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룬궁을 수련한 이야기
글/ 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 봄에 귀중한 ‘전법륜’ 책을 보고 인생의 의의, 병의 근원과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등의 이치를 알게 됐고 인생의 희망이 보였다. 파룬궁을 수련한지 반년도 안됐는데 질병이 없는 즐거움을 체득했다. 대법이 나를 구해줬지만 난 돈 한 푼 쓰지 않았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심성을 제고함에 따라 점차 초상적이고 강력한 대법의 위력과 신성함을 체득했고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은 나를 건강하고 마음이 고상하며 점차 완전히 남을 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내게 평범치 않은 이야기를 표출해주었다.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나쁜 습관이 많았다. 특히 게으름과 고생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 수련할 때 아침에 일어나 연공하지 못했고 깼어도 게을러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연속 며칠 연공시간이 되기만 하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 신속히 옷을 입고 화장실(화장실이 마당에 있음)로 뛰어가면 배가 아프지 않았다.
당시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집안에 돌아오면 정신이 들어 연공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연공한 후 신체는 상쾌하고 편안해 하루 내내 힘들지 않고 정력이 왕성했다. 이전처럼 힘들어 괴로워하고 하품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점차 몸이 좋아지고 살이 오르자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하얀 젊은이’라고 불렀다.
색욕관을 넘다
‘서유기’ 중 삼장법사와 제자들은 구구 팔십일 차례의 고험을 겪고서야 불경을 가져올 수 있었다. 수련 중에 나도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많은 고험을 겪었다. 즉 색욕관을 넘기는 것을 말해보겠다.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해 꿈에서 여러 번 심성을 지키지 못해 매우 낙담했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하다가 녹색 치마를 입고 물을 뿌리는 한 여자를 봤는데 예뻐서 몇 번 더 보려 하다가 갑자기 딱정벌레가 왼쪽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애써서 벌레를 비벼냈다. 즉시 이는 색욕심을 움직여 초래한 것임을 인식했다. 엄숙하게 수련을 대하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순정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은 기사 몇 명과 배송을 하러 갔는데 저녁 무렵에 한 여관에 숙박했다. 우리 넷은 같은 방을 썼다. 금방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두 젊은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 그 중 한 여자는 히히덕거리며 걸어오더니 내 다리 위에 앉았다.
나는 처음 이런 일에 부딪혀 단번에 그녀를 떠밀고 “여기 앉으려고요? 그럼 저는 저쪽에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여자는 “생선을 먹지 않는 고양이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 기사는 “우리 지도자에게 그러지 마세요. 파룬궁 제자입니다”라고 하자 두 여자는 히히덕거리며 나갔다.
저녁 식사 후 혼자만 방에 있었고 침대에 앉아 ‘전법륜’을 보고 있는데 그 여자가 또 들어와 내 침대에 앉아서 “무슨 책을 봐요? 그렇게 정직해서 뭘 해요?”라고 했다. 나는 “이 책은 불법(佛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내 가슴 앞에 꽂은 法輪 배지를 자세히 봤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에 왔으니 우리 이야기를 나눕시다. 사람이 왜 사는지 알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요?” 라고 묻자,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라고 반문했다.
“사람과 동물은 달라요. 인간은 인간의 도덕규범이 있어야 인간이라고 할 수 있기에 마땅히 이 몸을 아껴야 해요. 특히 당신은 젊은 사람인데 행복한 미래가 있길 희망합니다. 이 책을 한번 보면 인생의 의의를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말할 때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동정과 자비가 가득했고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잃어버린 그녀의 본성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녀는 마치 통제를 받은 것처럼 줄곧 조용히 앉아 서 들었고 히히덕거리는 표정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그녀의 큰 눈에서 순진과 희망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생명이 재생하는 진실한 표현이었다.
대략 20분 후 그녀는 일어나 두 손으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아저씨의 가르침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나갔고 매우 예의 바르게 문을 살며시 닫았다. ‘전법륜’ 중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의 박대한 내포와 아름다움을 체득했다.
컴퓨터를 배우지 않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안다
나는 전문적으로 컴퓨터를 배운 적이 없으나 2000년부터 컴퓨터로 능숙하게 상품을 설계할 수 있었다. 몇 십 배나 효율이 제고됐고 일부 기술 공정은 독창적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매우 자연스럽게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두 대법이 준 지혜이며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매일 출근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전념하고 연속 3~4시간 게으르지 않고 일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어디에 있던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일을 잘 해야 한다.
한 컴퓨터실에 있는 여 타자원은 매우 놀라며 “언제 컴퓨터를 배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배운 적이 없어요. 파룬궁을 연마해 지혜가 열려 자연적으로 할 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녀는 믿지 않았지만 이후에 진짜로 탄복했다. 사실 그녀는 나를 감시하라고 부장이 파견한 사람이었다. 나는 차차 그녀에게 진상을 똑똑하게 알렸다.
한번은 종합실 사람이 오더니 나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다 기입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입하지 않아요, 영원히 기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거절하자 그 사람은 끊임없이 치근거렸다.
여 타자원은 “이 사람(나를 가리킴)이 혼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그의 일을 방해하지 말아요!”라고 큰 소리로 꾸짖으며 그들을 쫓아냈다. 그리고 내게 “그들은 차 마시고 신문을 보고도 임금을 타면서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명리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다
나는 기술 작업장 주임으로 승진됐다. 이 작업장에는 부당한 금전 거래가 매우 많았으므로 이전의 주임은 매달 각종 명목으로 몇 천위안의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 노동자들은 매우 분개했으나 감히 주임을 건드리지 못했다.
내가 직위를 이어 받은 후 직장을 떠난 반장에게 정산해주고 매달 생산량, 임금의 분배 상황을 벽에 발표했고 돈 한 푼도 탐오한 적이 없으며 일이 바쁘고 잔업할 때 직접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물을 떠주고 화물차에 상품을 실을 때 일을 배치하고 앞장서서 했다.
한번은 한 노동자보고 마지막 상품을 실으라고 하자 그는 “벌써 상품 3개나 실었어요”라고 했다. 나는 “내 어깨에 실은 이것이 다섯 번째 상품이야”라고 했다. 사실 전 주임은 일을 매우 적게 했고 손을 허리에 대고 사람을 훈계해 노동자들은 분노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내가 책임지는 계통의 신제품이 연구 개발된 후 원재료부터 공장 내 10여 개 절차까지 모두 확인하고 지도했으며 외국인 주문으로부터 시장 반영까지 모두 열심히 기록하고 연구하며 실현하고 제때에 조절해 일이 매우 바빴다.
노동자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다 알기에 많은 사람은 나를 보기만 하면 “좋은 사람, 평생 평안하세요!”라고 했다.
우리 공장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해 한 때 세계 유명 기업이 됐고 많은 고객이 모였다. 공장 본사에 3천여 명의 노동자가 있고 협력하는 가공업체를 추가하면 3, 4만 여명이었으며 2000년 당시 평균 임금은 800여 위안에 달했다. 당시 내 임금은 아직 평균 임금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일부 친구들은 3~5천 위안으로 나를 초빙했지만 전부 거절했다. 여기에 내가 필요하고 수련인으로서, 좋은 사람으로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 천만 명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부장은 무료로 방이 3개 있는 집을 주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첫째, 이유 없이 선물을 받기 싫었다. 둘째, 많은 노동자가 더욱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아직 공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에 살았는데 출퇴근할 때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수련하기 전에 온갖 방법을 다해 집을 구하려고 애썼고 공장과 가깝고 물, 전기, 보일러가 다 있는 집을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 세상의 명리를 담담하게 봤고 매우 평온했다.
나는 부장에게 “우리 사부님께서는 완전히 남을 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기 때문에 꼭 일을 잘하겠습니다. 성적은 해내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후에 부장도 중간 간부 회의에서 이 말로 중간 간부를 지도했다. 공산당의 박해 후 압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이 부장은 파룬궁을 손상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익에 대한 고험이 매우 많았지만 나는 모두 노력해서 대법의 요구대로 했다. 고객이 500위안의 구두를 선물하면 나는 재무과에 가서 영수증을 결산할 때 500위안의 영수증을 뽑아 찢어버렸다. 그러면 스스로 500위안을 써서 구두를 산 것과 마찬가지였다.
중간 간부 회식을 하면 20위안을 꺼내 사무장에게 주면서 제 몫은 스스로 내겠으니 영수증을 결산할 때 20위안 적게 계산하라고 했다.
부장이 나를 위해 우리 지역의 뛰어난 기술 인재로 신청해주고 관련 부서 지도자도 여러 번 나를 찾아 업적 등을 기입해주었다. 나는 신청서 내용에 반드시 과장한 것이 없어야 동의했고 아니면 거절하고 신청하지 않았다.
부서 지도자는 급해서 “다른 사람은 원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바보처럼 굴지 마. 신청이 접수되면 좋은 점이 너무 많아. 우리는 널 위해 과장한 것인데”라고 했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에 부장은 “중간 간부 중 자네만 아직 당원이 아니네. 입당하면 승진시킬 수 있는데 파룬궁을 연마해서 좀 힘들다네. 공산당은 예부터 이런 것에 매우 민감하니 연마하지 마시게”라고 했다.
나는 “우리는 연공만 하는 것이고 회도문(會道門-공산당 정권 초기에 탄압했던 지방의 각종 종교조직)이 아니며 공산당과 관계가 없어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아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부장은 “만약 수련을 견지하면 입당하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네. 자네는 사람도 좋고 기술도 좋아. 우리는 친형제 같으니 내가 어디에 가든 자네를 데리고 갈 것이네. 가입하지 않겠으면 가입하지 말게나. 월급을 올려 주겠네”라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어떻게 되든 일을 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연말, 부장은 나를 보더니 “내가 알아봤네. 중간 간부 중 자네 임금이 가장 낮더군. 월말에 2천 위안의 임금을 더 보태주겠네”라고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부장은 “공장 업무 회의에서 임금을 추가해주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네. 다른 중간 간부에 대해 공평하지 않다고”라고 했다.
이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 대한 고험이라고 생각하고 탄연하게 “어떻게 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부장은 또 “2천 위안을 기술 장려금으로 주면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라고 했다.
관을 넘는 과정 중 내려놓지 못할 마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다 탄연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명리심을 내려놓은 후 물질상 오히려 더욱 부유해졌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의 의무를 다하다
가정 중 우리 부부는 아버지에 대해 매우 효도했다. 특히 아내 수련생은 5년을 하루와 같이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알뜰히 보살폈다. 처음에 아버지는 몸 절반을 쓰지 못했기에 아내는 아버지를 모시고 정원에 가서 걸으면서 한 바퀴 한 바퀴 단련시켰다.
아버지가 침대에 드러누운 후 아내는 아버지의 손, 얼굴, 발을 씻어드리고 이발하고 수염을 깎아드리며 밥과 약을 먹여드리고 몸을 돌려 긁어드리고 오줌똥을 받아내며 기저귀와 침구를 갈아드리고 주변을 청소해드렸다.
겨울에는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우고 여름에는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특히 아버지가 10여 일에 한 번씩 대변보는 일은 매우 번거로웠다. 변비로 변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 신음하고 변이 딱딱했는데 글리세린 관장 도구를 뾰족하게 깎아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내는 시계 방향으로 배를 문질러 장이 움직이게 하고 동시에 핀세트로 조금씩 조금씩 살며시 꺼냈는데 아프게 하면 아버지에게 욕을 먹었다. 말랑할 때까지 반시간 끄집어내고 글리세린 관장을 밀어 넣고 또 약물이 변을 용해하고 대변을 볼 때까지 손으로 반시간 막아야 했다.
어떤 때 아내의 온 손이 변이고 얼굴에는 온통 땀이었다. 이어서 아버지는 연속 3~4일 설사했는데 아내는 신문을 몇 층 깔고 또 위생종이를 깔았으며 하루에 몇 번씩 청소해야 했다. 아내는 이 일대의 이름난 효도 며느리가 됐다. 그녀의 몸에서 마을 사람들도 한 파룬궁 제자의 순박하고 선량한 모습을 봤다.
98년 설날 일주일 전에 83살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외지에서 신제품 연구를 학습하느라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내가 집에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관에 누워 계셨다.
아내는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 이름만 부르면서 눈을 크게 뜨고 집안에서 당신만 찾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매우 조용했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본 적이 있어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기쁘고 안심했다.
맺음말
나도 많은 수련생들처럼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10여년 간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 붙잡히고 매를 맞았으며 장기적인 괴롭힘을 당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었고 심지어 몇 년간 박해를 받아 유랑생활까지 했는데 각종 방면의 체득은 바닷물처럼 많다.
한 방울마다 불법의 위대함과 자비, 아름다움을 증명했고 사부님의 보호와 노고, 커다란 지출이 깃들어 있다. 호탕한 사부님의 은혜는 생명의 모든 것을 다 부어넣더라도 보답할 수 없다.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수련하는 수밖에 없다.
이 문장을 본 사람들도 다시는 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빨리 귀중한 서적 ‘전법륜’을 찾아서 삼가 읽으면 혜택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14년 10월 1일
나는 가장 진귀한 大法을 얻었다.
글/ 한국 수련생
나는 2003년 5월에 생명보다 귀중한 법을 얻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특히 초등학교 3, 4학년 때의 피부병(두드러기)은 내 몸과 마음을 모두 망가뜨렸다. 이 증상은 약 20년 동안 이어졌는데 독한 약을 계속 먹다 보니 위장이 망가져 버렸다.
심할 때는 두상과 혀에도 생겼는데 그 고통은 말로는 모두 표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로 인해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으며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성격도 소침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고 심지어 민간요법까지 모두 써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낫지도 않는 치료를 하느라 돈도 많이 쓰면서 심지어 호랑이 고기를 먹기도 했는데 그 과정 중에서 몇 번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언제인지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그 피부병은 없어졌으나 그 후유증으로 위장병(차멀미가 심해 차를 타도 10여 개 정거장을 가는데 한두 번 내렸다 타기도 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전신 쇠약증, 불면증, 두통 등으로 고생을 했다.
한의사의 진맥 결과 당시 내 신체 상태는 80대 노인 정도라고 했다. 30대의 한창 꽃다운 나이인데 80대라니...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음식물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80대보다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장(콩팥 부신)에 종양이 생겨 수술로 떼어 냈다. 다행이 악성은 아니었으나 의사의 말은 수술하지 않을 경우 악성으로 갈수도 있다고 했다. 거기다가 또 하나의 희귀병이 나를 괴롭혔는데 날씨가 습하고 찬바람이 좀 불거나 찬물이 몸에 조금만 닿아도 몸이 쑤시며 고통스러워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으로 지옥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아도 무슨 병인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자살까지 여러 번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책을 보았는데 몸에 귀신이 붙었다는 내용이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절에서 귀신을 몰아내는 구병시식까지 했지만 돈만 많이 버리고(현재 환산금액 약 1천만 원)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내 나이 42세, 5월 어느 날 가족과 집 근처인 사직공원에 갔다가 벤치 위에 놓여 있는 건강의 길이라는 소책자를 보게 되었다. 펼쳐보니 파룬궁 수련을 한 후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병이 치료되었다는 전 세계 수련생들의 체득 내용이었고,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었다.
처음에는 희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라 관심을 가졌으나 꼭 믿지는 않았다. 그동안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1주일 정도 지나 그래도 한번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근처 연공장(독립문 공원)에 전화를 걸어 보도원의 안내를 받아 수련의 문에 들어섰다.
수련을 시작한 후 1주일에서 10일 정도가 지났을까, 그 고통스러웠던 병마가 모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동안 불면증이 심해 잠들기도 고통스러웠고 2~3시간 정도 잠을 자도 계속 꿈을 꾸어, 일어나도 눈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흐리멍덩한 날이 계속되어 사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셔도 잠이 잘 온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다. 그동안 모아둔 병원 진료카드는 족히 30, 40장은 되었는데 모두 버렸으며, 지금까지(9년 정도) 약 한 알도 먹지 않았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이것은 기적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왜 사람은 병이 있는가? 그에게 병이 있음과 모든 불행을 조성하는 근본 원인은 업력으로써,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에 대해 명백히 알았으며 내가 그동안 그토록 많은 고통을 받은 이유를 또한 명백히 깨닫게 되었다.
내 신체의 병과 주위 환경에 나타난 난과 고통은 나 자신이 전생에 진 빚을 갚는 소업현상이고,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라고 ‘전법륜(轉法輪)’에서 하신 말씀은, 내가 살아오면서 내 욕심으로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아 몸으로 나타나 그것을 가중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크게 나쁜 짓은 안 했지만 그 많은 질투심, 시기심, 쟁투심, 이기심, 의심 등으로 많은 내 주위의 분들이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대법을 얻고 나는 앞으로 바르게 살고 선타후아(先他後我)와 무사무아(無私無我) 그리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된 수련인으로 흐트러짐이 없도록 계속 정진하는 것이 빚을 갚는 길이라고 다짐해 본다.
내가 이 법을 얻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자신의 우매한 견해로 그어놓은 틀 속에서 기어 다니게 될 것이다."(전법륜-논어) 말씀처럼 되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해를 끼쳤을 것이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다툼이 없으며 항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항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의 법이 나의 생명보다 더 진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고를 쓰면서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현실에 미혹되어 크고 작은 아주 많은 나쁜 행위와 나쁜 생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전하신 이 法輪大法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 이 고통에서 헤어 나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法輪大法 眞善忍은 좋다!
끝으로 사부님의 호탕(浩湯)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문장발표 : 2012년 6월 19일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게 된 계기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보통 사람이 말하는 엘리트 지식인이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는 국내외 유명 전문가가 다수 있다. 몸이 좋지 않고 일과 생활이 순조롭지 않아 法輪大法(파룬궁)을 수련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강한 쟁투심을 버리지 못한 채, ‘법에 무슨 결점이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에 법륜대법은 위대한 불법(佛法)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1997년 나는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접했고 이때 나는 ‘전법륜’을 단번에 세 번이나 읽었다. 하지만 당시 명리심이 강했고, ‘법속에 무슨 결점이 없을까?’하는 심태를 품고 법을 읽어, 대법의 오묘한 비밀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일이 바빠서 대법의 인연을 스쳐 지나갔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직장의 중견 지도자들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권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직장에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있었기에 나는 수련생의 상황을 더욱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선량했으며 불공평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전법륜’을 읽었고 수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록 파룬궁 수련의 문제점을 찾아 수련생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권하려는 목적에서 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련을 견지하였고 오히려 나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그 상황에서도 그들의 신체는 확실히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하루, 한 수련생이 그와 같이 법륜장법(法輪樁法)을 함께 연마하자고 했다. 나는 그와 경쟁하려는 마음으로 30분 동안 제2장 법륜장법을 연마했다. 그 후 수련생들은 나에게 4장 공법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5장 공법을 하려 할 때, 큰 곤란에 부딪혔다.
반가부좌를 해도 다리가 높이 올라와 있었고 게다가 가슴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2년간의 수련을 거쳐서야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이즈음 나는 또 ‘전법륜’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강렬한 쟁투심을 지니고 법공부를 해서 줄곧 법리의 오묘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친구가 중국 전통문화에 관련된 서적을 산 것을 보았다. 나는 자세히 그 책들을 보았다. 관중, 순자, 한비자, 공자, 노자, 장자 등 선현들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책을 접하고서, 나는 비로소 중국 전통문화가 박대정심(博大精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에 나는 공산당 문화가 주입한 투쟁 사상으로 전통사상을 비판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오랫동안 공산당 문화가 주입된 교육을 받아 사회에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전법륜’ 중에서 서술한 것이 선현들의 서적보다 더 깊은 법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점차 쟁투심을 포기하고 조용히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읽을수록 즐겁고 읽을수록 깨어났으며 신체도 갈수록 좋아졌다.
2005년, 나는 서방사회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NTD방송에서 줄곧 방송하는 ‘9평공산당’ 및 ‘해체당문화’와 ‘마르크스가 마귀가 되는 길’ 등을 읽었다.
공산당은 1776년 독일에서 ‘일루미나티(光照幫)’가 이루어져 성립했다는 역사를 이해하고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수년간 왜곡된 공산당 문화에 깊이 세뇌 당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이 바로 내가 줄곧 대법 수련으로 진정으로 들어가지 못한 원인이었다.
귀국한 후, 나는 진정으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주변 동료와 만나는 사람에게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수련 대법이라고 알려주었고 왜 이렇게 잔혹한 박해를 당하는지 진상을 밝혔으며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해시켰다.
아울러 어떻게 공산당 문화의 사유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일의 시비를 가리는 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나는 주로 사이트를 통해 수련생과 사부님의 상황을 알게 됐고 법으로 자신을 견주어 부족한 점을 찾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켰다.
지금 나는 매일 일찍 일어나 결가부좌를 1시간 반이나 2시간을 한다. 동시에 매일 ‘전법륜’ 두 강을 배우고 5장 공법을 한다. 마지막에 ‘홍음’ 3권을 읽거나 외운다. 수련으로 생활은 충실하고 즐겁다.
대법의 길에서 수련해 온 경험을 회상해 보면, 매번 사부님의 자비로운신 배치가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오늘까지 걸어온 것이다. 여기서 사부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 2014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