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목사(인천하늘정원교회) 간증
‘목사 협박한 판사 급사’
1973년 부산 성안교회에 부임한 뒤 둘째 주일이 됐다.
그날 오전 10시 30분 주일예배를 알리는 찬송가 차임벨을 울렸다.
누군가 구둣발로 교회 문을 차고 소리치며 들어왔다.
“야, 네가 이 교회 목사냐. 오늘 내 손에 죽었다. 잠 좀 자며 쉬려고 했는데 수면방해를 해, 내가 누군지 알라.”
그는 내 넥타이를 꽉 잡과 밖으로 끌고 나갔다.
1km 이상 되는 거리의 파출소까지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이 목사 새끼 빨리 수갑 채워. 그리고 법원으로 빨리 넘겨 버려. 이놈은 내가 직접 콩밥을 먹일 놈이야.”
“판사님, 판사님”
경찰들이 쩔쩔맸다.
그때서야 나는 이 사람이 판사일줄 알았다.
나는 담대히 대항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께 빨리 전화 걸어주시오.”
경찰관에게 부탁했다.
그 순간 기세등등하던 판사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왜냐하면 당시 새마을운동과 국가재건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였다.
정부에서는 교회에서 새벽종소리를 울리는 것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경찰관에게 조목조목 따지면 담대히 말했다.
“이 사람이 교회에서 이곳까지 현장범을 잡은 것처럼 나를 개 끌듯이 끌고 왔소. 이 사람의 죄는 첫째 성직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다고 모욕했고, 둘째는 파출소에 와서 나를 법원으로 넘기라며 직권남용으로 협박했소. 과연 누가 잘못했는지 한 번 따져 봅시다.”
그러자 교회 다닌다는 한 경찰관이 사정했다.
“이제 판사님도 안 계십니다. 목사님 빨리 가셔서 예배를 인도하셔야죠.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오토바이로 교회까지 데려줬다.
나는 그 판사가 너무나 불쌍히 여겨져 영혼을 구원해달라고 매일 저녁 기도를 했다.
그런데 목요일 아침에 40대 그 젊은 판사가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전날 밤 술 취한 상태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체온이 떨어져 어이없이 죽었다고 한다.
그의 자녀인 5학년 아들과 3학년 딸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그의 아내도 학생 때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날 아이들과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울면서 애원했다.
“목사님, 어려우시겠지만 우리 남편 장례식을 맡아주세요.”
아주 무더운 여름이라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니 벌써 고약한 냄새가 났다.
하루 세 번씩 예배를 드렸다.
수많은 법관과 고위공무원들이 조문객으로 와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장래가 촉망되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왜 이리도 빨리 갔느냐”며 애통해했다.
알고 보니 그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졸업 전에 사법고시에 패스한 수재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판사였다.
나는 장례식을 전도 기회로 삼고 부활의 소망을 전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려도 죽으면 허무한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 판사와 법조인 여러분, 인간의 영생과 영벌을 정하시는 참된 심판자 되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셔서 천국 영생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대영 목사 저서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고백하는 무명 목회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관한 이야기다.
25살 때부터 목회를 시작한 그는 한 번도 본인이 한다고 생각했던 적 없는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의 목회지는 주로 시골 농어촌이었다. 따라서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 그의 삶의 주된 자리였다. 하나님은 주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혹은 쓰러져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게 하셨다. 그러다보니 남모르는 고난과 아픔과 수모를 숱하게 견뎌야 했었다. 개척을 하면서 있었던 성도들과의 갈등은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본인을 성장시키는 촉진제의 역할이 됐다.
또 치열하게 본인의 자리를 꿋꿋하게 버티고 지켜 나가는 동안 전도사, 목사, 선교사 같은 주의 종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많이 배출되게 되었고 이 열매들은 그의 기쁨이기도 하다.
지금 이대영 목사는 세상적으로 보면 자신은 초라해 보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지만, 사도바울처럼 분명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하고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음을 믿고 있다.
지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회였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에 지금 자기 손에 세상 것 하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고백하고 있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낮을 곳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킨 무명 목회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부요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