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꽃
정지용 시인은 우리나라의 얼이 담긴 일상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단단하며 부드러운 감수성으로 시를 써오셨어요.
일제강점기 어려운 시절 속에서 시의 대한 마음을 온전히 꽃피우시진 못했지요.
정지용 시인의 삶과 시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겪어가는 과정,
마주한 사건들을 시로 승화시키는 과정 엿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의 4대 독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어서 아명을 ‘지용(땅/용)’이라 하고 이 발음을 따서 본명을 ‘지용(버섯/녹다)’이라 했다고 한다. 1910년에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에 졸업했고, 열두 살이던 1913년에 동갑인 송재숙과 혼인했다. 지용은 혼인 후 1914년 3월 23일 제4회로 졸업했다.
정지용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셨는데 큰 홍수가 나서 재산을 잃었고,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4년간 스스로 학문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시기의 배움이 그의 꾸밈없고 담백한 동양적 세계 탐구에 하나의 원천이 되었을 수 있다. 지용의 가정은 유복하지 않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한 것은 소년 지용이 가슴에 품고 있던 배움을 향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1918년 4월, 정지용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기숙하며 배움을 이어갔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성적이 우수하여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의 경비를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는 《요람》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1919년 2학년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해 12월에 짧은소설 〈삼인〉을 발표하고, 1922년 교지 《휘문》 창간호의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문학 활동을 활발히 했다. 이 시기에 〈풍랑몽 1〉을 쓰며 습작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1915년에서 1925년까지 노벨상을 받았던 타고르라는 작가가 한국(당시 조선청년들)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가 식민지로 압박을 받는 민족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배경도 한 몫했지만, 당시 최남선의 잡지 <청춘>에 조선청년들을 위한 시를 기재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용도 휘문학교 5학년 재학 당시 타고르의 시에 굉장히 빠져있었다. 타고르는 지용이 시 창작에 눈 뜨게 해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용은 그 당시에 타고르의 시를 모방하는 습작시를 썼다.
<풍랑몽 1>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 때
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물 건너 외딴섬, 은회색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창 밖에는 참새 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 안에는 시름겨워 턱을 고일 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붓그럼성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외로운 졸음, 풍랑에 어리울 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둘리고
행선 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
(1922. 3.)
이 시는 정지용이 처음 쓴 시로 알려져 있다. 1927년 7월에 발표됐지만, 실제 쓰여진 때는 1922년 3월이다. 1920년대 타고르를 따르던 시대적 분위기와 타고르의 시풍이 엿보인다. 이때 정지용은 원래 휘문고보를 졸업했어야 하지만, 학제 개편으로 4년제 학교가 5년제로 바뀌면서 1년을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화자는 궂은비 내리는 포구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날은 어두침침하고 비는 계속 내려 자욱하게 포구를 둘러싼다. 화자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알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당신이 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추측한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올까? 끝없이 파도소리가 들릴 때, 검은 밤이 밀려오듯이 올까? 사나운 바람이 불 때, 거대한 파도가 덮쳐 오듯이 올까? 나른하고 우울한 날, 낯가림을 벗고 새벽달이 나타나듯이 올까? 화자는 포구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는데, 당신을 태운 배는 오지 않고 오히려 배가 북을 울리며 떠나가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뜻할까? ‘사랑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당신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기에 포구에 궂은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오라는 당신은 오지 않고 오히려 배가 떠나가면서 화자를 더욱 외롭게 한다.
당시 상황과 연결지어 보면, 당신을 ‘운명’으로 볼 수도 있다. 자신의 계획과 상관없이 1년 더 학교에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막막한 심정을 시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무엇일까?
* 풍랑몽 : 바람과 물결처럼 갈팡질팡하는 꿈
* 어찌나 :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 붓그럼성스런 : 부끄럼을 타는 성질이 있어 보이는
* 행선 배 : 가는 배
1923년 3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고향을 떠나 교토로 유학가기 전까지 이 두 달여의 공백 속에서 대표작 <향수>의 초고를 쓰게 된다. 정든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야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컸을 것이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1923. 3.)
〈향수〉는 정지용의 시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시다. 고향 옥천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이 시는 정지용이 교토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썼다. 유학을 떠나면 언제 다시 고향을 볼지 모르는 상황에서, 꿈에도 잊히지 않을 고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진다. 넓은 들판에 실개천이 흐르는 시골 마을, 황소는 느리게 울고, 굴뚝에선 저녁밥 짓는 연기가 고소하게 올라올 것만 같다. 그곳은 꿈 많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친구들과 사냥놀이도 하면서 풀섶을 뛰어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화롯불이 식어가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늙으신 아버지는 짚베개를 베고 졸고 계신다. 어린 누이와 아내가 빈 논에서 이삭을 주워야 할 만큼 초라한 시절이지만, 한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모두 한없이 그리운 장면으로,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이 시가 그 당시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고향을 떠났거나 고향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키며 '정지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시가 된 것은, 그만의 특성인 따듯한 어린 시절의 고향의 모습와 시적언어 구사가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시는 1927년 《조선지광》이라는 잡지에 처음 발표된다. 당시 고향도 잃고 나라도 잃은 조선인들에게 이 시는 마음의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정지용에게 ‘그곳’이 옥천이라면, 우리에게 ‘그곳’은 어디일까? 우리에게 ‘그곳’처럼 꿈엔들 잊히지 않는 곳이 있을까?
* 지줄대는 :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 얼룩빼기 황소 : 거무스레한 짙은 갈색 무늬를 지닌 황소
* 해설피 : 해가 질 무렵
* 함추름 : 함빡, 함뿍 (푹 젖은 모양)
<해협>
포탄으로 뚫은 듯 동그란 선창으로
눈썹까지 부풀어 오른 수평이 엿보고,
하늘이 함폭 나려앉아
크낙한 암탉처럼 품고 있다.
투명한 어족이 행렬하는 위치에
홋하게 차지한 나의 자리여!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라 속같이
소란한 무인도의 각적을 불고-
해협 오전 두 시의 고독은 오롯한 원광을 쓰다.
서러울리 없는 눈물을 소녀처럼 짓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 날 항구의 갠 날씨여!
항해는 정히 연애처럼 비등하고
이제 어디메쯤 한밤의 태양이 피여오른다.
충북 산골에서 태어난 시인은 일본으로 향하던 뱃길에 바다와 굽이치는 파도를 보고 새로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디에선가 환하게 비추고 있을 "한밤의 태양"과 같이 설렘과 기대가 뒤섞인 미지의 항로를 가는 마음이 "포탄으로 뚫은듯 동그란 선창"과도 같이 담겨 있다.
1925년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간행해 근대적 서정시의 길을 열었으며, 1926년에는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발간해 김소월과는 다른 서정시의 길을 열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투옥되어 감방생할을 했었던 한용운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에게 전하는 연작시를 통해 민족의 앞날을 예측하고 광명의 날을 확신하는 저항시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당시 김소월과 한용운은 문학사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밝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1925)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한국의 현대시의 아름다운 이별시로 흔히 평가되어 왔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슬픔을 체념으로 승화시킨 이 시는, 사무친 정과 한,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으로 빚어내는 처절한 사랑의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마음이 깊고 맵고 서럽게 표현되었다. 진달래꽃잎은 한없이 부드럽고 가냘프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진달래꽃은 모진 학대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한 많은 삶에 비유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는 진달래꽃을 임이 가시는 길에 뿌려서 그 꽃을 즈려밟고 가라고 한 것은 처절한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
<먼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대로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홋날 그때에 '잊었노라'
(김소월, 1920)
김소월의 <먼후일>은 1925년에 간행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되었다. 《못 잊어》와 마찬가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애써 잊으려는 안타까움이 서린 애달픈 심정을 노래한 시이다. 무척 그리다가, 그리고 ‘믿기지 않아서’ 종국에는 잊겠지만 그것은 오늘도 어제도 아니요, ‘먼 훗날’ 즉 죽은 후에나 잊게 되리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의 의리를 다짐하고 있다. 야속한 임을 그리는 애한이 담긴 시로서, 그가 오산중학에 다닐 때 《학생계》에 발표한 작품이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1926)
한용운의 시는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님의 침묵>은 '님'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정한을 노래한 시이다. 그러나 한용운의 시세계에서 '님'은 해석하기에 따라 '조국, 부처, 연인'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님은 갔다'고 말함으로써 객관적인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면서 주관적인 의지로서 '님은 자기와 함께 있음'을 강조한다. 즉,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있지만, 시인 자신은 조선을 독립된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옛이야기 구절>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펐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펐노라.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기름불은 깜빡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신 대로 듣고
이치대던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웃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골 밤은
찾아온 동네 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끊이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휘어다 붙인 밤하늘이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
(1925. 4.)
이 시는 1925년 4월, 정지용이 교토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쓴 시다. 정지용은 1914년 3월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성적은 좋았으나 집안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네 살이 되던 1915년부터 1918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아내의 친척이 살고 있는 서울에 머물렀다. 스물네 살 정지용은 머나먼 타국 교토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10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만난 때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시 속 시골 풍경은 우리에게 화목한 인간미가 느끼지는 1910년 농촌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고향을 떠나 밖을 떠돌면서 고달팠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화자는 그동안 겪은 일을 가족에게 이야기한다. 그새 늙으신 아버지, 밖에서 고생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우시는 어머니, 잠투정하는 어린 누이, 집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내,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던 마을 사람들까지.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화자의 고달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화자가 고향을 떠나 겪은 이야기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당시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고되게 지냈던 조선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시절 누구나 겪었던 일들인 것이다. 화자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이전부터 전해오던 옛이야기이며, 그 옛날부터 착하디착하고 시원찮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갔던 이야기일 뿐이다. 화자 역시 그 이전의 이야기를 전하고 이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이치대던 : ‘이치다’는 ‘이아치다’의 준말로, ‘거치적거리어 일을 방해하거나 손해를 끼치다’라는 뜻.
* 문설주 :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해 문 양쪽에 세운 기둥.
말본
우리말에 깊이 깃들어 있는 영어말, 일본말 배웠어요.
단순히 단어 뿐만 아니라, 문장 전체에 담겨있어서 꼭꼭 씹어 먹는다는 마음으로 읽었어요.
단숨에 들여지지 않기에 천천히 배워 함께 일궈가야겠어요.
말은 고이 흐릅니다. 착하게도 흐르는 말이지만 나쁘게도 흐르는 말이요, 아름답게도 이어가는 말인 한편, 얄궃게도 이어가는 말이에요. (...) 천천히 말을 살피고, 가만히 글을 돌아보며, 살포시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면 좋겠습니다. 하루아침에 빈틈없이 슬기로운 사람이 되자고 빌기보다는, 하루에 한 가지씩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아끼면서 가슴으로 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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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지다 : 영어 ‘have’
고운 얼굴을 가진 꿈슬기 ➞ 얼굴이 고운 꿈슬기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 ➞ 뜻있는 이야기
의문을 가지다. ➞ 궁금해하다.
꿈을 펼칠 기회를 가지다. ➞ 꿈을 펼칠 기회를 얻다.
직업을 가지고 있다. ➞ 직업, 하는 일이 있다.
모임을 가진다. ➞ 모임을 한다, 모인다.
공통점을 가진다. ➞ 비슷한 대목이 있다.
2) 그녀 : 영어 ‘she’, 일본말 ‘피녀’
그녀는 집에 갔다. ➞ 그, 그이, (이름)은 집에 갔다.
고쳐 쓸 수 있는 우리말 대이름새 : 그대, 이녁(2인칭 대이름새), 그이, 당신, 자네, 저희 등.
3) 것/그것 : 영어 ‘관계대명사’ what, that...
할 거니, 안 할 거니? ➞ 하니, 안 하니?
어른이 될 거야. ➞ 어른이 될 테야.
놀리려던 건 아니고. ➞ 놀리려던 생각은 아니고.
치우는 걸 도와줄게. ➞ 치우는 일을 도와줄게.
끓여 먹는 것이 안전하다. ➞ 끓여 먹어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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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한 관심 속에서 자라다. ➞ 크나큰 눈길을 받으며 자라다.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살다. ➞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다.
만화 속 주인공 ➞ 만화 주인공
평화 속에 살다. ➞ 평화로이 살다.
과정 속에서 ➞ 과정에서
5) 아래 : 일본말 하(下)
서로의 동의 하에 이별했다. ➞ 서로 이야기해서 헤어지기로 했다.
일본의 지배 아래서 지내다 ➞ 일본한테 억눌리면서 지내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6) 자체 : 일본말투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 그대로는 나쁘지 않다.
공포 그 자체였다. ➞ 바로 두려움이었다.
발상 자체가 재미있다. ➞ 생각 그대로가 재미있다.
7) 었었 : 과거분사
어제 했던 일이야. ➞ 어제 한 일이야.
8) 하지만/해서 : 잘못 쓰는 말
하지만 ➞ 그러하지만(그렇지만)
해서 ➞ 이리해서, 그리해서
9) -로부터 : 일본말투
아름드리로부터 편지가 왔다. ➞ 아름드리한테서 편지가 왔다.
솔바람으로부터 비롯한 일이다. ➞ 솔바람한테서 비롯한 일이다.
10) 한 : 영어 ‘a/an’
한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인수마을에 사는 한 중학생 ➞ 인수마을에 사는 중학생
11) 불리다 : 영어 수동태 ‘be called’
이 물살이는 멍텅구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이 물살이는 멍텅구리라고 한다.
12) 가급적 : 일본말 ‘적(的)’
가급적 일본한자말을 쓰지 말자. ➞ 되도록 일본한자말을 쓰지 말자.
심적으로 불안하다. ➞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13) 하고 있다. : 일본말 ‘中’ / 영어 현재진행형 ‘be –ing’
이슬마리야, 뭐 하는 중이야? ➞ 이슬마리야, 뭐 해?
학교로 걸어가고 있어. ➞ 학교로 걸어가는, 가는 길이야.
밥을 먹고 있지. ➞ 밥 먹어.
#재미로 알아보는 우리말 어원
- 녹초
맥이 풀어져 힘을 못 쓰는 상태나 물건이 낡고 헐어서 못 쓰게 된 상태를 말한다. 녹초는 ‘녹은 초’를 뜻한다. 초가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흐물해지거나 보잘것없이 된 상태를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 딴전 피우다
‘딴전’의 ‘전’은 제법 큰 가게를 말한다. ‘딴전 보다’는 자기 가게는 안 보고 엉뚱하게 남의 가게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딴전 보다’와 비슷한 말인 ‘딴전 피우다’는, 역시 자기가 하려고 했던 일보다 엉뚱한 일에 더 매달려 있을 때 쓰는 말이다.
*피우다: 그 명사가 뜻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나타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