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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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발전'에만 촛점을 맞춰 생각해 본다면, 인간의 역사, 더 정확히 말하여 '인간의 생활양식'의 역사는 발전 또는 변화해온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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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암흑시대'라고까지 부르며 경멸해 마지않는 서양 중세기의 미신적 신권주의나 '마녀사냥'식 도덕적 테러리즘이 현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나는 쉽사리 역사발전론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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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명제를 내건 대표적 역사학자는 아놀드 토인비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이 명제에 바탕하여 위의 사실을 실제적으로 증명한 책 [강대국의 흥망](1987)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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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케네디의 지적은 옳다. 다만 그가 예언한 것처럼 일본이 '진짜 강대국'이 될지는 의문이다. 일본 역시 경제 발전에 따른 오만함으로 인해 차츰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복지정책이 확립된 나라를 '진짜 강대국'이라고 볼 때, 일본은 진짜 강대국이 되지 못하고 과거의 전철을 되밟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국가로든 개인으로든, 인간은 '힘의 과시'를 위해 자학적 파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역사는 되풀이 해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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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문제'를 가지고 따져봐도 인간의 역사는 아직껏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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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를 놓고 봐도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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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가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된 현대라고 해서, 인간이 성적
욕망의 면에서 보다 발전된 쾌락충족의 매커니즘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인간은 오히려 더 심한 성적 기아상태에 놓여있고,
성적 쾌락의 불평등한 공급이 더욱 심화돼 가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성에 대한 이중적 위선과 규제가 두드러지는 나라에서는, 성이 '사랑'의 개념과 결부되지않고 '죄의식'이나 '필요악'의 개념과 결부되어 인식됨으로써, 사람들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식 자아분열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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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로 유명한 E.H카는 그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진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보'는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가설'이라는 애매모호한 사족을 달았다. 미래의 진보(또는 발전)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다면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인 것 같다.
역사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이들은 카말고도
많다. 아니, 대중에게 사랑받은 사상가들은 대개 역사의 발전가능성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데카르트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헤겔이 그랬다. 볼테르나 테야르 드 샤르뎅, 베르그송 같은
이상주의자나 계몽주의자들 역시 인간 이성에 의한 역사의 발전을 확신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을 부정하고 미래를 암담하게 바라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인류 문명의 장래를 어둡게 보았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만성적 정신질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양식이 편의롭게 변화된다고 해도, 인간은 언제나 도덕적
초자아와 동물적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며 사도마조히스틱(sado-masochistic)한 피.가학적 행위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좌파에 속하는 정신 분석학자 에리히 프롬도 인간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그의 대표작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히틀러의 독재를 불러일으킨 독일 국민들의 집단적 마조히즘 심리를 해부하고 있다. 인간은 '진정한 자유의 확보'를 발전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언제나 자유를 두려워하며 피학의 상태에서 안존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인류가 성인으로 떠받들고 잇는 예수나 석가도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발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사실이다. 예순느
자기가 죽은 뒤 곧바로 말세가 닥쳐오리라 예언했고, 석가도 불법이
쇠하는 말법세계가 닥쳐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서 후세의 종교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민중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고 애썼는데,
그 결과 기독교에서는 '최후의 심판 뒤에 오는 구세주의 재림과 하늘나라의 도래'가, 불교에서는 '미륵불의 강림에 의한 인류의 구원'이
교리로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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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최후의 심판'이나 말법세계의 도래' 같은 종말론적 역사관이 예수나 석가 사상의 핵심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민중들에게 자행하는 끊임없는 수탈과 인권유린이 그저 슬프고 짜증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당시의 지배 엘리트엿던
바리새파 종교지도자들을 이를 부득부득 갈며 미워했던 것이고, 석가는 전제 군주가 될 수도 있는 자신의 신분을 과감히 내팽개쳐 버렸던
것이다.
역사의 진보 또는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낙관주의적 사상가들은
대개 귀족 신분이거나 기득권 엘리트들이엇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프로이트가 부정적 역사관을 가졌던 것은 그가 소외받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이고 에리히 프롬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 의한 역사발전을 믿었던 헤겔은 살아 생전의 명예와 지위를
누릴대로 누렸던 운 좋은 사람이었고, 헤겔과는 반대로 염세적인 인생관과 부정적인 역사관을 가졌던 쇼펜하우어는 어머니한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교수로 출세하는 데도 실패했던 국외자였다.
마르크스는 다소 예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소망하던 교수 자리도 못
얻고 평생을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본주의의 당연한 붕괴에 따른 공산주의 낙원의 도래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부정적 인간관에서 그의 유토피아니즘을 출발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자본가들에 대한 미칠듯한 적개심'이 없었다면 그의 사상은 나올 수
없엇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특히 교회도 많고 절도 많고 유사종교도 많다. 그리고 점술가들이 유난히 활개치며 주요 일간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적 종교들은 대개 다 말세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 '민심이 천심‘이라고 볼 때 이런 현상을 그저 ’합리적 지성의 미숙‘에서 오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이런 현상의 진짜 원인은 아직도 우리나라엔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나 가렴주구가 많고,
법을 빙자한 자유권의 침해 역시 많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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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물론 발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문화나 이념의 진보를 이룩한다는 구실로 민중들을 끊임없이
희생시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피라미드의 장려한 건축미보다
피라미드를 짓다 죽어간 노예들의 억울한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역사는 발전할 수 있다. 식욕과 성욕의 고른 충족과 인권의 고른 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
첫댓글 마광수..그만의 매력이 느껴지네요..진정한 역사의 진보는 인권의 고른 보장일진데...
사실..마광수교수에 대해 별다른 호감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재조명해보는 기회가 됐네요/ 역사는 발전하는것이 아니라 반복된다... 맞습니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종교적 이상도 갖지못한 나도 어쩜 비기득권층의 잠재적 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해서 매 순간이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죠.구원이나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일회성 인생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