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六 章 龍延香의 洞窟
먼저 번, 천전교주의 음모에 말려 들어간 운학의 몸은 침사곡의 무서운 황사를 향하여 세차게 내리 박히고 있었다. 그의 귓가에서는 세차게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소리 뿐……
하강하는 그 순간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천만 가지 상념이 스쳐갔다. 그러나 그는 허공을 떨어지면서 한 오리의 실날 같은 힘도 의지할 수가 없었다. 비록 그의 몸에는 천하의 절예를 지니고 있으나, 이 순간에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바위 위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에 이미 아래로 향하는 자세를 돌렸던 것으로, 그로 인해 그가 하강하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어지럽히도록 놀라운 속도였다. 그리고 그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여세로 그의 발밑에서 부서져 허물어진 암석이 그의 머리 위를 날으며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운학은 긴장한 순간에도 그 많은 흙과 돌이 침사곡의 모래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바위덩이는 금시에 뒤틀리며 황사의 모래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것은 무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의 몸은 그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속에 빠져 들어갔다.
그때 운학은 문득 정신을 수습했다. 그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하여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온 몸의 진기를 모아 두 다리에 집중했다. 그의 발이 모래사장에 닿는 그 찰나적 순간에 그는 두 발을 힘껏 튕기었다. 생각건대 이 한 오리와 같은 공격을 이용하여 사곡(砂谷)에 빠지지 않고 몸을 일으킬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곳의 모래가 보통으로 볼 수 있는 토질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었지만, 반대로 이 사질(沙質)의 반력은 극히 미미하고, 게다가 그의 하강하는 속도가 컸던지라 그의 일식의 공력은 허사로 끝났다.
황사(黃沙)는 벌써 그의 발목을 삼키고 있다. 운학은 정신을 가다듬고 두 손으로 가면을 향하여 맹렬한 일장을 쳐 내렸다. 그것은 장풍의 반사력을 이용하여 솟구치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때 장풍은 침사곡의 모래를 어지럽게 날리고 사면에 큼직한 장인을 남긴다. 그러나 모래 밑의 황사는 마치 지하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장풍의 여세에도 불구하고 운학의 몸은 마치 밑에서 끌어 잡아당기는 듯한 압력으로 해서 오히려 한 자 정도 더 빠져 들어갔다.
그는 황급한 순간에 또 일장을 쳐 내렸다. 그러나 그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은 또 밑으로 한 자 정도 가라앉는다.
그때 운학에게도 거의 본능과도 같은 생존의 의식이 맹렬히 작용하면서, 그의 손은 쉬지 않고 장풍을 내리치는 동시에 몸의 진기를 운행시킨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쉬지 않고 황사 밑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 마리의 큰 호랑이가 진흙 밭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다른 맹수를 향해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천천히 하강한다. 그에 따라 그의 육신을 흡수하여 빨아들이는 힘도 커지며, 그에 비례하여 운학의 힘은 점점 빠지는 것이었다.
이때 운학은 마지막 수단으로서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선천기공을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온몸에 쌓여 있던 강기(罡氣)는 그의 신변의 모래알을 물리칠 수 있었음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빠져들어 가는 그 다리의 힘은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과연 대자연의 힘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도 없는 것이며, 다만 인간은 자연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할 수가 있을 뿐, 억제할 수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운학은 온 공력을 쌍장에 집중하며 사면(沙面)을 향하여 다시 맹렬한 기세로 내리친다.
쌍장을 동시에 내리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로서, 그 반작용의 힘을 역용하는 순간에 그는 반드시 숨 쉬는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기회에 들어간 그 미비한 바람을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운학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대자연의 힘은 신비하고 무궁하여 알아낼 수가 없다. 침사곡의 귀신 우는 소리와도 같은 회오리 바람소리는 운학이 방금 전개한 선천기공의 강기를 맞아 더욱 사나워지고, 더욱 거칠게 휘몰아친다.
운학의 방금 친 일격은 실로 그의 생사와 성패를 가름한 초식이었다.
하늘은 이제 운가(鄆家) 가문의 최후의 영웅을 이렇듯 신비한 침사곡의 황사 밑으로 매장하려는 것인지…… ?
운학의 머리는 허공에서 휘날리고 두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모래 밖으로 노출된 그의 웃옷은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에 도전하는 최대 최후의 극단적인 도전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 침사곡은 돌연히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침사곡의 귀신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회오리바람은 운학이 전개한 특유한 선천기공의 강풍의 고동을 받아 한차례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운학의 천근의 쇠뭉치와도 같은 장력의 일격은 황사를 소리 없이 날려 허공에 부수어 버린 것이다.
운학은 순간 머리카락 같은 찰나를 포착하여 한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침사곡은 다시 원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사면 위 허공에는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이 말리고 있으니 사곡 위에서 보면 모래 바람이 말리고 있는 광경이 역력히 보이나 사면에서는 잠시라도 평정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유구한 세월 동안 이렇듯 반복되는 신비스런 현상을 침사곡은 되풀이하여 반추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학이 절벽에서 떨어져서 침사곡 황사 속으로 빠져 들어간 순간은 불과 일,이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덧 밤이 깊어 간다. 침사곡 모래바닥 여기저기에 우뚝 널려 선 작은 봉우리에는 교교한 달빛이 비치었다. 운학이 떨어진 높은 벼랑의 기암괴석은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지형의 높고 낮음과 또 다른 여러 종류의 환경과 성질로 인하여 사면(沙面)은 비록 평온했지만 그러나 이 무수한 황사의 지하에는 무섭게 꿈틀거리는 엄청난 사류(沙流)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것은 비유하여, 잔잔한 파도가 보이는 해상과는 달리 바다 속은 유형, 무형의 조수와 해류가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래는 고체(固體)이기 때문에 물의 조수(潮水)와는 다르다. 하층의 사류가 흘러 지나가면 상층에 있는 모래는 어느 정도 그 사류에 끌려가는 동시에 부근에 있는 모래는 저절로 빈 곳을 메꾸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렇게 쉬지 않는 유동(遊動)이 반복됨으로써 전기와 같은 무서운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유사(流砂)가 있음으로 해서 반드시 끝이 없는 황사가 부단히 유입됨은 필지의 사실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고래로 수천 년 동안 유구한 세월 속에서 곡중(谷中)에 있는 황사는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기타의 지방에는 황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렇게 장기적인 조정을 지나는 동안에 사류(沙流)는 정지할 것이며 유사(流砂)의 흐름도 반드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를테면 이 현상을 바다의 조수가 유동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니, 만일 여기에 한 잔의 물을 가지고 계속해서 흔든다면 물은 반드시 출렁거릴 것이다. 그러나 이 출렁거리는 상태는 오래 가지 않으며, 손을 정지한 뒤에는 다시 고요한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만일 이 한 잔의 물을 계속 출렁이게 하려면 우리는 다른 물을 떠다가 잔에 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곳에서 같은 분량의 수량(水量)을 빼어야만이 이 수류를 끊이지 않고 반복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으로 해서 침사곡의 유사는 천년 동안 변함없이 면모를 유지한다――침사곡은 다만 한 거대한 사류가 외면상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부연하여 말하건대, 새로운 모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 침사곡으로 흘러 들어오고 또한 같은 양의 황사가 밖으로 흘러 나가니 이 유입과 유출의 과정이 끊이지 않고 반복하는 가운데, 유구한 세월 동안 침사곡은 그 면목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황사는 흐른다. 침사곡의 저 밑바닥에서――, 마치 지하수와 같이…… .
그러나 지극히 다행한 일은 운학이 침잠하여 흐르는 황사의 궤도는 극히 상층에 위치한 것으로, 한 차례 길게 호흡을 들여 마신 공기는 그의 체내에서 아직도 유동하며, 그의 무서운 장력은 계속해서 황사를 쳐 내고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 빠진 운학의 몸은 서서히 유사를 따라 주위에 널린 산골짜기로 흘러 내려간다. 결국 하늘의 신조(神助)라고나 할까, 이 황사의 소용돌이는 상층에 위치한 채로 더 빠지지는 않고 흐르기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할 것이리라.
세상 사람들이 자연계의 사물을 가리켜 무척 신비하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음을 탄식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지식은 진보하고, 따라서 자연의 신비는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이 현상은 바로 과학의 진보와 함께, 인간이 신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이 이야기와 관계가 없으므로 계속하지 않으려한다.
앞에서 수류(水流)와 사류(沙流)의 관계를 이야기한 바 있으나, 이제는 그 성질을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원래 모래의 성질은 물과 다르다. 물은 열을 받고 배출하는 시간의 경과가 원만하다. 그러나 모래는 이와 달리 열기를 빨아들이고 방출하는 과정이 대단히 빠른 것이다. 그래서 낮의 사막은 무척 뜨겁고 또한 밤에는 무척 차가와지고 쌀쌀한 것이다.
침사곡의 상층의 황사도 역시 낮에는 뜨겁게 뒤끓고 밤에는 곧 차가와진다.
그러나 이 황사 밑의 모래들은 상층의 모래와는 달리 절연되어 있는 까닭에 낮과 밤의 온도의 차가 별로 없다.
그리고 또한 침사곡이 사람을 삼킨 것도 역시 이 온도는 아닌 것이며, 오직 압력에 의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압력은 사람의 몸을 압박하고 혈액순환을 급하게 상승시켜 귀중한 기체를 폐부에서 토출(吐出)시키는 그와 동시에 체내에서 혈관은 파괴되고, 그때 사람은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운학은 소용돌이 속에서 쌍장을 계속 쳐 내며 죽음과의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이 가 닿는 곳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절망은 더 가까이 다가온 듯 회생의 희망은 더욱 멀어진다.
그러나 한 무공을 지닌 사람은 예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다시 찾을 수 없는 찰나적 순간에 맹렬히 귀중한 공기를 들여 마셨다.
이러한 와중인지라 아주 먼지같이 자디잔 모래알이 그의 입과 코에 틀어 박혀서 그 간지러움으로 웃음이 나올 듯도 싶지만, 그러나 만약 자기 자신이 살아서 이 침사곡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바로 자기 이십여 년의 마지막 한 순간이 될 것을 생각하면 어찌 웃음을 토해 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제 황사는 그의 가슴에까지 차 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달을 본다.
그리고 비로소 이 세계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운가 가문의 기구한 아이야! 이렇게 침사곡에서 죽어 갈 것이냐?』
그는 먼저 자기 가문의 원수를 생각하고, 그리고 은사 청목도장과 그리고 그에 연루된 전진파의 원한을 생각하였다.
이렇듯 인간이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어서는 은혜보다는 자기 신변의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 어찌 이로 말미암아 운학 그 인간을 원망하랴! 인간이란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으레 자기의 신변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다.
운학은 반드시 살아남을 희망은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평범하게 죽을 수는 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리라 결심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죽음과의 투쟁으로 오는 괴로움을 더 견디어 보리라. 어찌 죽음에 임하여 비굴할 수 있으랴
――아, 사문의 원한이여! 삼제 하마(何摩)의 죽음이여! 그리고 요원(姚畹)…… 사여명(查汝明)…… !
이리하여 그는 더욱 이를 악물고 싸웠다.
운학은 그의 전진파가 천하에 호령하는 그 무서운 선천기공을 운행시킨다.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질 때부터 쉬지 않고 전개한 것이다.
결론으로 말하면, 그의 몸이 완전히 황사 속에 매몰되면서도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완전히 이 선천기공의 덕분이다.
그리하여 몸은 황사와의 직접적인 접촉과 압력을 받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을 끌어당기듯, 가라앉는 기세는 점점 빠르다.
문득 생각하기에 그는 자신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황사가 위로 솟구쳐 올라온다는 착각에 빠친다.
이제 운학의 몸은 암흑 속에서 천 길 만 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
순간순간에 짙어지는 불안! 마음의 평정은 차츰 빛을 잃는다. 아마도 이대로 계속 가라앉는다면 그는 이제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으리라!
죽음이라는 무서운 두 글자는 이미 글자에서 피가 흐르듯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운학은 계속 손으로 장풍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사방으로 꽉 메워진 황사는 불가항력(不可抗力)의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이렇게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누런 모래는 바로 자기의 육신을 장사 지내주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이제 그로 하여금 묵연한 태도로서 최후의 안식처로 장송해 주는 것 같았다.
이 번민과 충동과 초조감이 그의 진력을 더욱 쇠퇴시키며 자신의 최후의 지옥 구덩이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운학은 알고 있었다.
운학은 심신을 안정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사지를 천천히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는 몸을 가벼이 들어 보았다, 이렇게 몸을 지탱하려는 장기적인 타산을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운학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혀 왔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잡념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의 몸이 선천기공을 운행하고 있다고 손치더라도 이렇듯 죽음과 같은 암흑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가 있을 것인가?
사류(沙流)의 방향은 차츰 변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의 머리와 발은 비스듬히 사선을 긋듯 기울어지고 빠르게 앞으로 흐른다.
머리는 앞에 위치하고 다리는 뒤로 둔 채, 그는 거의 엎어지는 자세를 하며 눈앞에 경물(景物)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오직 암흑이요, 귀에 들리는 것은 모래와 모래가 마찰하는 소리뿐이다, 마치 우물 속에 들어앉은 듯 머리위로 둥그렇게 하늘이 보일 뿐이다.
그는 하나의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도 이와 무엇이 크게 다를 바 있으랴! 결국 거기에다 조금 더 장식을 했을 뿐이지……
운학은 차츰 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폐부를 누르는 압력, 물속에서 호흡을 하지 않고 견디는 그런 상태이다.
그의 뇌리에는 또 다시 번민과 초조가 일기 시작한다.
그는 절망한다.
그때 운학은 문득 그의 사부 청목도장을 생각했다. 아, 이 순간에 사부가 곁에 있었더라면, 사부는 그의 머리를 애무해 주고 인자한 아버지처럼 그를 안아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사부는 평상시의 사부는 아니었다. 그는 사부와 자기를 비교해 본다. 그러자 사부가 자신을 향해 고함을 쳐 오는 듯 했다.
『운학아! 이놈, 이사부는 팔대주맥을 막히고도 십 년을 살아 왔는데, 너는 지금 단지 하나의 사류(沙流)에 빠져 있으면서 어찌 절망하려고 하느냐!』
운학은 문득 정신을 수습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이 신비한 내력은 바로 청목도장의 인격의 교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교육이었다.
그때 운학은 그의 눈앞에 모래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하나의 물체를 느끼었다. 그는 기뻤다. 그것을 돌이라고 가정할 때 그는 희망이 샘솟았으며 그것을 이용하여 흘러 내려가는 자기 육신을 가눌 수가 있는 것이다.
사류는 극적인 신비성을 띠고 있다. 비록 같은 모래지만 그러나 사류의 양쪽 사층은 마치 개천가에 물기가 흘러들 듯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 정지한 모래들은 천년동안 계속 상층의 압력을 받았기 때문에 부서지고 뭉치고 하여 토질로 변해 있었다. 따라서 사류의 영향은 받지 않는 것이다.
운학은 사류를 따라 앞으로 흘러 나가며 그 토질을 지나친다. 그러나 대뇌의 반사작용으로 해서 그의 왼손이 부지중에 그 물체로 뻗어갔다. 이렇게 흘러가는 사이에 손을 뻗쳐 물건을 잡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운학은 잡았다. 전진파의 제 삼십삼대 수제자의 이름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그러나 이 어인 일인가?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분명 한 사람의 팔뚝인 것이다.
그 순간 그는 크게 놀랬다. 그러나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 팔을 단단히 움켜잡은 채 사류를 따라 계속 흘러내려 갔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한 오리 지푸라기를 잡았다고나 할까?
그 팔뚝이 사층에서 움직이자 그쪽의 사층은 소리 없이 허물어졌다. 말하자면 대자연의 천여 년 동안의 신비가 운학의 손으로 변혁된 것이라고나 할까.
팔뚝은 동시에 운학의 몸과 나란히 사류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뒤이어 사층은 크게 도태하기 시작한다, 사층(沙層)은 계속 무너지고 사류는 마치 황하의 물결처럼 세차게 흘러갔다. 또 다시 사층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이 사층 밑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침사곡의 표면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니 이건 마치 세상의 요지경 속과도 같은 것이다.
운학의 사곡(砂谷)으로 빠져 들어간 동안은 불과 종소리가 끝나지 않은 짧은 사이의 일이었지만, 그러나 천년을 내려오던 변함없는 침사곡은 이미 이때부터 커다란 변이를 맞이했던 것이다.
운학은 왼쪽 손을 놓았다, 시체 같은 이 사람의 팔도 운학과 같은 사류에 들어왔으므로 잡고 있으나 놓으나 두 사물이 어느 편이 더 빠르고 더 느림이 없었다, 마치 오래 사귄 친구처럼 그들은 나란히 사류를 따라 흘러갔다.
그때 갑자기 사류의 속도가 급격히 빨리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해서 운학은 하마터면 호흡을 토하고 먹은 것을 토해낼 뻔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앞에 흐르는 사류가 아주 좁고 깊은 곳으로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치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流砂)의 양은 변하지 않으므로 좁은 협곡에 이르면 무척 빨라지는 것이다.
운학은 물가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현상에서 이러한 경험을 얻은 바 있다.
즉 상식의 내력과 원천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전시대 사람들의 경험을 독서로는 파악하는 방법이 있으니, 물론 이 방면에서 그는 요원이나 다른 사람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둘째의 문제로 말하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쌓은 경험으로서 터득하여 알아내는 방법이니, 이 방면에서는 운학이 다른 사람에 앞섬을 물론이다, 그리고 이 경험이야말로 바로 운학 그 사람의 특징인 것이다.
총명한 운학의 두뇌는 급히 움직였다.
지금 흐르는 사류의 지층은 짙은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상층으로 휘말려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류를 극복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며 또한 주위는 막대한 압력을 지닌 암벽을 양쪽을 싸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사류의 방향과 속도를 어림하여 보고 자기 자신을 이미 침사곡을 벗어나서 여기저기 솟은 산기슭에 이른 것을 알았다.
운학은 자랄 때 물가에서 놀면서 홀로 잠수를 즐긴 일이 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모래의 와중에서 시험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모래는 물과 다르다, 물속에서는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모래 속에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육신은 뼈 없는 고깃자루 모양 모래 속에서 요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유사는 조용히 속도가 늦어진다.
아마도 운학의 몸은 좁은 바위 사이에 이른 듯 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려 해도 주위는 다만 거대한 모래의 동굴 속같이 캄캄하기만 하다.
운학의 대뇌는 조용히 숙고하고 있다. 이 사류의 양쪽에 있는 것은 분명 암석일 것이다. 갑자기 희망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암석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사류의 속도가 급작스러이 빨라지며 육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귓볼을 스치고 가는 것은 몽롱한 바람의 기류와 같은 것이며, 여기에 지하속의 정숙은 더욱 사람을 떨리게 하였다.
만약 그에게 선천기공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몇만 도나 되는 압력으로 인하여 그의 목숨은 이미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는 비록 숨을 내쉬지는 않겠지만―― 경험이 높고 심장이 튼튼한 사람이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운학은 이 상태에서 급격하게 압박해 오는 압력을 이겨낼 수가 없다. 압력을 폐부를 누르고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는 하마터면 몸속에 있는 전부를 토해낼 뻔했다.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에 만일 그가 숨을 토해내 버린다면 결국 운학이란 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말살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부르짖는다.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생(生)의 의욕이 용솟음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도도히 흐르는 사류는 냉정하다. 그까짓 지상에 있는 무수한 인간 가운데 그 하나를 삼킨다 해서 무엇이 그리 대수로울 것이냐는 듯이――
실로 하늘은 뜻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하늘의 뜻으로 지배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그나마 용기가 있고 지혜가 있다. 그리하여 운명과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용기와 지혜는 결국,
『인간은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지금 운학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이 운명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사류를 따라 흐르며 인내에 인내를 거듭 더하였다.
그때 갑자기 사류는 빠른 속도로 그의 육신을 끌며 방향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운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귓가에 흐르는 바람소리 같은 것――. 오! 이렇듯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악전고투한 인간에게 드디어 하늘은 희망을 던져 주려는 것인가?
운학은 손을 휘저어 보았다.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돌연 사류는 지하로 흘러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여세로 그 누군가가 그의 옷을 잡아당기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 운학의 허우적거리던 그 어떤 단단한 물체에 닿았다. 순간 그는 그의 모든 공력을 모아 두 손으로 그 물체를 잡았다. 그것은 딱딱하고 찬 바윗돌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커다란 고통을 받았다. 물론 다른 무림의 고수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전 공력을 집중하여 바위에 부딪쳐가는 순간 그는 손끝이 잘려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그의 몸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인 것이다. 이미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워 온 몸…… . 어찌 이 고통을 참지 못하랴! 이제 그의 몸은 죽음 사람의 그것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오랫동안 그는 그 바위 돌을 잡은 채 사류의 흐름을 견디어 내었다, 바위 겉면 여기저기 돌출한 삐죽삐죽한 돌은 그의 전 신경을 찔러 작열해 버릴 것만 같다.
차츰 의식이 몽롱해졌다. 그의 눈은 희미하게 구른다. 그러나 그러한 시선에도 삐죽삐죽 돌출한 바위가 눈에 보였다. 그는 다시 왼쪽 손으로 그 돌출부를 잡으면서 최후의 안간힘을 들여서 사류를 벗어났다.
오랫동안 수중에 갇혀 있던 용(龍)이 대해(大海)로 나왔을 때의 그 희열을 생각하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이제 그의 발은 사류와 몇 치가량 격리되었으며 그 밑으로 사류는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흘러 내려갔다. 그 모양은 사층이 일시에 침식해 내려가는 것과 흡사했다.
그는 두발을 앞으로 당기며 급히 몸을 솟구쳤다. 그러나 공중에서 몸의 균형을 잘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다시 밑으로 하강했다. 그는 급히 손을 뻗쳐 바위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발은 벌써 사류에 닿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의 발이 닿는 곳이 모래가 아니라 물렁물렁한 한 물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다시 한 번 발을 튕겨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가 밟은 물체는 바로 사람의 몸뚱이였다.
그는 비로소 정신을 수습하고 생각해 보니, 그것은 얼마 전에 모래 속에서 손을 잡고 같이 흘러 내려온 그 죽은 시체임이 분명하였다.
자기 자신은 촉망 중에 모두 잊고 있었던 일로서, 이제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체로 해서 큰 힘을 빌린 셈이 되었다, 운학은 그것이 비록 죽은 시체지만 엄숙하고 죄송한 감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비록 허공인 듯싶은 이곳에 달도 별도 없는 암흑이 머리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의 호흡도 아닌 침잠한 듯한 차디찬 공기가 그의 몸을 떨리게 했다. 흡사 마귀의 동굴 속에 밀려들어온 것과도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의 몸을 의지했던 바위 덩어리는 원래 하나의 커다랗고 기이하게 생긴 둥근 돌판이니 이를테면 둥근 탁자와도 같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들쑥날쑥 패이고 돋아난 굴곡을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둥근 들판의 중앙부에는 하나의 굵은 석주(石柱)가 솟아 있었으니 그 높이를 측량하여 알아 낼 수가 없다.
운학은 몸을 솟구쳐 그 석주에 매달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다시 두발을 뻗히며 석판 위에 내려섰다.
그러나 그때 그 오른쪽 발이 내려치는 찰나에 무엇인가 찢어져 나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발에 걸친 굵고 두꺼운 신발이 산산이 찢어져 나갔다. 그때 석면에 부딪친 발바닥은 돌의 찬 기운을 가득히 느끼며, 하강하는 순간의 바람은 뼈가 시리도록 찬 기운이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왼발이 석판에 닿자마자 동시에 튕겨내며 다시 몸을 솟구쳤다.
그의 동작은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러나 그의 왼쪽 발이 석판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에 신고 있던 신발의 밑창은 다시 찢어져 나갔다.
이상한 일은 그 석판이나 석주가 도저히 믿을 수 없으리만큼 끈적끈적하고 미끄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발붙일 곳이 아니었다. 흡사 사람들이 모래로 만든 얇은 종이를 석벽에다 붙여 놓은 것과 방불했다.
운학은 허공에 몸을 솟구친 채 가볍게 장검을 빼어 석주의 한 곳을 향해 찔러갔다. 이제 미끄러워 발을 붙일 수 없던 어려운 문제는 해결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실로 오랫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었으며, 또 오랫동안 악전고투 속에서 하삼제(何三弟)의 불행한 죽음의 소문까지 겹쳐 실로 그가 받은 정신적인 타격을 말할 수도 없이 컸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진기가 상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이 순간에도 유효적절하게 일검을 구사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도 누구의 눈에도 보일 수 있으리만큼 하나의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며,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그의 장검은 석벽에 못을 박듯이 꽂히었다.
운학은 석벽에 칼이 꽂히는 순간에 문득 기이한 충동을 손끝에 받았다, 그렇게도 단단하게 보이던 석주였건만 그렇게도 쉽사리 검이 꽂힐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석주의 가운데는 텅텅 빈 공간이었으며 그 공간으로 이르는 돌기둥의 두께도 불과 사람의 손가락 정도의 두께 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운학은 저윽이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또 다시 한 번 놀랬다. 은연중에 이 돌기둥에 자기보다 먼저 매어달려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르고 기절할 뻔했다.
운학은 다시 눈을 비비며 희미한 어둠 속을 찬찬히 살핀다, 과연 사람인가? 그러나 틀림없는 사람의 형체다. 그러나 석주에 한 손을 긁어 잡고 매어달려 있는 모습은 조금도 움직임이 없다. 괴이한 일이었다.
운학은 석주에 꽂힌 장검을 단단히 잡은 다음 오른손을 들어 다시 석벽을 찔러갔다. 그와 동시에 그는 문득 몸을 흠칫 하였다, 그의 시선은 의아스럽게 아래로 쏠렸다. 무엇인가 자기 발을 물어뜯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무엇인가?
원래 석벽에는 처처에 무슨 파충류와도 같은 붉고 은빛 나는 벌레가 있었다, 그 색깔의 기묘함은 마치 석벽의 빛깔과 흡사했으며 등골은 딱지처럼 딱딱하였다.
운학은 혀를 내둘렀다. 생각지도 않게 이런 동굴 속에 무서운 벌레가 있을 줄이야!
동굴은 실제로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자기 손가락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 비록 운학은 그 공력으로써 사물을 밝게 비추어 볼 수는 있었으나 순간순간 몸을 솟구치고 나는 사이에 그 괴이한 벌레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건대 이 운(鄆)모라는 인간으로서는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머리 위에는 갑작스런 찬바람이 일어나며 무엇인가 분명히 끄집어 낼 수 없이 알 수 없는 물체가 날아다녔다.
운학은 그 기이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몸을 떨었다.
이때 그 바람을 따라 무엇인가 헝겊 같은 것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운학은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손에 담긴 진기를 잃을 뻔했다. 이렇듯 기이한 동굴 속에 어찌 이러한 물체가 있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는 하나의 커다란 석굴이며 보통 사람은 감히 얼씬도 못하겠거니와 설사 그들이 선다고 해도 이렇게 어두운 가운데서 어찌 자세를 바로 잡을 수가 있으랴! 설령 운학보다 더 무공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분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운학은 온 공력을 안공에 집중시켰다. 눈앞에 곧바로 보이는 것은 그가 사류를 따라 들어온 곳이며, 소용돌이치는 황사와 석벽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자 생각이 미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이렇듯 깊은 지하 동굴임에도 이상하게 습기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고 보니 유사가 습기를 흡수한 것이리라! 아늑하고 어두운 가운데에도 처지에 풀이 돋아난 흔적이 보였다.
운학은 계속 관찰해 보았다.
사류가 통과하는 길은 하나의 좁은 암석의 사잇길이며, 따라서 운학이 닿은 지점은 둥근 탁자 모양의 바위였다는 것은 마치 유사가 흘러 수직으로 통한 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현상과도 흡사히 그 근처에서는 심한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거의 찰나적인 순간에 탁자 모양의 바위에 부딪쳐, 그 기회에 천우신조(天佑神助)의 도움으로 그는 몸을 솟구쳐 사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운학으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한 것은 그 천하의 절기인 전진파의 선천기공이다. 만일 이 절기의 기예가 없었을 것이며, 또 이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서 더욱 살아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은 모두가 순식간에 그의 뇌리를 스쳐간 일들이다.
운학은 새삼스럽게 석벽에 매어달린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오직 자기보다 먼저 이 동굴 속에 와 있다는 사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늘 이때까지 이곳으로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은 다만 두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오직 자기 운학 한 사람을 제외하면 그 다른 한 사람은―― 오직 그의 사부 청목도장 뿐이라는 것이다.
운학은 황겁히 자기 얼굴에 날아온 헝겊과도 같은 물체를 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그의 예상은 산산조각으로 날아 빗나갔다.
왜냐하면 그 소맷자락으로 같은 헝겊은 그의 손에서 재를 만지는 듯한 감각으로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옷이 이토록 썩었다면 이 사람이 이 석벽에 매어달려 있는 시간은 십 년 이상이나 지났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선천기공의 강기가 몸을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십 년 동안을 견딜 수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보면 이 사람은 분명코 청목도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그는 몸을 움직여 다른 동작을 취하기 전에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몸을 움직여 다른 동작을 취하기 전에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았다.
십 년 전 새북대전에 참가했던 천하의 고수들은 그 이래로 한 사람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물론 그 중에는 절정의 무공을 쌓은 고수들이 수두룩했으니, 이를테면 운학의 사숙 청쟁우사(靑箏羽士)를 위시하여 무당파의 백석도인(白石道人), 곤륜파의 팔보간선(八步趕蟬) 남선(南璿), 그리고 아미파의 희진화상 등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오직 선천기공을 터득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을 뿐――. 그러나 지금 죽어 매달려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무림의 일대 신비이며 공지의 사실로 되어 있는 것이다. 선천기공을 터득한 청목도장만이 모든 승리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강호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학은 알고 있다. 사부 청목도장은 이 회전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따라서 여기서 십 년 동안이나 죽은 시체로 매달려 있는 것은 절대로 청목도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단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체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운학의 이지는 빠르게 작용했다.
그렇다! 틀림이 없는 것이다. 십여 년 동안 석실에서 냉장된 주인공은 반드시 강호무림에서 청목도장과 쌍벽을 이루는 고수라고 인정을 받은 무림제일의 고수, 그 사람이야말로 소림파의 천일대사(天一大師)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는가?
운학은 그의 낡아 떨어진 옷소매가 왼쪽 손에 잡히는 그때, 오른손으로 석벽에 꽂힌 보검을 천천히 빼내었다.
그의 몸은 다시 밑으로 떨어진다. 그는 재빨리 보검을 들어 그 칼끝으로 맹렬히 석벽을 후려쳤다. 그의 칼끝에서는 한 가닥 은빛 무지개가 일어나며 그의 몸은 다시 석 자 가량 위로 솟아올랐다.
그때 장검으로 후려친 석벽의 뚫린 구멍으로 부터는 갑자기 짙은 연기 같은 것이 무럭무럭 뿜겨져 나왔으며, 그 향기는 사람의 언어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향기로써 심금을 황홀하게 뒤얽혀 놓으니, 마치 운학의 몸은 허공으로 두둥실 날아올라 가는 도취 속에 빠져 버렸다.
운학은 이처럼 계속해서 일어나는 괴이한 이변에 그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몸서리쳐지는 이변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거니와 원래 석벽의 표면에는 무수한 파충류의 딱정벌레 같은 것이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자 운학의 칼끝으로 벌어진 틈새에서 야릇한 향기가 솟아나자 이제까지 게으르게 움직이던 딱정벌레들은 갑자기 활기를 얻은 듯이 예민한 반응을 일으키고 처절하고도 무서운 소리를 내며 마치 소맷자락의 헝겊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내며 칼끝에 생긴 그 틈바구니를 향해 맹렬히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흡사 온갖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불에 타서 죽으며 마지막으로 부르짖는 비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딱정벌레들이 저마다 그 향내 나는 구멍으로 모여 들었기 때문에 더 붙을 자리가 없었는지라 딱지 위에 벌레가 붙고 거기에 또 붙고 하여 더러는 떨어지는 놈, 엉키어 붙는 놈, 그 모양 실로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케 하였다. 그리고 떨어지는 놈마다 어김없이 뒤끓는 모래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었다.
원래 생물들이 재난을 피하려고 함은 누구나 더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점점 믿을 수 없이 신비한 모습으로 사태가 움직이니, 그것은 석주에서 새 나오는 연기를 맡은 벌레들은 저마다 어느 놈이라고 할 것 없이 돌연 물빛과 같은 나래를 펴며 붕붕거리는 무서운 음향을 내며 동굴 속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딱정벌레들은 잇달아 신속하게 꼬리를 물고 날은다. 꼭 무당굿을 보는 심정과도 같다. 처음 운학은 그 딱정벌레가 자기를 향하여 오는 것으로 알고 크게 놀랐었다. 그러나 그는 놀랬을 뿐 크게 두려워한 것은 아니니, 몸의 강기(罡氣)를 운동시킴으로써 그만한 재난은 능히 물리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딱정벌레가 온 몸에 달라붙는 가상을 머리에 그려 볼 때 그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수많은 딱정벌레들은 그를 전혀 안중에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았으며 한 바퀴씩 돌고난 벌레들은 다시 향기가 새 나오는 곳을 향해 꼬리를 물고 날아갔다. 벌레들의 동태를 보면 그 자리에서 떨어진 놈은 즉시 다시 일어나서 그 구멍으로 모여 들고 하는 것이 삽시간에 구멍이 틀어 막힐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 칼끝으로 벌어진 틈바구니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제는 향기가 전연 새 나오지 않았다. 벌레들의 움직임도 차츰 굼뜨게 보였다. 그러나 그 대신 석주의 벽에는 회색과 붉은 색으로 아롱진 야릇한 핏줄기 같은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일찍이 얻어 볼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니 운학은 지금 자기가 뜻밖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저 강호의 여러 무림 중에서 저마다 입을 모아 칭송하기를 아끼지 않았으며 또 저 복파보를 오랫동안 무던히도 시달리게 했던 바로 천년 용연향(龍延香)이었던 것이다.
그 내력을 여기에 간략하게 기술한다면 약 백여 년 전에 복파보의 노보주(老堡主) 축융신군(祝融神君) 요문선(姚文宣)은 가진 극력을 다 한 뒤에 팔대종사를 패퇴시키고 화염장(火焰掌)의 위력으로서 천년용연향(千年龍延香)의 비밀지도를 차지했으니, 요문선이 천하의 무림을 배반하고 이 비밀지도를 입수한 이유인즉, 이 용연향이야말로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순수한 양기(陽氣)를 보하는 귀중한 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작업자 주: 이 부분 전후의 번역은 엉터리인 듯하나 그대로 둡니다.)
그러나 요가 가문은 무공에 있어서는 강근한 빛과 기어이 승리를 차지하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으니 만큼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이 지도를 전연 볼 수가 없었으며, 또한 타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요가가문에서는 이렇듯 신비한 보물을 감추어 둘 곳을 물색한 결과 요가의 밀실을 택해 이총관 등으로 하여금 경비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하 무림에서 어찌 그것을 쉽사리 탐색해 낼 수 있었으랴!
지금 이렇듯 수많은 딱정벌레들은 이러한 용연향의 여기(餘氣) 속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럼으로 해서 누구든지 이곳에 접근하는 사람치고 이 이 벌레들의 맹렬한 습격을 아니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용연향의 원석이 이 동굴 속에 있는 한 딱정벌레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으며 유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번식을 더하여 이렇듯 무서운 무리로 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용연향에도 한 가지 괴이한 점이 있다. 이 향기는 원래 적당한 수량을 흡수함으로써 효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수량이 과잉될 경우는 모든 생물은 오래도록 수면상태에 빠지며 생명은 부지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여기 이 벌레들의 동태를 볼 때 이들은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향기로 인해 한꺼번에 향기의 틈바구니로 몰려들었으며 결과적으로는 그 가까운 근처의 벌레들이 자살함으로써 여기 수다한 자기들의 생명을 보존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며 오직 벌레들은 짙은 향기에 마비되어 희생도 돌아봄이 없이 향기가 나오는 곳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인간의 자기희생이라는 말과 흡사한 것이다. 때로 인간은 자기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예가 허다한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생물은 그 신비하고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에 그대로 복종하는 일밖에 아무런 도리도 없을 것이다.
음침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한 가닥 미풍이 흘러갔다. 유동하는 기체가 석벽에 부딪는 소리는 더욱 음산하고 무서운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이미 석벽에 생긴 틈바귀에는 딱정벌레가 더덕처럼 달라 붙어있어 향기는 다시 흘러나오지 않았으며 동굴 속의 공기는 다시 평상시와 다름없는 냉랭한 기운으로 돌아갔다.
운학은 이제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는 눈에다 다시 공력을 집중시키며 아까 자신이 보았던 인간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환각 속에 빠졌던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아심이 불현 듯 고개를 치민다.
석벽의 모양은 물론 어김없는 원추형이다. 따라서 바라보이는 시각은 대단히 적다. 따라서 원추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한 차례 음산한 바람이 일면서 원추의 반대편 쪽에서 다 낡아 떨어진 도포의 한 쪽 소맷자락이 바람을 타고 너울거렸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적인 형상이고 그 소맷자락은 즉시 석주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문득 운학은 경계심이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나 아닌지.
그러나 섣불리 이편에서 먼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보검을 빼지 않고 있으면서 신속하게 몸을 운신하면서 왼쪽 손 세 손가락으로 가벼운 지풍을 일으켜 푸…… 하는 소리와 함께 석벽 속을 찌름과 동시에 자신은 여섯 자 정도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동시에 석주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그의 시선을 끈 것은 둥글고 반반한 돌기둥 표면에 손가락만한 굵기로 그어 쓴 몇 개의 글씨였다. 자세히 보니 그 글은
『少林心法, 傳付全眞. 소림심법, 전부전진
소림파의 심법을 전진파에 전해준다.』
이상과 같은 글이었다.
그 글자의 자획마다 회색과 붉은 색의 빛나는 도금이 입혀진 듯 보이지만, 실은 자세히 바라보니 그 파여진 획마다 죽은 딱정벌레의 시체로 가득히 메꾸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쓴 사람은 이미 손가락으로 바위를 긁어 낼 수 있으며 그 손가락은 마치 한 자루의 필목과도 같이 자유자재로 다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운학은 마음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자기는 아직 이렇듯 심후한 손가락의 공력은 아직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그로 하여금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 듯 했다. 그렇다. 이 글을 쓴 그 무공이야말로 천일대사 바로 그 사람의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엄청난 조예, 그리고 그 심후한 무공! 그것은 천일대사의 무공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여실히 반영해주는 것이다.
운학은 불과 경험한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온 힘을 다 모아서 석주를 쳐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받는 고통으로 어림하여 이 돌기둥의 돌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가를 알았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돌파는 그 성질에 있어서부터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천일대사는 허공에 떠 있은 채로 이 여덟 글자를 쓴 것이다. 비록 신(神)이라도 그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리라!
운학은 이 일대종사의 유언과도 같은 일필휘지 앞에서 잠시 동안 묵연히 서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었다.
『애당초 사부님도 당시의 대회전에 참석 했더라면 그 승부는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리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무학의 삼심(三深)은 참으로 넓은 바다와 같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이 커다란 여덟 자의 글자는 그의 이제까지의 추측을 완전히 적중시켜 주었다. 이 여덟 자의 글자 중 가장 끝자인 진(眞)자의 마지막 획수에 매달려 수십 년 동안 말라비틀어진 시신은 틀림없이 무림에서 무성(武聖)과도 같이 추앙을 받던 천일대사 그 사람이었다.
이때 천일대사의 시체는 운학을 등지고 있었으며 그 해골과도 같은 손가락은 아직도 석벽 속에 끼인 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머지 왼쪽 손을 그의 가슴 앞에 있으며 다 썩어 떨어진 도포자락은 가끔 불어대는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었다.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십 년 전에 있었던 새북대전이 청목도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줄로 알고 있지만 운학은 이미 그의 사부와는 아무 관계도 없음을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듯 필승을 다짐한 천일대사의 유해가 이 침사곡의 유택(幽宅)에 장신한 것을 어찌 알 수가 있었으랴!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결국 그 대전에서 승리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무림 각파에서는 이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제히 이 침사곡의 대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공포했던 바 있다. 그 이름을 보면 그들은 대부분 각파의 장문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포한 자료를 보건대 중인의 주목은 끄는 것은 당시 천일대사와 청목도장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청목은 대전에 참가하지 않았고 천일은 결국 이 절해(絶海)의 유택(幽宅)에서 잠들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승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당도하였다.
(어쩌면 천일대사도 남의 함정에 빠져 들어간 것이 아닌지 모른다. 흡사 나 운학이 당했던 것처럼…… )
그러나 이처럼 높은 공력과 예민한 기지를 가진 천일대사가 함정 속에 빠지다니…… . 운학은 설레설레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는 사류 가운데서 보았던 하나의 시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또 청목도장이 목도했다는 침사곡변의 괴인이 생각났다.
사부의 말에 의하면 그 괴인은 침사곡을 바라보며 무언인가 중얼거리고 있었느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 괴인의 태도는 마치 침사곡을 향하여 기도하는 듯,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고 한다.
예컨대, 원래 새북대전은 임시로 장소를 변경한 것으로 처음에는 침사곡과 그리 떨어지지 않았던 장소였으니, 그때 무슨 연유로 해서 장소를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건대 아마도 그 누가 제의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제의한 자가 필시 사전에 그 어떤 음모를 꾸며 놓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의 정세로 보아서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 대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일대장문의 고수들로서 누가 어떤 장소를 제의했건 자신들의 위신을 생각하여 그 어떤 반대를 수치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위신과 자만심의 결과로 사람들은 무리죽음을 당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명명백백하게 단정할 수 있는 사실이 꼭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이 대전을 싸고 도는 그 어떤 음모가 사전에 없었다면 어찌 최후의 승리자가 없다는 것인가?
천일대사를 들어 말하더라도 그는 무사히 운학과 같은 경로로 사류를 극복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가 생명을 버린 것은 이 석실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당시 공력조차도 조금도 손상치 않았으니 그것은 돌기둥에 새겨진 여덟 개의 글씨가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이제 가능한 추리를 종합하면 천일은 이곳에서 죽었으나 그 원인은 그 어떤 독약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억측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림 고수들의 대전에서 어찌 비겁하게 독약을 사용하랴!
운학의 머리는 점점 엉클어지고 이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천하에서 이 새북대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밖에는 없는 듯싶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의 머릿속은 명주실이 뒤얽히듯이 엉클어지고 마침내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속 저 밑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비록 정확한 해답을 이 자리에서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쩐지 이제까지의 그의 추리는 틀림없이 적중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때로 인간의 지각은 인류의 역사를 변혁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공로와 과실은 후세의 시가들에 의하여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지금 눈앞의 시체는 운학과 불과 석자의 거리에 있다. 이 죽음과 삶――, 운학은 다시 한 번 인생의 무상함을 되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천하를 호령하고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 미명을 이루고 죽음의 마지막까지 저 선녀봉에 살며 산수를 읊고 신선과도 같은 일생을 보낸다 할지라도 결국 죽으면 이 천일대사와도 같이 한줌의 뼈가, 아니 한숨의 흙으로 돌아갈 것을. 인간은 결국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허무 그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무의미한 것이 인생임으로 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에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종족, 즉 훌륭한 자식들을 이 세상에 계속 번식시킴으로써 자신의 살아갔던 발자취를 남기려 하고 있으며, 대대로 대(代)를 잇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밖에 그리 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스스로의 영원히 사는 길을 명예와 무공을 후세에 전하려 함이다.
이리하여 천일은 그의 일대에서 끊어질 소림파의 심법이 실전되는 것을 염려하였던 것이며 앞에 보인 바 있는 ‘少林心法 傳付全眞(소림심법 전부전진)’ 이라는 여덟 글자를 죽음의 직전에서 이 세상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운학은 그때의 천일대사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비장한 모습으로 한 자 한 자 석벽에 일필휘지를 휘두르는 그 웅대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보이는 듯하였다.
그때 여기 수다한 점점의 딱정벌레들은 자기들의 좋은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뼈대만 앙상한 천일의 왼손에는 소림파 특유의 선천기공의 비적을 힘껏 쥐고 있으며 오른손 인지는 마지막 진(眞)자의 끝 자획에 깊이 찔려 있는 것이다.
가히 소림파의 무학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간직되고 있으며 천하 재보로 인정받는 것이니 실전될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결론으로 이 무서운 침사곡의 천연의 힘을 이기는 길은 다만 이 선천기공을 가진 사람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정의 무공을 터득한 것도 역시 천하에서는 꼭 두 파――소림파와 전진파다.
말하자면 전진파와 선천기공은 청목도장에서 운학에게로 전수된 것이며, 소림파의 선천기공은 천일대사에게서 저 복파보의 장천행(張天行) 바로 그 한 사람뿐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운학 그 자신으로서도 천일대사의 선천기공은 소림파의 여러 고수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군가 터득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림하고 있으나 실제로 소림파의 선천기공은 장대가(張大哥)의 것인 것이다.
그러나 천일대사는 알고 있었다. 저 장대가 장천행(張天行)은 복파보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운둔하여 지내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선천기공을 전수받은 전진파의 그 누가 자기의 비법을 발견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진파는 자고 이래로 바른 사람과 성인군자의 혈통으로 공인되고 있는 터인즉 소림파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로 소림심법을 배우지 않는다.
천일대사는 오랫동안 도를 깨우친 고승이며, 그리하여 이 백년 안에는 전진파와 서로 충돌하여 위명을 다투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간 새북대전에서도 천일은 청목이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그 대전에서 자기만이 최후의 승자로 남으리라는 것을 믿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음모에 빠져 죽었으니 그가 당초에 가졌던 기대는 산산이 무산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그가 최후에 기대했던 것은 소림파의 선천기공을 전진파에 전승시킴으로써 두 파로 하여금 그 어떤 유대관계를 가지게 희망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자기파의 비전되는 심법을 다른 남의 파에 전해 준다는 것은 보통의 무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천일대사의 위대한 관념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천하의 각파 무림은 결코 다른 파를 거꾸러뜨리려는 욕망으로 횡행하는 것은 아닐 듯싶다. 문제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원수가 되지만 그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것은 결국 사랑(愛)일 것이다.
운학은 얼마 전 저 마교의 오웅들의 협력을 얻어 기사회생(起死回生)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보면 천하 무림이 그토록 비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결전의 무대만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사람이란 사랑이라는 것과 미움이라는 것 중 꼭 그 한 가지만 소유하고 있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 어떤 사람의 심장에라도 이 두 가지 요소는 피가 되어 맥맥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경우 운학은 천일대사의 사후의 제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부와 그 도제(徒弟)의 예를 차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이 돌기둥에 매어달려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운학은 좌우 양손을 움직여 석주(石柱)를 찔러 잡으며 천일대사의 몸 가까이 다가갔다. 석실은 외계와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공기는 건조하고 온도는 더욱이 낮다. 천일대사의 몸은 냉장고 안에서 십 년을 지낸 셈이다.
운학은 경건한 몸짓으로 손을 뻗었다. 조심스럽게 천일의 왼손을 벌리고 그 손에서 비적(秘籍)을 빼내어 품속에 깊이 간직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조금도 기쁘지 않다. 응당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건만 그의 마음속은 이상스럽게 냉담해진다. 이렇듯 기이한 우연으로 만난 이 천일대사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응당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운학은 알고 있다. 무림 제일 고수들의 비참한 일생을―― 천일대사는 이 석실에서 딱정벌레의 밥이 되었고 또 사부 청목도장은 공력을 상실하고 유명무실하게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터득한 온갖 무공에 대해서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무공을 배운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명분은 바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자기 일신도 보존하지 못하는 처지로 어찌 천하를 위하랴!
여기에 몇 가지 고사(故事)가 있다.
즉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불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자기 자신부터 먼저 불에 타 죽는 법이다.
이 경우를 무림에다 비추어 볼 때, 무학을 배운 무인은 결국 무림에서 죽기 마련인 것이다. 왜냐하면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지 위해서 내일은 드잡이질의 겨룸을 가져야 하고 그 허명(虛名)을 위하여서는 그치지 않는 질투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다.
운학은 중얼거렸다.
『천하제일…… 천하제일…… 이 넉 자야말로 그 얼마나 많은 피값을 대신하고 있으며, 그 얼마나 많은 무림의 희생을 가져오는가?』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무림에 나오는 사람치고 천하제일의 위명을 탐내지 않은 자가 또 있으랴! 그리고 이것은 거의 진리와도 같은 이야기다. 운학은 자기 자신 이러한 욕망에 눈 멀어 있던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마치 깊은 안개가 서리서리 감도는 것 같았다. 이 천하제일의 단순한 넉 자로 인하여 자기 자신도 천일대사와 꼭 같은 최후를 마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랴! 그리하여 가치 없는 희생을 치룰 것이다.
천하제일―― 이 넉 자야말로 파멸의 대명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사나이라는 이름에는 한 가지 커더란 모순이 잠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최후가 비록 가치 없는 희생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한 번 세운 바 목적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조용하고 평범하게 숨어서 일생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운학의 흉중에 한 구석에서는 은연중에, 천일대사를 칭송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옛날 태사공(太史公)은 열사순명(烈士殉名)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래로부터 수많은 영웅호걸이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때 천일대사의 시신에서 소림파의 비적을 빼냈을 때 그 시신은 계속해서 흔들거렸으며, 처음에는 돌과 돌이 마찰하는 괴이한 음향이 들려왔다.
그러자 계속해서 대사의 글자 한 획 속에 박혀 있던 왼손 인지(人指)가 빠져나왔다. 운학이 놀라 소리 지를 사이도 없이 대사의 유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둥그런 석판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대사의 인지가 빠진 곳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얀 연기와 같은 향기의 농무가 뿜겨 나오고 있었다.
그때 대사의 몸에는 수억만 점의 딱정벌레가 모여 들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운학은 몸서리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아! 이 천하제일 고수의 시신으로서 벌레들의 뼈를 채워 주다니, 그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 운학은 불같은 분노가 솟구쳐 올라와서 수만 점의 벌레 떼에서 대사의 유해를 구해내려고 안간힘을 모았다. 그러나 때는 늦고 있다. 이 수많은 딱정벌레를 무슨 수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때 대사의 인지가 박혀 있던 틈바구니에서는 계속 천년향의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사의 유골에 달라붙어 있던 벌레들이 차츰 이 향기를 의식했음인지 붕붕거리며 요란한 날개 부딪는 소리가 들리며 향기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운학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수많은 벌레를 모조리 멸살시킬 수 있는 계책이 생긴 것이다.
벌레들은 몇 백 년 동안 그들이 해온 습관대로 그 구멍을 틀어막음으로써 자기 종족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고 있다. 구멍에는 무수하게 까만 점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있다. 그것들은 떨어지면 다시 동굴 속을 나르다가 향기를 찾아 날아가 달라붙는다.
그것은 아비규환의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전율하도록 무서운 공포의 도가니 속 같았다.
운학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 석주에 박혀있는 장검을 빼내었다. 동시에 그는 왼쪽 인지에 공력을 모으고 힘껏 돌기둥에 틀어 밀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상기 석주에 매달려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보검이 빠진 자리에서도 계속해서 향이 스며 나왔다. 이제야말로 이 괴이한 벌레들을 멸종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운학은 한 입의 진기를 들여마시고는 서서히 오른손의 보검을 반공에 휘두르는 동시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석벽을 향해 맹렬히 쳐 나갔다.
동시에 석벽은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크게 잘라져 나갔다. 운학의 눈에는 그 석주의 일부가 떨어져 내려가며 석판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
『쿵!……』
진동하는 소리가 동굴을 흔들고 그 쪼개어진 파편은 주위에 흐르는 사류 속에 빠져 금시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사백여 년 동안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비장된 이 동굴은 이제 운학의 일 검으로써 크게 변형을 맞은 셈이다.
떨어져 나가 뒹구는 바윗돌 밑에서 길게 퍼져 나온다. 사백 년 가까이 비장되었던 용연향은 이때 비로소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운학이 그 행운을 잡은 것이다.
이제 그 수다한 곤충들은 맹렬히 향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곤충들도 그들이 멸망할 때가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인지 필사적인 기세로 달려든다. 그러나 짙은 향기로 인하여 대부분은 떨어져 사류 속으로 떼 지어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도 소수의 벌레들은 구멍을 막으려고 최후의 사력을 다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운학의 일 검으로 잘라져 동강이가 난 구멍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짙은 향기는 계속해서 화통(火筒)처럼 뿜겨져 나오고 딱정벌레들은 동굴 안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다가 그대로 떨어져 죽어버렸다.
이제 석판과 석주에 붙어 생식하던 수만 점의 딱정벌레들은 모두가 종적을 감추어 완전히 멸종해 버리고 말았다.
살아서 움직이는 놈은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운학은 비로소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이제 그는 더 여기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아래로 몸을 내릴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 운학의 눈에는 새로운 일편의 문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먼저 본 少林心法 傳付全眞 이란 글 밑에 새겨진 것으로서 아까는 그곳에 천일대사의 몸이 가리어졌던 것이다.
운학은 눈에다 진기를 모아 가지고는 그 글자들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천일대사는 과연 무엇을 남겨 놓았던가?
운학은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그것은 미쳐 생각지도 않고 글씨의 맨 첫줄에 시선을 모았다.
『새북대전기(塞北大戰記)……』
아! 이것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궁금히 여기며 탐색하려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운학 단 사람 뿐이랴! 천하무림에서는 아직도 이 미궁에 싸인 침사곡의 대혈전에 대해서 암운에 싸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전전 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천일대사는 어떤 목적으로 이 새북의 일대 결전을 사실로서 남겨 놓고자 기도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것들은 운학의 머리에서 급급한 문제는 아니다. 그는 오늘에야말로 이 침사곡의 열쇠를 잡은 것이다.
『임술년(壬戌年). 칠월기방(七月旣望), 야반(夜半), 사경(四更), 노부(老父)……』
그는 줄줄이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필사적으로 눈을 크게 뜨려고 했다. 그러나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술 취한 듯 어지러워지기만 한다.
『이거 큰일 났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역시 육신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눈앞에 벌어지는 이번에 정신을 쏟고 있던 나머지 이 천년용연향(千年龍延香)의 향기를 너무나 많이 마셨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아무리 정신을 수습하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의 피로와 사류(沙流)에서의 그 피나는 싸움은 이제 그의 혼신의 기력을 다 쇠진하게 하여 더 이상 그를 지탱시키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운학은 스스로 감으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따라서 그의 몸은 석벽에서 미끄러 떨어지며 직선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무서운 횡사는 이때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석판을 사방에서 에워싸며 맹렬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동굴 안에는 일진의 바람이 휘몰아쳐 날리고 있었으며, 운학은 깊은 잠에 떨어진 채 석주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