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인연 ♥ 저는 예순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저는 한 대학교의 의대 교수인데요. 이제 내년이면 정년이 되어은퇴를 하게 되네요. 제가 사람 답게 살고 교수까지될 수 있었던 사연을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깡 시골에서 태어나서아주 어릴 때부터 장작 땔나무를 해오고 집안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저희 집은 아주 가난했고부모님은 여자애는 공부할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집안 일보다는공부에 흥미가 많았어요.몰래 학교 창문으로 들여다 보며한글을 익히고 산수를 공부하다가쫓겨나기도 하고 부모님한테잡혀 와서 혼쭐이 나기도 했어요.계집애가 공부해서 뭐할 거냐며살림이나 잘 배우라고 하셨죠. 그런 제 삶에 변화가오기 시작한 건젊은 여선생님이오시고부터 였어요. 시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에부임하신 선생님은 제가야트막한 산기슭에서쑥을 뜯다 말고 누가 놓고 간책을 읽는 걸 보시고 저에게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순정아 지금 당장은 이게너한테 쓸모 없는 것 같아도언젠가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올거야 니가 노력하는 만큼니 인생의 기회도 넓어질 거고"그 선생님도 공부 못하게 하는부모님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됐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밤마다 몰래 걸어서2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 댁에 가서국어 산수 도덕 사회 자연...이런 것들을 배웠고,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과정도 배울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고말았습니다.
선생님 댁에 가려고막 집을 나셨을 때 였죠.엄마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싹싹 비는 저를 보며 한숨을 쉬시고는"들키지 않고 끝까지 할 자신 있으면그렇게 하고, 자식이 좋아하는 거부모도 못 시켜 주는데...그걸 다 해 주신 다는데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냐...기왕 할 거면 내 몫까지 다 하거라"라며 몰래 다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 간 공부가 계속 되면서저는 검정고시에 합격했고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서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공부할 시간도 많아야 하고문제집도 살 게 많고...그저 막막하고 걱정을 하자선생님은 엄마를 만나셨어요. "순정이는 정말 똑똑해요...누구보다 이해력도 빠르고머리도 좋고 굉장히 성실하죠... 이런 애가 공부를 안 하면 누가하겠어요? 부디 어머님께서 순정이가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말이 엄마는 한동안 고민하셨어요.
그리고 결국에는 저를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아빠 몰래 집안일 하는 시간을빼 주셨고 문제집 살 돈도 주셨어요. 그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저는 선생님의 도움을받아야 했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뒤에서 조용히제 앞 날을 위해서 지원을아끼지 않으셨죠. 저도 그런 엄마와 선생님께보답하고자 하루 열 시간 씩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점점 더 풀 수 있는 문제들이많아 지더라구요. 한번은 선생님이 갖다 주신유명 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는데제가 거기서 딱 두 문제만 틀렸어요.공부 잘하는 고3들도 어려워하는시헙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거 봐...너는 이렇게 할 수있을 줄 알았어... 이게 공부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거기다 넌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힘까지 있잖아... ""선생님 제가 정말 서울에 있는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시험 성적을 보고도 모르겠어?넌 이미 전국 수준이라고"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힘을 얻어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서울에 있는 의과 대학교에합격할 수 있었어요. 저는 너무 기뻐서 엄마와 선생님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구요. 엄마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훔치셨고선생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 였는데요아버지는 어디 여자애가 혼자 서울에올라가냐며 펄펄 뛰셨습니다. 그리고 쓸 데 없는 데에 시간을낭비 했다며 제 책들을 다 버리셨어요.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아버지를원망하며 가출을 결심했죠. "오빠들은 아버지가 다 밀어줘도못 간 대학 나는 갔는데 왜 나보고는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아버지가 밀어준 것도 아닌데!"그렇게 저는 몰래 짐을 싸서새벽에 기차역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선생님이나와 계신 것이었어요. "순정아 이렇게 가면 안돼...니가 잘못한 게 없는데왜 집을 나가니?나가더라도 떳떳하게 모두의박수를 받으면서 떠나야지지금 니가 이렇게 무작정서울에 가면 어디서 받아줄 거 같아? 지금 그러지 말고 돌아가자...안 그러면 니가 지금까지노력한 게 다 헛수고가 되는 거야"저는 결국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돌아 오게 되었어요. 집에서는 제가 가출하려고했던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건지 대학교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아버지께"이건 제가 순정이한테 주는대학 합격 선물입니다. 서울에서 1등만 한다고 하는애들도 떨어지는 의대에합격했잖아요. 이만한 선물은 받을 만 하다고생각합니다. 순정이가 서울에서 대학을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분명히 아버님께 효도하는딸이 될 겁니다. "선생님의 몇 번이고 되풀이한간곡한 설득 덕에 결국 아버지는저를 서울로 보내기로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께"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하며 펑펑 울자 선생님은"니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그리고 훌륭한 의사가 돼서 갚으면 돼"라며 제 어깨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러겠다고 굳게 약속했고대학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1학년 때 다들 해본다는 미팅도 하지않았고 다른 애들과 몰려다니며놀지도 않고 공부하고 학생 과외만열심히 했죠.그렇게 1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가지고시내 중학교로 갔더니 선생님이그만 두셨다는 거예요.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결핵에 걸려서 수업 시간에 피를 토했고그 이후로 학교를 그만 두고 요양을떠났다고 하더라구요. 선생님은 제 앞으로 편지를남겨 놓으셨 더군요.편지를 서울로 보내지 않은 건제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였다고 적혀 있었어요. '순정아 너는 언젠가 꼭 훌륭한의사가 될 거야...선생님은 그렇게 믿어그러니 건강 유의하면서공부해야 한다.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 저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학교 선생님마다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어디로 요양가셨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 에게도 말 안하고떠나셨다는 거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어떻게든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저는 선생님을 찾으려고 알 만한사람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결국찾지 못했고 방학이 끝나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자취방에 돌아와책상 앞에 앉아 결심했어요. '그래...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게열심히 살자.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열심히 벌자.그게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야'저는 그때 이후로 정말 더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잠 한 숨 안 자고 며칠씩공부하다가 병원에 입원도 해봤고,너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엉덩이가 온통 짓무른 적도 있었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일주일 치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넣어 놨다가 하나씩 꺼내 녹여서먹었습니다. 반찬은 시골에서 보내준 김치한 가지 였구요. 어려운 의학 용어들은 다양한연상법을 이용해 달달 외우고또 외웠어요. 화장실 거울 옆에도 외워야 할단어들을 잔뜩 써 놓고 이빨을닦으면서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택에 저는인턴 후 봤던 시험도,레지던트 4년 후 봤던 내과 전문의시험도 모두 한 번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선생님을떠 올리고 마음 속으로 감사하다고인사했죠.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국으로연수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학병원에서 계속일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죠. 그 날은 정말 선생님이많이 보고 싶었어요. 속으로 살아 계시면 언젠가 꼭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날도 많았구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늘제 마음 한 쪽에 계셨어요. 저는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었고선생님을 대한다고 생각하고환자를 진료했어요. 그리고 또 새로운 의학 논문들을읽고 연구 자료도 수없이 검토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환자들이 제일신뢰하는 의사로 저를 꼽게 되었고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말씀드렸어요.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해서딸을 하나 두었어요.딸을 낳은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생각도 많이 났지만 선생님이 만약보셨다면 참 기뻐하셨겠지...그런 생각을 했죠.선생님을 떠 올리며 딸 이름을 선생님과같은 선희라고 지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마음 넓고 예쁜 사람이되길 바래서 였어요.그리고 어느새 그 딸이 다 커서결혼할 나이가 되었죠. 딸도 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의대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만나는 사람 있는데 엄마도한 번 같이 봤으면 좋겠어""그래?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야?""응, 내가 지금까지 엄마한테 내 남친소개한 적 없잖아. 이 오빠는 진짜 내 인연인 거 같아"딸은 부끄러운 듯 쑥스러운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그렇게까지 내키지는않았습니다. 딸 얘기를 들어보니 마음은 착하고긍정적인 사람 같은데 크게욕심도 없고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그 날 벌어서 그 날 쓰고 사는사람 같았거든요. 저는 제 사위는 좀 더 야망이 크고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인물이길 바랐는데완전 정반대인 타입인 것 같아서만나기도 전에 씁쓸했죠. 하지만 딸은 그걸 참 좋게 본 것 같았어요.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제가보지도 않고 싫다고 할 수 없어서저는 일단 그 청년을 만나 보겠다고약속했습니다. 사위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아주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어요. 교사 사위라니 부족함 없다고들하시겠지만 전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만가르칠 생각인가?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하고 유학을갈 계획은 없고?" 라고 하자 사위는"네, 저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아이들에게 뭐든 마음 먹으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남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데에는 저희 큰어머니영향이 큽니다. 아프셔서 두 번 교직을 쉬셨지만큰어머니가 용기를 줘서 어려운환경에서도 공부를 해서 자기 인생을개척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이 큰어머니한테 인사하러올 때면 큰어머니가 자랑스럽고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많이 했습니다. "생각이 굉장히 바른 청년 같았습니다.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인 거 같네,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만만치만은않을 텐데, 자네가 그러는 걸 부모님은어떻게 생각하시나? "라고 물었고 사위는"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외국 유학도다녀오고 더 좋은 직장 갖기를 바라셨지만요즘처럼 교사되기 힘든 때에 당당히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것도감사하다고 하셨어요제 생각도 많이 지지해 주셨구요. "라며 쑥스럽다는 듯 웃더군요."엄마, 왜 자꾸 그런 질문만 해?꼭 오빠가 교사인 게 마음에 안드는 것처럼,나는 오빠같은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오빠가 하는 거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구그리고 학생들 한테도 인기가 얼마나많은데 그래, 교사가 천직이야...타고 났다니까" 라며 딸이옆에서 지원 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졌다니 할말은 없었죠.제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남편은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문제는 저 였죠. 제 딸은 더 근사한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고싶었던 거죠.하지만 저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면내 딸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그 청년의 마음가짐하나만 보고 딸의 결혼을 허락하게되었어요. 그리고 결혼식 준비는 원만하게 진행되어양가 부모의 상견례날이 되었어요. 저는 약속 장소인 한정식 식당에조금 일찍 도착했죠. 환자 진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것도있었지만 중요한 자리 인 만큼먼저 가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싶은 것도 있었거든요.제가 식당에 들어서자 젊은 직원이나와서 예약을 했냐고 묻더군요. 저는 상견례 예약을 했다고 말했고직원은 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했어요.그렇게 직원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카운터에서"감사합니다.다시 뵐 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는 고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목소리여서카운터 쪽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저보다 한 열 살은 많으신 것같은 여자분께서 우아하게 머리를틀어 올리시고 앉아서 계산을하고 있었습니다.저는 자꾸 어디서 본 것만 같아가까이 다가갔어요. "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저를 본 여자분이 미소를 지으며그렇게 물으시더니 한참 저를쳐다보셨습니다. 저도 한참을 바라봤구요. 아무래도 낯이 익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목소리의 억양,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 예전에제가 알던 유선희 선생님과너무도 닮아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눈매라던가 얼굴형콧날이 선생님과 흡사했죠.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혹시 유선희 선생님 아닌가요? "라고 하자 그 분도"너, 순정이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상견례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했던화장이 다 무너지는데도 아랑곳없이요. "선생님,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찾았는데, 어떻게 이런데 에서 만나요.선생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너무 그리웠어요.한 시도 잊지 않았어요. "저는 통곡을 하며 그 자리에주저 앉았어요.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시며제 손을 잡으셨죠. "순정아, 너 정말 순정이 맞구나.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는구나.나도 널 잊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그 곳을떠나야 했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단다. 그래도 니가 정말 잘 산 거 같아서기쁘구나. ""저는 언제고 살아 있을 때 선생님을다시 뵙게 해 달라고 매일 속으로빌고 또 빌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났나 봐요"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저를 끌어 안으셨어요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냐고물으시더라구요. 저는 상견례 얘기를 했죠.선생님은 예약자 이름을 보더니놀라시며 "니가 선희 엄마였니? "라고 하시는 거 였어요.저는 너무 놀라서 제 딸을 아시냐고했고 선생님은 바로 제 사위의큰어머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벌써 니 딸 봤지...정우가 꼭 소개 시켜주고 싶은 사람이있다고 해서 몇 번이나 봤는걸.너무 예쁘고 총명하고 이상하게정이 가더라니... 니 딸이어서그랬나보다" 라며 놀라셨어요. 저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어요.사위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선생님이라니...저는 사돈 분들과 사위와 딸을 만나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했고그 분들과 사위도 다 놀라더라구요.당연히 제 딸도 놀랐구요. 무엇보다 제가 딸 이름을 선생님이름을 따서 붙였다니까사위는 흠칫 하더군요. 처음에 제 딸한테 눈이 간 게큰어머니 이름하고 같아서였답니다.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는지,하늘은 계속 우리를 잊지 않고지켜보시고 있다가 이렇게 엮어서저와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것같았어요. 그날 상견례가 끝나고 저와 선생님은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선생님은 처음 요양을 마치시고다시 교사를 하시며 결혼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더군요.학교 일도 너무 무리를 해서몸이 다시 나빠졌는데 그때도폐가 문제가 됐다고 하셨어요. 결국 교사를 그만 두셨고 집에서지내시다가 가끔씩 남편이 경영하는한정식 식당에 나와서 카운터를봐주고 있다고 하셨어요.마침 제가 간 날이 시 조카 상견례여서제 딸도 보고 저희 부부도 볼 겸나오셨다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순환기 내과 교수라고하자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저는 꼭 해낼 줄 알았다고자기 일처럼 기뻐하셨죠.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그래서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많이 마르신 것 같은데,불편하신 덴 없으시고요?" 라고 물었더니 다시 몸이 안 좋아진 것같아서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그 의사가워낙 그 계통에 유명한 교수라 그런지두 달도 넘게 기다려야 된다고하시더라구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호흡기 쪽의내로라 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싹돌렸어요. 그리고 대학병원 내에 인맥을총동원해서 선생님이 VIP 병실에입원할 수 있게 했죠."난 일반 병실도 괜찮은데,이런 데는 어색해.. ""선생님, 이거 제가 은혜 갚는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선생님께보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알겠다고하시더라구요.검사 결과 선생님의 폐에서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의소견이 나왔어요.선생님은 몸이 많이 약하셔서수술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워낙 초기였고 표적 항암약물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며 바로제가 주치의가 돼서 치료에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우시면서"내가 순정이 덕분에 살게 됐구나...고맙다"라며 계속 제게 고개를 숙이셨어요. 저는 그러지 마시라면서 꼭 건강하게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죠. 선생님의 항암 치료가 시작됐고아이들의 결혼식 날짜도 잡았습니다. 저는 해외 최신 논문들을 전부찾아보고 미국 유명한 대학 병원에서임상 진행 중인 효과 좋은 신약이 있는지계속 알아보며 바쁜 날들을 보냈어요.제가 있는 대학에서 연구 중인치료제도 알아 보았죠.어떻게 서든지 암의 전이도막아내고 완전히 뿌리 뽑고싶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절 보며 이런좋은 의사를 만날 줄 몰랐다고좋아 하셨구요.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제가 공부한 것으로 선생님을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힘들게 공부했던 날들에 대한후회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부모님 만큼이나 제 인생에 큰 영향을주신 선생님을 치료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결혼식 날이 되었어요.선생님도 그 동안의 치료로 많이좋아 지셔서 곱게 한복을 입고결혼식장에 오셨어요. 사위는 저를 보더니 함박 웃음을지으며 90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가까이 가서 사위 손을잡았습니다. ""내가 자네를 잘못 알아보고이런 저런 실례를 많이 했지? 미안하네...내가 어느새 올챙이적을 잊어버리고나 혼자 잘 된 것처럼 살고 있었나 보네. 자네가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큰어머니,유선희 선생님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셨는데,자네는 더 훌륭한 제자를 많이 만들게. ""아닙니다, 장모님...저는 섭섭하게 느낀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선희가 좀 훌륭한 가요...아까우신 게 당연하지요.저한 테 정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거 잊지 않고 늘 존중하는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와 선희의 결혼을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데제 눈시울이 뜨거워 지더라구요. 결혼식이 진행되고, 딸과 사위가우리 부부와 사돈 부부에게차례대로 인사를 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선생님 앞에 갔죠. 그리고 선생님께 큰 절을올렸습니다."선생님,시골에서 나물이나 캐고 땔감이나주워 오던 저를 오직 책을 좋아한다는이유로 공부 시켜 주시고 문제집도사 주시고 대학교 첫 등록금까지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제 사돈 큰어른이되어 주셔서 정말 너무 영광입니다. 제 딸도 사위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사돈 내외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계셨어요. 눈시울을 붉히시더라구요. 다들 박수가 터졌고, 그 가운데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딸과 사위도 눈물을 흘렸죠.안사돈은 제게 다가와 저를안아 주더군요. 행복한 딸의 결혼식을 울음바다로만들어 너무 미안했지만 저는그렇게라도 공개적으로 사람들앞에서 선생님께 인사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하셨고지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받으러 오십니다. 이제 제가 은퇴하고 나면 같이여행이나 다니자고 하시네요. 저도 그럴 날 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이제라도 선생님의 은혜보답하며 살고 싶어요.[ 출처] 아름다운 인연♥|작성자 묵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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