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nie and Clyde. 1967년 작. 111분.
감독 아서 펜, 출연 워런 비티, 페이 더너웨이, 진 해크먼, 에스텔 파슨스.
워런 비티가 제작, 주연을 맡았다. 극중 워런 비티의 형수, 즉 진 해크먼의 아내로 나오는 에스텔 파슨스가 68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버넷 구피가 촬영상을 각각 수상했다.
1930년 대 대공황 시절, 희망도 꿈도 없는 젊은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장난치듯' 은행강도 짓을 하다 끝내 총탄세례를 맞고 숨진다는 줄거리 소개는 그만 두자.
그보다는 이 영화가 점하고 있는 영화사적 위치를 살펴보는 게 더 유익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이어 1969년 뉴 시네마의 명작들이 마구 쏟아진다. 얼마전 우리가 감상했던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비롯해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 라이더> 등이다. 이들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어둠의 자식들'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냉대받고 소외받다 끝내 젊은 나이에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죽고만다는 것이다.
뉴 시네마는 한마디로 기성세대와 보수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때문에 주인공의 영웅화(化)나 권선징악, 해피 엔딩 등을 거부한다. 세상이, 또 인생이란 게 꼭 주인공 중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은 약육강식에다 악(惡)이 선(善)을 조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사람 사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즉 리얼리즘의 적극적 추구다. 그래서 촬영도 스타디오가 아니라 현장이다. 뉴 시네마 영화들이 대부분 로드 무비(자동차든 말이든)인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중에서도 뉴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이지 라이더(Easy Rider)>이다. 이 작품은 40만 달러를 들여 1천6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저예산 영화로도 유명하다. 헨리 폰다의 아들 피터 폰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모터 사이클을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며 마약과 성 해방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희망없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담고있다. 반전(反戰) 및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히피족들의 절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특히 <내일을 향해 쏴라>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따온 게 많다. 도둑들의 실화 얘기인데다 캐서린 로스의 은행강도 합류, 끝 장면의 총탄세례 등 유사점이 많다.
뉴 시네마 운동은 미국보다 먼저 유럽에서 시작됐다. 영화사상 최초의 뉴 시네마인 네오 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에서 등장했다. 1945년 제작된 <무방비도시>는 3~4명의 주연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비직업 배우였고, 전쟁터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에서 찍은 거친 화면이 대부분이었다. 현실성을 강조한 네오 리얼리즘은 전후 이탈리아의 현실을 반영한 '폐허의 미학'이었다.
1950년대 영국 프리 시네마의 사실주의도 '앵그리 영 맨'세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프랑스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1954년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란 글에서 이전 프랑스 영화들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쏟아붓는다. 유명한 문학작품을 각색하는데 열중하는가 하면 영화제에서 상 타기에만 혈안이라는 것이었다. 전통에 대한 비판이자 거부를 내세운 그는 '작가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즉 문학의 작가처럼 영화감독도 자신의 스타일과 관점을 일관되게, 그리고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영화에 투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누벨 바그(Nouvelle Vague, New Wave)의 시작이다.
사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각본을 쓴 로버트 벤튼과 데이빗 뉴먼은 이 영화의 메가폰을 트뤼포 감독에게 맡기기 위해 수차례 설득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그만큼 이 영화의 뉴 시네마적 요소를 간파했다는 얘기고, 당시 할리우드에선 이 각본을 소화할 만한 감독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도 1960년대 정치,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오시마 나기사(大島渚)감독을 낳았고, 영화와 현실의 간격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역시 1960년대 들어 뉴 시네마 운동이 불붙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의 잇단 출현, 쿠바 혁명, 베트남 전쟁 등을 경험하면서 영화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같은 각성은 급기야 할리우드의 부르주아적 상업영화를 '제1영화', 누벨바그의 작가주의 영화를 '제2영화'라 부르며 비판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제3영화'는 현실을 변화시키며, 영화산업에 저항하고, 영화가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문법은 과거와의 단절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미국의 뉴 시네마도 197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영화 악동'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 '제대로 배운' 영화과 1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결국 과거형으로 남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도, 누벨 바그도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들 이후엔 프랑스의 '누벨 이마주', 미국의 '선댄스 세대' '뉴욕 인디펜던트' 등이 새로운 경향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에선 아직 뉴 시네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정말 유감이다. 굳이 찾자면 1996년 개봉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도랄까.
아무튼 새로운 영화를 찾아가는 여정, 영화의 역사 또한 하나의 변증법적 과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