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
결론
『능엄경』은 고래로부터 그 출처와 역출경위를 놓고 위경시비(僞經是非)가 많았던 독특한 경전이다. 그래서 일본 불교계에는 9세기 중반부터 『능엄경』을 위경으로 단정하고 금기시하는 풍조가 계속되어왔기 때문에 근래에 이르기까지 일본 불교학계에서 연구가 별로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위경시비가 적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고려중기 이래로 『능엄경』이 불교계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조선중기에는 불교 강원의 사교과목(四敎科目)에 포함될 정도로 주목을 받는 경전이었다. 한국 불교계에서 그만큼 『능엄경』을 중시하였다는 간접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능엄경』이 지녀왔던 역사적 비중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연구가 진척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 불교학계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능엄경』이 한국 불교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던 경전이라고 보고, 『능엄경』이 어떻게 한국 불교계에 수용되었는가를 추적하여 보았다. 그 추적과정에서 포인트로 삼았던 부분은 간화선과는 다른 수행법의 모색이었다. 『능엄경』을 통해서 간화선 이외의 수행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간화선의 대안으로 본 논문에서 이근원통과 성명쌍수라는 2가지 수행법을 집중 모색하였다.
이근원통은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25가지 수행법 가운데 관음보살이 수행했던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근원통은 소리를 관하는 수행법이다. 그 소리는 밖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로 구분되는데, 처음은 밖의 소리에 주목하다가 그 다음에는 내면의 소리로 들어가는 순서이다. 마지막 단계에는 듣는 성품(聞性)을 다시 돌이켜 반문(反聞)하는 과정을 통하여 듣는 성품마저 공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근원통이다. 이는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가운데 『능엄경』에서만 제시하는 독특한 수행법이다.
본 논문에서는 처음에 이근원통에 들어가기 위한 사상적 기반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 사상적 기반은 첫째 중관사상(中觀思想), 둘째 유식사상(唯識思想), 셋째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사상이었다.
이는 대승불교의 3대 사상으로서 『능엄경』에서는 이들 3대 사상을 모두 동원하여 돈오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첫째, 중관 사상이 지닌 묘미는 7처징심(七處徵心)에서 잘 나타난다.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기는 7군데를 차례 차례 논파한다. 그 논파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논리가 바로 귀류논증법(歸謬論證法)이다. 귀류논증법을 동원하여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한다. 중관사상은 귀류논증법이 지닌 부정의 방법을 통하여 범부가 지닌 고정관념과 유(有)에 대한 집착을 논파하고 있다.
중관 사상 다음에는 둘째, 유식사상이 등장한다. 유식사상은 중관이 빠지기 쉬운 허무주의, 즉 악취공(惡取空)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2종근본(二種根本)이라고 하는 설명이다. 마음에는 2가지 근본이 있어서, 하나는 망심(妄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眞心)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이 2종근본의 요점이다. 2종근본에서는 망심은 없는 것이지만, 진심마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심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진심이야말로 수행의 근본이 된다.
셋째, 여래장사상이다. 진심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진심이라고 하는 내면세계에만 국집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래장이 등장한다. 이때의 여래장은 일체 사물이 모두 여래장이라고 본다. 어떻게 해서 일체 사물이 여래장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비인연(非因緣), 비자연(非自然)'의 논리가 받쳐준다. 여래장의 성격은 인연으로 뭉쳐진 것도 아니고(非因緣) 그렇다고 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非自然) 것이다. 비인연, 비자연 역시 『능엄경』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논리이다. 중관의 7처징심에서 유식의 2중근본설, 그리고 다시 여래장의 비인연과 비자연으로 이근원통에 들어가기 위한 이론적 기반은 완성된다.
그 다음에는 실천이 따른다. 그 실천이란 고려시대까지 수용된 이근원통(耳根圓通)과 조선시대에 수용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수행법이다.
이근원통이란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가장 수승한 수행방법으로 제시된다. 6근 중에서 이근(耳根)을 사용하는 방법은 관음보살의 실천한 수행법이기도 하다. 이근원통은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관음보살의 명칭인 '관음(觀音)'이라는 말 자체가 소리(音)를 관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 소리는 인체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와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의 2종류가 있는데, 관하는 순서는 먼저 밖의 소리에 집중한 다음에 내면의 소리로 옮겨진다. 밖의 소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리는 바닷가에서 들리는 해조음(海潮音)이다. 내면의 소리는 혼자 입 속에서 중얼거리는 염불소리가 될 수 있다. 이때의 염불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용도의 염불이 아니라 내면의 불성을 깨우는 자극제로서의 염불이다. 『능엄경』에서만 등장하는 독특한 수행법인 이근원통의 역사적 사례는 무엇인가. 본 논문에서는 그 역사적 사례로써 3가지 사례를 분석하였다.
첫째 8세기 초반 중국 사천성에서 활동하였던 신라출신 승려 정중무상(淨衆無相, 680~756)의 인성염불(引聲念佛)이다. 둘째 고려 중기 춘천 청평사에서 『능엄경』의 수행법을 실천하였던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의 경우이다. 셋째 중국의 불긍거관음원, 한국의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같은 유명한 관음도량들의 공통점이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이유는 해조음(海潮音)을 청취하기 위해서이다.
무상(無相)의 인성염불을 『능엄경』의 이근원통를 보는 근거는 무상 일파의 법맥(法脈)을 기록한 『역대법보기』가 『능엄경』을 중심으로 기술되었다는 데에 있다. 무상의 핵심 사상인 3구인 무억(無憶), 무념(無念), 막망(莫忘)이다. 3구가 지향하는 바는 깨달음은 단번에 온다는 돈오(頓悟)사상이다. 무상은 그 돈오의 원리적 근거를 『능엄경』에 나오는 '일근기반원(一根旣返源) 육근성해탈(六根成解脫)'에서 찾는다. 6근 중에서 어느 한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나머지 5근도 동시에 본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돈오는 1근(一根) 1근 단계적으로 시간을 두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 근거를 다름아닌 『능엄경』에다 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성염불도 이 돈오사상을 실천하는 수행법으로써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성염불은 종래의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타력신앙으로서의 염불이 아니다. 자력 수행적인 측면의 염불이다. 따라서 종래의 염불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는 업으로 염불을 반복함으로써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이근원통의 한 방법이라고 필자는 해석하였다.
고려중기 거사불교를 대표하는 이자현도 『능엄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틀 맺고 있다. 특히 이자현은 고려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 종래의 선종은 천태종에 흡수 통합되는 상황에 놓인다. 천태종 개창에서 보조 지눌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시기에 선종의 맥은 매우 희미하게 전해지던 시기였다. 그 중간 과도기에, 그러니까 보조지눌 이전에 선종의 맥을 이은 인물이 바로 이자현이다. 이자현은 『능엄경』을 불경 가운데 최고의 경전으로 인식하였으며, 『능엄경』에 바탕한 이근원통 수행법을 실천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그 근거는 첫째 『능엄경』에 대한 각별한 애호이고 둘째는 암자의 이름이 견성(見性), 문성(聞性)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근원통에 관계되는 이름들이고, 셋째는 청평사 경내를 흐르는 수로와 대웅전 기단석에 뚫어진 배수 장치이다. 수로 배수장치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청평사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인공장치로써 물소리를 듣기 위한 배려이다. 물소리는 이근원통 수행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이근원통은 불교의 여러 보살 신앙가운데서 특히 관음신앙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3대 관음도량은 동해안의 홍련암, 서해안의 보문사, 남해안의 보리암이다. 이들 3대 관음도량은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유명한 관음도량인 불긍거관음원도 보타도라고 하는 섬의 해안 바위동굴 옆에 자리잡고 있다. 불긍거관음원 역시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왜 이처럼 관음도량은 모두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가. 그 이유는 해조음(海潮音)을 청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바닷가에서 들리는 해조음은 이근원통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다. 『능엄경』에서는 4가지 음을 주목한다. 범음, 관음, 묘음, 해조음이다. 범음, 관음, 묘음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소리이지만, 해조음만큼은 지상에서 들리는 구체적인 소리이다. 그 해조음에 집중하기 위헤서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라는 입지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관음도량은 해안가에 있다는 것이 본 논문의 주장이다.
이상이 『능엄경』에 대한 이근원통적인 수용이었다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도교 내단학의 수행법인 성명쌍수의 맥락에서 『능엄경』이 수용된다. 성명쌍수적인 맥락에서 『능엄경』을 주석한 인물은 조선후기 문경 봉암사 승려인 개운대성(開雲大星, 1790〜?)이다. 개운은 『정본능엄경』이라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서 『능엄경』의 수행법을 성명쌍수로 귀결짓고 있다. 개운이 주장한 성명쌍수의 구체적인 내용은 첫째 불교에서 말하는 삼마지를 일규(一窺)로 해석한 데 있다. 일규는 보통 내단학에서 말하는 하단전의 중심 포인트를 말한다. 삼마지를 닦는다는 것은 바로 일규를 찾는 작업이라고 개운은 주장한다. 이는 도교 내단학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그 맥락이 완전 일치한다. 아울러 전통적인 불교의 삼마지 개념하고는 전혀 다르다. 둘째는 성입명궁(性入命宮)이다. 일규를 찾은 다음에 진행되는 내면의 연금술의 양태는 성입명궁이라는 것이다. 성업명궁은 내단학의 감리교구(坎離交媾)를 일컫는 표현이다. 감리교구는 내단학에서 말하는 인체 내면의 양대 에너지, 즉 수(龍)와 화(虎)가 서로 교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셋째는 성입명궁이 이루어져서 수행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여러 가지 신통력이 발생하는데, 개운은 그것을 '유가수련증험설'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가수련증험설'에 의하면 수행의 결과는 4가지 경지로 나타난다.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이다. 수다원과에서는 정액이 새지 않는 누진통을 이루며, 사다함과에서는 흉터와 주름살이 없어지며, 아나함과에서는 붉은 피가 흰색으로 변하며 주먹으로 바위에 글을 새길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아라한과에서는 금빛이 몸을 감싼다고 한다. 이처럼 수련계위에 대해서 그 증상을 자세히 설명한 경우는 『정본능엄경』에서 처음이고, 이는 몸과 마음을 아울러 수련하는 성명쌍수에서 나타나는 증험이다. 개운은 화두에 의한 간화선에 대해서는 아주 비관적이다. 간화선에 의해서 도를 통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꿈에 금을 얻는 것과 같이(如夢得金) 일' 허망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간화선에 의한 수행으로는 이와 같은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개운은 간화선의 노선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개운은 도교의 성명쌍수를 수용하여 도불회통(道佛會通), 도불동원(道佛同源)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능엄경』을 매개로 하여 불교가 도교 내단학과의 회통을 도모한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한 가지 주목되는 사항은 그 회통과 동원에 있어서 주체의 문제이다. 개운은 불교에 주체를 둔 도불동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교쪽에서 제기된 도불동원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성명쌍수의 수행법을 붙교계 일반에 전파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보여진다. 개운에 의하면 삼마지규에 의한 성명쌍수 수행은 도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불교에도 존재한다는 입장이 내포되어 있다. 개운은 그 성명쌍수의 근거를 밀교의 고승인 불공(不空)으로부터 찾는다. 아울러 역대 불교 고승들의 송념(頌拈)에서 그 근거를 찾는 작업을 감행하였다. 이는 성명쌍수가 도교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불교에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성명쌍수 수행은 불교밖의 수행법이 아니라 불교내의 수행법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개운은 성명쌍수가 원래부터 불교에 존재하는 수행법이라는 사실을 여러 송념들을 통하여 증명함으로써 『정본능엄경』에 대한 외도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다시 말한다면 도교를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불교계로부터의 비관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하여 개운은 불교에 주체를 둔 도불동원의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은 해조음을 비롯한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인 이근원통과, 삼마지규를 찾아 수행하는 성명쌍수의 2가지로 이루어졌다. 이 중 이근원통의 수용은 관음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이근원통의 한국적 수용은 관음신앙의 전래 시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근원통의 한국적 수용은 관음신앙의 한국전래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관음신앙의 3대 도량인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의 성립시기와 관련이 있다. 이 둘 사찰의 성립시기는 대략 7세기에서 8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근원통은 선불교의 간화선이 한국에 정착되는 서기인 13세기 이전의 수행법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적어도 13세기 이전 한국 고대불교의 시대에 유행하던 수행법의 하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은 이근원통과 성명쌍수의 상호관계이다. 이 들은 어떤 관계인가. 이근원통과 성명쌍수의 상호관계는 지(止)와 관(觀)의 보완적 관계로 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이근원통이 주로 소리를 관하는 관법이라고 한다면, 지는 사마타 즉 호흡을 통해서 삼마지규를 찾는 작업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불교에서는 주로 관법(觀法) 쪽을 선호한 경향이 있고, 도교는 주로 지법(止法) 쪽을 선호한 경향이 발견되는데, 이근원통과 성명쌍수라는 이 두 가지 수행법은 상호보완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불교와 도교의 수행법을 종합한 것이다. 수행법의 차원에서 도불융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수행법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본 논문에서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였음을 고백한다. 이 부분은 별도의 방대한 문헌의 섭렵을 요하는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금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 조용헌 원광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