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켜 주는 것
조 흥 제
만주어(滿洲語)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 원인은 정복자인 만주족(淸)의 문화가 우수한 한족(漢族)의 문화에 흡수되면서 고유 언어 자체가 없어졌다니 문화의 힘은 총칼보다 강한가 보다.
신사동에 ‘내를 건너서 숲으로’라는 이름을 가진 도서관이 문을 열었는데 3층에는 시집(詩集)만 따로 진열해 놓았다. 윤동주의 시집과 그 친구들(문익환, 정몽규)의 사진이 있고,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 있으며, 그들의 삶을 담은 영상 화면도 있다. 유리상자 안에는 윤동주의 ‘바람과 구름과 시’, 숭실 생활 등 겉장이 누런 시집도 있다. 이근배 원로시인이 기증한 것이라 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라는 도서관 이름도 윤동주의 시의 제목에서 따 왔다. 그 도서관에서 윤동주를 높이 받드는 것은 인근에 숭실중고등학교가 있는데 평양에서 개교한 학교로 윤동주가 7개월 동안 그 학교에 다녀서다. 그 도서관은 초등학교 옆에 있어 만화 영화나 시 낭송도 가끔 한다. 어느 날 이근배 시인의 강의가 있다고 하여 참석했다. 그의 강의 중 ‘만주어는 완전히 없어졌다’는 대목이 귀에 머물렀다.
만주에는 여진족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은 고려에 조공을 바치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살았는데 그들이 합치자 거대한 힘을 발휘하여 조선을 누르고 명(明)나라까지 멸망시키고 북경으로 도읍을 옮겼다. 하지만 250여 년 간 중국을 다스리다 보니 우수한 한문화에 보잘것 없는 만주 문화는 흡수되어 문화의 근본인 언어까지 없어졌으니 문화의 힘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떠올렸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나라였다. BC 1000 년 경에 사울왕이 나라를 세웠고, 2대인 다윗 왕이 영토를 넓혔으며, 3대 솔로몬 왕 때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 후 이웃나라들의 침범으로 편한 날이 없다가 로마에게 침범 당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에 먹혔듯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통치를 하여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살았다. 로마는 이스라엘의 고유 종교인 유태교를 탄압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후 70년 솔로몬 성전을 짓다 로마군과 충돌을 일으켜 나라 자체가 없어졌고 국민들은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졌다.
2차 대전 후 영국의 승인하에 이스라엘 민족은 옛 고토에 2000년 간 살아 온 아랍민족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쫓아 내고 이스라엘이라는 옛 국명을 살려 재 건국했다. 모두가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그들이 장구한 동안 세게 각처에 흩어져 살았으면서도 이스라엘 후손이라는 걸 잊지 않은 것은 성경과 탈무드라는 책이 있어서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선민(選民)의식과 언젠가는 고국으로 불러 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행동지침인 탈무드에 의한 생활을 대대손손 이어가게 했다. 남의 나라에서 설움 받고 살다 보니 돈이 있어야 괄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여 돈을 모았다. 그래서 세계 갑부들 중 유태인이 많다.
2차 대전 때 영국이 돈이 없어 유태인에게 돈을 꾸어다 전쟁을 해서 이겼다. 그래서 영국의 승인하에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다. 건국 과정이 재미 있다. 땅을 팔려고 내 놓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도 깎지 않고 샀다. 물론 유태인이라는 걸 숨기고서였다. 그러자 너도 나도 내 놓아 높은 값에 팔았다. 얼마 후에 그런 현상이 전국적이라는 것을 알고 항거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세계 각처에서 돈을 대 주는 이스라엘의 어마어마한 힘을 당하지 못하고 쫓겨 나 이웃나라에 붙어사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불쌍한 민족이 되었다. 그들을 도우려고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침범했으나 당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2만㎢ 즉 경기도 두 배만한 땅에 850만이 사는 작은 나라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 말과 글을 못 쓰게 했다. 학교에서도 우리 말을 쓰면 벌점을 먹였고, 기차표를 살 때도 한국어로 달래면 안 주었다. 일본이 만약 2000년 동만 한반도를 통치했다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일본인들의 계획은 우리 민족을 만주로 내쫓고 한반도에 자기들이 와서 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들의 뜻이 실현되었다면 우리 민족은 고유의 문화를 지키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지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대륙의 거대한 힘을 받고 눌려 살면서도 5000여 년 간 지켜 왔다. 비록 힘에 밀려 일본에게 국토를 빼앗겨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더라도 이스라엘 민족 같은 고유의 종교는 없지만 세계 어느 문자보다도 우수한 한글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는 이어가리라 믿는다. 영어는 단어로 움직여 융통성에 제한을 받고, 중국어는 말과 글이 다르다. 일본어는 글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습니다'를 '스므니다'). 한글은 비록 24자에 불과하지만 이리저리 붙이면 못만들어 내는 말이 없고 못 만들어 내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한글이 한민족의 명맥을 이어 가리라 생각된다. 한글로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배우고 그런 중에서 자연히 장구한 동안 몸에 밴 우리의 문화를 익혀서 이스라엘 민족 같이 대한민족임을 잊지 않으리라 추측된다.
또 한가지는 조상숭배 사상이다. 즉 뿌리다. 겉으로 나타난 것이 족보(族譜)와 제사(祭祀)지내는 것이다. 대원군 때 천주교를 탄압하여 많은 성도들이 순교하였는데 원인은 제사를 안 지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들이 오랜 동안 타국에 산다 해도 한민족(韓民族)을 지켜 줄 것 같다.
첫댓글 조흥제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화의 힘은 크지요. 오랜 시간이 흐르면
총칼의 힘으로 득세한 권력도 문화의 힘으로 변질시키거나 무너뜨릴 있어요.
장선생님, 건강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저도 소설 공부하려고 금년에 세계문학 전집 34권 한 질을 읽었으나 안 되어 새해에는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 강의하는데 나가 일년 간 들으려 합니다. 그래서 6.25 체험기인 장단 가는 길을 팩트와 허구를 섞어 다시 쓰고 ㅅ;ㅍ습니다.
조흥제선생님, 조선생님은 한국전쟁의 피해자이고 체험자, 남북분단의 그 현장을 집접 경험하시고...
글도 잘쓰시는 분이니 수필만이 아니고 꼭 소설도 쓰셔서 깊은 생각과 체험을 긴 이야기로 널리 전하기를...
한국수필의 기원은 문학장르들 중에서 오래지 않지요.. 뿐만 아니라 수필은 취급내용이나 형식이 너무도 넓고 많고 다양해서... 서구에선 한국식 수필 같은 글은 드물어요....조흥제 선생님의 소설지향과 성공을 바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