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2 (수) 5월 같지 않은 무더운 날씨에 성북동 길상사를 문화탐방하고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를
트레킹 하며 아름답고 거대한 북한산 자락도 조망하면서 백사실계곡을 거쳐 세검정까지 여유 있는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옹이" 멜로디를 들어며 성북동길을 따라서 북악스카이워크 숲길/ 산채로를~~~출발~~~
모처럼 길상사를 찾아서 인증샷후~~~
한성대입구역(10:00)에 반가이 만나서 출발해 문화와 역사가 있는 성북동로를 따라서 길거리의 예쁜 봄꽃으로
화단을 조성해서 화려한 꽃길을 걸어가면서~~~
이 성북동 길은 옛 보성고 학창시절 등하교하며 추억도 더듬어 보면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528평의 국유지이다.
조선시대에 왕비의 소임 중의 하나는 친잠례(親蠶禮)를 지내는 일이었다.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아 방적하는 일은 중요한 생산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여 각 도에 적지(適地)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는 한편, 한 곳 이상의 잠실(蠶室)을 지어 누에를 키우게 하였다.
성북동의 고급주택이 있는 거리를 따라서 오르면 갈상사의 연등이 담장에 걸려있고~~~
성북동 부촌길을 오르며~~~
길상사는 최고급 요정(요릿집)인 대원각(大苑閣)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원각 소유주 김영한은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고, 군사정권 시절 대형 요정인 대원각이 됐다.
법당에선 불교형식 대로 이성으로 떠나는 불공을 들이고 있고~~~
석가탄신일 기간이라 길상사찰 경내는 온톤 연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집
당시 시가로도 1,000억 원이 넘는 액수라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 스님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시주를 받은 것에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신나서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김영한의 마지막 원을 이루어준 것이라 어느 정도 참작할 만한 근거는 된다.
법정스님의 유품전시
김영한이 살던 집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고 절을 세워달라며 간청하였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전 길상사의 창건 법회에서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길상사는 "나는 백석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했던 김영한(김자야)은 1999년에 김영한이 사망하자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에는 법정 스님도 여기서 사망했다. 극락전에는 김영한의 영정이 있으며, 진영각에는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한다. 사망 이후, 딸 서모 씨가 조계종에 50억 원을 달라고 소송하여 승소했다.
김영한과 백석 시인
사랑에 관한 시를 찾아보면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우선 먼저 거론되는데, 이 시에서 나타샤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편이다. 일단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중 하나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나타샤로 누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냐는 것.
길상사 지장전은 염라대왕등 10인을 모시는 곳이다.
지장전 가는 길은 흰 연등으로 가득했습니다. 2층은 다원이고 3층은 법당으로 되어 있네요.
지장전 앞뜰에는 자그마한 연못에 연꽃이 심어지고 자그마한 탑이 잇네요
사당앞에는 시주 길상화(김영한) 공덕비가 있습니다.
거북이입에서 솟아 흘러내리는 폭포수와 계곡물소리가 들리는 계곡물이 흐르고~~~
길상사를 탐방하고 나와서 이젠 북악스커이워크로 갑시다~~~
북악스카이워크로 오르는 세계각국의 대사들이 살고있는 성북동 고급대형저택이 있는 거리를 지나면~~~
필란드대사관저를 지나면서~~~
한국 가구박물관을 지나며~~~스카이워크길로~~~
이정표대로 게단을 오르면 북악스카이워크도로를 다라서 울창하고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지고
서울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에서 성북구 종암동에 이르는 2차선 도로로, 1968년 1·21 사태를 계기로 수도 방어와 관광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오르막길을 올라서 구슬담을 좀 식히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데크길을 트레킹 하며~~~
울창한 숲을 끼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건강한 힐링의 시간이 이어지며~~~
오르며 시야에 아름답고 한양의 명산 북한산 자락이 나타나니 잠시 포토를 담고서~~~
오늘의 산님들 오늘 처럼 항상 건강을 지켜 오래오래 산뽀합시다!!!
곳곳에 벤취들이 있어 땀이나면 쉬어가는 여유잇는 휴식타임이라~~~
보현봉은 높이가 (714m)로서 우뚝솟아 그자태가 위용해 보이네요.산행은 릿지를 해야 오를 수 있^지요.
사통팔달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랍을 맞는 멋진 하늘마루 팔각정에서 목도 축이고~~~
문수봉은 높이(727m)로서 비봉능선의 정상봉우리 이지요.
또한 문수봉은 의상봉에서 시작되는 의상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로 높이는 해발 727m이다.
지난 2024년 2월 눈산행으로 갔던 추억의 포토를 담았습니다.
도로 정상부에는 북악산 팔각정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서울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북악스카이웨이의 출입시간을 정하고 드라이브 코스로만 개방해 팔각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가 1988년에 완전히 개방되면서 명소로 부상했다.
왼쪽에 족두리봉 ,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분수봉과 보현봉 이 펼쳐지고 형제봉은 그 앞쪽에 솟아있네요.
아래엔 평창동 고급집들이 자리하고~~~
북악팔각정에서 우정의 포토를~~~
뭐니뭐니해도 식사시간이면 기분이 짱이라~~~
모두들 수고했으니 정상주로 "우리의 건강과 우정을 위해서 부라보!!!"
백악산(북악산) 뒷자락에 북한산을 정면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백석동천”이라 불린다고 전하며,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석산’은 ‘백악산(북악산)’에서 착안된 것으로 풀이 된다.
부암동 백사실계곡에 있는 별서터와 연못 에서 잠시 앉아서 휴식하며 오늘의 산행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추사 김정희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문헌에서 찾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이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백사실계곡은 자연환경과 문화사적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자연생태 지역이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과 걸음을 막아서는 크고 작은 계곡의 정취가 아름답고 계곡에는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불교에대한 연구소이란 팻말이 있어 정원을 둘러보고~~~
시원한 게곡물이 흐르고 거대한 암반으로 거쳐 내려오면 원통사이란 사찰도 둘러보며~~~
계곡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징검다리를 건너서 원통사찰을 둘러봅시다.
아들만 둘 가진 김사장은 ㅎㅎㅎ 내가 젊었다면 달이나 하나 갖게 빌면서~~~ㅋㅋㅋ
어~허 나도 딸 한사람 갖게 빌면서~~~ㅋㅋㅋ
원통사는 주로 세상을 떠난 이성에 있는 사람들의 혼을 모시는 곳으로 토굴도 잇네요.
세검정 방향으로 하산길을 걸어면서~~~
세검정
상명대학교 입구에서 북악터널 쪽으로 5분 가량 오르면 냇가 큰 바위 위에 세워진 세검정이 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전에 거사 동지인 이귀(李貴) · 김류(金#29804;)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석파랑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 고종의 아버지로 한 시대를 누렸던 흥선대원군이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를 고스란히 옮겨와 지은 곳이다. 권세가의 아름다운 별장답게 석파랑의 대문을 들어서면 조선 말기 양식의 정원과 세 채의 고풍스러운 한옥이 눈앞에 펼쳐진다. 석파랑의 궁중 한식은 엄선된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으로 한층 더 정성의 기품을 더했으며, 또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만든 전통주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오늘 산행은 가벼운 성북동 길상사의 문화탐방과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를 걸어며 북한산자락의 멋진 풍경도
음미하면서 백석동천과 백사실계곡을 걸어며 문화탐방도 하는 산행을 마치고 경복구역에서 전철로 귀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