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1곡이 17주간 1위를 지킨 적을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무려 4개월 하고도 1주일을,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채,
다시 말하자면, 지난 2월 첫째주부터,6월인 지금 다음주까지,
1곡이 가요계에 항상 1위를 했다는게 믿어지시나요?
난 알아요,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 청소년들과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힙합,
저는 그것을 누가 가능하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장엔 구두를 신어야 알맞은 옷차림일것입니다.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다면 어떨가요?
어울리지 않겠죠?
그렇다면,
지금 청소년들과 가요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힙합이란 곡에
듣기에도 생소한 태평소라는 한국 국악 악기를 넣어서
노래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어색할것같지않나요?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하여가"라는 곡을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곡은 1993년 6월에 한국에서 발매된 노래입니다.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또 예를 들어볼까요?
텔미라는 노래가 가요계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정말 괜찮은 곡입니다.멜로디도 경쾌하며,듣는 사람이야 말로
활력을 주는 노래라고 할수있습니다.
전 국민이 텔미를 불렀으며,춤을 추었습니다.
보기에도 좋았으며,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점이 인상깊었던 곡입니다.
그럼...혹시
60대 노인분들이나, 3~40대 주부분들이
텔미를 직접 음반매장에 가서 구입한 경우를 보신적이 많으신가요?
물론 훌륭한곡이기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고 봅니다.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이있습니다.
통일을 노래한 곡인데, 남한과 북한이 서로 엇갈린 운명을
슬퍼하며 만들어진 곡입니다.
가요계에...통일이라,,,
지금 아이돌들이 통일을 외치고 있나요?
당연히 아니라고 봅니다.
이 곡이 실린 3집 앨범은 다소 미약한 성공이었습니다만,
60대 노인분,30대 주부, 3~40대 샐러리맨이
직접. 레코드매장을 찾아가서 앨범을 구입하게 만들게 한
곡입니다.
한 가수가 10대에 치중해버린 노래나 음악을 선보인것이아니라,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할만한 노래들을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발해를 꿈꾸며,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교실이데아 라는 곡은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피가 거꾸로 솓고 눈물이 쏟아져서 들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래란 희망과 꿈을 담은 것이라고도 할수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란 너무 힘들다는것,
집을 나가 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부른다고 다시 되돌아 오지 않는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꿈과 희망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1995년,한창 10대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청소년 흡연,범죄,일탈 행동이 증가할 시점에,
가장 문제는 청소년 가출이었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여러 부적절한 행동,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며, 밤이되도록 집에가지않고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돈을 뺏고,일탈행동을 즐기는것이
그때부터의 본격적 시작이었습니다.
'COME BACK HOME'
집으로 돌아가다, 라는 뜻입니다.
서태지는 4집 타이틀곡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습니다.
"서태지는 이제 한물갔다."
"별은 뜨면 지게 되는법이다"
"새로운 그룹의 시작"
언론은 서태지의 도약을 밝게 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좀더 빠르고 좀더 세련되고 가벼운 랩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이 곧 가요계에 성공이자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서태지는 모든것을 배제하고
너무나도 비트가 느리며,발음이 딱딱 끊기는,너무나 가사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듯한 의도가 담긴
한국 최초 "갱스터랩"시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언론은 충격이었습니다.
가요 차트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은
음반발매 1주일만에 방송 2사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가요계에서 음반발매 1주일만에
1위를 차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서태지라는 사람의 인기는
4집이라는 판도에서 정말 "극악"이라는
말을 써야 할것같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한다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한 가수가,음악을 하는 한 가수가,
대한민국을 뒤덮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레코드판매점에서 서태지와아이들-컴백홈이 흘러나오면
지나가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잠시 멈춰서서 물끄러미
듣고 갈 정도였습니다.
왠만한 4~50대 아저씨들도 밤거리에서
컴백홈의 가사 1~2줄은 외우면서 부르고 다녔습니다.
- 내 삶의 끝을 본적이 있어,내 가슴속은 갑갑해 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의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 조차 없었어...-
컴백홈은 단 한주도 빠짐없이 1위를 놓치지않고
그때 당시에 가요프로그램 골든컵이라는 상이라는것이
존재했습니다. 5주연속 1위곡은 활동을 멈추고
시상을 하고나서 후속곡을 진행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서태지가 컴백홈으로 립싱크를 하던,라이브를 하던
무대위에 컴백홈이란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면
팬들의 함성으로 노래는 소리인지 무감각해질정도였습니다.
노래부분에
"터질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것을..."
이 부분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팬들의 엄청난 노래 때문에 방송을 진행할수조차 없던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입니다.
가출청소년,
집을 나간 아이들,
그들이,
정말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절대 조작되거나 거짓이 아닙니다.
가출청소년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단지 한 음악인의
노래를 듣고서 말이죠.
9시 뉴스 방송 3사의 모두 방송이 되었습니다.
-태지오빠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눈물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서태지 현재인기를 물어보셨지만,
과거를 알지못하면 현재는 필요가 없습니다.
1995년 당시 컴백홈의 안무를 추지 못한다면,
한국인이 아닌 취급을 받았습니다.
집에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비니를 중심으로 색깔 비니와
카고바지가 없다면
다른 친구와 즐겁게 놀수 없었습니다.
지금 글씨색상은 빨간색입니다.
1995년, 지금의 글씨색상처럼
가수가 같은 색상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나온다면
어땠을까요?
1명도아닌 서로 다른색으로 3명이 말입니다.
"필승"이라는 곡 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시련,아픔
너무 사랑해서 마음속에서 죽이고싶은 마음을
표현 한곡 입니다.
서태지는 한마디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보수적인 한국 방송계에
지금의 글씨색상과 똑같은 색상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후속곡을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언론의 비판과 눈총을 받았으며,
방송출연을 의심해봐야 하지않나 까지 생각했습니다.
서태지는 그 자리에서
불가능이 아닌, 끝이 아닌 그리고 를 보여줬습니다.
한국에서 방송에서 염색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의 시초가
서태지 입니다.
필승...
지금 현재 가요계에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노래입니다.
1995년 서태지 작사,작곡,편곡한 노래로써
현 가요계에 스타일을 예언한 노래였습니다.
뮤직비디오가 서태지로 인해서 알려지며,
그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아무 장비없이
차에 타서 게릴라 콘서트를 즐기는,
스노우보드를 마음대로 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무서울게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모든 10대들과 모든 대중들은
경악,충격,극악이었습니다.
마치 새로운세상을 여는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아무도모르게...아무도모르게...
설레였던 나의 마음을...아름답던 기억들을 없애놓을거야...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미치도록 사랑스런 너의모습을...
한국 가요계에 가사의 반말이라는것,
유토피아를 꿈꾼다는것,
창작의 자유를 표현한다는것,
그것은 꿈이자 희망이자 불가능이었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서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come back home,필승...
이 두 곡만은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곡들은 1995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가요계를 예언하여 그것을 뛰어넘는 곡입니다.
옛날노래,촌스럽다,비주류라는것은 떠오르지않을것입니다.
5집의 얼굴없는 앨범을 거쳐,
6집의 왕의귀환,울트라맨이야를 거쳐,
7집의 2004년 로보트, 4년이지난 지금까지 50만장 판매고를
아직까지 아무도 깨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기를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서태지는 가요계에 살아있는 신화 이자,
영원한 히어로 입니다.
중졸의 초라한 학력에 불과한 한 소년...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서태지,
학력은 결코 절대적인것이아니다,
라는것은 서태지가 본보기가 된것입니다.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연주,편집,
모든 패션을 자신이 생각해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
하면 되는 사람,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보여준 사람,
173cm에 평균 키를 가진 서태지는
그렇게 거대하고 커보이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대중에 판도를 모두 뒤집어버리며,
가요계를 4년동안 서.태.지 하나로 매꿔버린
그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남기고
1월에 마지막날인
1996년 1월 31일
아무런 예고와 반응도 없이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나갑니다.
1996년 1월 31일.
대한민국 50년 100대사건에 포함된 날짜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KBS,MBC,SBS 9시 뉴스 메인은
모두
서태지와 아이들 전격해체를 다루었습니다.
"저희는 지난 4년간의 음악활동을 마치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여러분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써 그것을 숨긴 체,
가요계에 활동하는 한 그룹이,
한 사람이,
뉴스에 오랫동안 나오며 다루어질수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인 서태지는 해체의 이유를 창작의 고통이라고
말했습니다.
1집을 거치고 2집을 거치고 3집을 거치고 4집을 만드는 동안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은
모두 서태지 작사,서태지 작곡,서태지 편곡 이었습니다.
20살의 젊은 나이에서,
25살 까지 이르기 동안 모든곡을 작사,작곡한 사람은
유일무이 했습니다.
완벽주의자 였던 서태지는 작사,작곡을 할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않으면 악보를 찢고 다시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에서 그 훌륭한 곡들을 만들때
고통은 25살 청년에겐 너무 큰 고통이었나 봅니다.
그의 근거는 서태지는 무려
5개월동안 단 한번도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음악작업을 할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음악에만 전념하겠다"
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정말 극악한 인기를 실감한 서태지는 완벽하지 않으면 안됀다는
큰 부담을 안고 정말 대단한곡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정말 음악작업이 안돼고,마음이 답답할때는
서태지가 아닌,
정현철(서태지의 본명입니다.)인 사람으로 돌아와,
R.C카(리모콘으로 조종하는 레이싱 게임)를 너무 좋아해서
넓은 곳에서 R.C카를 조종하고 R.C비행기를 날렸다고 합니다.
서태지는 그 당시 20대 초 중반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술 담배를 전혀 입에대지 않았다고 합니다.(30대에 들어서는 조금씩,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로 가장 좋아하는 알씨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근거로 보자면,
언론이었습니다.
언론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서태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서태지가 한국에서 최초로 활동중단을 선언했을때,
서태지는 죽었다.서태지는 사실 게이다.서태지는 임신했다.
정말 말도 안돼는 것을 기사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서태지가 조금이라도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만들면
그것을 조금 더 과장시켜
3집에서의 서태지의 노래를 거꾸로 들어보면 사탄의 소리가 들린다.
서태지는 악마이다.
4집에서의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심의에 걸리고
방송출연 금지가 되자, 서태지 출연금지 잘했다,서태지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영향 끼쳐,서태지 원색의 염색 논란,
정말 터무니없는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현대의 들어서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많은 스타들이
악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는걸 잘 아실겁니다.
그때당시는 언론이었습니다.
90년대에 탤런트,가수,MC모든 방송분야 활동인을
통틀어도 서태지 한 사람의 인기를 차마 넘지 못합니다.
그런 인기인에게
얼마나 고통의 시간이었을까요.
언론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병역면제를 키워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서태지,이주노는 모두 군 면제자입니다.
양현석은 군대를 입대한지 1년만인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왔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태지(성격장애),이주노(생계곤란)
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서태지는 서울 북공업 고등학교(1학년 자퇴)이기 때문에
최종학력이 중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중졸은 현역면제대상이었고,
그 당시 신체검사에서 면제대상은 무려 40프로 이상이었습니다.
시나위 시절,신체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고,옅은 화장을 하고,뽀얀피부에
옅은 목소리,이상한 옷차림,
그 당시 사람들에겐 서태지는 정신병자,혹은 미친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태지는 성격장애라는 판정으로 현역면제가 됩니다.
아직도 서태지 병역논란은 문제로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대도 말이죠
돈으로 면제받았다,군대도 안간게 무슨가수,아무이상없다.
많은 사람들에 말이 있지만
그 당시 서태지는 돈이있었던것도 아니고,뒤로 빽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머리를 쓴것도 아닙니다.
국가가 그의 면제를 인정한 것 뿐입니다.
이러한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서태지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것도,정말 극악한 인기로 인해,
유림회관을 빠져나와,
서태지 1명만 승합차에 타는 시간이 20분넘게 소요되었습니다.
승합차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온 팬들 때문에
3번이상 출발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엄청난 인원을 감당하지 못해,
공항까지 양현석,서태지,이주노 3명은
헬기를 타고 공항까지 어렵게 가서
역사적이었던 이 3명의 남자는
"우리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은 연락하지 말자,
다만 태지가 한국에 다시 돌아온다면,너 나한테 꼭 연락해라,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3명이서 아주 매운 햄버거를 먹고나서
서태지는 미국으로, 양현석과 이주노는 약간의 활동중단을 하고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약속합니다.
1년이지났습니다.
방송사들은 스크린으로 서태지의 활동을 보여주며
콘서트를 열였습니다.
그가 없었는데도 말이죠,
2년이 지났습니다.
서태지는 TAKE FIVE,
얼굴없는 앨범을 발매합니다.
2년간의 미국에서의 생활동안
만든 앨범이라며, 단 한장의 시디와 한장의 편지를
한국으로 보내왔으며
더욱 놀랄일은
공식활동도,뮤직비디오에서의 얼굴도(사이버로봇),많은홍보도,
없던 가수의 앨범이
100만장이 넘는 판매를 올렸습니다.
서.태.지 라는 이름 석자로 말이죠
5집에서는 인간의 창조설,탄생설, 사회강자의 비판,자살,청소년들의 심리,남녀의 깨끗한우정,
미국에서의 2년간의 솔직한 마음, 같은 뜻을 지닌
take 시리즈로 6곡이 담겼습니다.
이것이 서태지의 컴백을 부채질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2000년이 되었습니다.
새천년이 밝아왔습니다.
서태지가 가요계를 떠난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신문이나 언론 역시 서태지를 기사로 다루었고,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말해주었습니다.
2000년 8월 11일,
더웠던 여름,
서태지 공식싸이트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너무나도 기다려왔던
서태지.
그가 컴백을 선언한 글이었습니다.
그가 드디어 가요계복귀를 선언한것이었습니다.
언론은 더이상
H.O.T라는 그룹에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오기까지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2000년 8월 29일,
서태지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얼굴한번 공개하지않고,아무소식없던
가수의 컴백이었습니다.
김포공항,
김포공항에는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팬들이 노란손수건과 서태지의 사진을들고
서태지를 기다렸습니다.
서태지는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공항게이트에서
티셔츠에는 온통 Y자가 표시된 기하학적 무늬에
티셔츠를 입고, 연베이지색 카고바지를 입고
검은 단발머리에,검은 올리버피플 안경을 쓰고있는,
너무나도 피부가 뽀얀 한 사람이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들렸고,
수백여명의 기자들은 온통 서태지를 비췄습니다.
그는 무려 4년 7개월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팬들은 감격했습니다. 한마디로 그건 왕의귀환이었습니다.
서태지는 단 한마디의 말도없이,
공항을 빠져나옵니다.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무표정으로 일색하며 한마디의 말도 하지않았습니다.
여기서의 서태지의 신비주의라는 말이 비롯되었습니다.
컴백공연,
역시 그는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핌프락,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
서태지는 그 귀엽고 소년같은 이미지에서
강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헤어스타일은
강렬한것을 말해주듯
빨간색 레게머리였습니다.
언론은 또다시 헤어스타일을 들먹거리며,
또한 핌프락을 표절했다,상업적인 신비주의 이다.
서태지를 무참히 괴롭히며
서태지가 떠난 한국가요계의 자리를 매꾼
H.O.T,GOD,젝스키스,등등의 열성팬들은
서태지가 어떤사람인지,그가 누군지도 모른체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무차별적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태지가 그들의 인기를 단 한번에 눌러버렸기 때문입니다.
6집, 하루만에 예약량이 무려 90만장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가요계에서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서태지는 음악캠프에 출연해서,
서태지, 핌프락 표절!
신문기사를 뒤에 건채 공연을 했으며,
탱크라는 노래에서 그 기사에
새빨간피를 뿌려버립니다.
아마 한국 연예인,가수,탤런트 방송인을 모두 통틀어도
이런 행동을 할수있는 사람은 서태지 밖에 없을겁니다.
그는 여러가수가 참가하여 콘서트를 하는
2000년 드림콘서트에도 참가해서
신곡을 불렀습니다.
그의 인기를 따라올 수 있는 그룹은
아무도 없었으며,
분노한 10대들은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않은채,
서태지에게 무참히 욕설과 쓰레기를 던졌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체 말이죠.
이 가요계를 ,신세대를,지금의 문화를 연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체 말이죠.
다 받아들였습니다.
서태지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들이 나를 어떤이유로 싫어하건 좋아하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서태지의 인터뷰 중에서
6집은 130만장의 음반판매를 하며,
서태지는 가요계에 대통령이라는걸 확신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6집을 마치고,
2001년 섬머소닉,2002년 ETPFEST를 개최하고
난 알아요를 현대 락 버전으로 편곡하는듯,
새로운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가 하는 헤어스타일,선글라스,옷차림
모든것들은 유행이 되며 문화가 되었습니다.
2004년,
서태지는 7집을 가지고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극심한 음반불황에서도,
서태지는 서태지였습니다.
김포공항은 다시 서태지로 인해서
엄청난 팬들이 그를 기다렸습니다.
가벼운 헤어스타일에 흰브릿지를 넣은 산뜻한 분위기,
검은 올리버피플안경에,하얀피부를 가지고
검은 재킷에 카고바지를 입은 서태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팬들에게 밝게 웃어주며,
엄청난 환호성과 인파가 모인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서태지는
1월 29일 31일,2월1일 컴백공연을 했습니다.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자신의 은퇴기념일에 컴백공연을
한 서태지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2004년 서태지 7집 -로보트 는
50만장으로
4년이지난 2008년 지금 현재까지도
어떤 가수도 갱신하지 못하는 기록입니다.
동일한 음반불황이었는데도 말이죠
많은사람들이 서태지를 욕하며,
그를 싫어할것입니다.
대부분의 10대들은 서태지를 모르며,
심지어 서태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처럼
무시하는 경향도 많습니다.
위험한 생각입니다.
서태지는 누구냐며,서태지는 이상하다,싸이코다,목소리가 이상하다
10대들은 말합니다.
어디서 들은것은 있어가지고
돈이떨어지면 한국에 찾아오는놈,표절쟁이,군대안갔다는
글이 인터넷에 많습니다.
닥쳐주시기 바랍니다.
모르면 가만히 계십시오
현재에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에서
그 어떤 가수가 되었든,
서태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게된다면
누구든 방송계에서 다시 인기를 얻기란 불가능할것입니다.
서태지가 얼마나 인기었었느냐,
그것을 글로 표현하자니 너무 힘이듭니다.
한번 지금의 가수에게 가서
서태지 인기많아보여요?솔직히 별로지 않아요?
소녀시대나 원더걸즈 보다 인기가 별로인거같은데...
한번 말해보십시오
죽도록 맞을수도 있습니다.
죽는다해도 따라갈수 없기 떄문입니다.
영원히 따라갈수없기 때문입니다.
가수가 가수에게 싸인을 받고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건 많이 못보셨을겁니다.
방송국이 가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바라는것을
많이 보셨을겁니다.
가수가 방송국을 움직이고 요구하고 바라는것을
보셨습니까?
방송국과 언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90년대 서태지 밖에 없습니다.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서
컴백무대를 가질때
3곡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90년대 서태지 밖에 없습니다.
(뮤지션 및 프로듀서 박진영 씨도 컴백공연 2곡입니다.)
콘서트에서 굳이 자신의 적자를 보면서,
콘서트에 30억원을 모두 투자하고,
팬들이 비오는날 자신을 기다릴때 건물 한채를
모두 빌려 팬들에 비를 피하게 해주고
팬이 준 선물을 집안 가득 채워두고,
팬레터를 가방가득 해외에 가져가고,
백혈병에 걸린 소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고싶다고
했을때, 모든 스케쥴을 취소하고 3명모두가 달려가고,
콘서트 무료로 하면 안돼냐고 하다가 혼나고,
열성팬이 공항에서 손을잡고 경호원이 팬을 뿌리치려하자
제지하고 끝까지 손을 잡아주고,
4집 시대유감 가사를 좀더 부드럽게 바꾸라 요청하자,
모든 가사를 빼고 반주만 삽입시키고 음반을 발매하고,
조용필,들국화,전인권 가요계 대선배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겸손할줄알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
많지않을겁니다.
없을겁니다.
결코...이 음악계가 혼자 일어설수 있었던것이 아니었다는걸,
알아주신다면 될것같습니다.
음악을 하는 가수가,
음반을 발매할때마다, 9시 뉴스에 등장하고,
매 음반마다 100만장을 넘게 돌파하고,
해체역시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감출수없었던것,
아마 대통령외엔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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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판매점에서 서태지와아이들-컴백홈이 흘러나오면 지나가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잠시 멈춰서서 물끄러미 듣고 갈 정도였습니다.
60대연령분들이 서태지앨범을 샀다는건...좀 오바인듯..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도 서태지와 아이들을 알았고.. 3집과 4집은..70이 넘은나이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선물로 사다주셨죠.. 어린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에 컴백홈 가사를.. 할머니에게 천천히 설명해주고.. 허구헌날 가출하던 큰형은 그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 용서를 구하며 들어왔구요.. 여러가지 기억이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지금 비웃는건가요?? 근데.. 진짭니다.. 저정도로 저한테 영향을 끼친사람인데.. 빠가될수밖에 없죠..
근데 이 글 왜이리 유치한걸까요? 서태지가 유명하고 대단하다는건 다 아는건데...너무 유치해요 글이..
근데 다사실인듯..
그게 아니라,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나 뭐 그런거 다 물어보십쇼. 맞아죽습니다.서태지가 그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있습니다. 뭐 등등 " 끝에부분 글 보세요. 진짜 너무 유치해서 원 ㅡㅡ;; 사실인건 저도 다 알고있습니다. 저도 30대 인지라
흠.. 대단하죠.. 학창시절 내머리를 지배했던 사람..
서태지빠의 글인가...
네...저도 퍼온거라 ㅎㅎ 아마도 광팬이신것 같긴하네요
아 눈아프다
저렇게 대단한 서태지 4집 come back home 과 1위 후보로 박빙의 경쟁을 했던 노래가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막혀'였드랬죠~ ㅋㅋ 6학년때였지 그게...휴~~
흠.. 대단하죠.. 학창시절 내머리를 지배했던 사람.. <~공감.!
글이 좀 짜증나네...마치 훈계하는 듯한...
태지는 인정..
나도 태지는 인정..하지만 태지빠와 이런 식의 영웅화 글은 짜증..불인정 진정 서태지를 위하고 싶다면 이런식의 '태지는 최고다 남들과 비교는 안된다'라는 식의 글은 자제바람..
눈물날것같다....
필승 노래하나만은 인정..
흥보가 기가막혀!!!!! 짱임!!
서태지 광팬이지만 .. 글이 많이 오바네.. 보다가 피식했다..
서태지 그나마 한국 가수중에 인정하는 사람인데.. 글이 오바가 상당하네요. 이건 뭐 좋게 보는 사람까지 짜증나게 만들정도니 원 ㅎㅎ 솔직히 태지가 음악 괜찮게 하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성공도 많이 거뒀지만.. 음악 많이 듣는 분들 이시면 느끼겠지만.. 가요의 한계라고 그러나..하여튼..외국 밴드들 노래 듣다가 태지 음악 들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 뮤즈,린킨 파크,에미넴 요런 애들이랑 비교해 볼때 좀.. 그렇죠.. 한국에서는 짱먹을지 몰라도 세계 시장으로 나가면 비젼 없는건.. 비랑 똑같음
글이 초록색으로 보이잖아;; 눈아파 ㅠㅠ
좀 오바아닌가;;;넘 극찬하니까 좀 민망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