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릴 적 우상이 되었던 게임이 [포켓몬스터]라면, 가장 열심히 했던 게임은 [철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철권 3]를 통해 [철권]을 시작해, 이어 등장한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 빠져들어 수학 공식은 내팽개치고 ‘킹’의 연속잡기 하나를 더 외우곤 했다. 군생활하는 중에도 부대 내에 비치된 [철권] 오락기의 단골 손님이었음은 물론, 귀중한 휴가 기간에도 일명 ‘성지’라 불리는 오락실을 찾아가 [철권]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서만 좋아하는 [철권]이었다면 이렇게 즐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철권] 대전격투 게임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철권]이 2014년을 맞아 2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94년 12월 9일 [철권]이 처음 가동된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간단하게 짚어보자.
첫 작품인 [철권 1]에서의 ‘붕권’과 PS3로 출시된 [철권] 최신작 [철권 레볼루션]에서의 ‘붕권’. ‘붕권’이라는 원래의 기술명보다 그의 기합인 ‘오아!’로 불리는 일이 많았다
[버추어 파이터]에 대항할 수 있는 3D 대전격투 게임을 꿈꾸며
1993년 12월, 세가가 [버추어 파이터]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아케이드 게임계에는 3D 대전격투 게임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많은 게임사들이 [버추어 파이터]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너도나도 3D 격투게임을 만들던 때, 한 때 게임계의 왕자였던 ‘남코’ 역시 여기에 뛰어들었다.
1994년 12월 9일 처음 등장한 [철권]이 바로 그것이다. [버추어 파이터]처럼 인간형 캐릭터들이 나와 주먹다짐을 하는 게임이었지만 남코는 이를 의식하고 여러가지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60프레임의 부드러운 움직임, 쉬운 조작으로도 나가는 호쾌한 공중콤보, 10단 콤보 등 [버추어 파이터]에는 없는 [철권]만의 특징은 [철권]의 매니아 층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투박한 그래픽이지만 텍스쳐맵핑 등의 기술을 사용한 화려한 그래픽으로 [버추어 파이터]와 차별을 두었다. 2개월 뒤, [버추어 파이터2]가 나오면서 그것도 색이 바래긴 하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철권]이라는 게임 제목이 정해진 데에 대한 독특한 사연이 있다. 남코의 한 고위인사가 ‘글자 수는 한문으로 두 글자로, 내용은 강력한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된 타이틀 명이 무쇠주먹, 즉 [철권]이다.
이후 95년 [철권 2], 97년 [철권 3], 98년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출시하며, [철권]은 남코의 인기 격투게임 시리즈로 자리잡았다. 특히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철권 2]와 [철권 3]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스토리와는 관계없이 모두 모인데다가 2명의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싸우는 ‘2:2 태그매치’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출시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최신작을 다 제쳐두고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즐기는 유저들이 있을 정도이다.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던 [철권 태그 토너먼트]. 필자의 중학 시절을 송두리 채 날려버린 주범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많은 유저들의 기대 속에 [철권4]가 등장했다. [철권 3]에 비해 별 발전이 없는 그래픽을 보여준 [철권 태그 토너먼트]와는 달리 확실하게 발전한 그래픽을 선보였다. 대전은 1:1 방식으로 회귀했지만 ‘벽 시스템’과 ‘고저차 시스템’을 통해 대전의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하지만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데다가 캐릭터의 수도 반절 이상 줄어들어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철권] 특유의 ‘상쾌함’이 사라진 것도 원인이었다.
2004년 11월엔 [철권 5]가 출시됐다. [철권5]는 철권 제작진이 [철권4]에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철권] 특유의 시원스런 플레이와 벽이 부서지는 호쾌한 연출, 벽에서의 치열한 공방을 강조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저차 시스템’은 삭제됐다. 또한 기존 스토리에서 사망이나 행방불명 처리됐던 캐릭터들이 부활해 선택 가능한 캐릭터가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 필적할 정도로 많아져 인기를 끌었다. ‘카드 시스템’과 ‘철권넷’을 도입해 자신의 전적을 기록하고 캐릭터를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12월엔 다소 어긋나있던 캐릭터 간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새로운 캐릭터와 기술을 추가한 확장판 [철권5: 다크 리저렉션(이하 철권5: DR)]이 출시됐다.
기합이나 신음 소리만 내던 캐릭터들이 [철권 4]를 기점으로 영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철권 5]부터는 한국과 중국 국적의 캐릭터들이 자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언어는 다르지만 서로 뜻이 통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2007년 11월엔 [철권 6]가 출시됐다. [철권 5]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거의 모든 캐릭터의 모션을 새로 제작하고 그래픽 역시 [철권 5]에 비해 두드러진 발전을 보여줘 출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또한 공중에 띄운 적을 바닥으로 내리쳐 튀어오르게 만드는 ‘바운드 시스템’은 공중 콤보의 선택지를 더욱 늘려주었으며, 체력이 낮아지면 대미지가 올라가는 ‘레이지 시스템’으로 대전에서의 역전이 일어나기 쉬워졌다. 2008년 12월엔 [철권 6]의 확장판인 [철권 6: 블러드라인 리벨리온(이하 철권6: BR)]이 출시됐다.
2011년 9월, 2010년 세계적인 격투 게임 대회 ‘투극’에서 선공개되어 전세계 [철권]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철권 태그 토너먼트2]가 등장했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와 마찬가지로 스토리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44명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게 됐으며, 기존에 띄우고 사용할 수 있었던 ‘태그’를 바운드 후에도 사용할 수 있게되어 콤보의 폭이 크게 늘었다. 다만 그에 따라 콤보의 난이도도 올라가 적응하지 못한 유저들도 있었다.
2012년 3월엔 [철권 태그 토너먼트2 언리미티드]의 서비스가 시작됐다. 각 캐릭터의 밸런스 조절과 함께 ‘솔로 모드’를 추가해 2:2 외에도 1:1, 2:1의 대전도 가능해졌다. 현재까지 아케이드로 등장한 [철권]의 최신작이다.
최신작인 [철권 태그 토너먼트2] 역대 최다 캐릭터 수를 자랑한다
남코를 초월이식의 명가로 만들어 준 [철권]
한편, [철권]은 남코를 ‘120% 초월이식’의 명가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철권 1]은 출시된 지 1년도 채 안되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의 이식이 발표되었을 때, 너무나도 짧은 이식 기간으로 유저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95년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 용 [철권 1]은 아케이드 버전의 그래픽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은 물론 가정용 만의 다양한 오리지널 요소를 추가해 큰 인기를 끌었다. 후속작인 [철권 2]와 [철권 3] 역시 ‘120%의 초월이식’을 보여 주며 수백만장이 팔려나갔고 이후의 시리즈들 역시 가정용으로 이식될 때 다양한 오리지널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단순히 아케이드 버전의 그래픽을 재현한 것 외에 가정용으로 등장한 [철권]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가장 핵심은 스토리를 부각시키는 오프닝과 캐릭터별 엔딩 영상의 추가이다. 이를 통해 유저 간의 대전이 주가 되는 아케이드에서는 즐기기 힘들었던 [철권]의 독특한 스토리가 유저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순히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싸우기만 하는 ‘인형’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러한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미시마 가문’의 캐릭터인 ‘헤이하치’, ‘카즈야’, ‘진’ 이다. [철권]의 메인스트림을 이어가는 ‘미시마 가문’은 게임계를 대표하는 ‘콩가루 집안’으로 유명하다
또한 아케이드 버전에서는 고를 수 없는 캐릭터를 특전으로 즐길 수 있게 하거나, ‘대두 모드’, ‘철권볼 모드’, ‘철권 포스’, ‘철권 볼링’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철권 2]는 지금은 가정용 격투 게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는 ‘연습 모드(Pratice Mode)’를 최초로 도입한 게임이기도 하다.
2005년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식된 [철권 5]는 10주년 기념 타이틀이었던 만큼 [철권 1], [철권 2], [철권 3]의 아케이드 버전을 통째로 수록해 화제가 됐었으며, [철권 5: DR]에 온라인 대전 기능을 추가해 플레이스테이션3로 출시한 [철권 5: DR 온라인]을 통해 최초의 온라인 대전을 지원했다.
[철권 6]는 확장판인 [철권6: BR]을 바탕으로 이식되었으며, 시리즈 최초로 플레이스테이션3/XBOX360의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됐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 2]는 아케이드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캐릭터들을 다수 선택할 수 있었고, ‘컴봇’에게 다양한 캐릭터들의 기술 조합,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Fight Lab’ 등의 추가 요소가 등장했으며, 현재 개발 중인 WiiU 버전에서는 닌텐도와의 적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다양한 오리지널 요소가 등장할 예정이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2] WiiU 버전의 스크린 샷. 인기 닌텐도 게임의 캐릭터의 복장과 함께 WiiU 버전만의 대전 모드인 ‘버섯 모드’가 추가될 예정이다
[철권]의 특징, ‘10단 콤보’와 ‘공중콤보’, 그리고 심리전
[철권]은 처음부터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를 의식하고 나온 만큼, 확실하게 다른 특징들을 보여준다. 꼭 [버추어 파이터]와 비교해서가 아니더라도 지금부터 소개하는 것들은 [철권]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 특징들이다.
가장 먼저 ‘10단 콤보’가 있다.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도 4단, 5단도 아닌 무려 10번을 공격하는 연속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한 ‘10단 콤보’는 [버추어 파이터]의 어려운 난이도에 부딪혔던 게이머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강력한 대미지는 덤이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강력해지는 ‘공중콤보’에 비하면 10단을 모두 맞출 수 없는 ‘10단 콤보’는 점점 메리트가 적어졌다. ‘반격기’, ‘흘리기’ 등 적의 연속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10단 콤보’가 사용되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10단 콤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리즈가 이어지며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들도 ‘10단 콤보’는 꼭 가지고 있다. 오히려 비중이 줄었기에 ‘10단 콤보’는 비장의 한수로써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10단 콤보’는 여전히 [철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면 맞아야죠!’라는 명대사를 이끌어 내기도 했던 ‘10단 콤보’. [철권]에 대해서라면 알 거 다 아는 고수들이 모이는 큰 대회에서도 ’10단 콤보’는 승부의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공중콤보’가 있다. ‘공중 콤보’는 적을 공중에 띄워 반격하지 못하게 하고 연속기를 집어넣는 시스템이다. [버추어 파이터]에도 물론 ‘공중콤보’가 있지만 [철권]은 이 부분을 초보자라도 사용하기 쉽게끔 대중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철권]은 헤이하치나 카즈야의 ‘풍신권’, 킹의 ‘자이언트 스윙’ 등을 제외하면 복잡한 조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화려한 공중 콤보를 구사할 수 있다.
초기의 [철권]은 공중에 띄운 적을 많이 공격할 수 없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공중에서 적을 때릴 수 있는 횟수가 많아지거나 ‘바운드’, ‘공중잡기’ 등의 시스템이 추가되며 다양한 방법으로 공중콤보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벽이 추가되고부터는 더 큰 대미지를 주기 위해 공중에 띄운 적을 의도적으로 벽으로 밀어버리는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철권]의 특징인 ‘공중콤보’는 유저들이 [철권]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효율적인 공중콤보를 사용하기 위해서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지고, 고수들과의 대결에서는 자신의 캐릭터가 공중에 뜨면 그대로 라운드가 끝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에 좌절해 [철권]을 그만둬버리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난이도를 낮추고 신규 유저를 유치하기 위해 F2P(Free to Play) 방식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에 출시된 [철권 레볼루션]의 경우 ‘바운드 시스템’을 삭제하는 등의 강수를 두기도 했다.
[철권]은 공중에 뜨면 죽어서 내려오는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철권 레볼루션]에서는 바운드 시스템을 없애고 캐릭터에 성장 요소를 집어넣어 격투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도 쉽게 [철권]을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끝으로는 심리전이다. [철권]은 일견 ‘공중콤보가 전부인 게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캐릭터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적과의 거리를 좁히거나 벌리는 움직임 등 전반적인 운용이 더 중요한 게임이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체력이 반절 이상 날아가거나, 라운드를 뺏기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철권 3]의 횡이동, [철권 4]의 벽, [철권 5]의 몸을 숙이는 공격은 상단을 피하고 점프하는 공격은 하단을 피하는 ‘클러치 스테이터스’와 ‘점프 스테이터스’ 등 시리즈를 더해감에 따라 추가되는 시스템들 덕분에 심리전은 더욱 복잡해졌다.
덕분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는 어렵지만, 여기에 맛을 들이게 되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치열한 공방 속에서 터지는 시원한 한방은 게임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대전을 보는 사람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이런 점은 [철권]이 한국에서 쟁쟁한 격투 게임을 제치고 e스포츠로써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철권]
[철권]은 일본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버추어 파이터2]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지만 세가의 의도적인 한국 배제나 갈수록 매니악해지는 게임성 등 한국은 점점 [버추어 파이터]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 사이 [버추어 파이터]와 비교해 간단하면서도 화려한 콤보 플레이가 가능한데다가 ‘폴 피닉스’의 ‘붕권’ 처럼 간단한 조작으로 큰 대미지를 주는 호쾌한 기술들은 한국 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한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철권 2]에서는 ‘백두산’이라는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해 태권도를 무술로 사용한다. 하지만 공격 모션이 아무리 좋게 봐줘도 태권도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인기와 함께 비판도 함께 받는 캐릭터였다. 그에 대한 반성인지 [철권 3]의 한국인 캐릭터 ‘화랑’은 ITF(국제태권도연맹)의 황수일 사범의 모션캡쳐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보다 현실적인 태권도 동작을 보여줘 한국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
[철권 3]부터 등장해 실제와 같은 태권도 동작을 보여준 ‘화랑’, 한국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렇게 점점 인기를 더해가던 [철권]은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고, [버추어 파이터]의 ‘아키라키드’ 신의욱이 그랬듯 세계에 한국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9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노제에서 열린 [철권 태그 토너먼트 세계대회]에서였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의 [철권] 고수들이 모인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바로 한국의 ‘석동민’이었다. 같은 해 12월 한국에서 열린 [99년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한일대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철권] 최고 고수를 3명 씩 선발해 대결을 벌였는데, 여기서도 한국이 2승 1패로 승리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철권]에서 한국이 최강이라는 것이 입증됐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나보다. 21세기가 시작되는 3월, 세계챔피언 ‘석동민’과 한국 최강의 유저로 불리던 ‘장익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총 3일간 일본에서 약 100전 이상의 경기를 치루모 그들이 세운 기록은 둘째날과 셋째날을 포함한 석동민의 7패를 제외한 전승. 결과적으로 ‘장익수’는 3일간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이다. 이 일로 일본의 [철권] 유저들은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 8월 20일, 석동민, 장익수, 박용 등 한국의 [철권] 고수 3명을 초청해 이루어진 [철권 태그 토너먼트 Far East Championship]에서도 한국의 유저들이 각각 우승, 준우승, 3위를 차지하며 대회를 재패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의 [철권] 유저들은 상당히 고무될 수 밖에 없었고, 한국에서의 [철권]의 인기는 [버추어 파이터]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2001년, 한국과 일본 유저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한 [철권 4]는 그대로 묻혀버렸고 한일전도 없었다. 2004년 [철권 5]가 등장하고나서 [철권]의 인기는 다시 올라갔고, ‘장익수’, ‘석동민’ 등의 뒤를 잇는 새로운 [철권] 고수들이 등장한다. [철권 5] 시절의 대표적인 [철권] 유저는 ‘무릎’ 배재민과 2005 투극 우승자이자 지금은 [철권] 해설가로 전직한 ‘Nin’ 박현규, ‘200원’ 김훈일, ‘쿠단스’ 손병문 등이 있다.
특히 ‘무릎’ 배재민은 쓸모없다고 평가받던 ‘브라이언’의 ‘도발’을 그만의 패턴으로 완성시켜 전설이 된 유저다. ‘도발’에는 대미지는 없지만 무릎을 드는 동작에 상대방의 가드를 해체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무릎’은 실전에서 이를 맞춘 뒤 빠른 속도로 ‘제트 어퍼’를 집어넣는 ‘도발 – 제트어퍼’ 패턴을 완성시킨 유저다.
또한 그는 당시 ‘MBC 게임’의 게임 드라마 ‘철권열전 ~ 내일은 어디냐’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비록 그를 비롯한 [철권] 고수들의 연기는 어설펐지만, 정인호, 박현규 해설의 중계가 곁들여진 그들의 박진감 넘치는 대전 장면이 방송을 타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사나이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다”, e스포츠로써의 [철권]
[철권 5: DR]까지는 한국에서의 인기에 비해 [스타크래프트]처럼 e스포츠 경기로 다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철권 6]부터 [철권 6: BR]까지, ‘MBC 게임’을 통해 방영된 ‘철권크래쉬(TEKKEN CRASH)’를 시작으로 [철권]이 한국에서 e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2009년 2월부터 시작된 ‘철권크래쉬’는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한국 e스포츠 대회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경기였고,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식상함을 느낀 e스포츠 팬들과 기존의 [철권]을 비롯한 격투게임을 즐기던 유저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철권크래쉬 시즌2’ 결승전의 경우, 시청률조사전문기관 TNS에 따르면 결승전이 펼쳐지던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남성 13-25세 기준 최고 시청률 1.224%, 평균 시청률 0.848%를 기록하며, 지상파를 포함해 시청률 1위를 기록했었다.
2009년 11월 진행된 ‘오뚜기 뿌셔뿌셔배 철권 크래쉬 시즌1(철권크래쉬 시즌3)’은 한국e스포츠협회(KeSPA)로부터 공인대회로 인정받으며 [철권] 유저들이 프로게이머 자격을 획득할 수 있게 됐다. 이 여세를 몰아 한국에서 주최하는 ‘WCG 2010’에서는 [철권 6]가 공식 종목으로, 2013년 인천에서 개최된 ‘실내 무도 아시안 게임’에서도 [철권 태그 토너먼트 2]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2012년 2월 ‘MBC 게임’이 폐지됨에 따라 ‘철권 크래쉬’는 ‘Daum배 TEKKEN CRASH Season4’(철권크래쉬 시즌8)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같은 해 5월 온게임넷에서 ‘다음 철권 버스터즈’를 진행하지만 시즌 1 이후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아 국내 공식 리그의 명맥이 끊기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이스게임TV’에서 반다이남코게임스,, 연세어뮤즈먼트, 윈디소프트와 함께 공식 리그로써 ‘철권 스트라이크’를 시즌3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철권 크래쉬’의 뒤를 잇고 있다.
[철권]은 3D 격투 게임의 선두주자였던 [버추어 파이터]의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미려한 그래픽, 쉬운 조작, 독특한 스토리, 남코의 가정용 120% 초월이식 등 현재는 [버추어 파이터]를 아득히 앞지른 지 오래다. 특히 한국에서의 인기는 [철권]의 프로듀서 ‘하라다 가츠히로’가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인증할 정도이다. 거기에 한국 전통 무술인 ‘태껸’을 쓰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다.
2014년은 [철권]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2004년, 10년 동안 쌓아온 시리즈의 집대성을 보여주며 국내에 다시 [철권]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철권 5]처럼, 20주년에는 e스포츠와 함께 부흥하는 [철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