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시대 상주문화(尙州文化)연구의 흐름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1. 머리말 2. 연구단체와 연구현황 3. 분야별 연구실적물 4. 결론 1. 머리말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활동은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89년 1월에 상주문화원은 향토사학자인 류시완.황영목.김자상 선생을 주축으로 를 설립하였고, 당시 상주농업전문대학의 교양학과 교수들이 가세하였다. 그리고 이 는 2000년에 로 개편되었다. 지역대학에서는 1990년에 2년제 ‘상주농업전문대학’이 4년제 ‘상주산업대학교’로 개편 되면서 학내에 를 설립하였으며, 이 두 기관에서 상주의 문화 역사에 대 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후 2007년에 상주박물관이 개관되면서 전문연구인력이 보강되어 연구의 범위도 확 대되고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2009년에 ‘상주대학교’가 ‘경북대학교’와 통합되면서 상주 에 있던 교양학부 교수들이 대구캠퍼스로 흡수되는 바람에 다시 전문연구인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향토사학자들의 활동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점이고, 상주박 물관의 학예사들이 적극적으로 상주의 역사와 문화의 전반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연구단체와 연구현황 현재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 , 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먼저 는 2009년까지 연구논문집 19권 발간하였고, 그 속 에 상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논문이 137편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는 2013년까지 연구논문집을 22권 발간하였 고, 그 속에 수록된 논문은 240편이었으며, 상주의 역사문화를 다룬 단행본을 31권 발간 하였다. 그리고 상주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 학술총서 10권과 문화총서 4권을 발간하였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3개 기관이 지금까지 발간한 역사문화총서 단행본은 모두 45권이고, 연구논문은 모두 410편이었다. 위의 3곳을 제외하고는 연구목적 사단법인체인 가 있는데 이 라는 전문지를 4회 발간하였고, ..에서도 간헐적으로 학술대회를 열고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상주의 역사와 문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하는 곳은 . . 이기 때문에 이 3곳과 연구목적 사단법인인를 중심으로 상주지방의 연구실적물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1) 경북대학교(전 상주대학교)의 상주문화연구소 는 1991년에 국립 상주산업대학교에서 대학 부설 연구기관으로 설립하 였으며, 이 해에「尙州文化硏究」제1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2002년 국립 상주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기까지의 11년 동안,「尙州文化硏究」를 11권 발간하였으며, 여기에 실린 연구논문은 77편이었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08년 국립 경북대학교와 통합하기까지의 7년 동안에「尙州文化硏 究」는 6권이 발간되었으며, 여기에 실린 연구논문은 45편이었다. 그리고 경북대학교와 상 주대학교가 통합된 후에「尙州文化硏究」는 2권이 발간되었고 여기에 실린 연구논문은 15편 이었다. 따라서 지역 대학교의 상주문화연구소에서는 총 137편의 연구논문이 나왔다. 그러나 경북대학교와 상주대학교가 통합되면서 상주대학교에 소속되었던 필진(筆陣)이 모두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로 흡수되고, 일부는 정년퇴임하면서 지금은 연구 활동이 개 점 휴업상태로 남아 있어서 아쉽다. 사실 2년제 이 1990년 4년제 가 되고, 나중에 로 교명이 변경 되었지만, 대학의 성격은 ‘산업체제 대학’이었기 때문에 인문계 열 학과 개설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교수.학생.시민 모두는 ‘산업체제대학’에서 ‘일반대학’이 되는 것이 꿈이었 으나, 가 일반대학으로 전환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 에 경북대학교와 상주대학교가 2008년에 통합되면서 자동적으로 일반대학교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상주를 대표하는 대학이 없어진 서운함은 있었으나 시민들은 대구캠퍼스에 있는 많은 사학자들이 상주의 역사 문화의 연구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학당국 이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상주문화연구소는 연구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 문에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산업체제 대학으로 있을 때보다도 더 못한 결과가 되어버렸다. (1) 연구논문집 상주산업대학교 상주문화연구소에서는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연구논문집을 11권 발 간하였다. 『尙州文化硏究』제 1집(1991)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2집(1992)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3집(1993)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4집(1994)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5집(1995)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6집(1996)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7집(1997)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8집(1998)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 9집(1999)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0집(2000)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1집(2001)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상주산업대학교가 상주대학교로 교명 변경을 한 후에도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권의 연구논문집을 발간하였다. 『尙州文化硏究』제12집(2002)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3집(2003)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4집(2004)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5집(2005)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6집(2006)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7집(2007)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그리고 2008년 상주대학교와 경북대학교가 정부의 방침에 의해서 통합된 후에도 2009 년까지 2권의 연구논문집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교양과정부의 인문학 교수들이 대구캠퍼스로 자리를 옮겼고, 대학본부에서 이 에 예산을 확보해 주지 않는 바람에 2009년을 마지막으로 하고, 이후에 는 연구논문집을 발간하지 못하고 있다. 『尙州文化硏究』제18집(2008)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尙州文化硏究』제19집(2009)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 상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상주문화원은 1961년 9월 19일 창립하였으나, 1988년까지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없었다. 그러나 1989년 1월에 가 설립되면서 지역의 향토사학자와 상주산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참여하여 지역의 문 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이해에 논문집『尙州文化』를 창간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에 들어서서 상주문화원은 그동안의 를 흡수하여 로 확대 개편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 연구논문집 상주문화원의 ‘상주문화연구회’에서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연구논문집 8권을 발간하였다. 『尙州文化』제 1호, 1989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2호, 1991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3호, 1992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4호, 1993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5호, 1994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6호, 1996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7호, 1998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尙州文化』제 8호, 1999년, 상주문화원.상주문화연구회 그리고 가 로 개편하면서 연구논문집 14권을 발간하였다. 『尙州文化』제 9호, 2000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0호, 2001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1호, 2002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2호, 2003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3호, 2004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4호, 2005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5호, 2006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6호, 2007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7호, 2008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8호, 2009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19호, 2010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20호, 2011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21호, 2012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尙州文化』제22호, 3ㅂ2013년, 상주문화원.상주향토문화연구소 (2) 문화총서(단행본) 상주문화원에서는 지금까지 문화총서 단행본 31권을 발간했는데, 재원(財源)은 대부분 상주시의 보조금(補助金)이었다. . 박두화,『尙州』, 1987, ㈜중외 . 권태을 외 2인,『恭檢池』, 1995, 한신문화인쇄사 . 권태을 외3, 8명,『甲長山』, 1996, 한신문화인쇄사 .『慶尙道先生案』, 1997, 미래전산 . 金世光,『尙州의 陶瓷生産과 窯址』, 한신문화인쇄사 .『尙州史料集』, 1998, 보문사 . 김철수 외 1인,『상주동학농민혁명자료집』, 1999, 열린애드 . 박윤성 외 5인,『沙伐誌』, 1999, 대구제일원색인쇄사 . 박찬선 외 7인,『尙州文化遺蹟(佛敎)』, 2000, 제일기획인쇄 . 權泰乙,『尙州漢文學』, 2001, 도서출판 문창사 . 권태을 외 7인,『白華山』, 2001, 도서출판 솔솔 . 김철수 외 2인,『增補 尙州文化遺蹟』, 도서출판 문창사 . 김철수 외 2인,『사진으로 보는 반백년전 상주』, 도서출판 한솔 . 金子相 譯,『商山誌』, 2003, 대남인쇄사 . 曺喜烈 編著,『尙州地名總覽』, 2003, 도서출판 문창사 . 박찬선, 상주이야기, 2007, 한일사 . 조희열 외 6인,『尙州의 樓亭臺』, 도서출판 한솔 . 조희열 외 인,『尙州市史』, 2010, 대한인쇄 . 권태을 외 2인,『.齋 盧守愼 先生의 學問과 思想』, 2010, 문화원연합회 경북지회 . 김병일 외 5인,『道南書院의 史蹟과 道學精神』, 2011, 도서출판 한솔 . 김철수 외 4인,『存愛院의 位相提高를 위한 學術大會』, 2011, 도서출판 한솔 . 『尙州文化院 50年史』, 2011, 도서출판 한솔 . 금중현,『상주의 傳統숲과 老巨樹』, 2011, 도서출판 한솔 . 김철수 외 5인,『상주의 인물(I)』, 2011, 한일사 . 김호종 외 3인,『后溪 金範·西臺 金.· 愚谷 宋亮· 石川 金覺 先生의 尙州 儒學史上存在意義』, 2012, 도서출판 한솔 . 우인수 외 2인,『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선생과 난재(懶齋) 채수(蔡壽) 선생의 學問과 思想』, 2013, 도서출판 한솔 . 김철수 외 6인,『상주의 인물(II)』, 2013, 한일사 . 김철수,『尙州堤堰』, 2013, 도서출판 한솔 . 김철수 편저,『義兵大將 錦圃 盧炳大 烈士』, 2013, 도서출판 한솔 . 금중현,『增補 尙州의 傳統숲과 老巨樹』, 2013, 도서출판 한솔 . 이상호 외 3인,『남계 표연말(藍溪 表沿沫), 이재 조우인(.齋 曺友仁), 사서 전식(沙西 全湜) 선생의 學問과 思想』, 2014, 도서출판 한솔 3) 상주박물관 상주박물관은 우리 지역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 지난 2007년 11월 2 일에 문을 열었다.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에 있던 인문학 교수들이 모두 대구캠퍼스로 옮기고 난 이후, 상 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유일한 전문인력 집단이 되었다. 현재 박물관장을 비롯해서 4명의 학예사가 중심이 되어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현재까지 학술연구총서 10권과 문화연구총서 4권을 발간하였다. (1) 학술연구총서(단행본) . 상주박물관,『상주지역 석탑조사 연구보고서』, 한일사, (2008) . 김정찬,『연악문회록』, 한일사, (2009) . 상주박물관,『상주병풍산고분군 지표조사보고서』, 한일사, (2010) . 상주박물관,『상주불교유적 지표조사보고서』, 한일사, (2010) . 김미주 외 4인,『상주의 문중인물과 제사 문화를 담다』, 민속원, (2012) . 김정찬,『우복당수간』, 한일사, (2011) . 상주박물관,『상주고분자료집성』, 가미디자인, (2012) . 김정찬,『추금록 이준이 남긴 시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나다』, 민속원, (2012) . 상주박물관,『사벌국 관련 문화유적 학술자료조사 보고서』, 한일사, (2012) . 김정찬,『석천집 상주 최초의 의병장 김각을 이야기하다』, 민속원, (2013) (2) 상주문화총서(단행본) . 이보영 외 7인,『낙동강을 품은 상주문화』, 민속원, (2011) . 김기현 외 3인, 조연남,『농경문화를 꽃피운 상주민요』, 민속원, (2012) . 김기현 외 4인,『농경문화를 꽃피운 상주 민요』, 민속원, (2012) . 김진형 외 8인,『상주 병풍산』, 민속원, (2013) 4) 사단법인 상주 얼찾기회 상주의 역사문화를 통해서 ‘상주의 얼’을 찾자는 열혈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 이다. 1991년 ‘상주의 얼’ 창간호를 비롯해서 1994년 ‘상주의 얼’ 제4호를 발간하고 그 뒤로는 휴면상태이다. 3. 분야(分野)별 연구실적물 위의 4곳에서 발표된 연구실적물을 분야별로 분류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문 학에서의 연구분야는 대단히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불과 400여 편의 연구실적물을 가 지고 그렇게 따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연구실적물이 10편 이상 되는 분야를 선정하였다. 1) 상주역사(尙州歷史)관련 연구물 : 19편 . 황영목,「상주사의 개관」,『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신종원,「고려시대의 상주와 관련된 기문(記文)」,『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차완식,「낙동강 상류지역의 신석기에 대한 소고(小考)」,『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김종환,「상주의 동학과 갑오농민항쟁」,『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권태을,「영대(嶺對)을 통해 본 영남인의 자존심」,『尙州文化』(6), 상주문화원, 1996 . 김자상,「고녕가야(古寧伽倻)의 문화」,『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강효일,「상주 함창의 농민항생」,『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金基卓,「尙州 東學敎 南接의 性格」,『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권태을,「상주문화의 특장」,『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金子相,「存愛院新修事蹟 一考」,『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조욱연,「조선도 사림파의 개혁의지」,『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조욱연,「동학 농민군의 무력항쟁과 우리의 각성」,『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윤재수,「상주의 잠업」,『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곽희상,「상주 시장에 관한 역사적 소고」,『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강효일,「상주동학농민혁명과 농민군의 역사적 의미」,『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李泳鎬,「尙州地域 古代遺蹟調査의 現況」,『尙州文化硏究』제17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7. . 곽희상,「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주의 혼」,『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황인구,「상주 한의학의 역사적 소고」,『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김종환,「19세기 후반 상주지방의 농민항쟁」,『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2). 상주의 문화유적(歷史文化遺蹟)관련 연구물 : 36편 . 이상기,「원(院)터의 보살입상과 3층석탑」,『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윤무병,「傳”상주지방 출토의 이형청동기(異型靑銅器)」,『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김동연,「상주시 외답동 고분군에 관한 고찰」,『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조희열,「사벌국 고성 병풍산성과 그 주위의 고분군」,『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이상기,「상주읍성의 고찰」,『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박윤성,「상주성(邑城) 4대문터 표석 설치」,『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박방룡,「상주서곡 출토 일괄(一括)유물」,『尙州文化』(3), 상주문화원,1992. . 鄭椿穆,「우리나라 ‘목판 인쇄본’에 대한 고찰」,『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民俗部,「연원동 석각신장상 조사보고」,『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김명환,「동천암과 개운화상」,『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拓本監督,「상주의 탁본 문화」,『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곽희상,「비(碑)의 소고」,『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송부섭,「서지학 소고」,『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강경모,「상주의 향청 소고」,『尙州文化』(6), 상주문화원, 1996. . 박찬선,「상주의 전탑(塼塔)」,『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조희열,「애국심 서린 상주 당교」,『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임운섭,「상주 사직당」,『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韓基汶,「朝鮮後期 尙州 存愛院 設置의 背景과 意義」,『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곽희상,「상주의 금석유물 총람」,『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한기문,「조선시기 상주 읍성 내외 시설의 배치와 기능」,『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김철수,「상주향청」,『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강효일,「상주 상산관의 역사적 의미」,『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김철수,「함창 사마소」,『尙州文化』(14), 상주문화원, 2004. . 李泳鎬,「金石學 硏究法」,『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金相鎬,「尙州邑城」,『尙州文化硏究』제15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5. . 김진형,「상주 청리 횡혈식 석실분에 대한 검토」,『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채광식,「함창 사마소의 개관」,『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한정옥,「불상의 기원과 상주의 불상」,『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김상호,「상주지역 태실에 관한 고찰」,『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강효일,「태종 무열왕이 머문 금돌성 대궐 터와 화랑정신」,『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자상,「향청과 향안 고찰」,『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진형,「최근 발견한 불교 유적과 유물」,『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진형.석병철, 「상주 병풍산 고분군 현황과 과제」,『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진형,「고분으로 본 삼국시대 상주지역의 성격」,『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전옥연,「병풍산일대 유적의 정비와 활용방안」,『尙州文化』(22), 상주문화, 2012 . 김진형,「상주지역출토 도활자 소개」,『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3) 상주의 서책(書冊)관련 연구물 : 44편 . 류시완,「상산향언록」,『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김자상,「상주와 함창의 향지」,『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權泰乙,「任戌泛月錄(一名 : 洛江泛月詩) 解題」,『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권태을,「상락 삼강록 고(上洛 三綱錄 考)」,『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권태을,「태촌 고상안의 소고」,『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권태을,「낙사휘찬」해제」,『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류윤기,「상주 함창 사마록의 분석 연구」,『尙州 얼』, 상주얼찾기회,1994. . 박찬선,「한글 가사「해방실기」해제」,『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權泰乙,「淵嶽文會錄 解題」,『尙州文化硏究』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5. . 權泰乙,「洪判官韻 解題」,『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金子相,「蒼石 李埈의 擬嶺南伸寃疏 小攷」,『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權泰乙,「聽竹 成.의 上疏文,考察」,『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채광식,「또 하나의 상주향약 및 가실본당의 서간문」,『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김자상,「문장공 우복 정경세 승축성 무소 소고」,『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권태을,「우헌 채헌징의 소고」,『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李九義,「崔瀣의 삶과 攷」,『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權泰乙,「尙州 舊 中牟縣 漢文學考」,『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김자상,「월간과 창석의 우애시문 고찰」,『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채광식,「표남계 선생의 생애와 오조소」,『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權泰乙,「禁銀店疏行日記硏究」,『尙州文化硏究』제12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2 . 김자상,「난재 채수의 상주관련 시문고」,『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채광식,「계구사」,『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金子相,「江皐 柳尋春의 東宮輔翼篇 考察」,『尙州文化硏究』제12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2. . 金子相,「愚伏 鄭經世의 愚巖說考」,『尙州文化硏究』제13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3. . 權泰乙,「洛城君 金先致의 벼루 관련 詩文考」,尙州文化硏究』제13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3. . 권태을,「곤지자 김악주의 영남가고」,『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채광식,「새로 찾은 두 공검호기」,『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채광식,「조이재 선생 대개천설의 고찰」,『尙州文化』(14), 상주문화원, 2004. . 김자상,「후곡 채섬환의 대가산기소고」,『尙州文化』(14), 상주문화원, 2004 . 權泰乙,「菊坡 全元發의 詩文考」,『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李九義,「懶齋 蔡壽의「독학부(獨鶴賦)」攷」,『尙州文化硏究』제15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5. . 채광식,「곽호재선생의 진사록을 살펴보다」,『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권태을,「목재 홍여하의 선비정신 고」, 尙州文化(17),『상주문화원』, 2007. . 李九義,「지암(紫巖), 이민환(李民.)의 「독락원(獨樂園)」부(賻) 고(攷)」, 『尙州文化硏究』제17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7. . 이종섭,「낙화담의적천양시문집 소개」,『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權泰乙,「雩潭 蔡得沂의 君臣言志錄考」, 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 권태을,「자천동 산수록고」,『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권태을,「상주목 환결구폐절목 소고」,『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자상,「가규일기」,『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재수,「빛바랜 연극 대본」,『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김자상,「가규 진사일기 해제」,『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윤동원,「상주지방 고전적(古典籍) 고찰」,『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김자상,「가규 진사일기 해제(3)」,『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 금중현,「구당 조목수의 상산지 초책 고」,『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4) 상주 인물(人物)관련 연구물 : 35편 . 박찬선,「뇌허 김동화의 생애와 사상」,『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徐榮一,「壬亂義士 金俊臣」,『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2. . 류시완,「난계 김득배」,『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박찬선,「우복 정경세의 예론」,『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李九義,「崔致遠의 歷史意識」,『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趙誠晩,「신채호(투쟁속에 살다간 민족주의자)」,『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李九義,「梅溪 曺.의 歷史意識」,『尙州文化硏究』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5. . 白道根,「擬上六條疏를 통해 본 溪堂 柳疇睦 선생의 사상」,『尙州文化硏究』 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5. . 채광식,「통허재 성헌징 선생의 생애와 작품」,『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송재엽,「우인(友人)을 대신 위국충사(代身爲國忠死)한 과재(果齋) 윤섬(尹暹)」, 『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곽희상,「우리나라 최초로 전선(戰船)에 포를 설치한 김순고」,『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권영태,「봉림대군과 채우담과의 시화 이야기」,『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金子相,「雲坡 宋基夏의 傳說과 記文考」,『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李九義,「崔致遠과 崔瀣 그 意識의 同質性」,『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姜慶模,「菊坡 全元發의 家系 小考」,『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강효일,「대예학자 우복 정경세가 순오지에 한 방언」,『尙州文化』(15), 상주문화원, 2005 . 권태을,「양진당의 검간정신」,『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김정찬,「 발간시 상주지역 제자들의 역할」,『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곽희상,「조선의 대유학자 우복 정경세」,『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李九義,「上疏文」에 나타난 蒼石 李埈의 정신세계」,『尙州文化硏究』제16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6. . 김정찬,「우담 선생과 경천대」,『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김호종,「우복 정경세의 생애와 국방사상」,『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박찬선,「상주임란북천전적지와 시인 백대붕」,『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김호종,「서애 유성룡의 상주유학 진흥책」,『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곽희상,「상산 3노(三老), 상산사호(商山四晧)」,『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호종,「난계 김득배 선생의 역할과 위상」,『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강효일,「견훤에 대하여」,『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권태을,「식산 이만부의 실심실학 전개 양상고」,『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곽희상,「장원급제한 상주의 선비들」,『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마백락,「상지학교 설립을 기초한 왕묵도 신부」,『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권태을,「조선시대 영남 선비의 위상」,『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권태을,「검간 조정의 한국문화사적 위상」,『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 김철수,「무오사화와 표연말 선생」,『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 박찬선,「바람속에 바람처럼 살다간 바람의 시인- 해명 김완 론(論)」,『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 김재수,「계몽운동의 선구자 오광 여석훈 선생 - 오광자소를 중심으로」, 『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5) 상주 문학(文學)관련 연구물 : 40편 . 권태을,「상주가 낳은 시인 황오(黃五)와 황록차집(黃綠此集)」 ,『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金基卓,「雩潭 蔡得沂의 樓亭詩歌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 崔秉學,「尙州의 採蓮謠와 英國의 田園詩 比較」,『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權泰乙,「洛江詩會 硏究」,『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김기탁,「매호별곡의 자연배경고」,『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權泰乙,「尙州 淵嶽圈 詩會硏究」,『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宋鍾官,「趙存性의 에 대하여」,『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金基卓,「尙州 공갈못 民謠小考」,『尙州文化硏究』제4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4. . 李九義,「崔奭과 그의 孫子들의 詩攷」,『尙州文化硏究』제4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4. . 권태을,「국포 강박의 시에 나타난 비판정신고 - 시를 중심으로 -」, 『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李九義,「觀水樓 吟詠攷」,『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金子相,「觀水樓 小攷」,『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權泰乙,「漢詩文에 나타난 沙伐意識考」,『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李九義,「權適의 삶과 시」,『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權泰乙,「息山 李萬敷의 金剛山紀行詩 背景考」,『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李九義,「聞韻樓 吟詠攷」,『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白道根,「權淸臺學의 朝鮮性理學史上의 位置」,『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박찬선,「형과 자연으로 짜올린 시적 공간」,『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권태을,「한산이씨 절명사고(絶命詞考)」,『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金子相,「半聾齋 李秉延의 詩世界考」,『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李九義,「蓮潭 李世仁의 文學에 나타난 意識」,『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노상래,「해방기 자기고백 소설 연구(II)」,『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權泰乙,「野村 孫萬雄의 燕行詩文硏究」,『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朴贊善,「尙夢 李大熙의 詩世界」,『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權泰乙,「尙州 存愛院 關聯 詩小考」,『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김자상,「우헌 채헌징의 시문고(詩文考)」,『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채광식,「우복 정경세의 모량격」,『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김자상,「소재 노수신의 시고」,『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권태을,「이식산이 남명학파에 끼친 문학상 영향고」,『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金子相,「.齋選詩 硏究」,『尙州文化硏究』제11집,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권태을,「계정 신후재의 수필론 및 수필고」,『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박영식,「민병균 시에 나타난 전원설 소고」,『尙州文化硏究』제13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3. . 김자상,「상주목의 선정비문 고찰」,『尙州文化』(15), 상주문화원, 2005. . 權泰乙,「淸臺 權相一의 선비정신 考」,『尙州文化硏究』제16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6. . 李九義,「藍溪 表然沫의「삼가 주자의 감흥시에 차운함(謹次朱子感興詩)攷」, 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 이구의,「죽지곡(竹枝曲)」에 나타난 선비의 형상」,『尙州文化硏究』제19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9. . 김정찬,「남계 강응철의 ‘강산풍월’연구」,「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호종,「시적 진실과 함창정신(咸昌精神) 신동한의 시 세계」,『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박찬선,「치유와 구원의 잠언적 시」,『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조일희,「침천 김상철 선생의 상주 여행기」,『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6) 상주 민속(民俗)관련 연구물 : 30편 . 김기탁,「상주 구전(口傳)민요」,『 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박찬선,「상주의 農謠(상주의 民俗)」,『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김기탁,「상주천봉산의 성황사 고찰」,『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송종관,「상주민요의 형성과 배경」,『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金基卓,「尙州 淵嶽의 祈雨祭 考察」,『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의예부,「新 鄕飮酒禮」,『尙州 얼』,상주얼찾기회, 1992. . 金基卓,「尙州地方의 歲時風俗」,『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김기탁,「상주의 동신제 고찰」,『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朴畢淑,「尙州地方의 祭需에 關한 調査 硏究」,『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조재석,「화남면 동관리의 동제」,『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金基卓,「尙州 龍華殿과 彌勒信仰」,『尙州文化硏究』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5. . 金基卓,「民俗信仰에 나타난 祖上崇拜」,『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金基卓,「甄萱說話의 神聖性과 民俗信仰」,『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金基卓,「白華山을 中心한 牟東.牟西面의 洞神祭 考察」,『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금중현,「성동 밤숲과 조공제에 관한 소고」,『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권태을,「견훤설화 소고」,『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김기탁,「상주 천봉사 성황사의 중수상량문 고찰」,『尙州文化硏究』제12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2. . 곽희상,「잘못 되어가는 혼례문화」,『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金基卓,「尙州 天鳳山의 男妹堂과 城隍祠 考察」,『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金基卓,「尙州 甄萱祠堂의 聖神閣 考察」,『尙州文化硏究』제15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5. . 김기탁,「상주 천봉산 성황제와 양로당」,『尙州文化硏究』제16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6. . 金基卓,「尙州地域 洞神信仰의 특징과 의미」,『尙州文化硏究』제17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7. . 황진현,「상주 청계 마을의 견훤 설화와 동제의 관련성」,『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유희,「검간 조정 선생의 불천위 제사에 나타난 문중의식」,『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조연남,「이안면 마을 신앙의 양상과 실체」,『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기탁,「말(馬)에 대한 민속문화」,『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재수,「상주 아리랑 소고」,『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세광,「상주 야장간 이야기Ⅰ」,『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유희,「용과 바위를 통해 본 마을 형국과 자연물 인식 양상」,『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강경모,「상주 낙상리 마당제 소고」,『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7) 상주 종교(宗敎)관련 연구물 : 33편 . 정순목,「상주의 개화교육운동」,『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권태을,「진신사리봉안(眞身舍利奉安)한 천년화성 남장사」,『尙州文化』(2), 상주문화원, 1991. . 韓基汶,「高麗 後期 尙州 功德山 東白蓮社의 成立」,『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강경모,「삼괴리 신앙고백비 소고」,『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김명환,「노음산 관음사의 유적과 유물」,『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韓基汶,「尙州 南長寺 普光殿 鐘 銘文의 檢討」,『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韓基汶,「尙州 功德山 白蓮社址의 沿革과 現況」,『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김명환,「음동관사를 찾아서」,『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한기문,「상주지역 사원(寺院)의 시기별 추이(推移)」,『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韓基汶,「尙州 白華山 一帶 寺院의 現況과 分布考」,『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조희열,「경상도 최초 천주교 전래지 이안 배모기와 그 영향」,『尙州文化』(11), 상주문화원, 2001. . 한정옥,「상주지역 괘불에 나타난 도상의 특징과 불 . 보살의 존명」,『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신대원,「최양업 신부의 일부 서한의 작성 및 그의 선종지역을 밝힌다」, 『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이희진,「상주 목가리 석조관세음보살입상과 화서 신봉리 석조보살입상에 대한 도상적 재검토」,『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韓基汶,「高麗時代 尙州 龍潭寺의 京觀과 機能」,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 신대원,「순교자 신태보의 생애 연구」,『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마백락,「상주지방 천주교 전래와 서상돈 가정」,『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김재수,「경북 최초의 장로교인 김재수」,『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신대원,「최양업 신부의 사목 관할구역 관련 지명연구에 대한 견해」,『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마백락,「상주 구두실 조 까를로 순교자와 가정」,『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韓基汶,「羅末麗初 尙州地域 禪宗山門의 動向과 性格」,『尙州文化硏究』제19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9. . 마백락,「경신박해 순교자 성순교 가문과 다른 순교자들」,『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재수,「개신교의 상주 전래」,『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신대원,「유가의 종교관」,『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상호,「상주 불교 사원의 어제와 오늘」,『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신대원,「병인박해와 상주 옥에서 순교한 이들」,『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마백락,「상주지역 천주교 선교와 김문옥신부」,『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마백락,「상주 지방의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尙州文化』(23), 상주문화원, 2013 8) 상주 지리(地理)관련 연구물 : 32편 . 김홍대,「상주의 지명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尙州文化』(3), 상주문화원, 1992. . 서영일,「상주지역의 여지」,『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2 . 박찬선,「낙동강과 상주문화」,『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金鐵洙,「朝鮮時代의 尙州地方 堤堰에 관한 硏究」,『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 강경모,「상주의 옛 도로」,『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權泰乙,「商山地圖 解題」,『尙州文化硏究』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5. . 金鍾煥,「沙伐國 關聯 地名考」,『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강경모,「상주지역의 역사지리적 배경고」,『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 曺熙烈,「音里火停 位置 考察」,『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강효일,「상주와 낙동역원」,『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강경모,「상주지역의 역사지리적 배경(사벌국을 중심으로)」,『尙州文化』(9), 상주문화원, 2000. . 조희열,「음리화정이 설치된 곳은 지금의 청리인가?」,『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금중현,「용화정 공원 조성기」,『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郭熙祥,「地理考」,『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금중현,「성주봉과 사가정」,『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금중현,「상산삼악에 빗돌을 놓고 천년수 주목을 심다」,『尙州文化』(13), 상주문화원, 2003. . 曺喜烈,「땅이름의 변천과 상주의 땅이름」,『尙州文化硏究』제15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5. . 김상호,「상주의 영남대로」,『尙州文化』(16), 상주문화원, 2006. . 강효일,「삼한 통일성지 금돌성과 백화산」,『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김세광,「조선 후기 상주목 장권」,『尙州文化』(18), 상주문화원, 2008. . 郭熙祥,「洛東江과 尙州의 나루터 고찰」,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 김정찬,「상주 연악 구곡 고찰」,『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김상호,「상주 고대 도시의 토지 구획에 관한 연구」,『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금중현,「무니미마을 수리보와 전 도사 김사룡 공」,『尙州文化』(19), 상주문화원, 2009. . 정의선,「상주 백화산 탄금대, 임천석대에 관한 소고」 ,『尙州文化』(20), 상주문화원, 2010. . 김철수,「상주지역 영남대로의 기능과 한문학」,『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금중현,「상주의 전통마을 숲과 노거수」,『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석병철,「자연지리적 환경으로 본 상주의 지석묘」,『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조희열,「상주의 태봉고」,『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 권택룡,「상주 지명 연구」,『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이근용,「상주의 새주소 현황」,『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곽희상,「갑장산 이야기」,『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9) 상주 산성(山城)관련 연구물 : 12편 . 강창모,「한국의 성곽」,『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2 . 考古部 「견훤산성 조사보고」 『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조희열,「상주지방의 성곽」,『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김종환,「노고산성 조사 보고」,『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曺喜烈,「城山山城에 대해서」,『尙州文化硏究』제5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 文化硏究所, 1995. . 曺喜烈,「今突城에 대하여」,『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曺熙烈,「尙州 白華山 今突城 遺蹟址의 現存狀態 考察」, 『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조희열,「남산고성(南山古城)의 현존상태 고찰」,『尙州文化硏究』제12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2. . 조희열,「남산고성의 현존상태 고찰」,『尙州文化』(12), 상주문화원, 2002. . 김상호,「고려시대의 상주산성」,『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조희열,「상주에서의 대몽 항쟁과 금돌성」,『尙州文化』(17), 상주문화원, 2007. . 曺喜烈,「상주 청리의 月老里 토성」,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10) 상주 교육(敎育)관련 연구물 : 17편 . 金子相,「尙州 淵嶽圈 書院 寺刹 硏究」,『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姜慶模,「道谷書堂」,『尙州 얼』,상주얼찾기회, 1992. . 김명희,「수선서당」,『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2. . 趙康熙,「朝鮮時代 尙州鄕校의 社會 經濟的 基盤」,『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金明均,「송암서당」,『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3. . 금중현 「서원의 향사 의례」『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채광식,「서산서원 사적의 고찰」,『尙州文化』(6), 상주문화원, 1996. . 金基卓,「尙州 牧民官의 敎育觀 考察」,『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강경모,「도남서원에 대하여」,『尙州文化』(8), 상주문화원, 1999. . 姜慶模,「서원의 교육문화 기능」,『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姜慶模,「尙州의 敎育考」,『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姜慶模,「尙州의 書堂敎育 考察(靈川子 申潛 牧使의 18書堂을 中心으로)」, 『尙州文化硏究』제12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2. . 蔡光植,「霞谷書堂 事蹟考」,尙州文化硏究』제13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3. . 曺熙烈,「日本의 朝鮮敎育令 施行期의 尙州地域民의 敎育活動」,『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4. . 韓基汶,「朝鮮時代 尙州鄕校의 位相과 變化」,『尙州文化硏究』제16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6. . 한기문,「상주교육에 영향을 끼친 고승들」,『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 강경모,「상주의 서원문화」,『尙州文化』(22), 상주문화원, 2012 11) 상주 고건축(古建築)관련 연구물 : 22편 . 이상기,「상주의 전통 고가(古家)를 찾아」,『尙州文化』(1), 尙州文化院, 1989. . 金基卓,「慶北 尙州地域의 樓亭調査 硏究 槪要」,『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 金子相,「尙州地域의 樓亭調査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 權泰乙,「樓亭의 文壇的 機能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 박영달,「상주지방의 고주택 정원양식 고찰」,『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박영달,「상주지방의 옛 누정 조경의 전통성」,『尙州 얼』, 상주얼찾기회, 1994. . 朴永達,「尙州地方 樓亭 空間의 造景學的 考察,『尙州文化硏究』제4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4. . 김자상,「고려말의 함창의 3명정(名亭)」, 尙州文化(6), 상주문화원, 1996. . 권태을,「상산지사(추수사 . 죽우사) 소개」,『尙州文化』(7), 상주문화원, 1998. . 정명섭,「상주 향교의 건축학적 특성」,『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박영달,「상주지역 서원의 조경」,『尙州文化』(10), 상주문화원, 2000. . 박영달,「尙州 東學敎 敎堂空間의 造景」,『尙州文化硏究』제10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0. . 鄭明燮.金燦榮,「白華山 一圓의 民家」,『尙州文化硏究』제1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1. . 鄭明燮,「尙州 玉洞書院의 建築的 特性」,尙州文化硏究』제13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3. . 鄭明燮,「尙州 興巖書院 講堂의 復元」,『尙州文化硏究』제14집, 尙州大學校尙州文化硏究所, 2004. . 박영달,「식산 정사 정원의 외부공간」,『尙州文化』(14), 상주문화원,2004. . 鄭明燮,「尙州 養眞堂 중문간 및 사랑채의 復元」,『尙州文化硏究』제15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5. . 鄭明燮,「尙州 鄕廳의 復元」,『尙州文化硏究』제16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6. . 鄭明燮,「尙州 溪亭과 對山樓의 建築的 特性」,『尙州文化硏究』제17집, 尙州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7. . 鄭明燮,「尙州 商山館의 建築的 特性」,尙州文化硏究』제18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8. . 鄭明燮,「尙州 道南書院의 建築的 特性」,『尙州文化硏究』제19집, 慶北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2009. . 김상호,「려산 송씨의 공성 입향과 취은 고택의 조성」,『尙州文化』(21), 상주문화원, 2011. 12) 상주 도자(陶瓷)관련 연구물 : 13편 . 김세광,「상주지역 전통도요지의 지표조사를 통한 출토자료 고찰」, 『尙州文化』(4), 상주문화원, 1993. . 김세광,「노산리 요지에 관한 소고」,『尙州文化』(5), 상주문화원, 1994. . 金世光,「尙州 於山里 窯址에 관한 硏究,『尙州文化硏究』제4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4. . 金世光,「도재이 사기장골(沙器匠谷) 연구(1)」,『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김세광,「14~16세기 전통도자수공업의 생산기술 변화와 경영형태 연구」, 『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김세광,「조선 후기 상주지역 도자수공업의 발전과 쇠퇴」,『尙州文化硏究』제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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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하면, 앞으로는 이들 부족한 분야의 연구 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시대별로 연구실적물을 고찰하면, 85%가 조선시대(朝鮮時代)에 관한 것이고, 이 후 근세사(近世史)에 관한 것은 15%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적 위주의 단편적인 연구보다 는 근세(近世)의 인물이나 사실을 우선 조명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 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우리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공검지(恭儉池)에 대한 연구실적물과 사벌국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각각 1편씩만 있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그리고 사벌국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병풍 산의 고분(古墳)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5편이나 나온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따라서 하루 빨리 이들 고분군의 발굴이 시급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4. 결 론 본 주제의 결론을 상주역사문화에 대한 연구에 관해서 문제점과 대책으로 가름할까 한다. 1) 전문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 상주대학교가 경북대학교와 통합을 한 후에 그동안 상주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던 전문 인력들이 대구캠퍼스로 빠져 나갔고, 비록 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에 존치되어 있으나, 대학 본부가 예산 배정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혀 전 같은 연구 활 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상주에는 전문연구인력이 상주박물관의 학예사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향토사학 자들이 상주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물론 지역의 특별한 자료를 통하여 향토사학 자들이 전문 인력에 못지않는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넓게 조명하는 능력이나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늘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연구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걱정스럽다. 2) 연구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상주가 고래로부터 농업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농사에 관한 연구가 없다. 고상안이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전해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연구도 없고, 이를 토대로 당시의 농사짓는 방법이나 상주농업의 특이성을 찾아내는 연구가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사벌국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없고, 공검지에 대한 연구는 단행본 한권을 제외하 는 연구실적물이 없다. 그러나 상주박물관이 중심으로 사벌국의 실체와 연관된 병풍산 고 분군(古墳群)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5편이나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주가 ‘교육의 고을’이라고 하면서도 이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적은 것이 아쉬 운 점이다. 예를 들면, ‘상주향교’가 대설위 향교임에도 이에 대한 연구실적물이 없고, 서 원에 대한 연구실적물도 3편에 불과하다. 3) 지역의 연구기관이 상호 협력해야 한다. 현재 상주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기관은 .. 가 있다. 이 중에서 가 아쉽다. 비록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지역 에서 잘 움직여 주면 언제든지 가동이 가능하고, 가장 품격이 높은 연구기관이다. 따라서 지금은 과는 가장 활발하게 상주 의 역사 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이제 상주박물관이 매장문화재 발굴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되었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 주력해서 이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상주박물 관의 당면 과제라고 본다. 그런데 이들 연구기관들이 목표는 ‘상주의 역사 문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만, 수평적 인 교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3자의 견해가 자신들의 성과물에 도움이 되지 못 하고 있는 형편이고, 분야별로 보면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1년에 2회 정도는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이 모 여서 연구실적물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져야 하겠다. 4) 학술대회에 대한 지원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우리 상주문화원은 도남서원과 공동으로 4년째 지역의 명현을 천양하는 학술대회를 개 최하고 있다. 그래서 이젠 매년 봄이 되면 낙동강변의 도남서원에서 학술대회를 어김없이 열고 있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도남서원의 폭 넓은 강학(講學)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학술대회를 통해서 천양하는 분들은 전국적인 수준에서 빠지지 않는 분들이며, 이분들의 천양으로 상주의 지역 이미지가 크게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도 필 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상주시에서는 학술대회를 위한 정례적인 지원이 없다. 따라서 도남서원 같은 단체나 기업이 지역의 문화융성에 참여하는 풍토조성이 필요하다. 5) 상주학(尙州學)을 도출해야 한다. 상주는 려말의 대학자이신 난계(蘭溪) 김득배(金得培)선생을 비롯해서 조선 성리학을 도 입한 회헌(晦軒) 안향(安珦)선생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의 영향을 받아서 조선시 대에는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상주는 성리학(性理學)과 양명학(陽明 學)이 공존하는 특이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독특한 상주학(尙州學)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도 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일에 앞장 서야 할 사람은 지역의 역사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주만의 독특한 학맥(學脈)이 들어난다면 상주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상주문화에 대한 연구현황 분야별 : 1. 상주의 지리 2. 상주의 도자와 도요지 3. 상주의 항일독립운동 4. 상주의 민속 5. 종교(불교, 천주교, 개신교) 6. 상주의 고분 7. 상주의 교육(서원,서당,향교) 8. 상주의 문학 9. 상주의 누정 10. 상주의 인물 11. 상주의 동학 12. 상주의 존애 원 13. 상주의 근대사 14. 사벌국 15. 상주의 임진왜란과 의병 16. 공갈못 17. 상 주의 사회 18. 상주의 음식 19. 상주의 산성과 읍성 20. 상주의 출토유물 유적 21. 상주의 금석문 시대별 : 1. 신라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근대 *권태을 교수의 논문은 거의가 문학이다 *얼찾기, 청년유도회(존애원 관계), 향교, 정기룡장군역사보존회 등 다른 단체(상주)의 연 구물도 언급하는 것이 두루 좋다. *산업교통 부분과 지리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없다.(상주가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면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도 이에 대한 연구가 없다. 그리고 낙동강이 소금 을 내륙에 실어오고 곡물을 실어내던 중요한 화물거래 수단이었고 큰 장터가 낙동강변에 열렸었다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없다) ) 고, 하고 또한 이것이 과 흔히들 농가월령가라고 하면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를 말한다. 책의 이름이 같아서 혼란스럽지만 상주사람 고상안이 광해군 때 지은 또 하나의 는 농사교본이다. 내용은 서두에서 농사에 주력할 것을 주장 하였고, 정월령부터 12월령까지는 24절기 순별로 농가에서 진행해야할 농사일과 농사짓 는 법 등을 작자가 관직에서 물러나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득한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농민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실용적인 농사교본이다. 이를 토대로 옛 농사방법과 당시의 상주농업을 알아보는 것도 농업이 주산업인 상주의 경 우에는 필요한 일이다.) *인물에서 인물에 대한 것인지 문학에 대한 것인지는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박물관이 해야할 일 - 다른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민속 같은 분야보다는 매장문화 재 발굴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이제 상주박물관이 매장문화재 발굴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되었으므로 예산 확보에 주력 해서 다른 역사학자들이 손댈 수 없는 이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상주박물관의 특징을 살 리는데 좋을 것 같다) 상주대학교 부설 상주문화연구소 * 「尙州文化硏究」제1집(1991)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金基卓,「慶北 尙州地域의 樓亭調査 硏究 槪要」,『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金子相,「尙州地域의 樓亭調査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權泰乙,「樓亭의 文壇的 機能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金基卓,「雩潭 蔡得沂의 樓亭詩歌 硏究」,『尙州文化硏究』제1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1) * 「尙州文化硏究」제2집(1992)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金子相,「尙州 淵嶽圈 書院 寺刹 硏究」,『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崔秉學,「尙州의 採蓮謠와 英國의 田園詩 比較」,『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權泰乙,「洛江詩會 硏究」,『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金基卓,「尙州 淵嶽의 祈雨祭 考察」,『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趙康熙,「朝鮮時代 尙州鄕校의 社會 經濟的 基盤」,『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權泰乙,「任戌泛月錄(一名 : 洛江泛月詩) 解題」,『尙州文化硏究』제2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2) * 「尙州文化硏究」제3집(1993)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權泰乙,「尙州 淵嶽圈 詩會硏究」,『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金基卓,「尙州地方의 歲時風俗」,『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3) 韓基汶,「高麗 後期 尙州 功德山 東白蓮社의 成立」,『尙州文化硏究』제3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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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州文化硏究」제6집(1996)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權泰乙,「漢詩文에 나타난 沙伐意識考」,『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金鍾煥,「沙伐國 關聯 地名考」,『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金子相,「觀水樓 小攷」,『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李九義,「觀水樓 吟詠攷」,『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金基卓,「尙州 牧民官의 敎育觀 考察」,『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金世光,「도재이 사기장골(沙器匠谷) 연구(1)」,『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權泰乙,「洪判官韻 解題」,『尙州文化硏究』제6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6) * 「尙州文化硏究」제7집(1997)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金基卓,「民俗信仰에 나타난 祖上崇拜」,『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金子相,「蒼石 李埈의 擬嶺南伸寃疏 小攷」,『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李九義,「權適의 삶과 시」,『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曺喜烈,「今突城에 대하여」,『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김세광,「14~16세기 전통도자수공업의 생산기술 변화와 경영형태 연구」, 『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權泰乙,「聽竹 成.의 上疏文,考察」,『尙州文化硏究』제7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7) * 「尙州文化硏究」제8집(1998)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權泰乙,「息山 李萬敷의 金剛山紀行詩 背景考」,『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金基卓,「甄萱說話의 神聖性과 民俗信仰」,『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韓基汶,「尙州 南長寺 普光殿 鐘 銘文의 檢討」,『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金子相,「是廬의「因國勢大變 慷慨進言疏」小考」,『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李九義,「聞韻樓 吟詠攷」,『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白道根,「權淸臺學의 朝鮮性理學史上의 位置」,『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김정호,「지방중소도시의 문화개발 : 논거와 전략」,『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김세광,「조선 후기 상주지역 도자수공업의 발전과 쇠퇴」,『尙州文化硏究』제8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8) * 「尙州文化硏究」제9집(1999)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金子相,「半聾齋 李秉延의 詩世界考」,『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金基卓,「尙州 東學敎 南接의 性格」,『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韓基汶,「尙州 功德山 白蓮社址의 沿革과 現況」,『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李九義,「蓮潭 李世仁의 文學에 나타난 意識」,『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노상래,「해방기 자기고백 소설 연구(II)」,『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강경모,「상주지역의 역사지리적 배경고」,『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郭熙祥,「壬亂 咸昌唐橋戰鬪 再照明」,『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金世光,「尙州 하신안리 靑白磁窯址 硏究」,『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權泰乙,「野村 孫萬雄의 燕行詩文硏究」,『尙州文化硏究』제9집,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1999) 「尙州文化硏究」제10집(2000) 尙州産業大學校 尙州文化硏究所 韓基汶,「朝鮮後期 尙州 存愛院 設置의 背景과 意義」,『尙州文化硏究』제1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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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자상,「상주목의 선정비문 고찰」,『尙州文化』(15), 상주문화원, 2005. 상주지역 고고문화의 연구성과 및 과제 영남문화재연구원장 박 승 규 1. 상주지역 고고문화의 기반 2. 고고학적 조사의 성과 3. 고고문화 연구의 성과 4. 고고문화 연구의 과제 1. 상주지역 고고문화의 기반 상주(尙州)는 현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의 북서단에 위치하여, 북에서 동 및 남으로는 경상 북도 문경시, 예천군, 의성군, 김천시 등과 접해 있고, 서에서 남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등과 접경해 있다. 상주의 지형은 서쪽으로 백두대간 줄기가 남- 북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발원한 지천이 동쪽으로 흘러 평야지대를 지나 낙동강에 합류 한다. 나아가 이들 산지와 하천들이 어우러져 상주분지와 함창분지를 형성하고, 이러한 자연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북천, 이안천, 병성천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 많은 유적들 이 분포하고 있다. 상주의 선사유적으로는 구석기시대의 신상리유적을 비롯하여 청동기시대의 복룡동유적 주 거지와 청리유적의 지석묘, 외답동 지석묘군, 헌신동 입석 등이 분포하고 있다. 초기철기 시대는 병성동유적의 수혈주거지에서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와 원형점토대토기, 발형토기, 두형토기가 발굴되었으며, 원삼국시대에는 사벌면 금흔리의 이부곡토성과 주변에서 와질 토기와 주조철부가 수습되어 고대 사벌국의 존재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시대 고분군 은 상주분지를 중심으로 동쪽 병풍산 가지 능선에 형성된 병풍산고분군, 함창분지의 이안 천을 바라보며 형성된 신흥리고분군, 병성천 상류의 청리고분군이 있다. 그리고 이들 고 분군과 더불어 수리시설인 공검지유적과 통일신라시대의 도시유적인 복룡동유적이 고대 상주의 역사적 실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상주읍성의 실체를 보여주는 관아유적과 무양동의 건물지 및 제방유적 등은 조선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주 시가지의 변화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상의 지리적 환경과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연계하여 상주지역의 고고문화적 기반과 특 성을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교통로의 기능, 상주와 함창분지에 의한 지구 분할, 문헌기록에 보이는 사벌국의 존재, 영남 내륙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상주(上州, 尙州) 를 들 수 있다. 세부적으로 교통로의 기능에서 보면 낙동강을 끼고 있을 뿐 아니라 백두 대간의 조령·계립령을 통해 중원지방과 연결되고 있어서 내륙에 위치하면서도 문화연결지 대로서 교통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상주지역은 낙동강의 본류를 접하고 있으 면서도 백두대간 너머의 금강수계, 남한강수계와 이어지고 있어서 문화접촉지대에 의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지리적으로 병성천과 이안천을 따라 상주권과 함창권으로 크게 나누어짐도 지역적 특성의 하나로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문헌 기록에 의해 고대 사 벌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도시 상주로서 정치적, 군사적으 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영남지방 내 중심지로서 위치하고 있다. 그간 상주에서 이루어진 발굴조사 성과에 의해 상주의 선사와 고대문화를 해명하는 데 필 요한 많은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병풍산고분군을 비롯한 고분 자료와 복룡동의 도시유적 자료는 상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발굴자료로 평가된다. 이에 더하여 수리시설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공검지유적은 조사의 한계와 보존 및 활용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또 상주읍성의 조사는 도시 개발과 유적 조사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향후 상주의 고고문화 분야의 발전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갈림길로 작용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상주지역의 신상리 구석기유적으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의 고고학 적 조사와 연구 성과를 살펴보고, 그에 따른 고고문화의 발전을 위한 방향성과 과제에 대 해 다루고자 한다. 2. 고고학적 조사의 성과 상주의 고고학적 조사는 사벌국 관련 유적의 지표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문화재관 리국에서 발행한 “문화유적총람”이 기반이 되었겠지만, 1996년에 상주문화연구소가 발간 한 “고대사벌국 관련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가 실질적인 활동으로 여겨진다. 이 지표 조사 보고서에는 선사유적, 고분, 산성, 불적 등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내용을 담고 있다. 그 후 신상리 구석기유적으로부터 조선시대 무양동 제방유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들 이 발굴되었다. 상주의 고고학적 조사는 국토개발에 따른 발굴이 1990년대 후반부터 이 루어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역사 기록에 단편적으로 전해지던 사벌국과 상 주의 문화사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는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확보된 고 고자료를 구석기, 청동기, 사벌국, 삼국, 통일신라, 고려·조선시대로 나누어 소개하고, 시 대별로 대강의 문화양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의 자료로는 경상북도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신상리 구석기유적이 있으며, 학사 적 의미가 크다. 신상리유적은 상주시 낙동면 신상리 구촌마을 남쪽에 위치하는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낙동-상주간 국도 25호선의 확포장공사로 인해 2001, 2003년에 조 사되었으며, 낙동강과 장천의 합류에 의해 형성된 제4기 퇴적층이 양호하게 남아있는 구 석기시대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1문화층이 약 2만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 2문화층이 6~7만년 전의 중기구석기시대, 3문화층이 14~15만년 전의 전기구석기시대로 보고되어 있으며, 2,3문화층이 통합될 가능성도 있다. 유물은 모두 석영제로 긁개, 찍개, 몸돌, 망 치돌 등 다양하며, 3개의 문화층에서 모두 출토된다. 대부분의 유물에는 사용흔이 잘 남 아있어 고인류의 행위 복원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2.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앞서 형성되는 신석기유적은 아직 상주에서 발굴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인근 의 김천 송죽리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빗살무늬토기로 보아 병성천 등 하천변 의 충적지대에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주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지석묘와 입석, 주거지를 들 수 있다. 지석묘는 청리유적 에서 15기가 발굴되었으며, 2개의 군으로 형성되어 있다. 상석이 하부 석관의 개석 역할 을 하는 소위 개석식 지석묘로서 유물은 석검, 석촉, 홍도, 완이 있다. 이외의 지석묘는 헌신동, 부원동, 중덕동 등 10여개소가 알려져 있으며, 지석묘와 유사한 분포양상을 보이 는 입석은 부원동, 중덕동, 헌신동, 증촌리 등에 다수 분포한다. 주거지로는 청리유적에서 주거지 1동과 수혈이 발굴되었고, 복룡동유적의 하층에서 장방형 주거지와 원형의 송국리 형 주거지가 발굴된 바 있다. 이외에도 무문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산포지가 다수 전해지 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취락이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사벌국시대(초기철기~삼한) 1) 병성동유적 병풍산의 북서쪽 능선에서 발굴된 수혈유구에서 초기철기시대의 점토대토기가 출토되었 다. 발굴된 B-1호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규모는 길이 215㎝, 너비 125㎝, 깊이 57㎝ 인 수혈유구이다. 내부에서는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원형점토대토기, 주머니호, 발, 두형 토기, 유구석부, 탄화미 등이 출토되었다. B-2호는 평면형태가 타원형이고, 규모는 장축 203㎝, 단축 146㎝, 깊이 61㎝인 수혈유구이다. 내부에서는 조합우각형파수부호, 원형점 토대토기, 삼각형석도, 석부, 무문토기, 미완성석기, 박편 등이 출토되었다. 2) 이부곡토성(吏部谷土城)(경상북도 기념물 제127호) 사벌국의 고성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진 곳이다. 주변의 지형은 성안산을 중심으로 서쪽으 로는 외서천이 남쪽으로 흘러 병성천이 합류되어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충적평야 가 형성되어 있다. 사벌국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이부곡토성에 대한 조사는 1996년 사벌국 관련 지표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기초조사 및 시굴조사가 1998~1999년에 실시되었으며, 이부곡토성의 입지적 환경과 토성 단면조사 등이 이루어졌다. 토성의 평면형태는 자연구릉의 능선을 따라 전체적으로 ‘C’자 형태이며, 세부적으로는 다 섯 개의 면을 이루는 오각형에 가깝다. 토성의 규모는 둘레가 1,239m, 동-서간 330m, 남-북간 340m이며, 면적은 약 112,947㎡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토성은 구릉 사 면을 따라 축조되었는데, 성벽의 내부는 성벽 상면과 등고차가 없거나 극히 미미하지만 단을 지워 자연사면과 구분하거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주거지 등과 같은 공간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릉의 바깥쪽 사면에 성토한 부분은 편축형으로 축조하였으며, 성문지는 계곡부로 추정된다. 추정 성문지로 진입하는 길 좌측으로는 계곡이 형성되어 있 으며, 성문지에 이르면 좌측에는 현재 계곡부를 막아 농수를 확보하기 위한 연못이 위치 한다. 성벽은 북쪽과 남쪽의 완만한 구역은 성토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반면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고 자연 경사면이 가파른 서쪽과 동남쪽에는 자연 경사면을 성벽으로 그대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축성 시기는 시굴조사 C구간 트렌치에 출토된 두형토기를 통하여 그 상한은 초기철기시 대의 기원전3~2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고 하한은 경질토기로 보아 출토되고 있으므로 4~5세기경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토성 내외부에서 타날문이 시문된 와질토기편, 연질토 기편, 경질토기편 등이 채집된다. 3) 양범리 134유적 상주시 이안면 야무진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부지에서 발굴된 주거유적이다. 원삼국 시대 장방형 주거지가 분포하며, 유물은 중도식토기, 타날문토기들로서 호, 발, 옹, 시루 등이 있다. 이 유적의 주거지 양상은 중부지역의 주거지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자 료로서 상주의 초기철기~원삼국문화가 중부지역과 밀접한 교류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영남지역과 중부지역 간의 문화교류를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 로 기대된다. 4) 삼국시대 1) 병풍산고분군 병풍산고분군은 상주시 병성동ㆍ헌신동의 병풍산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고분군으로 병성동고분군, 헌신동고분군, 성동리고분군 등이 해당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상주시 중심가의 남동편에 위치한 병풍산(해발 365.6m)의 둘레에 해당되는 몇 개의 가지능선으 로 병성동고분군이 가장 규모가 크다. 병성동고분군(屛城洞古墳群)은 상주시 병성동 응국마을 동쪽에 위치하는 병풍산의 여러 능 선 중 북쪽과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일대에 봉분을 갖춘 대형의 고분군을 말한다. 병풍산의 정상 부근에는 둘레 1,770m의 포곡식 산성인 병풍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병 성천은 이 고분군의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하고 있다. 병성동고분은 일 찍부터 도굴의 피해를 입어 세간에 알려졌으며, 상주분지의 최고 위계 집단의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조사는 1999년에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는 병풍산의 서쪽 능선 허리부분에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조사결 과 삼국시대 석곽묘 78기, 옹관묘 11기, 석실분 11기, 주거지 4기, 수혈유구 12기가 확 인되었다. 석곽묘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선축된 1차 석곽묘의 단벽을 파괴하고 양장벽을 연장하여 2차로 석곽을 후축하여 추가장을 실시한 구조이다. 출토유물은 개, 이단투창고 배, 단각고배, 파수부배, 단경호, 장경호, 대부완, 기대 등의 토기류와 철촉, 철부, 철겸, 철도자, 철모, 등자, 재갈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유적의 형성시 기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말 정도로 편년된다. 성동리고분군(城洞里古墳群)은 1998년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건설에 따라 발굴조사가 실시 되었고, 토광묘 25기, 석곽묘 81기, 옹관묘 3기 등 모두 109기의 삼국시대 분묘가 조사 되었다. 또 2001년에는 국도 25호선 확포장공사와 관련한 발굴조사를 통해 목곽묘 3기, 석곽묘 150기, 옹관묘 6기, 석실묘 14기 등 모두 173기의 삼국시대 분묘가 조사되었다. 삼국시대 목곽묘는 능선의 중앙부에서 골짜기까지 비교적 일정한 열을 이루며 등고선 방 향과 평행하게 조영되었다. 이들 목곽묘는 장방형과 세장방형으로 분류되며, 4세기 중엽 경을 전후한 시기에 조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수혈식석곽묘는 5세기부터 조 영되며 늦은 시기까지 구조의 변형을 보이며 존속되고 있다. 이들 석곽묘는 추가장의 방 법으로서 시상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과 구별되어 먼저 선축된 1차 석곽의 한쪽 단벽을 파괴하고 석곽의 장벽을 연장하여 2차 석곽을 축조하였음이 밝혀져 고분연구에 좋은 자 료가 된다. 2) 신흥리지구 고분군 이안천이 흐르는 함창분지와 주변 산록을 포함하는 신흥리지구에는 신흥리고분군, 가장리 고분군이 해당된다. 신흥리고분군(新興里古墳群)은 함창읍 신흥리와 증촌리 일대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함창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고분군이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함창분지의 남쪽에 솟아 있는 오 봉산(해발 238m)의 북쪽 능선이며, 일부는 직경 20m 정도의 대형 봉토분들도 확인된다. 신흥리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97년에 상주-점촌간 국도3호선 확포장 공사 와 관련하여 고분이 분포하는 능선의 말단부를 따라 실시되었다. 발굴조사는 삼국시대에 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분묘 458기와 건물지, 담장지 각 1개소가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분묘는 삼국시대의 목곽묘 150기, 옹관묘 51기, 석곽묘 177기, 석실묘 45기 등 423기와 고려시대 이후의 분묘 35기도 분포한다. 이곳의 목곽묘와 석곽묘에서 출토된 토기 중 장 경호의 점유율이 높은 반면 영남지방에서 보편적인 기종인 고배는 아주 낮은 빈도로 출토 되고 있어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유물 조합상에서도 장경호, 단경호, 연질발이라 는 극히 단조로운 조합상을 보이고 있어 영남지방의 타 지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적 의 형성시기는 목곽묘의 경우 4세기 전반에서 5세기 후반이고, 석곽묘의 경우 5세기 중 엽에서 6세기 후반, 석실분은 5세기 후엽에서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가장리고분군(佳庄里古墳群)은 이안면 가장리 일대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숭덕산(해발 222.8m)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과 산사면에 위치한다. 이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2001년 중부내륙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이루어졌으며, 조사결과 삼국시대 석실분 13기, 고려시대 석곽묘 3기, 조선시대 이후 토광묘 13기, 용도미상의 유구 2기 등 모두 31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형성시기는 석실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았을 때 6세기 후 반부터 8세기 초까지로 추정된다. 3) 청리지구 고분군 병성천 상류의 청리고분군을 중심으로 월로리고분군, 원장리고분군, 청하리고분군 등이 해당된다. 이곳의 중심고분군은 청리고분군이며 인근의 기양산 정상부에는 마공산성이 위 치한다. 상주 청리고분군(靑里古墳群)은 기양산의 북쪽 말단부에 조성된 유적으로 청리면 마공리 일대의 속칭 밀매동산으로 불리는 해발 80~150m 내외의 낮은 구릉성 산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 대한 조사는 1996년 청리지방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발굴조사가 한국문화재 보호재단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지석묘 16기, 수혈유구 1기, 삼국시대 고분 217기, 기와가마터 5기, 건물지 1개소 등 모두 889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고분은 목 곽묘 63기, 석곽묘 45기, 옹관묘 20기, 석실 89기 등 모두 217기가 확인되었다. 목곽묘 는 능선의 등성이와 서쪽사면에 밀집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며, 묘광의 장축방향은 대부분 등고선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되어 있고, 서로 중복 없이 조영되어 각기 일정한 묘역을 가 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고배, 파배, 대부직구호, 단경호, 발, 철촉, 철겸, 철부 등이며, 유물의 부장상태로는 토기의 경우는 목곽 내부의 단벽쪽에, 철기류는 묘광 중앙부 바닥에 부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곽묘는 평면형태가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이며, 장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대부분 일치한다. 바닥은 할석을 깔아 시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출토유물은 고배, 개, 파배, 대부 장경호, 단경호, 철촉, 철검, 철부, 도자 등이다. 이 유적에서는 횡구식석실분이 58기, 횡 혈식석실분이 29기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개, 고배, 단각고배, 단경호, 완, 부가구연 장경호, 편병, 합 등 토기류가 대부분이고, 철도자와 청동과대금구도 있다. 유적의 조성연 대는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중엽으로 편년된다. 청리고분군의 분포양상은 마공리쪽 능선 에 석실묘가 중심이 되고, 용안리의 산사면에는 삼국시대 목곽묘와 석곽묘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4) 화달리고분군(化達理古墳群)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의 전사벌왕릉 뒤쪽의 독립 구릉상에 분구를 가진 삼국시대 고분군 이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산정부에서 뻗어내린 능선사면에 동서로 내려오면서 집중적으 로 조성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흔적만 남은 소형 석곽묘들이 배치되어 있다. 봉토가 잘 남아 있는 고분은 직경 15m에 이르고, 작은 규모의 고분은 직경 5m 내외이다. 이처럼 봉분이 있는 고총이 50여기 확인되었는데 봉분 곳곳에서 도굴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도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도굴갱을 통하여 고분의 내부를 살펴보면, 석 곽묘로 대개 편평한 할석으로 축조되었으며, 그 단면은 상부가 축약되는 사다리형으로 그 위를 4~8개의 천정석으로 덮은 모습이다. 또 내부 구조상 병렬의 주부곽식 또는 다곽식 의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지표에서 확인되는 유물로는 단경호와 장경호의 구연부편 등이 있으며, 고분의 내부 구조 가 병풍산고분군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5) 공검지 수리유적 삼한시대 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진 상주 공검지(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21호) 제방 일부 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공검지 제방의 축조수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성토 공정층과 부엽 공법 및 제방 보강용 목재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제방 유적에서 부엽공법과 목재시설이 함께 확인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규모 및 세부 축조수법 면에서도 고대 수리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특징적인 발견이다. 부엽공법(3~ 5개 부엽층)은 제방의 성토 공정층 하부에 잔가지류와 나뭇잎을 제방 진행방향 또는 직교 방향으로 3~5개층을 정연하게 켜켜이 깔고 그 사이에는 사질토 등으로 충진 다짐했다. 각 부엽층 사이에는 간간이 보강재를 대고 그 앞에 말뚝을 박아 보강하기도 했다. 또한, 부엽공법은 김제 벽골제, 함안 가야리 제방, 당진 합덕제 등 제방 유적과 서울 풍 납토성, 김해 봉황토성, 부여 나성 등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토성과 제방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공검지 부엽공법은 깬돌이 섞인 사질토를 두껍게 성토 다짐하여 기초부를 견고하게 축조하고 그 위에 시설한 점과 부엽층을 말뚝으로 보강 한 점 등 타 유적에서 발견된 부엽공법과 큰 차이가 있음이 확인됐다. 대규모 목재시설은 제방 성토 공정층 끝단에서 바깥으로 10m 떨어진 지점의 부엽층에서 확인된 것으로 현재 확인된 규모는 너비 5.5~.여 축조)으로 빈틈없이 깔고, 그 안 쪽으로는 단부의 것보다는 작은 직경의 나무를 빈틈없이 깐 뒤 깬돌이 섞인 사질토로 다 짐 충진했다. 그리고 목재 단부 앞에는 대략 3렬의 말목을 박고 그 사이로 나뭇가지를 엮 은 보강시설이 확인됐다. 제방 축조는 기초층 조성, 기초보강법 적용, 성토공정, 성토층 외단 보강의 순으로 이루어 졌으며, 제방의 초축시기는 기초보강에 사용된 목재의 연륜연대를 분석한 결과에 의해 7 세기 후반임을 알 수 있고, 개축시기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1129년으로 추정된다. 공검지 수리유적은 공검지 제방 중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으로서 이들 자료는 공검지 제방 축조의 전모는 물론 한반도 고대 수리 토목시설의 변천 및 발전 과정을 밝 힐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6. 통일신라시대 1) 복룡동 도시유적(사적 제477호) 상주시 복룡동 256번지 및 230-3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상주 시가지의 동쪽 외곽에 해 당된다. 유적은 상주의 북천과 병성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부터 동남쪽의 평야지대에 입 지하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일대가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주변유적은 서 쪽으로 상주읍성지, 상주관아지 등이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복룡동 당간지주와 조공제가 있다. 복룡동유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주택건설에 앞서 3차례 발굴조사(복룡동 256유적, 복룡동 230-3유적, 복룡동 10-4유적)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청동기시대의 주거 지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생활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유적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적심건물지, 우물, 수혈유구, 구상 유구 등 여러 시대에 걸쳐 조영된 생활유구가 주를 이루면서 당시의 취락 모습을 보여주 고 있다. 이들 유구의 배치상태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사벌주(沙伐州) 설치 당시에 적용된 이방제(里坊制)의 공간 구획에 의해 이방도로와 방(155× 155m 크기) 내부의 주거공간으 로 나눌 수 있으며, 이러한 공간구성은 조선시대의 읍성 설치 때까지 활용되고 있음이 확 인된다. 발굴된 지역은 사벌주의 도시 일부로서 적심건물지가 밀집된 공간과 일반 가옥의 공간으로 구분되며, 이방제에 따른 도로와 측구인 배수로도 확인된다. 우물은 모두 석조우물로 굴광의 평면은 원형, 타원형, 방형, 부정형의 형태를 보이고 단면 은 대부분 상광하협의 형태를 보인다. 최하단 시설의 재료는 크게 목재 또는 대형할석이 나 아무런 시설을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목재를 ‘정(井)’자 형태로 결구하여 사용하였다. 복룡동 230-3유적에서 확인된 구상유구 3기는 동서방향으로 조사구역 경계 밖으로까지 계속 연장되고 있다. 폭의 변화가 심하지 않고 진행방향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확인되며,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1호는 조선시대, 2호와 3호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 로 여겨진다. 특히 1927년도에 제작된 지형도를 보면, 상주읍성 주변을 둘러싼 해자가 읍성 북동쪽에서 구(溝)를 통해 동쪽으로 흘러가 남천으로 유입되는데, 1호 구상유구가 이 구의 위치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2·3호는 통일신라시대의 이방제에 의한 도 시계획상의 도로에 딸린 측구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옛 상주읍성의 시가지 계획상의 동서 가로망의 방향과 일치하고 구획된 크기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통일신 라시대 사벌주의 이방제 흔적일 뿐 아니라 조선시대 상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 계획 의 일단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유적의 출토유물은 토.도기류, 와.전류, 자기류 등이 출토되었으며, 토.도기류는 주로 고 려 및 조선시대의 것으로 병, 옹, 호, 완류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와.전류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암.수키와가 대부분이고 수막새와 명 문기와가 수점 있다. 자기류는 고려시대 청자, 백자 및 조선시대 분청자, 백자, 명문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명문이 새겨진 자기류와 와전류를 비롯하여 벼루, 석구, 추, 어망추, 동물뼈, 삽날형철기, 철송곳 등 생활용품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당대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복룡동 256유적에서 ‘사벌주(沙伐州)’, ‘답리(沓里)’ 외 다 수의 명문이 새겨진 납석제품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유적의 조성연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계획인 이방제의 시행이 확인되고 있어 사벌 주를 비롯한 9주가 설치된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들 도시유적이 조영되어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2) 구잠리 가마유적 상주시 낙동면 구잠리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 토기생산유적이다. 연도부와 소성부 천장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양호한 상태로 발굴되었으며, 토기가마 3기와 회구부를 비롯하여 석실묘 1기도 함께 발굴되었다. 토기가마의 구조는 반지하식으로 연소실 앞부분에 원형의 요전부와 배수로가 갖춰져 있다. 회구를 이루는 폐기장은 가마의 남쪽에 형성되어 있으 며, 출토된 토기는 인화문토기의 유개대부완, 호 등으로서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 가마의 조업연대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중엽에 해당된다. 7. 고려·조선시대 상주지역의 고려시대 자료는 복룡동유적과 청리유적에서 조사되었다. 복룡동유적에서는 건물지, 수혈, 우물 등이 다수 조사되었으며, 이들은 통일신라 이후 지속적으로 생활권역 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리유적의 토광묘에서는 청자류가 다수 발굴되었다. 고 려시대의 고고자료는 드문 편으로 앞으로의 추가 조사가 기대된다. 조선시대는 상주읍성이 축조되고 경상감영이 설치됨으로 인해 현재의 시가지 일대에서 당 대의 고고자료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 상주 왕산역사공원 조성부지내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관아시설에 해당되는 적심건물지 1동 과 기단건물지 1동, 연못 2기, 수혈유구 15기, 우물 3기, 공방시설 1기, 도로유구 2개소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류, 기와류, 금속유물, 목재유물 등 80여점이 출토 되었다. 조사대상지의 북편으로 동-서 방향의 도로가 확인되었고, 관아의 북쪽 경계로 볼 수 있다. 특히 연못유구 2기는 문헌과 고지도에서 전해지는 읍성 내부의 연못자료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관아시설 내부에서 잔존상태가 양호한 연못유구가 확인된 점은 의미 가 있다. 또 관아시설 중 고지도와 문헌에 표기된 건물들(이향정, 동헌으로 사용한 군자 헌, 청량각 등)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와 연못유구, 도로유구는 왕산 주변으로 관아시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 받침 하고 있으며, 왕산의 남쪽과 서쪽으로는 관아시설과 관련되는 건물지가 분포하고 있 을 가능성이 크다. 무양동유적에서는 조선시대의 건물지가 다수 확인되었고, 최근 조사된 무양동 제방유적은 북천의 치수와 관련한 것으로서 상주 시가지의 변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그리고 호음동의 자기가마는 조선 중기의 백자를 생산한 유적으로 확인되었으며, 인근에 서 야철지도 함께 조사되었다. 3. 고고문화 연구의 성과 상주지역 고고문화의 연구는 선사시대에 비해 사벌국시대 이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 며, 고고학적 주요 관점으로는 사벌국, 고분문화, 고대 도시유적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최 근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각각의 관점에 대해 개관적인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나아가 지 표조사, 발굴조사, 학술연구회, 학술지 발간을 통한 분야별 연구 성과를 살펴보도록 하겠 다. 1. 주요 관점의 연구 성과 1) 사벌국 사벌국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초기철기시대와 실제적 무대가 되는 원삼국시대의 문화 가 해당된다. 초기철기시대는 기원전 4세기로부터 기원전 2세기의 시기로서 세형동검과 점토대토기문 화로 대표된다. 병성동유적의 수혈주거지 B-1,2호에서 출토된 원형점토대의 옹, 두형토 기, 발형토기, 조합우각형파수부호의 존재는 상주의 초기철기시대를 대변하고 있으며, 전 상주 낙동리 출토 간두령, 쌍두령, 팔주령의 존재로 보아 이 시기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초기철기시대의 병성동유적 수혈주거지의 점토대토기와 전 상주 낙동리 청동유 물의 존재는 인접한 김천 문당동 목관묘와 대구 팔달동 적석목관묘의 자료와 견주어 볼 때 상주지역의 초기철기시대 문화가 영남지방의 일반적인 양상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원삼국(진.변한)시대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의 목관·목곽묘의 시기로서 대표적인 부장 유물로는 와질토기와 철기류를 들 수 있다. 상주지역에서 이 시기의 유적 으로는 사벌면의 이부곡토성이 대표되며, 금흔리와 신상리, 화산동에서 와질토기와 후기 무문토기 자료가 수습된 바 있다. 원삼국시대의 영남지방에서는 2세기 중엽경에 목관묘로부터 목곽묘로 전환되는 것으로 밝 혀져 있으나 아직 상주지역에서는 2~3세기경의 목곽묘 자료가 조사된 바가 없다. 이에 무덤을 통한 원삼국시대의 문화상을 명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다행히 토성을 통해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 영남지방의 토성은 대체로 3세기 말 ~ 4세기 전반에 축조되어 6세기까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부곡토성(吏部谷土城)은 상주지역의 원삼 국시대 문화상을 구축하는데 최적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토성은 앞 시기의 주거지군에 중복하여 축조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부곡토성의 하부에는 원삼국시대의 원 형계 주거지나 와질토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부곡토성에서 후기무문토기와 와질토 기, 그리고 각종 타날문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들이 채집되는 점으로 볼 때 이부곡토성은 원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삼국시대까지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로 보아 기원전 1세기로부터 4세기까지 삼한(진·변한) 소국의 하나로서 이부곡토성을 근거지로 하여 사벌국이 존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조사에서 대구 팔달동 또는 성주 예산리와 유사한 목관묘 유적이 확인되어 사벌국의 실체가 더욱 명확해질 것으 로 기대된다. 사벌국과 관련한 실질적인 고고자료는 아직 미미한 상태이다. 발굴자료가 부족한 형편이 고 상주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청동유물도 고고자료로서 가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벌국 과 관련된 집중적인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단지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의 자료가 사벌국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한국고고학의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특별전 등의 도록에서 자료의 소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사벌국에 대한 포괄적 인식은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삼국시대 의 고분문화에 대해서도 신라시대의 상주지역 고분으로 보기보다는 사벌국의 실체로 이해 하는 경향이 높다. 이러한 현상은 상주 지역민들의 정서에 남아있는 사벌국의 향수 내지 는 뿌리 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 연구 차원에서 사벌국에 대 한 구체적인 활동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사벌국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2) 고분문화 원삼국(삼한)시대의 진·변한으로부터 신라·가야로 바뀌는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4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사로국이 발전하여 신라를 구축하였지만 사로국이 신라의 중심으로 성 장하기 이전까지 영남 각지의 소국들은 상호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상주의 사벌국도 4세기까지는 그 세력이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고 고학 자료에 나타난 양상으로 볼 때 5세기 이후에는 신라와 직접적인 교섭 관계를 가졌 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영남지방의 고분은 4세기의 대형목곽묘(주·부곽식), 5세기의 수혈식석곽과 고총 (대형봉토분), 6세기의 석실묘로 변천하고 있다. 상주지역도 이러한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4세기의 대형목곽묘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상주지역의 고총 가운데서 중심 고분 군은 병풍산지구의 병성동고분군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아직 대형봉토분에 대한 발굴조사 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체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상주의 고분자료는 다수 확보되어 있으나 대개 부분적인 조사에 머물러 있어서 고분문화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서는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상주지역의 목곽묘는 영남지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 김해지역과는 달리 대형목 곽묘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소형 목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벌국 수장 세력 의 대형 목곽묘는 사벌면 이부곡토성이나 병성동고분군에서 발굴될 가능성이 있으며, 지 금까지 알려진 청리, 신흥리, 성동리고분군의 자료는 일반 성원의 목곽묘로 볼 수 있다. 영남지방의 공통적인 양상인 4세기 말의 고배자료가 청리고분군의 목곽묘에서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신라토기 발생기의 양상이 상주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신흥리 나-37,39호에서 보이는 합장식 목곽묘의 구조는 백두대간 너머 금강수계의 충청 지역과 동일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상호 교류관계가 주목된다. 영남지방의 5세기는 고총의 출현기로 인식하고 있다. 아직 수혈식석곽의 고총이 발굴된 자료는 없으나 도굴된 고총의 내부구조를 보면 수혈식석곽임을 알 수 있으며, 영남의 각 지방에서 동일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총이 출현하는 5세기 전반의 시기는 각지의 토 착세력이 유지되는 가운데서 신라의 중앙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 고총의 내부구조는 지역에 따라 달리하고 있는데 상주지역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 히 밝히기는 어려운 단계이다. 상주지역 재지 세력(사벌국 세력)이 어떻게 신라 중앙과 교 류하였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병성동고분군의 대형 고총에 대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상주지역의 대형 고총이 병풍산지구의 병성동고분과 함창지구의 신흥리고분군에 분 포하는 양상은 양 세력집단의 추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양상이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6세기 중엽경에는 횡혈식석실분이 나타나는 시기로서 단각고배의 출현에 의한 토기 문화상의 변화와 함께 신라의 상주지역에 대한 지방통합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반영하 고 있다. 특히 횡구식석실묘의 구조가 상주지역의 주요한 석실 구조로 언급되고 있는 점 에 대해서 이러한 양상이 상주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생 각된다. 상주의 고분과 토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으로는 홍지윤, 김진형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이들 논문에서 상주지역 고분의 구조와 성격을 밝혀냄으로써 학술적 기여도가 높다. 이에 더하여 상주박물관 개관5주년 기념으로 “5~6세기 고분문화와 古代 尙州”라는 주제로 학 술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통해 상주지역 고분문화를 해명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있 었다. 3) 고대 도시유적 상주는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도 그 중요성이 이어지고 있다. 6세기에 신라는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상주(上州)의 주치를 이곳에 두었으며, 그 후 신문왕 7년(687)에 사벌주를 복 치하면서 성을 쌓은 기록이 있는데 이성이 자산산성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상주의 중심지 는 이부곡토성과 병성동고분군의 병풍산성을 거쳐 현재의 상주시내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 다. 통일신라에 들어서 9주5소경제가 성립되었을 때는 10군 30현을 관할하는 상주(尙州)의 주치로서 기능하였으며 상주 복룡동의 도시유적은 이때부터 이방제(里坊制)에 따른 도시구 조와 배치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상주 복룡동유적(伏龍洞遺蹟)은 처음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지방도시유적으로서, 상주시가 지의 동쪽 외곽에 위치하여 이방제에 의한 도시 구조의 우측 끝 부분에 해당된다. 이 유 적의 발굴조사를 통해 상주지역에서 고대 도시의 출현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몇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통일신라시대의 이방제에 의한 도시계획이 조선시대의 읍성 설치 때에도 원상을 상 당부분 유지하고 있는 점은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지방도시계획의 변천 양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특히 발굴된 유구 중 복룡동 230-3 번지 유적의 북쪽 경계에 위치한 배수로(구상유구) 3기는 통일신라시대 사벌주의 도시계 획상 동서 가로망의 방향과 일치하고 단위 구획된 크기도 조선시대의 상주읍성을 둘러싸 고 설치된 해자의 배수로와 일치하고 있어서 지방도시계획의 변천양상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둘째, 이 유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생활유적으로, 이 유적에서 는 적심건물지, 수혈유구, 우물, 배수로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각종 인 화문토기와 기와, 자기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구와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부 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동일지역에 지속적으로 폐기와 건립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생활 자료로서, 당시 사벌주의 지방도시와 조선시대 상주읍성 외곽의 취락모습과 그 변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셋째, 이처럼 상주 복룡동 유적은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지방도 시의 구조와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우리나라 고대 지방도시의 구조와 성격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2. 분야별 연구성과 1) 지표조사 상주지역의 문화재 현황에 관한 기초적인 자료는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 람”의 간략한 유적의 설명과 소재지가 제시된 자료일 것으로 짐작된다. 상주의 문화유적에 대한 실질적인 지표조사는 “고대사벌국 관련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 서”(1996. 상주문화연구소)에 제시된 선사유적, 고분, 산성, 불적의 조사라고 하겠다. 조 사는 고고분야와 문헌분야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사벌국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고고분야의 조사는 현지조사를 통한 약측도와 사진 등이 제시되어 유적의 전 반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학술조사를 위한 지표조사가 분야별 또는 특정 유적을 대상으로 수차례 실시되었다. - “백화산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1998.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문화유적 분포지도 - 상주시”(2002.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상주 견훤산성 지표조사 보고서”(1997.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상주 불교유적 지표조사 보고서”(2010. 상주박물관) - “상주 병풍산고분군 지표조사 보고서”(2010. 상주박물관) - “상주지역 자기요지 정밀지표조사 보고서”(2010. 대동문화재연구원) - “사벌국 관련 문화유적 학술지표조사 보고서”(2012. 상주박물관) 이외에도 “상주-영덕 고속도로 건설사업예정지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2009. 대구대학 교 중앙박물관)를 비롯하여 개발사업에 따른 정밀지표조사가 다수 실시되었다. 이들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고고유적은 대부분 발굴조사와 연계되므로 고고학적 연구 성과는 발굴조 사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2) 발굴조사 상주지역의 발굴조사 자료는 개발사업에 따른 발굴조사가 대부분이다. 최근의 왕산공원 조성사업에 따른 발굴조사에서 상주읍성의 관아유적이 발굴된 사례와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병성동고분군, 성동리고분군, 유곡리고분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주택건설 사업을 위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복룡동유적은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상주 유일 의 사적지로 지정·보존되기도 하였다. 주요 발굴조사의 보고서를 모두 열거하기에는 지면 이 부족하므로 별도의 참고문헌으로 대체한다. 3) 학술연구회 상주의 고고학적 학술연구회는 상주박물관 개관 이후에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학술연구회에 한정하여 학술연구회의 주제와 세부발표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011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의 제24회 조사연구회가 “고대도시 상주와 복룡동유적”의 주제 로 상주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대 도시 상주의 탄생(이영호), 상주 복룡동유적의 발굴 조사 현황과 성과(권헌윤), 분묘자료로 본 상주지역의 고대 정치체(김진형), 복룡동유적으 로 본 통일신라시대 사벌주의 도시구조(박달석), 통일신라시대 상주지역 瓦 연구(박헌민), 상주 복룡동유적과 경주 왕경(이은석)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상주 공검지의 역사성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2011년에 상주박물관에서 개최되었 는데, 한국의 수리시설과 역사성(이영호), 상주 공검지 연혁과 규모(김철수), 상주 공검지 발굴조사 현황과 성과(김찬영), 상주 공검지의 퇴적환경 및 형성(황상일), 일본의 수리시설 과 협산지유적(小山田宏一), 중국의 고대 수리시설(張劍光)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2012년 상주박물관 개관5주년을 기념하여 “5~6세기 고분문화와 고대 상주”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상주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발굴조사 성과로 본 고대 상주(박승규), 상주지역 5~6세기 분묘의 축조 추이(김진형), 삼국시대 상주지역 출토 토기의 특징(서경민), 상주지 역 고분자료의 역사고고학적 이해(김대환), 일본의 5~6세기 고분문화의 추이(柳本照男)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2013년에는 “조선시대의 상주”라는 주제로 조선시대의 상주(김호종), 고고학적 성과로 본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중심지(박달석), 조선시대 상주의 군현지도와 영남지도(김기혁), 경상 감영과 상주읍성(한기문), 조선시대 상주의 유학(김학수)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상의 학술연구회는 상주의 고고학적 주요 관점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상주지역 고고문화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연구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4) 학술지 발간 상주지역의 고고자료를 다룬 학술지는 전시도록이 대표적이다. 2003년 국립대구박물관의 기획특별전과 연계된 “상주 - 영남 문물의 결절지”도록은 선사 시대의 상주, 사벌국의 성립과 강성, 신라의 세력 확장과 상주, 영남문화의 결절지, 국난 의 극복과 새로운 통합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신 발굴자료가 소개되었으며, 상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시도록으로서 상주지역 고고자료를 집성한 점에서 의 미가 크다. 2008년 상주박물관 개관 도록으로 “상주 - 옛 상주를 담다”가 발간되었는데, 상주의 자 연지리적 환경, 선사시대의 상주, 사벌국과 신라,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상주, 조선시대의 상주, 근대의 상주로 구성되어 있다. 상주의 고고문화에 관한 학술지는 상주박물관의 학술연구총서와 문화총서 및 조사보고서 가 발간되고 있다. 학술연구총서에는 전시도록 이외에도 “상주분묘자료집성”이 2012년에 발간되었는데 삼국~통일신라시대 상주지역 분묘자료의 현황과 분포도를 비롯하여 청리고 분군을 필두로 상주에서 발굴된 모든 고분군의 유구와 유물의 도면을 유적별로 수록하였 다. 또 문화총서 중 고고문화와 관련된 학술지로는 2013년에 발간된 “상주 병풍산”이 있 는데 병풍산을 둘러싼 자연지리 및 고고학적 환경, 병풍산성의 조사, 병풍산유적의 보존 정비와 활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4. 고고문화 연구의 과제 1.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의 지속 ① 고분군의 조사와 연구 방향 : 상주의 고분군은 사벌국으로부터 발전된 전성기의 상주 문화를 보여줄 것으로 파악된다. 고총이 출현하는 5세기에는 역사상 사벌국이 신라에 병 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토착세력으로서 신라와 연합하던 시기이므로 5세기의 병풍산고분군은 사벌국 최고 수준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고분 연 구가 사벌국의 역사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통해 고대 상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더불어 사벌국의 고성으로 추정되는 이부곡토성에 대해서도 발굴조사를 수반한 고고학적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이부곡토성과 금흔리, 병성동 하단의 구릉부 에 대한 발굴에서는 사벌국 수장 세력의 대형목곽묘가 발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기획에 의한 학술 발굴조사의 추진이 필요하다. 이로써 고분문화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집중적 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실행되면 사벌국과 상주의 고분문화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② 고대 도시유적과 상주읍성의 조사 : 상주읍성은 조선시대에 구축된 기념물로서 지금은 하부구조만 남아 있다. 최근에 왕산 둘레에서 관아지가 일부 발굴되어 시가지 아래에 묻 혀있는 조선시대 상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상감영이 상주에 설치된 역사적 사 실에 비추어 보아 상주읍성의 실체 파악은 상주의 자랑이고 뿌리의 확인이다. 상주읍성의 성벽과 주요 시설물의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다만 고 지도와 문헌에 의한 고증을 통해서 복원을 추진하는 방안은 재고되어야 한다. 복원에 앞 서 발굴조사를 통해 단편적인 양상이라도 찾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복원을 추진하 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시가지의 개발사업에 앞서 상주읍성의 위치와 구조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사전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하나 더 덧붙이면, 상주의 시가지와 그 주변에는 상주읍성의 유적만 분포하는 것이 아니 다. 오히려 통일신라시대의 사벌주, 상주의 역사 흔적이 함께 존재하는 사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 바로 사적지로 지정된 복룡동유적이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전모를 가 장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시대 상주를 찾기 위한 노력에 고고학계와 상주시, 상주시민이 함께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2. 유적의 보존과 활용 상주지역의 고고문화적 측면에서 유적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논의는 수차례 논의된 적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대 사벌국과 연계된 병풍산고분군과 통일신라시대 도시유적으 로서 상주의 위상을 보여주는 복룡동유적에 대한 보존과 활용에 대해 다시금 제기하고자 한다. 상주 병풍산고분군은 상주의 중심고분군이다. 그렇다면 상주의 시민들과 청소년들이 병풍 산고분군의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 이다. 상주에도 당연히 고분군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경주나 고령처럼 상주에도 웅 장한 고총(대형봉토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이 아직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병풍산고분군의 보존과 활용의 한 방안으로 고분군의 현상을 알리고 고분군의 외형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고분군을 덮고 있는 수림의 간벌작업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된 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으나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사례를 볼 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또 하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기왕의 고분 발굴 자료에 대한 평가이다. 지금 우 리가 알고 있는 병풍산고분군 발굴 자료는 고분군 외곽의 것들로서 상주의 고분문화를 완 벽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고분연구에 의하면 대형 고분은 능선 아래로부터 상부로 순차적으로 축조된다고 하므로 출현기 고총에 해당되는 능선 하단부의 고총, 즉 수혈식석 곽을 내부주체로 하는 고총에 대한 발굴조사가 필요함을 제기한다. 다음은 병풍산고분군의 보존에 관한 문제로서, 병풍산고분군은 과거부터 도굴에 의해 많 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러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 음도 불문가지이다. 더불어 도굴갱에 대해서도 고고학적 조사방법을 통해 수습 정리할 필 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 시민과 청소년들이 함께 참관하고 탐사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 게 고분군 보존과 활용의 방향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상주는 경북 내륙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고대 도시로서 자긍심을 가질 필요 가 있다. 그만큼 많은 유적과 역사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상주 복룡동유적은 고대 도시 상주의 변두리에 해당될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지금 상주의 시가지가 고대 도시 상 주에 해당됨은 분명하다. 고대 도시에 살면서 고대 상주의 역사를 느끼고 있는지 묻고 싶 다. 또 상주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록에 분포하는 고분군이 고대 상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만 한다. 사벌국의 후예로서 사벌국과 왕릉의 이 야기, 고대 도시 복룡동유적과 왕산을 둘러싼 상주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 널리 공유할 필 요가 있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1998, 『벽화산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 , 1999, 『상주 이부곡토성 시굴조사 보고서』. , 2001, 『상주 병성동고분군』. , 2003, 『상주 신상리 구석기유적·유물산포지』. , 2003, 『상주 신상리 고분군Ⅰ,Ⅱ』. , 2003, 『상주 헌신동고분군』. , 2003, 『상주 성동리고분군』. , 2005, 『상주 신상리 구석기유적』. , 2006, 『상주 병풍산성』. , 2013, 『공검지 제방 유적』. 국립대구박물관, 2003, 『尙州 - 영남 문물의 결절지』, 2003국립대구박물관 기획특별전. 대경문화재연구원, 2007, 『상주 호음리 유적』. 대동문화재연구원, 2009, 『상주 양범리134유적』. , 2010, 『상주지역 자기요지 정밀지표조사보고서』. , 2011, 『상주 무양동 152유적』. , 2013, 『상주 마공리분묘군』. 사벌국역사보존회, 2012, 『병풍산고분군의 정비와 활용방안 세미나』. 상주박물관, 2010, 『상주 병풍산고분군 지표조사 보고서』. 상주박물관, 2012, 『尙州墳墓資料集成』. 상주박물관, 2012, 『沙伐國 關聯 文化遺蹟 學術地表調査 報告書』. 상주박물관, 2012, 『5~6세기 고분문화와 古代 尙州』, 개관5주념 기념 국제학술대회. 상주박물관, 2013, 『상주 병풍산』, 상주박물관 문화총서3. 상주문화연구소, 1996, 『고대 사벌국관련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세종문화재연구원, 2003, 『상주 구잠리 489번지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2004, 『상주 복룡동 256번지 유적Ⅰ~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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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따라서 상락군이라는 이름은 상주가 그에 버금하는 유교문화의 창성지라 는 자부심에서 이름 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상낙(上洛) 동(東)쪽의 강이라는 낙동강(洛東江)2)이 라는 강이름이 탄생되었고 강물을 따라 문물이 오감으로 하여 영남문화의 거점 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려 성종대(987년경)에는 전국 12목에 지방 관학을 설치할 때 상주목 또한 향교가 설치 된 것으로 추정하여 그때에 이미 중국유학의 근간인 한문교육이 이루어지고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지역 을 선도하는 재지사족(在地士族)이 출현하게 되었고 조선조 초기부터 이 들과 외처 명문가와의 인연관계가 이루어지므로 하여 유능한 명문가들이 상주땅에 유입하여 터 잡아 살게 되었다. 조선중기에는 영남학맥의 주 류인 퇴계학맥이 도입되어 수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으며 도남서원을 1) 상낙군 설치는 권4(진흥왕 18년) 그리고 권28 “상주목 건치 연혁” 2) 낙동강 이름은(1425) “도내명산대천조”(1454) “대천” 조 와 창석본(1617) 청대본(1749) 구당본초책(1786)에 수록된바있고 이중환의 (1751년경) 8도 총론 경상도 조에 “爲洛東江, 洛東者 謂尙州之東也”라고 명정하였음 - 2 - 비롯한 성리학 교학 시설이 번창하여 영남학맥의 대간으로 조선 말기에까 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유학(儒學)을 따르는 명문(名門)집성촌이 상주관 내 곳곳에 문호(門戶)를 이루고 유무형(有無形)의 많은 유교문화 유산을 남겼다. 기록상으로 상주의 유교유학사실(史實)은 대체적으로 창석본 (1617)청대본(1749) 구당본 초책(草冊)(1786) 무진본(1928)과 현대에 와서 (1989년 상주시 . 군)에 이어 2010년도에는 상주 역사를 총괄하는 종합 지지(地誌)라 할 수 있는 상주시사(尙州市史)를 통 사(通史)로 하여 여러 갈래의 문헌이 남아있고 이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 었다. 이때를 맞추어 상주 박물관에서 상주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학술대회의 한몫으로 유교 부문의 연구 성과를 되돌아보고 금후의 연구 방향을 가늠 하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아주 소중하고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고는 필자가 나름대로 소장 수집한 각 분야 연구 문헌을 토대로 하여 그 실태를 살펴보고 이 시대 우리 상주인 들이 이에 대한 발전 방안을 제 언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2. 상주유교문화개관 가. 상주유교문화의 전승 상주의 유교문화 형성기반은 고려시대부터 상주사족으로 터 잡아 살아온 상산김씨(商山金氏)가문의 문무를 겸전한 큰 인물들이 배출되어 이들 선 유(先儒)들의 가학학맥(家學學脈)이 뿌리박혀 대간(大幹)을 이루었다. 그 리고 이 가문과 혼맥인아(婚脈姻.)관계로 타 지역의 명문 후예들이 대거 래거(來居)함으로 하여 상주유교문화 창성에 기반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이들 래거 사족들이 재지사족들을 능가하여 재지사족 과 함께 상주유교문화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재지 대표 사족이라 할 수 있는 상산김씨이고 이들의 유풍이 래거 가문에 크게 영향 을 주었을 것이다. - 3 - 조선시대에는 상주와 행정구역을 달리하였으나 상주권 문화영역이라 할 수 있는 함창에 고려말 홍건적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 하였다가 상주 를 거쳐 갔던 공민왕을 호종하면서 함창에 정착한 함령군 김요와 김택이 일가를 이루었고 안동권씨 검교공파 서천공 권회(權恢)가 함창땅에 터잡 아 이 가문과의 혼맥 사승(師承)으로 함창 고을 유교학맥의 연원이 되었 다. 상주상산 김씨와 함창 검교공파의 서천공 가문과의 혼맥 관계를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o 상산金씨3) . 典書公(諱元理)의 子 居道의 女壻 洪汝剛 - 女黃保身 방촌의 仲子소윤공 중모황문 韓 謙 - 父韓哲中(夢溪) 청주한씨문 女壻李垠 - 흥양, 월, 창의 6代조 청리 달래 흥양 이씨문 . 典書公의 長子觀道의 손서黃致身(방촌의 장자) . 文忠公(휘得培)의 女壻趙云.(無后) 풍양조씨 門 ※趙崇 낙동조문입향조와 당내 낙동풍양조씨문 . 商山君(휘得齊) 손서金守和 영산인 외남 石川門 女 金季昌 회산인 외남 白石門 . 고손서 張順孫의 女壻 - 趙允寧(부사공)검간조정의 증조부 3) 권1, 상산김씨 대동보편찬위원회 2004회상사 - 4 - . 女壻鄭義生 진양인 우복정문 ※ 父鄭澤 - 고려말 상주목사 鄭國成(복제)의 女壻孫糖의 子 경주인 야촌 손만웅 門 . 女壻 朴允昌 상산박씨 門 . 洛城君 (휘先致) 女壻 盧崇 (敬平公) 광산인 화령 .齋門 고손서 洪貴達 缶林人 함창 虛白亭 門 증손서 郭得賀 o 안동“權”씨 儉校公파 ※공검율곡 파조設壇4) . 支下 휘 恢(舒川公) ※桐溪達手의 조부 · 女壻 朴紹宗 - 子訥(杏亭) 함양인 이안 五鱗門 · 女壻曺珣 - 子繼衡(退憂堂) 창녕인 6세손 友仁 希仁 매호조씨門 손서 蔡壽(懶齋) 인천인 이안 문경 門 · 女壻李湊 - 子 李自堅, 李自健, 李自華 3형제 星州 李氏門 조선조 초기에 상주에는 점차 인재가 불어나게 되었는데 거개가 재지 사 족들과의 혼맥 관계였다. 대표 씨족으로는 재지 상산김씨, 함령김씨로 인 한 래거가문으로 흥양이씨, 광산노씨, 풍양조씨, 장수황씨, 부림홍씨, 창령 조씨, 진양정씨, 영산김씨 신창표씨, 안동권씨, 진주강씨에서 절의(節義) 직신(直臣)들이 많이 배출되어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기본으로 하는 유자 (儒者)가 향중의 중심인물로 부각하여 상주를 선비의 고장으로 격상시켰 4) 안동권씨대종회 2004, 도서출판 해도지 - 5 - 다. 이 시기에 대표적 인물을 열거하면 집현전 부제학과 경연(經筵) 사직(史 職)으로 청간(淸諫)선비였던 김상직(金尙直), 태종조 검교 우의정 경평공 (敬平公) 상촌(桑村) 노숭(盧崇) 그리고 경평공의 증손자로 학술이 고명 하였던 노덕기(盧德基) 성종대에 직신 이었던 백석(白石) 김계창(金季昌) 연산조때 대사간으로 직간(直諫)하다가 아들 3형제와 더불어 참형(慘刑) 을 당한 강형(姜.), 김종직(金宗直), 조위(曺偉), 성현(成俔)과 함께 동 시대 4군자(君子)로 칭하였으며 문형(文衡)으로 인재를 발탁하여 영남 사 림파에 큰 영향을 주었고 무오사화에 화를 입었던 허백정(虛白亭), 홍귀 달(洪貴達), 김종직의 문하에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과 함께 도의교(道義交)하며 점필재의 학통을 이었다고 하는 도학, 문장가요 연산 조의 폭정에 위국충정(爲國忠情)의 간언(諫言)으로 무오사화에 화를 입은 남계(濫溪), 표연말(表沿沫)의 절의 정신은 상주함창 유교 도학의 맥이라 고 하겠다. 또한 안동 권씨 가문의 권민수(權敏手), 권달수(權達手)형제의 절의와 학문은 유교도학 선비가 행하여야 할 길을 교화하였으며 상주가 충효정신을 실천궁행한 선비 고장으로 비롯하였음을 말해주었다고 하겠 다. 연산조의 폭정에 반하여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문치(文治), 유학(儒學)을 장려하여 홍문관과 경연관의 부활과 사학(四學)을 수리(修理)하며 권선징 악과 상부상조를 정신으로 하는 유교적 미풍양속인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여 향풍쇄신으로 유교적 도덕국가 건설에 힘쓰게 되었 고 이에따라 상주에도 뛰어난 유교도학 선비가 배출되어 조선중기 도학학 맥의 근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상주가 배출한 출중한 인물로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을 들 수 있다. 주신재는 비록 상주에 후학이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조선최초의 사설교육기관의 효시라고 하는 백운동서원을 창건하 여 조선 유교도학의 역군을 길러내는 서원유교 문화를 꽃피우는데 큰 역 할을 한 인물이다. 조선명종 년간에는 영천자(靈川子) 신잠목사가 상주목백으로 부임하여 상 주유교흥학을 크게 일으켰으니 하곡서당을 비롯한 18개 서당을 관내 곳곳 에 창설한 것이다. 이때 신 영천자와 함께 상주 교육진흥에 이바지한 상 - 6 - 주인물로 후계(后溪) 김범(金範)의 선비적 학행은 후대 상주유교전승에 줄기였고 동시대 서대(西臺) 김충(金沖)과 난재(.齋)채수(蔡壽) 그리고 행정(杏亭), 박눌(朴訥)등도 상주함창 유교도학 군자로 이름났다. 함창에 서천공 권회(權恢)의 사위로 시거 하게된 성산인(星山人) 이주(李湊)가 있었는데 공의 아들 이자견(李自堅), 이자화(李自華) 3형제도 연산조의 불의(不義)에 과감한 직신(直臣), 고절(高節)로 향토사림의 추승을 받았 다. 상주 중모의 소윤공(小尹公) 홍보신의 손자 황관(黃瓘)은 다섯 아들을 두 어 모두 현달하였는데 그 중에 황여헌(黃汝獻), 황효헌(黃孝獻)은 중모 유교 학맥의 중심인물이었고 반간(槃澗) 황뉴(黃紐)에 이어 황면(黃緬), 황빈(黃.), 황란선(黃蘭善)등 유교현사들이 백화산 아래 옥동서원을 귀 의처로 하여 조선 말기에까지 이어 배출되었다. 조선조 인조연간은 내우 외환의 연속이었으나 상주유교도학은 큰 변혁을 가져와 이후 상주 유교학 맥에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그 중심 철학이 퇴계의 4대적 전 제자 중 한분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 龍)이 1580년 상주목사로 도임하여 비록 9개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