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소녀 - 정윤희
어릴때 꿈을 꾸었지
사랑이 싹트는 꿈을
언제부턴가 그 꿈에 사는
아! 나는 목마른 소녀
그리고 꿈을 키웠지
사랑이 꽃피는 꿈을
언제부턴가 그 꿈을 먹는
아! 나는 목마른 소녀
기쁨이 넘칠 때 춤추는 아이
슬픔에 겨울 땐 한 마리 사슴
그렇게 사랑을 했지
눈물도 그때 배웠지
아무도 모를 나만의 얘기
아! 그건 사랑 이었네
정윤희 씨를 기억하나요?
한국 최고의 미인 배우로 그리고 한류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이미 중화권과 일본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아시아 최고의 배우'로 엄청 주목 받았던 정윤희 씨를 아시나요?
1954년 경남 충무 (지금의 통영) 태생인 정윤희는 74년 해태 전속모델로 출발해 75년 영화 '욕망으로'첫 연기를 시작했는데
데뷔작에서 바로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날고 기는 탑클래스 배우들도 데뷔작이나 데뷔 초기에는 대부분 한두 편 이상의 단역과 조연급을 거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화려한 출발인 셈이다.
이후 빼어난 미모와 연기로 서서히 인기여배우로 자리 잡아가며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유지인, 장미희 씨와 함께
이른바 제2세대 트로이카 3인방으로 등극한다.
데뷔 초기에는 미모보다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80년과 81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과 81년 출연한 '사랑하는 사람아'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키고 대한민국 최정상 여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은 정윤희 씨와 세 편을 찍었는데 촬영감독으로 호흡을 늘 함께 하던
정일성 씨와 입을 맞춰 '그 어떤 카메라 각도에서도 그리고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도 결점과 카메라 사각 없이 예쁘게 잘 나오는 한국에서 유일한 여배우'라고 호평했으며
일본 영화계의 유명 감독도 '일본에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 3명의 매력을 다 합쳐도 정윤희 한 명의 매력을 앞서지 못한다.'라며
칭송한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류라는 말조차도 없던 시절에 일본 현지에서 러브콜을 받고 날아가 광고도 찍고 세계적인 스타들만
시상자로 초대받을 수 있다는 동경 국제가요제에 유일한 아시아권 여자 스타로 참가했으며
그 유명한 성룡이 정윤희 씨에게 반해서 적극 구애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대만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아 현지에 초청받아 가서 타이페이 공항에서부터 그녀를 구경하러 온 현지 대만 팬들 때문에
청사가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났었던 일화 등 사실상 한류스타의 원조가 되는 배우이다.
헐리우드에서도 이름을 떨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헐리우드 메이저영화의 모 감독이 기획하던 영화에서
아시아 배우가 1명 필요해서한중일 여배우 자료를 찾던 중 정 씨의 사진과 필름자료를 발견하고는
바로 낙점해 적극 러브콜을 한국으로 보냈으나 때마침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개인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결국 제안을 고사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사상 최초 헐리우드 진출 한국 여배우가 될 뻔했다.
참고로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높고 스케줄이 바빴는가 하면 전속이던 제품의 광고 촬영 때 다른 모델들은
며칠씩 찍는데 반해정 씨만큼은 예외적으로 하루에 몰아서 깡그리 찍었다고 한다.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스타였던 데다 스케줄이 초 살인적이라서 아예 스케줄 가장 적은 날을 광고주 측에서
간신히 골라 그날 그녀를 촬영장에 데려와서 무조건 사진을 몰아 찍고는 광고주가 그 중
'이 사진은 껌 광고에 싣고 저 사진은 쥬스 광고에 싣고' 이런 식으로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몰아 찍기를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일화를 남기고 1985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영구 은퇴하고,
자선 바자회나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당대의 트로이카 여배우 유지인, 장미희 씨와 함께
은퇴후 30대 후반 즈음, 영화인들의 날에 초청되어 20대인 강수연과 함께...
넘사벽이련가? ^^
최근 인터넷에 정윤희 사진이 공개가 되었습니다.
54년생으로 곧 70 나이가 됩니다.
경기도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만 있습니다.
정윤희는
대한민국의 여배우로 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른 트로이카 일원보다도 외모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70년대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트로이카 중 가장 아름다운 외모로 당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렇다보니 관능적인 배역을 맡는 일이 많아 반 섹스심벌 정도로 대우하는 일이 흔했다.
남성팬들 사이에서는 유지인과 더불어 '누가 더 미인인가'라는 주제로 설전을 자주 벌이곤 했다.
전성기 시절 상대배우로 출연했던 남자배우들의 인터뷰나 증언을 봐도,
정윤희를 회고할때 '외모가 굉장히 예뻤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한 원로 카메라맨은 ‘여배우는 어디 한 군데쯤은 흠이 있는데 정윤희는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화면에 완벽하게 나온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정윤희는 1954년생으로 경상남도 충무시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으로 이사를 가서 그 곳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혜화여고 시절 정윤희는 외모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