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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황 부소영은 팔 년 전 그대를 항주 진회하의 기루에서 대소림사로 안내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대의 성장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그대가 천엽성승으로 변해 적사도로 향한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대가 소수천마로 변해 천마성에 입성한 것도 알았으며 모든 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파악되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믿지는 않겠지만 그대는 우리 서궁세가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한 셈이다. 백의성은 네가 원해서 만들어 진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원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풍운회 역시 마찬가지다. 군협천이 멸망하고 군협천주 철군무는 무서운 정신적 고통을 안고 풍운회를 만들었다. 철저히 우리의 계산속에서...]
중인들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단엽만이 무섭게 차분한 표정이었다.
예황 부소영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풍운회는 머지않아 군협천처럼 파멸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협천주 철군무와 그의 개들은 또 피할 곳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만들어 진 곳이... 우리의 뜻에 의해 만들어 진 곳이 백의성이다. 철군무와 그를 따르는 개들은 백의성에 몸을 담을 것이고... 결국은 백의성의 파멸과 함께 그 고통은 끝이 나게 될 것이다.]
무섭도록 한에 찌든 말이었다. 도대체 서궁세가와 군협천주 철군무의 선조들 사이에 맺힌 한이 어떤 것이기에 그들이 이토록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철군무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주고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황 부소영은 무섭도록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 가주께서도 미처 짐작치 못한... 첫째는 천엽성승이 역기천이대법으로 너에게 모든 공력을 전할 줄은 몰랐던 것이고, 둘째는 너와 적용화의 관계를 몰랐다는 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분의 계산 속에 있었지. 천엽성승과 군협칠대무황을 잡아들이고 다시 뇌옥의 도면을 유출해 탈출토록 한 다음 적용화가 지닌 힘을 상실시키려 한 그 모든 것은..]
(그렇군. 그랬었군. 그 도면은 역시 서궁수가 유출한 것이었군.)
단엽은 서궁수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금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일이다. 도대체 인간같지도 않은 지혜를 지닌 인물... 그의 능력은 어디가 그 한계란 말인가?)
이것은 단엽만의 생각이 아니었고 이곳에 모여 있는 모두의 생각이었다.
[적용화의 힘과 북궁세가의 힘을 약화시킨 다음 그분은 다시 군협칠대무황과 천엽성승, 그리고 너를 잡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백의성은 북궁세가의 힘을 빌려 너희들의 모든 이지를 상실시킨 후 서궁세가의 뜻대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철군무가 풍운회의 잔여세력을 이끌고 백의성에 몸을 피했을 때... 가장 고통스럽게 모든 인물의 배신 속에서 죽게 하려 했지. 한데... 그분의 계산속에 없던 두 가지의 실수로 인해 만박대선개의 존재가 유출되었고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 정도에서 너희들을 사로잡는다면 가주께서 원래 계산했던 대로 너희들은 이지가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 서궁세가의 종노릇을 충실히 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그녀의 말이 없었다. 다만 중인들을 차례로 보며 기이한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한편, 남해성니는 비로소 단엽의 정체를 알고 몸을 떨고 있었다.
(저분이 단엽이란 말인가? 대소림사의 망나니가... 나의 알몸을 다 본 그 어린 중이?)
그녀는 새삼 경이로군 눈빛으로 단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떨렸다. 물론 어린 시절 때의 일이나 그녀는 한 시도 그날의 일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던 어린 중, 그의 하얀 웃음을 잊어 본 적이 없었으며 알몸을 내보인 치욕 이전에 그녀는 야릇한 연정 같은 것을 느껴왔다.
기실, 그녀가 풍운회에 가입한 것은 바로 단엽옥승이 풍운회의 부회주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작 풍운회에 몸을 담았을 때는 단엽옥승이란 인물은 실종된 뒤였고 그녀는 애만 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녀만의 연심.
한데 정작 장본인인 단엽을 여기에서 만났다. 그것도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백의성의 성주라는 신분으로 어린 망나니는 성장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멍하니 복면에 가려진 단엽의 얼굴만을 보고 있었다.
이때, 단엽은 잠시 담담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은 예황 부소영에게 향했다.
예황 부소영은 그 눈빛에 접한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피부가 일시지간에 얼어붙는 듯한 무섭도록 싸늘한 눈빛.
[그대들의 최후 목적은 무엇인가?]
[철저한 고통 속에서 군협천의 잔여세력을 죽이는 것.]
[천하제패는 아닌가?]
[아니다.]
예황부소영은 단언하듯 말했다. 단엽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했다.
[천하제패가 아니라면... 그대들은 무슨 이유로 군협천의 파멸을 원하는가? 그것도 철저한 고통 속에서?]
예황 부소영은 웃었다. 처음에는 나직한 웃음이 점차 어둠을 찢어발기듯 터져 나왔으며 급기야는 파열시키 듯 미친 듯한 웃음으로 돌변했다.
무서운 한과 증오가 그 웃음에 절절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웃음을 뚝 그쳤다.
[알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군협천주 철군무가... 군협천 사상 가장 완벽한 인물이라는 그가 우리의 앞에서 무릎 꿇고 피눈물을 토하며 죽어갈 때 세상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왜 성자이던 서궁세가의 인물이 무서운 한과 증오를 품게 되었으며 왜 군협천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그 이유를.]
단엽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제 어찌 할 생각인가? 보아하니... 그대가 우리 전체를 한순간에 제압할 비장의 무기를 지닌 것 같은데?]
그는 화제를 돌려 본론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실인 것이다. 예황 부소영은 차갑게 웃었다.
[물론이다.]
그녀는 자신 있게 말한후 중인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백일무형산공분이란 말을 들어 본적 있는가?]
순간 중인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수백년 전에 실전이 된 것이다. 색깔도 없고 형체도 없으며 냄새조차 없는
독의 일종. 일단 전개하면 누구도 피할 수가 없고 백일동안 완전히 무공이
전폐된 상태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예황 부소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표정을 보니 알고 있는 것 같군. 지금 내게 그 백일무형산공분이 있다. 그것은 이 철비파의 줄에 묻어 있으며, 줄을 퉁기면 그대들은 무공을 상실하게 된다. 막을 수는 없다. 설사 만독불침지신이라 해도 이 백일무형산공분 만큼은 막을 수가 없으며 퉁겨지는 순간 그대들은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황 부소영의 말은 단지 협박이 아니었다. 백일무형산공분은 확산되는 속도가 그대로 빛이라고 전해진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이 백일무형산공분은 만들기가 지극히 까다로우며 절대 많은 량을 만들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 실전이 된 것이다. 한데 그것이 지금 예황 부소영에게 있다면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 운집한 모든 인물은 무공을 상실해야 하는 것이다.
예황 부소영은 굳어진 중인들을 살피며 말했다.
[하나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내가 이 비파의 줄을 퉁겨냄과 동시에 백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백일무형산공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정도로 빠른 신법을 지닌 인물은 천하에서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어찌 찰나적인 순간에 몸을 백장의 거리 밖으로 날릴 수가 있겠는가. 이들 가운데 가장 무공이 고강한 단엽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기에 예황 부소영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은 지금 철비파에 놓여져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비파의 현이 퉁겨질 판이다. 이때였다.
단엽이 담담히 말했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지...]
[방법?]
예황 부소영은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단엽은 느릿하게 말했다.
[그대가 비파의 현을 퉁기기 전에 그대를 죽인다면 역시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홋호호호...]
가소롭다는 듯이 그녀는 교소를 터뜨렸다. 한데 그것이 실수였다. 그녀가 만약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무공이 아무리 강한 단엽이라 해도 그녀를 죽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와 단엽의 거리는 십여 장, 그 거리에 있는 그녀를 어찌 찰나적인 순간에 단엽이 죽일 수가 있겠는가.
그녀의 웃음이 어둠에 울리고 있을 때,
파아아.... 단엽의 신형은 허공을 갈랐다. 그것이 달마고해보.
그 빠름은 빛이었다. 거기에 단엽은 천마도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천마도는 허공에 찬란한 도기를 뿌렸고 그 위력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본래 천마도법은 빠름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거기에 달마고해보라는 또 하나의 빠름이 더 불어지니 누구도 그의 신형을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뚝! 예황 부소영은 웃음을 그쳤고 자신을 향해 무섭게 짓쳐드는 도기를 느끼며 막 현을 퉁기려 했다. 현과 손가락의 위치는 지척. 또한 그녀는 웃으면서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단엽은 늦은 것이다. 한데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예황 부소영의 손은 주춤했고 그 순간을 단엽은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 그녀의 손이 잘라져 나갔고 이어, 그의 전신에 수십갈래의 피분수가 피어올랐다. 그것이 끝이었다.
비파의 현은 끝내 퉁겨지지 않았으며 중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억...]
예황 부소영은 공허한 시선으로 단엽을 주시했다. 그녀는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었으며 백양목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었다.
단엽은 그녀의 앞에 선 채 물었다.
[어째서 기회를 버린 것이오?]
마지막 순간에 주춤한 그녀, 단엽은 그것에 큰 의혹을 품고 있었다. 예황 부소영은 서글프게 웃었다.
[그...그것은...나...나도...이해..못하고 있음...]
그녀는 다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그녀의 눈빛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허억...이...이제사 ...희미하게...짐작이가는 것은 과거...적사도로 운송 도중...그대와 입맞춤...그 대가를...치루는 모...모양...]
떨어진다. 낙엽이 한 잎 두 잎 처량하게 그녀의 몸 위로...
[허억...이것역시...가주가 예...예상 못한 또 하나의 실수... 하아...모든...사람을 속이고 나마저 속여야 했던 이 인생의 연극이...역시 끝...]
그리고 그녀의 고개는 서서히 꺾였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폭죽 터지듯
이 터져 버린다.
낙엽처럼 사방으로 날리우며 떨어져 내리는 그녀의 혈육.
단엽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인가?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한 것인가?
(꼭 이래야만 했던가? 이런 식으로 죽이고 죽여야 했던가? 서궁세가여...
그대들은 무슨 한이 그토록 깊기에 이런 비극을 자초하는가?)
목이 터져라 이렇게 외치고 싶은 답답함이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굳어져
있었다. 이어 그는 나직이 어둠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비극이 더 이상 진행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단엽의 말을 듣는 모두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서궁수는 아마도 이런 결말까지도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그는 서두를 것이오. 우리가 나서기 전에 풍운회를 파멸시키려 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의 첩자를 추려내기 전에 모든 힘을 동원하여 풍운회를 공격할 것이오.]
북궁추림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서둘러야 하겠군요. 풍운회의 생사존망이 달린 이상....]
단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해야 할 일이 있소. 나는 철군무를 만나봐야 하겠소. 그리고 군협천과 서궁세가가 맺고 있는 원한관계를 들어야 하겠소. 도대체 무엇이 서궁세가로 하여금 한을 품게 한 것이며... 성자이며 현자였고 초지자의 가문을 이토록 타락시킨 것인지. 이것을 알기 전에는 서궁세가를 막을 수가 없을 것이며 군협천은 고통에서 헤어날 수가 없을 것이오.]
그의 마음은 어두웠다. 어둠보다 더욱짙은 어둠이 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음이다.
유향신협, 군협천의 구대장로라는 엄청난 신분의 인물. 그리고, 그는 현재 풍운회의 구대장로로 있다.
나이는 이백살이 넘었으며 그가 지닌 무공의 한계는 그 자신도 확실히 모를 정도이다. 그가 지금까지 대한 무림의 기재는 수도 없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군협천주인 철군무이다.
철군무, 유향신협은 이 이상 가는 인물이 이 시대에는 없고 후세에도 당분간은 탄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철군무는 완벽했다. 적어도 유향신협이 보는 견지에선.
보타신니 역시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아온 인물 가운데에서 철군무만 한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지금 그들은 철군무보다 더 뛰어난 자질의 인물을 보고 있으니... 그의 지혜는 도대체 그 한계가 없는 듯 했다. 지혜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서궁세가의 가주와 쌍벽을 이룰 만큼 뛰어나다. 그들이 그의 무공을 최초로 대한 것은 오늘 밤이었다. 바로 예황 부소영의 죽음과 더불어 그 가공할 무공을 직접 견식한 것이다.
(엄청난 무공이었다 그의 무공은 철군무보다도 한 단계위인 듯 싶었고... 우리 구대장로가 힘을 합한다 해도 승산이 희박할 정도였다.)
유향신협은 혀를 내둘렀다. 이런 인물은 단 한사람뿐인 것이다. 바로 단엽이었다.
지금, 객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유향신협과 보타신니, 남해성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가 백의성 인물들이었다. 황촉불빛이 일렁이는 가운데 단엽은 그들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많은 말을 나누었다. 결론은 한 가지였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풍운회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각기 임무를 부여받고 이른 아침 길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바야흐로, 백의성과 천마교와의 싸움이 본격화될 조짐이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난세를 의미하는 것이고 더불어 무림의 운명이 좌우되는 기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단엽은 찻잔을 입에 대며 시선을 유향신협에게 던졌다. 그는 유향신협에게 구대장로 가운데 일인이 서궁세가의 인물임을 이미 말했다.
그렇다면 유향신협 역시 서궁세가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의심의 대상자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가 서궁세가의 인물이었다면 만박대선개 등이 그를 죽이려 들리는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단엽은 유향신협에게 서궁세가의 사람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 대해 물었으나 유향신협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없다는 것이다. 단엽은 한동안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우선 급한 것은 구대장로에 속한 첩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단엽은 한동안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우선 급한 것은 구대장로에 속한 첩자를 찾는 것이었다.
(지금 풍운회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구대장로와 군협천주 철군무 뿐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 전에 찾아내야 한다.)
단엽은 이렇게 생각하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는 유향신협을 바라보았다.
[노선배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유향신협은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습관을 비롯해 특징까지
도.]
[무엇 때문에?]
유향신협은 여전히 의혹을 금치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객실의 모든 인물이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단엽은 말 대신 가볍게 몸을 돌렸다. 빙글 몸을 한바퀴 회전하는 순간 그의 복면은 벗겨져 있었다. 눈이 부신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났다. 유향신협과 보타신니는 입을 딱 벌렸다.
(오오...준수하도다.)
그들은 감탄했다. 이 얼굴은 유향신협이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바로 풍운회의 부회주의 모습이었다. 물론 천엽성승의 변신이기는 했지만 그때 단엽옥승의 모습보다도 지금 단엽의 모습은 훨씬 더 수려했다.
한데 이때 다시 단엽은 빙글 몸을 돌렸다. 순간, 그의 모습은 다시 일변했다.
[아! 저럴 수가...]
중인들은 탄성을 발했다. 단엽의 모습은 완벽한 유향신협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백미와 코 밑의 점까지도 완벽하게 같았다.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단엽은 놀라는 유향신협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유향신협은 놀라움을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께서는 노부로 변용하여 팔대장로에게 접근하실 생각이시오?]
[그렇습니다.]
[위험한 일이오.]
[위험해도 서궁세가의 인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지요.]
유향신협은 침음성을 토했다. 그는 한동안 고심의 표정을 지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향신협은 이윽고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가 없군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전해드리지요. 나에 대한 것과 나머지 팔대장로에 대한 것들을.. 그리고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나의 무공까지도 전해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엽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그런 그를 남해성니는 혼이 빠져나간 듯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보타신니는 나직이 탄식했다.
또한 단엽을 바라보며 북궁천과 북궁추림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성주의 무림경력은 서궁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그런 점이 서궁수와의 대결에서 절대불리의 요인이 되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주의 능력은 그 극을 향해 치달리는 것 같다.)
(그는 더할 수 없이 노련해지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서궁수는 당혹함을 금치 못하리라. 이대로 일 년만 지난다면 지혜로서도 서궁수는 도저히 성주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라나 잠을 한 숨도 못잔 채 이들은 꼬박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된 것이다. 어둠은 물러가고 잔광이 스멀스멀 객실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배, 한척의 범선이 동정호의 호심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둘 뿐이었다. 유향신협은 문사건을 나부끼며 갑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채 망망한 호수 끝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황혼녘의 하늘 밑. 노을빛 호면은 바람이 불때마다 잔잔한 파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유향신협, 그는 바로 유향신협으로 변용한 단엽인 것이다.
(유향신협의 말에 의하면 풍운회는 한 달 전에 총단을 동정호 군산으로 옮겼다고 했다.)
동정호 군산이라면 군협천의 총단이 있던 곳이다 바로 그곳에 풍운회의 총단이 들어섰다면 실질적으로 풍운회는 군협천의 완전한 변신인 셈이었다.
기실, 서궁세가가 천마교로 떠난 이후에 군협천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다시 풍운회가 자리를 잡았다. 단엽은 바로 풍운회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깊이 하시고 계시지요?]
청안한 옥음과 함께 북궁추림이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범선에는 북궁추림과 단엽만이 타고 있었다.
단엽은 가볍게 대꾸했다.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소.]
[초라하다니요? 당신이?]
북궁추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로서는 이해 못할 일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 있던 단엽이었다. 헌데 그가 초라함을 느끼고 있다니...
단엽은 그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 바다와 같은 동정호를 보시오. 거대하다는 생각이 안 드오?]
[물론 거대하지요.]
북궁추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것도 대자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소. 내 이 동정호의 한복판에 있으니 한줌 티끌인 양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대자연의 광대함에 비하면... 좀 더 높이 보고... 좀 더 깊은 곳을 볼 줄 아는 인간들이라면 야망을 위해 또는 복수를 위해 죽어라 싸우는 자신들이 더없이 부질없음을 느낄 것이오.]
[호호...성주께서는 감상에 빠져 있군요.]
북궁추림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단엽의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당신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허망함을 생전에 한번쯤은 느끼지요. 그러나 그것을 느낄 때는 이미 늦었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니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지요.]
그녀는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처럼 어린 나이에 그것을 느끼기란 더욱 쉽지가 않지요.]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이오?]
[물론입니다.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백의성주가 될 수가 있었겠으며 어찌 나의 마음을...]
그녀는 돌연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단엽은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면 서궁수 역시 특별한 사람이오. 그 역시 그런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고 있었을진대..그가 그토록 한 가지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소.]
북궁추림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의 양볼은 노을빛이 되어 있었다.
(저분은 나의 마음을 알고나 있을까?)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탄식했다. 바로 이때였다.
스스스... 한 척의 거대한 범선이 단엽이 탄 범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오는 것이 보인다.
단엽은 잠시 범선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부성주, 잠시 선실로 들어가 있으시오.]
[왜요?]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나의 신분이 들통 날 염려가 있기 때문이오.]
[저들이 누구란 것을 짐작하신 것 같은데...]
[천마교의 인물이오.]
[아...]
북궁추림은 탄성을 발했다.
(이분의 안력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로구나.)
무려 백여 장이 넘는 거리의 범선에 선 인물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안력이었다.
[한 사람은... 천마교의 부교주라는 철류향이며 또 한 사람은 천마십대장
로이자 서궁세가의 십대가신 가운데 일인이오.]
단엽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은 고해동의 마인들 같소.]
[그들이 어찌 이 범선을?]
[이미 서궁수의 계산 속에 이런 나의 행동도 들어 있었던 것 같소.]
[대단한 인물이로군요.]
[그렇소.]
단엽은 바짝 다가오는 범선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북궁추림은 선실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이때다. 휙휙... 단엽의 면전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어, 근 백여 명에 이르는 백발노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선두의 여인, 후리후리한 몸매에 폭발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삼단 같은 머리는 궁장으로 비껴 올렸으며 노을에 물든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환상과 같았다.
바로, 군협천의 소천주이자 현재는 천마교의 부교주인 철류향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몽롱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선 흑의면사인은 서궁세가의 십대가신 중 일 인이었다. 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단엽은 과거에 한 번 그들 십대가신을 대한 적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었다.
그들 십대가신에게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백발노인들.
그들은 고해동의 수뇌인 청목사승과 함께 죽음을 당한 십팔마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인 듯 싶었다. 이때, 흑의면사인은 단엽을 향해 물었다.
[본인은 서궁우라고 한다. 그대는 단엽인가?]
단엽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히 정확하군. 어찌 그것을 알았소?]
그는 능글맞게 물었다. 흑의면사인, 즉 서궁우는 그 물음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철류향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죽이시오.]
철류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를 상실한 그녀는 서궁우에게 조종되는 모양이었다. 철류향은 천천히 단엽을 향해 걸어갔다.
한데 바로 그순간이었다. 돌연, 그녀는 벼락처럼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서궁우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엽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서궁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펑!
철류향의 백야수는 그대로 서궁우를 강타했다.
[우욱!]
서궁우는 뒤로 주르륵 밀려나가며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이럴 수가... 어찌 네 년이?]
서궁우는 두 눈 가득 불신과 경악을 담는다. 그의 면사는 벗겨져 있었다.
청수한 용모의 노인이었다. 나이느 백여 살이 넘어보였고 그의 안색은 백납처럼 창백했다.
[역시 대단하군. 백야수를 정면으로 맞고도 살아남은 인물은 네놈이 처음이다.]
철류향은 싸늘하게 웃으며 재차 공격했다. 그녀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려져 있었다. 눈부시게 흰 백색의 검, 그검은 그녀와 함께 뿌연 백기로 화해 서궁우를 향해 폭출되는 것이었다.
서궁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흐흐...미쳤군. 그러나 쉽게 당할 이 서궁우가 아니다.]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철류향의 검이 허공으로 헛치고 만다.
[파천황!]
서궁우는 벼락처럼 외치며 손을 쭉 뻗었다.
휘이잉! 가공할만한 장력이 철류향의 몸을 눌러왔고 철류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 검과 함께 장력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스스... 장력과 검은 허공에서 무섭게 뒤엉켰다.
[으음...]
서궁우는 또다시 신음을 토했다. 그의 흑의는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며 그야말로 피투성이였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그런 정도로 견딜 수 있다니 놀라운 무공이었다.
철류향의 안색도 약간은 창백했다. 이때였다. 고해동의 마인들이 철류향을 향해 날아든 것은.
철류향은 단엽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어서 이들을 처치하세요. 시간이 없으니...]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몽롱하지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물처럼 담담했으며 영롱하기까지 했다.
단엽은 이미 행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손은 무섭게 고해동이 마인들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의 손이 스칠 때마다 고해동의 마인들은 이마를 감싸 쥐며 죽어갔다. 그들의 미심, 거기에는 시뻘건 단엽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북궁추림 역시 나서고 있었다.
그녀의 한 팔은 노을빛이었고 그것이 스칠 때마다 마인들은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순식간이었다.
참으로 순식간에 고해동의 마인들은 전멸해 버린 것이다.
[으으...]
서궁우는 사태가 자신에게 절대 불리해진 것을 느꼈다.
[분하다. 철류향. 네년이 이지를 상실당한 것처럼 가장해 왔었다니..대단
하다.]
말과 동시에 그의 신형은 애초에 타고 왔던 범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죽이세요.]
철류향은 단엽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단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빛살처럼 허공을 가르는 한줄기 도광이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크아아....]
서궁우의 몸은 허공에서 한 차례 격렬하게 떨리더니 그대로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가공할 천마도법이었다.
철류향은 그제서야 피곤한 듯 몸을 난간에 기대었다. 서궁우와의 일전에서 상당한 진력을 낭비한 듯했다. 그녀는 흘러내린 흑발을 쓸어 넘기며 힘없이 말했다.
[서궁세가 십대가신의 능력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합니다. 우리 군협천의 구대장로가 강하다 하나 십대가신은 더욱 강합니다.]
단엽은 탄성을 토했다. 그가 알기로는 오히려 구대장로가 한 단계 위였다.
한데 십대가신이 더욱 강하다니...
[그럼에도 구대장로가 더 강한 것처럼 철저히 십대가신을 은폐시킨 것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감추려는 서궁수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지요. 진정으로 서궁수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대장로를 두렵게 생각한다는 것도 역시 눈속임이지요. 그의 능력은 누구를 두려워할 단계를 완전히 넘어서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그의 능력은 소녀의 부친을 넘어섰으며 그럼에도 그가 군협천을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놔두었던 것은... 그리고 풍운회 역시 서서히 파멸시켜가는 이유는 무서운 고통을 주려는 의도입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앞에 두고 죽음의 공포를 주며 죽여 가듯..]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초조한 빛을 띠웠다.
[시간이 없습니다. 서궁수가 우리를 여기에 보낸 것은 당신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을 끌기 위함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시간을 지체한다면 풍운회는 이미 그들의 손에 넘어간 뒤일 것입니다.]
순간, 그녀는 신형을 본래 타고 왔던 범선으로 날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소녀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신만이 서궁수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당신만이 서궁수가 두렵게 생각하기 시작한 존재이고 당신만이 풍운회를 위기에서 구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많은 의혹이 있을 것이나 차후 알게 될 것입니다.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은 점점 더 그녀는 그녀의 말만을 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단엽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서운 여인이로군. 저 여인은 서궁수마저 완벽하게 속여 넘길 정도로 무서운 지혜를 지니고 있다. 군협삼대금학을 완벽하게 연성했음에도 주화입마를 가장하고 서궁수의 아래로 들어간 저 여인의 지혜...]
단엽은 대강의 상황을 헤아리며 감탄했다.
북궁추림은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아...저 여인의 지혜야말로 일찍이 서궁수와 쌍벽을 이루어 왔다니... 대단하군요.]
쏴아아아...
어쨌든 사태가 위급함을 알고 단엽은 무섭게 배를 몰기 시작했다. 단엽과 북궁추림은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졌다.
북궁추림에게 백의성의 전고수를 이끌고 풍운회를 도우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단엽의 모습은 여전히 유향신협의 모습이었다.
(이제 이 유향신협의 모습도 서궁수에게 간파된 이상... 더 이상이 모습
은 부담이 될 뿐이다.)
단엽은 이렇게 생각한 후 모습을 고쳤다. 평범한 중년문사의 모습으로. 누가 봐도 그는 평범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눈빛도 평범했으며 기도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천천히 군산을 향해 걸었다. 일견하기에는 느릿하게 걷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한 걸음에 무려 십여 장을 나갔다.
한데, 그가 막 한 울창한 수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으악... 사람 살려요.]
[소흑자 죽는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더불어 막 수림을 빠져나오는 두 줄기의 인영이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피투성이 비렁뱅이 소녀와 소년.
소녀 비렁뱅이의 피부는 눈이 시리도록 하얗고 소년 비렁뱅이의 피부는 반대로 숯처럼 검었다.
(소흑자와 소백자가 아닌가?)
단엽의 눈에 번쩍 이채가 떠올랐다. 방금 수림을 헐레벌떡 뛰어나온 인물들은 바로 개방의 일대 기재기녀인 소흑자와 소백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만박대선개 이후 개방 최고의 소식통이었다.
이때 그들은 크게 당황한 빛이었다. 안면 가득 두려움과 공포의 빛을 담고 있었으며 그들이 뛰어온 방향은 우연인지 단엽의 앞이었다.
순간,
[아이쿠...]
[아야...]
두 비렁뱅이는 앞을 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다가 그만 단엽과 부딪치고 만 것이다. 단엽은 멀쩡했으나 그들은 그만 뒤로 보기 흉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흐흐흐... 쥐새끼 같은 놈들 여기 있었구나.]
[크핫하하...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란 것을 몰랐더냐?]
음침한 음성에 이어 일단의 무리들이 다시 수림을 빠져나왔다. 단엽은 그들이 천마교의 마인들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선두의 인물. 그는 만겁뇌의 비팔마인 중 한명인 잔양혈마였다.
근 백여년 전 천마교의 일원으로써 일세를 풍미한 마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소흑자와 소백자는 사색이 되었다.
[큰일 났다.]
소흑자는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음을 알고 울상이 되었다. 소백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큰일 나긴 뭐가 큰일나?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녀는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단엽을 보고 투덜거렸다.
[당신 때문이야. 선비가 글이나 읽을 것이지. 여긴 뭐 먹을 것이 있다고 와서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 거야?]
그녀는 표독하게 단엽을 쏘아보았다. 단엽은 어설프게 웃었다.
[불쾌하냐..아이야?]
소흑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쏘아 보냈다.
[흥... 불쾌한 정도인가? 죽이고 싶지. 당신만 아니었어봐. 우리는 벌써 여기에서 사라지고 없을 거야.]
단엽은 안됐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그거 미안학 됐구나. 어쩌면 좋지?]
소백자가 입술을 삐죽였다.
[어쩌긴 어째 당신도 저 악마들에게 죽는 거지.]
[나도?]
[두 말하면 잔소리야.]
[왜?]
[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니까. 보는 사람은 누구든 죽인단 말이야.]
[허어...그렇담 큰일이 아닌가. 나는 죽기 싫은데...]
단엽은 난리 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였다. 잔양혈마는 흉측하게 웃으며 소흑자와 소백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아직도 두 비렁뱅이는 단엽을 원망하는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진다.
[책벌레씨. 당신 책임져야 해.]
[우리 개방의 방주이신 낙성신개께서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는 풍운회주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입장인데 당신 때문에 우리는 죽게 되었으니 우리 개방은 이제 망했단 말이야. 당신 책임질 거야?]
그러다가 숨이 막히는지 컥컥거린다.
잔양혈마는 피비린내 나는 살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흐흐. 이 개자식들이 죽어가면서도 나불대네. 좀 더 숨통을 조여 볼까.]
[캑캑!]
소흑자와 소백자는 발악처럼 버둥거렸다. 그러나 자양혈마에 의해 허공에 들려진 그들은 별 수가 없었다. 수십여 명의 마인들은 소흑자와 소백자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소흑자와 소백자는 그대로 질식사할 판이었다.
단엽이 앞으로 나섰다.
[이보시오. 거 어린아이들을 너무 괴롭히는 것이 아니오?]
[어라? 너는 누구야? 너도 이런 꼴이 되어 볼래?]
자양혈마는 가소롭다는 듯 히죽거렸다. 단엽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불쌍한 아이들 같은데 그만 놓아주도록 하시오.]
단엽의 말에 자양혈마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핫하하하... 이 놈이 죽으려고 환장했군.]
그는 오싹한 살기를 뿌리며 소흑자와 소백자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단엽을 향해 다가갔다. 소흑자와 소백자의 얼굴빛은 이때 완전히 흑색이 되어 있었다.
(서둘러야겠군.)
단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시 말하겠다. 순순히 놓아주겠느냐, 아니면...]
[흐흐...아니면 어찌하겠느냐?]
자양혈마는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