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그마의 수행 이야기 4. 의식의 순간적인 작용인 "알아챔"이란 무엇인가?
이니그마(persona6219@hanmail.net)
"알아챔"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요즘은 "마음챙김"이라든지 "알아차림"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보면 보통 아래와 같은 글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빠알리어 사띠(sati)의 번역어입니다.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과 정신을 ‘차리다’는 의미가 결합된 말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 있듯이, 번뇌에 휩쓸릴 때에 정신을 차려서 그것을 분명하게 직시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알아차림은 ‘사띠’의 번역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보다
사띠의 우리말 번역은 매우 다양하여 오히려 혼돈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띠의 어원적 의미는 ‘기억하여 잊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재생하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오는 경험된 현상들을 지금 여기의 현재에서 생생하게 자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탈색한 기억이고, 미래는 갈망의 일부입니다. 현재는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생생한 경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된 현상’이란 <염처경>에 근거하면, 몸(身), 느낌(受), 마음(心), 담마(法) 등 4가지의 영역을 말합니다. 이들에 대한 알아차림이 사띠입니다. 그래서 사띠를 ‘마음집중’이나 ‘마음챙김’ 혹은 ‘마음지킴’으로 번역한 경우에는 원음에 없는 ‘마음’을 첨가시킴으로써, 마음만을 그 대상으로 만들면서 몸, 느낌, 담마 등의 영역을 제외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더구나 낱말의 의미는 구체적인 문장을 떠나서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띠를 마음챙김으로 번역하여, 우울한 내담자에게 ‘그 우울한 느낌을 마음챙김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우울한 느낌을 챙기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우울한 마음을 챙기라는 말인지 혼돈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을 사띠하라’는 문장의 경우도 ‘생각을 마음챙김하라’는 것이 되어서 명상 지도자도 스스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위 글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그런데 인터넷 상의 글을 읽다보면 항상 핵심은 빠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보면서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없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알아챔"이라는 현상은 생각을 알아챈다는 의미입니다. 즉.. 생각이 일어나는 즉시 그 생각을 알아챈다는 의미인데 누가 알아채는 걸까요?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생각이 알아챈다면 그건 알아챔이 아니고 분열입니다.
그러나 알아챔이라는 현상은 일어나는 생각을 생각이 알아채는 것이 아니고 의식(마음 바탕으로써의) 이 알아채는 겁니다. 만약, 당신에게 알아챔이 시작되었다면 당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관념 내에서 부정한 짓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알아챔은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 동시에 내부의 관찰자로써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감시자같은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알아챔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그 사람에게 알아챔이 시작이 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다만 얼마간 같이 생활해 본다면 그의 행동이나 말이 깨어 있는가 아닌가로써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J.크리슈나무르티는 사냥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냥개는 에고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냥개를 길들이고 보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알아챔입니다. 알아챔은 의식의 순간적인 작용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알아챔이 시작된 것인지 아닌지 자신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알아챔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을 함으로써 알아챔이라는 것이 대체 무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알아챔이란 "십우도"혹은 "심우도"에서 말하는 소의 꼬리입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알아챔이 시작이 되면 이 때부터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알아챔"은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 너머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알아챔이 일어날 때 두뇌에서 특이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고 J.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행에 관심을 갖고 단전호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단전호흡에 관심을 갖고 수행을 시작한지 거의 십여년이 지난 서른살 경에야 알아챔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 이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이 당시까지 했던 수행을 포함해서 마음의 만족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모멸감이 일었고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간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 현상이 일어나고 나서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진짜 나자신을 찾기 위해서 미친듯이 수행에 매달렸습니다. 물론 이 때 단전호흡을 때려치우고 "명상 수행"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알아챔은 드문드문 일어났는데 항상 수행하려고 앉으면 일어났고 하루종일 알아챔이 없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나 자신을 급속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원래 식탐이나 혹은 물질적인 욕망이 많지는 않았지만 알아챔이 일어난 이후로 몸이나 마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는 거야 머.. 어찌저찌 살아가게 되겠죠. 그럼에도 정신적인 오랜 습관이 불쑥불쑥 일어났는데 세월이 좀 지나다보니 이런 것도 희미해져 갑니다. 알아챔이 일어나고 오래지 않아서 혜해탈이라는 것이 일어났습니다. 혜해탈이란 진리가 뭔지.. 깨달음이 뭔지 그 이치를 정확하게 안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혜해탈이 일어난 사람이 깨달은 이 흉내를 낸다면 일반인들은 그 진위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건 다른 말로는 혜해탈을 한 사람은 상대가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알아챔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 보죠.
1. 탁발을 나갔던 승려가 어느 날, 저자거리에서 알아챔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수행처로 돌아와 스승에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는 항상 스승님이 말씀 하시던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묻습니다. "그래? 그게 네게만 있는 것이더냐?" 그러자 제자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스승이 말합니다. "네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다면 별 것 아니구만.."그러자 제자가 다시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저는 이제 압니다." 그러자 다시 스승이 말합니다. "이제 네가 제대로 알긴 알았구나, 알았거든 잘 간직하거라"
2. 당신은 TV앞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서 포트에 물을 담아 가스렌지 위에 올려 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다시 TV를 봅니다. 그렇게 계속 TV를 보다가 문득 가스렌지 위에 올려 둔 커피포트가 생각이 나면서 커피를 타기 위하여 일어섭니다. 이 때, TV를 보다가 갑자기 커피를 타 먹으려는 생각이 일어나기 직전 "문득" 알아챔이 일어난 겁니다. 만약 알아챔이 없다면 당신은 계속 TV를 볼 것이고 커피포트는 가스렌지 위에서 벌겋게 달구어질 겁니다.
3. 당신은 출근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타고 갑니다. 그러면서 방금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 올립니다. 일 끝나면 다른데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라는 집 사람의 말을 떠 올리고, 저녁에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 가지고 오라던 딸 아이가 말하던 모습을 떠 올립니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 해야만 할 일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고 갑니다.
그 때 갑자기 달리는 차 앞에 어린 아이가 나타납니다. 그 순간, 당신은 하던 생각이 멈추어지고 앞에 있는 어린 아이를 피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리고 간신히 아이를 피하고 나서 "휴~ 죽을 뻔 했구만"하면서 다시 생각이 이어집니다. 이 때.. 어린 아이를 보면서 생각이 멈춘 바로 그 순간, 알아챔이 일어났던 겁니다. 알아챔이 일어나지 않고 계속 생각이 이어졌다면 당신은 필경 사고를 내고 말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그렇게까지 빠르게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당신은 침실에서 아내와 함께 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당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러면서 속삭입니다. "여보, 부엌에 도둑이 들어 온 것 같아..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었거든?!" 그러자 당신은 잠결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생각이 멈춘 상태에서 부엌을 향하여 온전하게 주의력을 기울입니다. 그렇게 잠시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다시 생각이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아냐, 고양이인가? 그냥 자자.." 이 때,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챔이 일어나고 생각은 멈추면서 부엌을 향하여 온 주의력을 기울이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 때 알아챔으로 인해서 생각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부엌을 향해서 온전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못했을 겁니다.
5.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좀 오래 전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있었습니다. 6개월에 걸쳐서 계획을 세우고 그 기간동안 물품을 준비해서 결국 부모님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체포되었는데 멀쩡한 얼굴로 고개들고 사진을 찍고 그러다가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 순간 항상 태연함을 유지하던 그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 때 모든 언론에서는 "부모를 죽이고 자신이 죽는 것은 억울해 했다"라고들 논평을 했는데.. 그게 아니고 사형을 언도 받는 순간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갑자기 알게 되었고(알아챔) 자기가 저지른 짓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즉.. 그는 부모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까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겁니다. 그러다 갑자기 재판관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는 한 순간 찰나적으로 깨어났던 겁니다.
이처럼 알아챔은 순간적으로 생각이 끊어지게 만들면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 오게 만듭니다. 또한 이처럼 항상 위급한 순간에는 알아챔이 일어나면서 생각이 멈추고 위급한 순간을 벗어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의식은 당신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말 없이 당신을 보살피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이 알아챔이 없다면 날이면 날마다 서울 시내 여기저기에서 자동차 사고가 마구마구 일어날 것이고 집집마다 온갖 재난이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신은 항상 당신을 돌 봐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인 겁니다.
몇 가지 알아챔에 대한 사례를 예로 들었는데 이처럼 날마다 아주 찰나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알아챔은 일어납니다. 자.. 이걸로 뭘 알 수 있을까요?
생각은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당신이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필요할 때에만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생각을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생각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번 해 보세요. 이런 것들이 정말로 되는지..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건 하고 싶지 않건 당신에게 일어나는 생각으로 인하여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괴로워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생각도 계속 떠 올라서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각은 단지 까르마Karma로써 조건에 따라서 일어났다가 스러져 갈 뿐입니다. 또 알아챔이 일어나면서 생각이 끊어진다는 것은 생각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만약 생각이 "실재"라면 알아챔이 일어난다고 해도 생각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알아챔을 일으키는 의식은 영속합니다. 단지 당신이 생각 속에 풍덩 빠져서 살기 때문에 극히 위급한 순간만 찰나적으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마저도 의식이 작동되지 않으면 당신이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무지가 깊은 이는 이 마저도 작동되지 않아서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겁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범인이 누굽니까? 당신은 단지 무지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당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자신을 잊고 생각속에 빠진 것.. 이것이 잘못인 겁니다.
위급한 순간마다 알아챔이 발생해서 생각을 멈추게 하고 당신을 구해내지만 그러나 이건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의식적이게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살려고 하는 행위가 바로 '방편수행"인 겁니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의식의 깨어있음이 1%라면 나머지 99%는 무의식인 겁니다. 부처가 된 사람은 100%깨어 있음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고요.
당신에게 원죄가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아닌 생각, 마음을 당신 자신으로 오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경전에서 말하는 원죄인 겁니다. 당신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물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대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겁니다.
오해에서 벗어나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그리고 오해에서 벗어나서 자기를 바로 알기 위하여 방편수행을 해야 하는 겁니다. 방편수행 이외에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