하면, 다들 젊게 보이려고 염색들을 한다. 간혹 백발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개성이냐?”고 물어보면, “염색하면 암 걸린다고 해서 안 한다”고 답하는 이가 꽤 있다. 그동안 의학계에서 염색과 암 발생을 놓고 논쟁이 이어져 왔다. ‘dye or die’ 염색하느냐 죽느냐 식으로 깜짝 놀랄 표현을 쓰기도 한다.
염모제는 화학반응을 거쳐 모발에 침착된다. 암 발생 위험 이슈가 되는 건 모발에 침착된 염모 성분이 오래가는 반영구 이상 염색이다. 반영구 효과를 내기 위해 넣은 방향족 아민 등 화학물질이 피부 접촉이나 연기 흡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용사처럼 매일 오랜 기간 염모제에 노출된 사람은 방광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은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가정용 염모제를 쓰거나 가끔 염색하는 경우도 암 발생률이 높아지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가 나왔지만,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노출 정도, 염색 유형, 관찰 기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미국 하버드의대가 ‘개인 염색자’와 암 관련 사망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연구 논문을 영국의학협회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976년부터 36년 동안 수집된 간호사 건강 연구에 등록한 여성 11만7200명을 대상으로 염색 빈도 데이터를 모은 후 무염색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개인 염색자’는 전반적으로 암 발생률이나 사망 위험이 더 높지 않았다. 다만 염모제 사용 기간이 긴 경우, 피부암⋅유방암⋅난소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암학회도 가정용 염모제는 암 발생 위험을 높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당신은 염색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가정에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염색은 하겠다고 답하겠다. 그래도 주의할 것은 있다. 염모제 알레르기 테스트를 해볼 필요는 있다. 장갑을 끼고 하고, 염모제가 두피에 닿지 않게 하라. 사용 후 물로 두피를 충분히 헹궈줘라. 눈썹이나 속눈썹 염색에는 쓰지 마라. 요즘은 독한 아민 화학물질을 염모제에 쓰지 않는다. 그래도 신경 쓰이면 염색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지만 식물성 성분을 쓰시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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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머리숱은 같은 운명?… 패배자 나폴레옹, 왠지 더 휑하네
[명작 속 의학] [12] 나폴레옹 초상화로 본 탈모
M자형→C자형, 전형적 패턴 보여 “현대였다면 뒷머리 이식했을 것”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2.04.28 03:00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가 되면서 근사한 초상화를 여럿 남겼다. 18세기 프랑스 왕실 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1812년 ‘서재의 나폴레옹’<사진 위>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림 속 나폴레옹(1769~1821년)의 모습은 권력의 중심으로 환하게 비춰진다.
왼편의 시계는 새벽 4시13분을 가리키고, 오른편 양초는 짧게 타 들어가 있다. 그 시간까지 황제의 복장을 갖추고 일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화가 다비드는 화폭에 나폴레옹을 자유와 평등을 선사하는 정치인 이미지로 부각하려고 애쓴 듯하다. 그래서인지 나폴레옹은 20대 후반부터 탈모를 겪었는데. 그림 속 나폴레옹의 탈모는 마치 요즘 식으로 포토샵을 가미한 듯 살짝 가려져 있다. 권력과 탈모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듯하다.
나폴레옹 초상을 추적하면, 처음에는 이마 양 끝이 위로 올라가는 M자형 탈모 형태로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C자형 탈모로 진행된다. 이는 전형적인 남성형 탈모증 패턴으로 나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옆과 뒤 머리만 남는 U자형 탈모가 된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떠난 뒤 그려진 화가 폴 들라로슈의 ‘퐁텐블로의 나폴레옹’<사진 아래>에서는 권력의 중심과 거리가 먼 패배자 모습이 보이고. 탈모는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권력과 머리숱은 운명을 같이 하는 모양이다.
성경 곳곳에서 대머리에 대해 언급이 나오고, 고대 이집트에서도 탈모 치료제가 쓰인 기록이 있다. 세계모발이식학회 회장을 지낸 황성주 피부과 전문의는 “대머리였던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공식 석상에서 항상 월계관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원로원에 요청했다”며 “인간은 오래전부터 머리카락을 잃는 것은 자신의 고유함을 잃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 사후 머리카락에서 비소가 검출된 것도 독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 비소가 탈모 치료제로 쓰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나폴레옹이 요즘 중년 남성이었다면, 뒷머리에서 머리카락 3000개를 떼어와 앞 이마에 옮겨 심는 모발 이식을 하고, 그것과 남아 있는 모발이 잘 유지되도록 탈모 유발 남성호르몬 성분을 차단하는 치료제 복용을 권했을 것”이라고 황성주 원장은 덧붙였다. 만약 그랬다면 나폴레옹의 역사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