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한 여인이 하시는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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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이 보이는 오봉산을 가는 날이다. 한때 소나기가 내린다는 데 어찌 내릴지는 모르겠다. 산행에 참여하면 볼 수 있겠다 싶은 명심이도 인자도 오지 않는단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총무 빼고는 없다. 참 효재가 있기는 하다.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적은 관계로 앉고 싶은데 앉으란다. 두 자리가 빈자리는 없고 한 자리씩 빈자리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 자리는 세 명이 왔는데 둘이 저편에 앉고 혼자 앉아있는 자리이다. 그러니 옆에 앉아있는 사람의 관심은 자꾸만 옆자리로 간다.
그냥 앉아가기는 서먹서먹하고 그래서 말이래도 걸어본다. ‘혹시 물이란 말의 옛날 말이 뭔지 아세요?’ “모르는 데요.” 물이란 말의 옛말은 ‘미’라고 해요. ‘미’라는 말을 한문으로 적을 때 멋있게 ‘매(梅)’라고 적기도 하지요. 그래서 수원의 옛말은 “매홀“이지요.
”매홀“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수성(水城)’이 되고 이것을 어느 땐가 ”수원(水原)“으로 바꿨지요
그러면 과연 ‘미’라는 말이 ‘물’이란 말이었는지 찾아보면 미역, 미더덕, 미리내(은하수), 미르(용), 미끄럽다. 미꾸라지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물에서 나오는 나물은 뭔지 아시나요?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나리요.“ 한다. 이거 쉽게 맞추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그 밖에도
미(물) => 마(오래 내리는 비) => 장마
미(물) => 비(雨)
미(물) => 피(血)
미(물) => 지(血) => 선지
등도 다 물과 관련된 말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안 알밤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들리고 이내 소모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작고 차도 거의 없다.
화장실에 들리고 단체 사진을 담고 붕어섬 팀을 떠나고 우리는 산행을 시작했다. 앞서가는 총무의 체격이 당당하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멋지다’를 영어를 섞어서 말이다. 초입은 수풀이 우거져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다.
이곳은 오봉산으로 1봉부터 5봉까지 이름을 붙여놨는데 우리는 5봉으로 해서 4봉 그리고 국사봉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오봉산이래서 봉오리가 다섯 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 이름을 지어놨을 뿐이다. 오르는 길은 산허리를 치고 올라가는 길로 제법 가파르기는 하다. 높은 나무 아래 작은 박쥐나무가 많다.
중간에 쉬려고 하는 것을 능선까지 올라가자고 밀어붙였다. 사람의 몸은 참 얍삽해서 조금만 불편하면 쉬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쉬면은 계속 쉬하고 해서 힘이 더 든다. 그래서 첫 번째 쉬라고 할 때 조금 더 힘이 들게 올라가면 몸이 여간해서 쉬라고 하지 않고 산행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렇게 능선에 올라서니 총무가 모기 기피제를 뿌려주고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함께 출발했다. 엄청 힘이 든다고 표현하는 한 사람이 있다. 정말 힘이 들기도 한가 보다.
여기는 일월비비추가 참 많고 꽃망울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꽃이 피면 멋있겠다. 한 분이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 소금 포도당을 꺼내서 건네주고, 모든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중간에 오이도 나누어 먹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오봉에 도착하니 저 아래 옥정호와 붕어섬이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붕어섬이 붕어 같지가 않다. 호수에 물이 많이 빠져서 모래바닥이 드러나 있다. 정상을 등정한 기념사진을 담고 간식 자리를 폈다.
(일월비비추)
(정상석, 옥정호, 붕어섬)
간식을 먹고 4봉을 향해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어디가 4봉인지 알 수가 없다. 봉우리를 지나서 고갯마루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좀 가파르다. 등산하기 힘든 사람은 여기서 내려가라고 했는데 그냥 가기로 했다.
4봉을 지나면 작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는데 봉우리 이름은 없고 갑자기 푯말이 나타나는데 물안개길이란다. 길의 종점이 1.1km 남았단다. 그래서 그 종점이 주차장인 줄 알고 갔는데 국사봉이다.
(노루발)
국사봉을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른 긴 계단이다. 정숙이와 맨발로 걷는 분과 셋이서 먼저 국사봉에 올랐다. 여기서도 붕어섬이 보이는데 꼬리만 보인다. 앞에 작은 산이 가렸다.
여기서 한참을 기다렸더니 회장 일행이 올라왔다. 부회장이 양주와 안주 그리고 베리 등 먹을 것을 잔뜩 풀어놓는다. 그것을 먹고도 한참 있으니 지루해서 회장에게 내려가자고 보채니 뒤에 쳐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함께 산행하자고 한다.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한 20분을 또 기다렸다. 시간이 지체된 관계로 붕어섬에는 못 가고 국사봉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고 회장이 설명한다.
(국사봉으로 오르는 계단)
(뒤돌아본 오봉 정상)
(국사봉에서 바라본 붕어섬)
드디어 후행 인원이 올라와서 단체 사진을 담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등산로와 계단이 반복되는 길이다. 중간에 전망대가 있는데 외앗전망대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봐야 섬이 붕어처럼 보인다. 그것도 호수에 물이 꽉 찼을 때 붕어처럼 보이고 지금은 흐릿한 윤곽이다.
이 붕어섬은 붕어 중에도 금붕어섬인 것 같다. 꼬리 부분이 화려하다. 춘천 의암호에도 붕어섬이 있는데 삼악산에 올라가면 잘 보인다. 이 붕어섬은 참붕어섬 같다. 화천에도 붕어섬이 있다.
(붕어섬, 금붕어섬, 외앗전망대에서 본 전경)
(옥정호 붕어섬, 물이 찼을 때, 인터넷 사진)
(화천 붕어섬, 인터넷 사진)
(춘천 붕어섬, 삼악산에서, 참붕어섬)
그렇게 붕어섬을 바라보고 국사봉 화장실을 들리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강남참게전문점에서 수육으로 하산식을 먹었다. 수육은 맛나게 잘 나왔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어정쩡하게 밥을 먹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효재를 잡았다. 효재와 그의 친구 그리고 선호와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나만 빼고 소맥으로 분위기를 북돋웠다. 효재가 못 본 사이에 훨씬 활달해진 것 같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왔는데 총무가 하는 말이 밥값이나 술값이 똑같이 나왔단다. 그래서 술값을 따로 더 걷으라고 했다.
기사가 하는 말이 위에 카페가 있는데 멋지단다. 그래서 올라가 보니 한옥인데 단정하고 아담하고 뜰에서 호수가 보이는 카페다.
버스는 출발해서 정안 휴게소로 막 들어서려고 하는데 소낙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시 출발했다. 천안 합류 지점에 오기 전에 있는 터널 앞에서 잠시 정체되더니 이내 버스는 잘 달린다.
(카페)
(60년대 풍경, 인터넷 사진)
우리 때는 아니 나 때는 두들겨 맞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들은 사랑의 매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선생이 두들겨 패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도 자기 나라의 애들은 안 팼다.
생각해 봅시다. 두들겨 맞는다고 착한 학생이 되고 공부를 잘 합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패면 되는 것 아닌가요. 공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왜? 팹니까? 그거 패지 말자고 하는 것이 전교조인데 그게 잘못된 것인가요?
(일제강점기 시대 선생 복장, 인터넷 사진)
우리나라 교육에서 언제부터 패기 시작했느냐 하면 일제가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빨리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이지요.
이때부터 선생들이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몽둥이를 들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3.1운동 이후는 몽둥이만 들고 시켰답니다. 빠르게 일본 교육을 주입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진짜 중요한 것은 조선인을 공부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열등화(劣等化) 교육을 시켜서 부려먹기 좋은 인간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들이 패면서 하는 말이 ”이 빠가야로!“ 다시 말해서 ”이 돌대가리 새끼야! “입니다. 때리면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이 심어지고 말은 잘 듣습니다.
이런 교육을 보고 자란 우리 선생들은 우리는 이것을 사랑의 매로 기억합니다. 그렇게도 열등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가요?
또 그렇게 찬양해가며 각종 혜택을 줘가며 공부시켜 일등을 한 얘들 의대에 가서 서울대 가서 지금 하는 일이 뭡니까?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기 바쁘지 않습니까? 인성이 우리보다 훨씬 못하지 않나요?
(70년대 일상이었던 체벌, 인터넷 사진)
(이 학생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갔을까요? 인터넷 사진)
버스가 수원에 도착할 무렵에 옆에 앉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사람이나 나라나 자신이 성공한 것 때문에 망한다고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분이나 나나 여러분이나 똑같이 경험하고 성공한 결과 우리나라가 잘 사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 때문에 우리는 망하고 있습니다. 이상한가요!
생각해 봅시다. 아주 단편적인 것 하나만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육아 휴가를 갈 수도 없었고 어쩌다 가면 싫어했습니다. 아니 잘라버렸습니다. 회사 발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요. 그렇게 해서 회사는 대기업이 됐습니다.
(80년대 대우자동차 인터넷 사진)
그리고 남자들은 회사에 충성한다고 집에 안 가고 잔업을 하고 쉬어도 술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여자 혼자 육아 독박을 썼습니다. 이것을 뻔히 아는데 당신이 젊은 여인이라면 애를 낳고 싶겠습니까?
예전에는 너나 나나 못 살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다보니 어떤 놈은 떼 부자가 되어있고 자신은 초라해졌습니다. 놀아서 그랬나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나름 노력을 했는데 운이 없어서 처지가 그렇습니다. 그런 부모를 둔 얘들이 애 낳고 싶을까요? 코끼리도 공동육아를 합니다. 육아는 개인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 각자도생하라고 하지요. 나는 했으니깐!
그래서 회장이 함께 산행하자는 것처럼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함께 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하니 옆에 계신 분이 그건 아니라고 본답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말이다. 각자도생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유를 잘 생각해 보세요. 그거 당신은 가졌는지 말입니다. 가졌다고요. 그거 착각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여공들, 다 부자 됐을까요? 인터넷 사진)
쥐뿔도 없는 젊은것들이 해외여행을 가도 되느냐는 묻습니다. 나는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 어차피 부모가 못 도와주는 애들은 평생 집 사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평생 버둥거리며 신세 한탄하며 사는 것보다는 버는 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일에 묻혀서 살 필요는 없지요.
그랬더니 흥분을 하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나보고 진보냐고 물어봅니다. 사실 나는 진보냐 보수냐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냥 진보라고 묻기에 진보라고 했습니다. 내 입으로 처음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는 보수라면서 함께 같이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우월한 위치에 서는 것이 기쁘니까요. 남을 아랫것으로 보면서 말입니다.
(2024. 6. 18. 월드컵경기장 지하철 공사 현장, 이 사람 부자일까요?)
그런데 빨리 같이 망하는 길입니다. 본의 아니게 옆 분에게 실례한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에 생각으로 사는 것인데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보수가 뭔지 아십니까? 자유라고도 하고 자유라는 말을 많이도 쓰던데 맞나요? 보수는 기존의 가치관을 준수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국민이 거의 보수입니다. 우리에게는 비극이지만 그들에게는 자긍심이며 지켜야 할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하게도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관이 없습니다. 왜냐 조선이 망하므로 해서 가치관이 해체되었거든요. 그런데 웬? 보수냐? 일제에 충성하던 사람들이 미군이 들어오니깐 재빠르게 변신합니다. 미국에 충성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 자유를 받아들입니다. 자유에 충성! 민족도 역사도 다 필요 없습니다. 자유에 충성
(자유의 여신상, 인터넷 사진)
그래서 우리에 보수는 자유라는 빌미 아래 권력을 잡고 돈을 버는데 탁월한 이 충성 주의자들과 이들에 붙어서 돈을 버는 대형언론과 유신 교육을 받고 은퇴한 노인과 정보를 제대로 접할 수 없는 전업주부와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저학력자 다시 말해서 무식한 사람으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리 얘기합니다. 알고 보수합시다.
자유! 정말 중요합니다. 그 멋진 자유를 누가 가져야 하나요? 한 사람이, 권력을 잡은 몇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공부 잘한 사람이? 그렇다면 서민은 자유를 누가 주나요? 서민도 자기 집을 가질 자유가 있잖아요? 안 되나요! 그래서 자유도 정의를 내리고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협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한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나도 늙은이입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지켜야 할 가치관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도 열열한 보수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보수 진보가 뭐가 중요한가요. 나라가 망하지 말아야지요.
(사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 인터넷 사진)
참 옆 분에게 ”꼰대“라는 말도 사용했습니다. 부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꼰대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꼰대는 중간 정도의 우호성과 낮은 개방성과 높은 성실성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생각이 신선하고 정도의 길이고 고귀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이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세월이 바뀌어서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주 성실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배고픔만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지금 젊은이들이 넘지 못하는 벽을 바라보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들은 가졌는데 자기는 못 가지는 비교의 아픔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도 그 고통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우리 늙은이들은
참고로
우리나라 망하는 로드맵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만 모릅니다. 말해 볼까요.
자영업자들이 첫 번째입니다. 이미 타격을 받았지만, 연말이 되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값을 올리는 것으로 버티는 데 한계에 도래했습니다. 여기에 상가도 따라붙습니다.
경제성장은 2030년이면 멈춥니다. 다시 말하면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것이지요. 쪼그라듭니다. 여러분 자산도 쪼그라들 것입니다. 사는 게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겁니다.
주식시장은 약 5년 후면 폭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에 올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경제성장은 멈추고 국민연금이 6년 후이면 주식을 팔아서 줘야 합니다. 주식시장은 선행합니다.
집값은 지하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10년 후면 많이 하락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버스 운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오른다고요.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려갑니다.
(연도별 출생자 추세, 인터넷 사진)
5년 후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한국인 젊은이를 채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대기업 아니면 취직은 안 합니다. 차라리 카페를 차리거나 아르바이트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젊은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 반은 혼자서 죽을 겁니다. 자식 자랑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보살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있다고요. 그들도 이제는 남입니다. 참고로 저는 다섯 분의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이게 여러분이 그렇게 노력해서 각자도생해서 얻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서히 끓고 있는 항아리 속의 개구리인지도 모릅니다. 천하태평한
그래서 약은 사람은 벌써 해외로 투자처를 돌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산을 빼돌렸습니다. 빨리 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좀 덜 망하려면 함께 사는 방법을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보수는 절대 손해 보기 싫어하나요?
한국에서 독일로 간 한국 여인이 자식 교육을 잘 시키고자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에게 선행교육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득달같이 담임 선생한테서 편지가 왔답니다. 자녀에게 선행교육을 하지 말라고, 교육은 느려도 함께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함께 살아갑시다.
첫댓글 멋진 산행 감사합니다
매번 멋진 산행 후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늘 부강과함께 했으면 좋겠읍니다~
덕분에 멋진 산행헸습니다.
오봉산 산행후기 글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산행였네요.
글 잘 읽고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