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낭만파 음악가 구노와 ▒ 성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1817~1866년) 주교 : 제5대 조선 교구장
낭만파 음악가 구노와 ▒ 파리 외방 선교회
글쓴이 박경삼
글정보 Hit : 131, Date : 2014/05/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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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 음악가 구노와 ▒ 파리 외방 선교회
2014.5.25. 교중미사 묵상곡
1.구노 [Charles(-François) Gounod] 의 <아베 마리아
구노 [Charles(-François) Gounod] 의 <아베 마리아>는 바흐의 프렐류드1번을 리메이커한 곡이다.
바이올린 루도비꼬
오르간 황라현
사진은 파리 외방 선교회 구내 및 에펠탑임.
[인명] 프랑스의 작곡가(1818~1893). 가극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따위로 프랑스 가극에 신국면을 전개하였다. 화려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특징이다. 작품으로는 가곡 <아베 마리아>, <세레나데> 등이 있다.
구노는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리주교 (성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1817~1866년) 주교 : 제5대 조선 교구장, 병인박해 때 새남터 순교 )
와 파리 외방 선교회 신학교 동료이며 친구이다.
<아베 마리아>와 성가“ 284번무궁무진세에” 는 1866 년 병인박해때 조선에서 순교한 다블리주교에게 헌정한 곡이다.
▒ 파리 외방 선교회
파리 외방 선교회는 아시아의 비그리스도 국가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성당을 세우고, 성직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1658년 창설되어 1664년 교황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파리 외방 선교회의 대신학교에서 오늘날까지 아시아로 4,000명 이상의 선교사가 파견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 대전 안동을 비롯한 6개 교구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파리 외방 선교회 전시실에서는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으며 많은 순교자들의 유품과 박해 도구,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그림 등을 전시 열람하고 있다.
특히 한국 순교자들의 유품은 따로 보관되어 있는데 김대건 신부의 편지(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1984년 3월 김수환 추기경께 양도, 현재 한국에 보관 중임)와 한국에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안내지침을 적은 라틴어 친필, 베르뇌(Berneux) 장 주교(조선 교구 4대 교구장)의 기도서, 십자가 중국, 옷, 전례에 사용했던 여러 성물들, 그 밖에 한국에서 순교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의 몇 가지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회와 파리 외방 선교회
조선 대목구의 설정과 파리 외방 선교회
파리 외방 선교회가 한국 교회의 선교를 담당하게 된 계기는 1825년 사제를 요청하는 조선 교우들의 편지를 접하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린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파리 외방 선교회에 조선 선교사 파견을 요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외방 선교회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회원이 별로 없었고, 어려운 재정 형편에 조선의 쇄국 정책으로 말미암아 입국하기 힘들고 다른 곳에 급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이 제의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태국 방콕(Siam)의 보좌 주교였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그것은 이유가 안 된다며 외방 전교회 본부와 교황청 포교성에 조선 선교를 자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를 설정하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하는 칙서를 발표하셨다. 파리 외방 선교회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여 조선 선교를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결정 직후 조선으로 입국을 시도하던 초대 교구장은 몽고의 마가자에서 사망 하였으며, 제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앵베르 주교가 임명되었다.
선교사들의 한국 입국과 순교
조선 땅을 처음으로 밟은 파리 외방 선교회 선교사는 1836년 1월에 입국한 모방 신부였다. 이후 1837년 1월에 샤스땅 신부, 1837년 12월에는 제2대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였으나 1939년의 박해로 인해 모두 순교하여 한동안 조선 교회는 다시 목자 없는 교회가 되었다. 이후 1845년에 제 3대 대목구장인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제5대 대목구장) 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 하였고, 이어서 베르뇌 주교 (제 4대 대목구장) 를 비롯하여, 메스뜨르, 쁘띠니꼴라, 뿌르티에, 페롱,리델 (제 6대 대목구장), 오매뜨르, 브르뜨니에르, 볼리외, 도리, 위앵 신부들이 연이어 입국하였지만 1866년부터 다시 시작된 박해로 인해 중국으로 피신한 3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순교하였다.
1886년 한불 조약 체결 후 선교사들의 활동이 자유로워지자 파리 외방 선교회에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여 교회 재건을 위해 교육 및 사회사업 등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교구와 방인 사제가 늘어나면서 한국인 주교들에게 교구를 넘겨주고 노동자, 및 외국인 노동자 사목 등 사회 복지 분야에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선교사 현황
브뤼기에르 주교를 포함해 2002년 12월 현재까지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한 Paris 외방 선교회 성직자들은 총 170여명이며 (박해 시대에 12명 ․ 한국 전쟁 당시 12명 등 모두 24명이 순교, 한국에서 사목하다 사망하여 한국에 묻힌 선교사가 약 100여명), 그중 두봉 주교를 포함한 14명이 현재 서울과 대구, 수원, 대전, 안동 교구 등에서 활동 중이다. 그리고 1984년 5월 5일 서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103위 한국 성인 가운데 10명의 외방 선교회 회원이 포함 되었다.
성인품에 오른 파리 외방 선교회 회원은 다음과 같다.
1. 성 앵베르(Imbert, 라우렌시오, 1796~1839년) 주교 : 제2대 조선 교구장, 기해박해때 새남터 순교
2. 성 모방(Maubant, 베드로, 1804~1839년) 신부 : 한국 성직자 양성에 큰 관심, 기해박해 때 새남터 순교
3. 성 샤스땅(Chastan, 야고보, 1804~1839년) 신부 : 기해박해 때 새남터 순교
4. 성 베르뇌(Berneux, 시메온, 1814~1866년) 주교 : 제4대 조선 교구장, 병인박해 때 새남터 순교
5. 성 랑페르 드 브레트니에르 유스토(Ranfer de Bretenieres, 1838~1866년) 신부 : 병인박해 때 새남터 순교
6. 성 도리(Dorie, 헨리코, 1839~1866년) 신부 : 병인박해 때 새남터 순교
7. 성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1817~1866년) 주교 : 제5대 조선 교구장, 병인박해 때 새남터 순교
8. 성 볼리외(Beaulieu, 루드비코, 1840~1866년) 신부 : 병인박해 때 보령 갈매못 순교
9. 성 위앵(Huin, 루카, 1836~1866년) 신부 : 병인박해 때 보령 갈매못 순교
10. 성 오매트르(Aumaitre, 베드로, 1837~1866년) 신부 : 병인박해 때 보령 갈매못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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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 파리 외방 선교회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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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 [Charles(-François) Gounod] 의 <아베 마리아>는 바흐의 프렐류드1번을 리메이커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