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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6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주의 복음을 자랑하리로다. 主の御名(福音)を唱える。
본문: 시편 20:1~9
시 20:1 우리의 임금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기도하실 때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응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야곱의 하나님께서 친히 임금님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성소에서 임금님을 도우시고, 시온에서 임금님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3 임금님께서 바치는 모든 제물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임금님께서 올리는 번제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셀라) 4 임금님의 소원대로, 주님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임금님의 계획대로, 주님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5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워 승리를 기뻐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임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6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름을 부으신 왕에게 승리를 주시고, 그 거룩한 하늘에서 왕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주님의 힘찬 오른손으로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7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8 대적들은 엎어지고 넘어지지만, 우리는 일어나서 꿋꿋이 섭니다. 9 주님, 우리의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2. 苦難の日に主があなたに答え/ヤコブの神の御名があなたを高く上げ 3. 聖所から助けを遣わし/シオンからあなたを支えてくださるように。4. あなたの供え物をことごとく心に留め/あなたのささげるいけにえを快く受け入れ〔セラ 5. あなたの心の願いをかなえ/あなたの計らいを実現させてくださるように。6. 我らがあなたの勝利に喜びの声をあげ/我らの神の御名によって/旗を掲げ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主が、あなたの求めるところを/すべて実現させてくださるように。7. 今、わたしは知った/主は油注がれた方に勝利を授け/聖なる天から彼に答えて/右の御手による救いの力を示されることを。8. 戦車を誇る者もあり、馬を誇る者もあるが/我らは、我らの神、主の御名を唱える。9. 彼らは力を失って倒れるが/我らは力に満ちて立ち上がる。10. 主よ、王に勝利を与え/呼び求める我らに答えてください。
지난 주일에는 선한목자교회 소속의 갈렙교회 시니어선교학교의 아웃리치팀의 헌신예배로 드렸습니다. 선교팀을 인솔하신 서경원 전도사님께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사랑에 대해서 주님께서 주신 마음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맞닥뜨리게 되면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하나 되는 놀라운 기적의 증인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증언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시편 20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환란과 절망 속에서 건져 주시는 주님의 권능과 손길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 하는데요. 이 시편은 문자적으로는 다윗 왕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왕이 어려움을 당할 때나 혹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리고 적들과 싸울 때 주님께서 승리와 형통함과 성공적인 삶을 허락하시길 간구하는 축복의 시편입니다. 표제는 승리를 위한 기도라고 적혀 있구요. 인도자, 혹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 왕에게 헌정하며 왕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찬양곡이라는 뜻이지요.
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곧 왕이라는 존재도 신도 아니고, 신을 대리하는 자도 아니라는 뜻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왕의 권세와 권력이라는 것도 실은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댈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권력자와 권세가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왕의 존재가 신(혹은 신의 대리인)처럼 여겨지는 나라와 지역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자기 나라의 왕과 같은 권력자에게 조금이라도 모욕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물건을 소홀히 하면 법적인 처벌을 하는 나라가 있지요.
특히나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더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일본은 천황을 신처럼 여기고, 천황을 위해서 죽는 것을 순교자의 영광으로 강요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서 일장기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천황과 관련된 날들(특히 생일...)을 모두 공휴일로 정하여 쉬고 있습니다.
우리 고국의 북녘에도 그런 우상숭배를 받는 지도자가 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최고존엄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사진을 가장 신성한 물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요. 만일 그것을 소홀히 하면 외국인도 법적인 처벌을 받을 정도입니다.
독재국가와 권력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단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은 대놓고 자신을 신이라고 말합니다.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한반도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이단관련 조사에 의하면 스스로를 신으로 참칭(僭称)하는 사람이 20여 명,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50여 명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을 받고, 추앙을 받는 권력자임에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신처럼 여겨질 법도 하지요. 심지어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는 이가 구세주로서 태어나신다는 예언이 있을 정도로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마 22:42)
그러나 다윗도 인간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종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보살핌이 아니면 이 땅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지요. 또한 다윗도 주님 앞에 범죄한 것을 회개하고 죄사함을 간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4)
신적인 왕으로서의 권력과 권세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왕으로서의 신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곧바로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죄사함을 간구하는 다윗의 고백과 모습이 바로 시편 51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 시편 20편도 다윗 왕을 위해서 백성들, 혹은 신하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찬송시가 지어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왕의 형통함과 승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인생의 형통과 승리,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허락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수제자로 인정받는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며 용기를 줍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베드로는 성도인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윗왕과 같은 기름부음을 받는 자와 같이 여기신다는 주님의 뜻을 명확하게 기록에 남겨 두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늘 다윗의 형통함과 승리, 그리고 인생의 성공을 위한 기도는... 그러므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반드시 고백하며 드려야 할 기도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오늘 시편 20편 1절~6절까지의 기도문을 기억하거나 기록해 놓고 기도하시길 추천합니다.
개역성경은 “너”를 축복하며 기도하는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구요. 새번역은 “임금님”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중보로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이의 이름을 넣어서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요. 꼭 그렇게 기도하며 중보로 자신의 주변인들을 위해서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주목하고 싶은 구절은 7, 8절입니다. 이 구절을 다시금 소리 내어 읽어 보겠습니다.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대적들은 엎어지고 넘어지지만, 우리는 일어나서 꿋꿋이 섭니다. (시 20:7,8)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형통함과 생존경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자신을 향해, 혹은 가족과 친구를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영웅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다못해 자기 삶의 주인도 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고,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며 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겸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주님의 은혜로 기도와 순종을 통해 얻어지고 쟁취한 결과물과 열매를 마치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얻은 자신의 것인 냥 자랑하고 자만합니다. 자신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오로지 자신만의 것으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은근히 그런 자세와 태도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의 7절(8절)에 나오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기마를 자랑합니다. 전차와 기마는 곧 인생의 성공과 승리의 결과물을 표현하는 단어인데요. 전차는 오늘날 전쟁터에서 사용되는 탱크를 말하고요. 기마는 권위를 상징하는 말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혹은 무엇인가를)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놓고 눈을 내리깔고 자기보다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드러내기를 갈망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인간의 추악한 죄의 본성에 교만이 살아있습니다.
작가인 C. S. 루이스는 교만을 설명할 때 “pride 프라이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것이 곧 교만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자존감을 드러내지 못하면 불행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지요.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자랑하는 인생의 가치는 곧 허무함이라는 말로 단정합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전 3:19)
하지만, ‘인생’이라는 시간의 연속은 허무할 지라도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의 가치는... 이미 주님 앞에서 숨을 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성경은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29,31)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 자체로 이미 존귀하고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것이 믿어지시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힘을 자랑하고, 명예를 자랑하고, 소유와 성공을, 출세한 모습을 자랑하더라도… 하나님께 형통함을 기도하는 자는 그 형통함의 결과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를 자신의 공로로 여기는 이는 기도의 결과와 응답, 열매를 보며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그 열매를 자랑합니다. 간증은 열매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임재하심을 자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조심스레 고백하는 것입니다.
간증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신뢰하거나, 의심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능력이 되고 실력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복음을 믿는 축복이기 때문이지요.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믿게 해 줍니다. 복음의 약속이 우리의 존재가치를 너무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타내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종교나 교리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전도를 듣는 이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계신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오해하지 말 것은 교회에 나오도록 설복시키거나, 혹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단체인지를 홍보 혹은 선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담담하게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합당하게 살기 원하는 이가 있다면 교회의 출석을 권유하는 것이지요. 복음을 들었으면 그에 합당한 일상과 일과를 위해서 서로 사랑하며, 협력하여 붙들어 주는 특수한 공동체와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생의 복음을 듣고 주님과 하나의 몸으로 살기로 결심한다면 반드시 이 땅에서의 실질적인 공간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의 교회라는 조직이 허용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이 땅의 교회가 곧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6:15, 12:27)
오늘 우리가 찬양과 감사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매일 성경과 기도로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축복과 소유의 풍요로움만을 얻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종교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에 대한 응답으로 당장 눈앞에 있는 하나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늘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삶이 곧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삶을 사는 증거의 전부도 아니지요.
저와 여러분은 현실의 삶에서 무엇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고 빌고 또 비는 정성스런 종교인의 자리에 머물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매일 확인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은혜의 수단으로 일상을 누리는 사명자들인 것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며, 구세주의 조상으로 여김을 받았던 다윗도 한낱 인간으로 하나님께 기도와 중보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나약한 인간이기에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셔서 각자 삶의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하고 감사하며 찬양할 것은 내게 주어진 승리와 성공, 성취의 열매가 아니라, 오직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인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일의 일상에서 주어지는 현실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지금도 나의 모든 시간에 임재하시며, 나의 모든 공간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예배하는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가치를 마음에 충만하게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이며, 실력이 출중한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언젠가 인생을 마치면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유한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모두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기도와 간구로 서로를 도와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성공과 승리와 소유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그 어떤 힘과 성공의 열매를 자랑해도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며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완전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멸망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 이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존재의 결론을 영생의 자리로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직 주님과의 동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세속의 가치가 자랑하고 즐거워하는 그 어떤 결과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참 축복의 승리를 소유한 떳떳하고 어엿한 일상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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