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는 역사가 있고 모임에도 역사가 있다.
모든 것은 시작의 뿌리, 즉 근본을 알아야 한다.
담수회 회원 으로서 담수회 창립 취지와 담수회 회명(會名)에 관해서
정확히 알아두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본다.
*담수회 창립총회
1963년 10월 10일 달성군 공산면 (현 대구 동구) 소재 달성徐氏 제실
(齊室)에서 담수회 창립총회가 거행 되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39명의 회원은 모두 지역 명망가요 자타가 인정하는
신사 유지들이었다.
이 총회에서 대표(會長)로는 李義澤 씨가 선출 되었다.
이 회장은 본관이 延安인 尙州 출신으로 그 선대는 남인(南人)의 영수
芹谷 李觀徵의 후예이다. 대구시내 종로에서 汎식품회사를 경영 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수시로 이 곳을 출입하면서 회장을 중심으로 회의 설립목적인
친목을 가일층 두텁게 하였다. 그래서 회원은 80여 명에 이르렀다.
*담수회 會名에 나타난 회의 성격
발기총회를 열고 회의 명칭을 '淡水會'로 할 것을 丁奎善 회원이 제의하니
한 사람도 이의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淡水는 '君子之交는 淡若水라'는 '莊子' 외편 山水章 소재의 어휘를 원용
(援用)한 것으로, 이야말로 창립 성원들에게는 안성맞춤의 호칭이었던 것이다.
좀더 살펴보면 孔子가 자상호에게 물으니 자상호가 말하기를,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감주와 같소.
그래서 군자는 담담하기 때문에 더욱 친하여지고, 소인은 달콤하기 대문에
쉬 끊어지는 것이오. 저 까닭없이 결합된 것은 까닭없이 헤어지는 법이오"
라고 하였다.
또 '禮記' 표기에는 "군자의 만남은 물과 같고 소인의 만남은 감주와 같다.
군자는 담담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소인은 달콤함으로써 무너진다"라는 구절
이 있다.
이와 같이 옛 경전의 명구(名句)를 會의 명칭으로 인용한 것은 이 모임을 통
하여 군자로서 갖춰야 할 인격을 수양하여 그 덕이 의표(儀表)에 드러나도록
다짐과 아울러 인격본유(人格本有)의 순수한 선성(善性)에 기초한 사람으로서
거기에는 어떠한 세속적 이익도 추구함이 없음을 단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교제가 아닌 순진담백한 교의(交誼)
를 이념으로 결성한 것이 창림총회의 이상이었음을 이해 할 수 있다.
*사단법인 설립 허가
담수회 사단법인 설립 추진은 李淳熙 회장(전 영남일보 사장) 재임기간인 1971년
7월 10일 이사회의 결의로 시작되었다.
그 후 琴容國 회장을 거쳐 許洽 회장 재임 기간인 1978년 6월 12일 법인 설립이 허가
되었고, 동 8월 8일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법인 설립허가서가 발부되었다.
*글쓴이 : 元山 李守萬 (담수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담수회보 편집장)
(*출처: 담수회50년사)
첫댓글 담수회 역사, 잘 봤습니다.
63년은 제가 중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담수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