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교회 1998.4.26. 주일설교
예수를 사랑하며 뒤따라 감(요한복음 21:15-2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 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 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 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 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 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 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 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 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 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 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 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 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 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 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 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 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 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 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 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 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 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 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 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 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 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 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 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 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 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이 일을 증거 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 거가 참인 줄 아노라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 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 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 는 뮤직칼 연극 가운데, 나중 에 영화로 만들어진 Fiddler on the Roof라는 제정 러시아시절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 유대인가정과 유대인 공동 체의 삶을 그린 연극과 영화 입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 인 Tevye와 그의 아내 Golde 는 어느날 다음과 같은 대화 를 합니다. 남편 Tevye는 아 내 Golde에게 묻습니다. "당 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내가 무엇을 한다고요? 당신은 나 를 사랑합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우리 딸이 결 혼하려고 하며, 우리 마을에 요즈음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아마 당신이 지쳐있고 피곤한 모양이구려, 침대에가서 누워계시구려. 소 화불량이 걸렸는지도 모르겠 소. 그러자 남편 Tevye는 계 속하여 아내 Golde는 말합니 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질문 하지 않소, 당신은 나를 사랑 합니까? 당신 참 바보같소이 다. 나는 내가 바보인줄 알아, 그런데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 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구 요?" 그래 사랑하우?, 지나간 25년간 나는 당신의 옷을 세 탁해주었고, 당신을 위해 요 리했으며, 집안을 청소해왔고, 당신에게 아이들을 나아주었 고, 소의 젓도 짯소이다. 25년 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새삼 스럽게 사랑을 말하는 것이 요?
그러자 남편 Tevye는 아내 에게 말합니다. 여보, 그런데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그날 당신 얼굴을 처음보았지 않 소, 그때 나는 몹시 겁나있었 소. 나는 그때 몹시도 수줍 어했었지요. 나는 몹시도 긴 장했었소. 나도 그랬어요. 그 때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 리가 살다보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울 것이라고 말했주셨 는데, 그런데 나는 지금 당신 에게 묻는데, 당신은 나를 사 랑합니까? 나는 당신의 아내 입니다. 물론 당신이 내 아내인줄을 아는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 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다구 요? 지나간 25년간 나는 당신 과 함께 살았으며, 당신과 싸 우기도 했으며, 함께 굶기도 했지요. 나의 침대가 당신의 침대였지 않습니까? 이러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 이 사랑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사랑 하는 것이구려. 그래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나도 당신을 사랑합 니다. 남편인 Tevye와 아내 Golde는 함께 말합니다.
25년 이 지난 후에도 서로 사랑한 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렇습 니다. 부부간에도 이처럼 서 로 사랑한다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며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 을 하며 사랑을 받고 싶은 기 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 다. 그러하기에 사랑을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 다.
갈릴리에 돌아온 베드로를 포 함한 7명의 제자들은 한 밤중 에 갈릴리호수로 고기를 잡으 러 가 밤새 애썼으나 한 마리 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해변가에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 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낮선 사람의 말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더 니, 그물에 고기가 넘치도록 잡혔습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 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인 것 을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해변가에 도착해보 니 예수께서는 숯불을 피워놓 으시고 물고기와 빵을 준비해 놓으시고, 춥고 배고픈 제자 들에게 몸을 녹이며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아침 식사가 끝나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 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 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영어 의 NIV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 우리 한국말 성경에 는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 를 더 사랑하느냐?"의 "이 사 람들"이라고 번역한 원어는 "touton"(these)이란 단어입니 다. 이것들이란 1)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즉 베드 로의 친구인 다른 제자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국 성경에서 번역하는대로 요 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 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2) "touton"이란 고기잡는 배 와 그물, 그리고 여러 가지 장비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 다. 즉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물건들, 고기잡는 배 와 그물, 그리고 값나가는 여 러 가지 장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3) 시몬의 아들 요 한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 랑하느냐?라고 번역할수 있습 니다.
그런데 3번째의 번역이 가장 올바른 번역으로 많은 성서학 자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한국말 번역인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 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시몬의 아들 요한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가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고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생각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6 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 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 다. 성경에도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떼가 흩어질 것이 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 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모든 사 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는 베드로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 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 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하고 장담하였다. . ."(마태복음 26:31-15).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나는 절 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던 것입니다.
요한 복음 13장에 보면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 도 버리겠습니다"라고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 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 만큼은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목숨도 버리 겠다고 자신만만했던 베드로 는 대 제사장집 바깥뜰의 모 닥불 곁에서 예수를 절대로 모른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안다면 나에게 저주가 내릴것이라고 말하며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 고 부인했습니다. 이제 해변 가의 모닥불 곁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지십니 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 다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 냐?"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그 가 시몬에게 주신 이름인 베 드로(흔들리지 않는 바위)라 고 부르시지 않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가졌던 이름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받 으셨을 때 베드로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든든히 서지 못하고 어린 소녀앞에서도 믿 음이 흔들렸기 때문에 베드로 란 이름대신 요한의 아들 시 몬아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자신만만했던 그가 얼마나 무참하게 실패했는지 를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겸손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 여 자기가 더 훌륭한 믿음의 소요자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 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여기에 있는 너의 동역자인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 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더 이상 자 기를 동료들과 비교하기를 원 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 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대답 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내 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내가 훨씬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 고만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사용한 사랑이 란 단어는 아가페란 단어이 며,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 한다고 대답할 때 사용한 단 어는 필레오(phileo)란 단어입 니다. 아가페란 예수께서 우 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 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나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가지 실 때 보여주신 가장 고귀한 사랑, 가장 헌신적이고 희생 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신약 성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의 사랑을 말할때에는 아가페 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필 레오란 단어는 주로 형제와 다정한 친구들 간의 사랑, 가 족식구들간의 사랑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짐 보이스 목사 님은 아가페의 사랑을 100% 의 사랑, 필레오의 사랑을 60%의 사랑으로 말하고 있습 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 랑 아가페하느냐?", 네가 나 를 100%사랑하는냐?고 질문 하실 때, 베드로는 자기의 연 약함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주를 사랑 phileo하나이다. 60%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 러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 (little lambs)을 먹이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베 드로에게 초신자들을 먹이라 고 사명을 주십니다. 베드로 에게 아직은 큰 사명을 주시 지 않고, 믿음의 초보자들을 먹이라는 사명만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두 번째 질문을 베드로에게 던지십니다. 16절 에 보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 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 가 나를 100%사랑하느냐? 그 러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 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필 레오)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베 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께 서는 "내 양을 치라(Take care of my sheep)"고 말씀 하십니다. 양을 친다는 말은 양을 돌보는 목양의 사명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양은 어린양인 lamb보다는 크지만 어른 양보다는 작은 양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 하는 양은 초신자보다는 더 오래 믿은 성도들, 그러나 아 직 그리스도의 제자와 사역자 가 되지 않은 성도를 의미합 니다. 네가 나를 아가페의 사 랑인 100%의 사랑으로 사랑 하느냐는 예수님의 두 번째의 질문에도 베드로는 자신의 연 약함을 잘 알고있기에 나는 주님을 필레오의 사랑, 60% 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probatia), 어린 양보다는 크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양을 치라, 즉 초신자 상태를 넘었지만 아직은 제자와 사역자들로 성 장하지 못한 성도들을 목양하 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어린 양을 먹이라는 사명보다는 좀 더 큰 책임을 베드로에게 주 셨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3번 째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지십 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 필레오하느 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가페의 사랑, 100%의 사랑으로 그를 사랑 할수 없음을 잘 아셨기에, 이 제는 베드로의 수준으로 내려 오셔서 질문을 하십니다. 베 드로야 "네가 나를 필레오의 사랑 60%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 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에 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 랑하냐고 질문을 하심으로 슬 픔에 젖어 17절 마지막쯤에서 대답을 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 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 다. 여기에서 사용된 양은 probata란 단어로 다 커서 성 인이 된 양을 말합니다. 예 수께서는 베드로가 주님을 사 랑한다고 고백하자, 베드로에 게 성숙한 양들 즉 제자와 사 역자로 성장한 지도자들까지 도 돌보고 목양하는 사명을 주신것입니다.
베드로가 처 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 백했을 때에는 어린양들, 초 신자들을 돌보는 사명을 주셨 다. 두 번재로 주님을 사랑 한다고 말했을 때에는 어린양 보다는 크지만 아직은 제자와 사역자들로 성장하지 못한 성 도들을 돌보라는 사명을 주셨 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확인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 에게 이제는 성숙한 양들, 제 자와 사역자로 성장한 지도자 들까지도 돌보고 목양하는 사 명까지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이나 질문함으로 베드로의 마 음이 상처를 입을 정도였는 데, 왜 예수께서는 세 번씩이 나 베드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신것입니까? 그것은 베드 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 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이제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사랑한다는 신앙고백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께서는 그를 모른다고 저주하 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용서하 고 그를 다시 그의 제자로 사 역자로, 사도로, 교회의 지도 자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우 리의 죄의 약함 실수를 용서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옅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엔도 슈 사꾸가 쓴 "침묵"이라는 소설 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6 세기 일본에서 있었던 사실을 소설화한 역사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에 선교사로 파송된 포르투칼의 페레라신 부가 고문을 못이겨 배교했다 는 소문이 포르투칼에 알려지 게 됩니다. 페레라 신부는 인격과 신앙과 학문에서 당대 포르투칼 교계의 최고인물로 인정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도구가와 정권 (1542-1616)의 악랄한 고문에 못이겨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 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어 보기 위하여 페레라 신부의 제자인 젊은 신부 세명이 일 본에 잠입합니다. 일본땅에 잠입한 세명의 신부중에 로드 리그라는 신부가 일본 관헌들 에게 잡히게 됩니다. 체포된 로드리그신부는 주님을 부인 하면 살게되고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면 고문을 받다가 죽게 됩니다.
일본의 관헌들은 로드리그신 부를 "후미에" 앞으로 끌고 갑니다. "후미에"라는 것은 예수님의 상이 새겨진 동판인 데, 기독교인들이 동판에 새 겨진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면 배교한 것으로 인정 하고 살려주고, 끝까지 예수 님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밟는 것을 거부하면 사형을 시켰던 것입니다. 로드리그 신부는 예수님의 상을 밟고 살아날 것인가, 아니면 이대 로 순교를 당할것인가를 선택 해야하는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는 고뇌에 가득찬 마음으로 주님의 상을 바라보고 있는 데, 많은 사람들에게 밟혀 일 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주님의 얼굴이 로드리고에게 말을 합 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원 래 사람들에게 밟히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느리라, 나를 밟 을 때 네 마음이 아푸겠지, 마음으로 아파하는 그 사랑만 으로 나는 충분하다. 괴로워 말고 나를 밟아라." 이 음성 을 듣고 로드리그는 주님께 말합니다. "주여, 저는 주님 은 항상 침묵만하고 계시는 줄로 알고 원망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침묵하 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 는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있었 느니라."이러한 음성을 들은 뒤, 로드리그 신부는 주님의 얼굴을 밟게 되고, 그 순간 새벽 닭이 웁니다.
침묵의 저자인 엔도 슈사꾸는 우리에 게 반문합니다. 그리스도인 으로서 나는 한번도 주님의 얼굴을 밟은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 마나 될것인가? 주님은 우리 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 십니다. 우리의 질고를 대신 저주시며, 우리의 발밑에 짓 밟히기를 자원하시는 주님! 내가 밟히고 네게 살어야지 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 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베드로처럼 자 신의 죄와 연약함을 회개하 며, 주님앞에 나아가, 내가 주 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 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야만합니 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 다고 세 번 고백할 때 예수께 서는 그에게 내 어린양을 먹 이라, 내 양을 치라 내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표 현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하 기에 요한일서 3장 18절에 보 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 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 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를 제자로, 사역자로, 사도로 회복시켜 주신 주님은 베드로가 복음을 위하여 사역하다가 순교할 것 을 말씀해주십니다. 18-19절 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 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말씀을 하심 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올 하나님께 영과을 돌릴 것을 가르키심이러라. 이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하 셨습니다.
역사학자 유세비 우스에 의하면 베드로는 네로 황제때 로마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옥에 같히 고, 손을 묶인체 형장으로 끌 려가 십자가 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죽으신 것 처럼 죽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꾸로 십자 가에 못박혀 죽기를 소원했다 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 장 16-18절에서 말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 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 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 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 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인의 성경)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그가 복 음을 위하여 순교하는 영광을 누릴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 로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 자 요한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 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 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이 재 림할때까지 살아있다한들 너 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 두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셨습 니다. 에베소 4:7절에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 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했으며, 로마 서 12장 6절에 보면 "우리게 에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 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 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부러워하 며 열등의식을 가져서도 아니 되며, 나의 은사를 다른사람 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말 고 히브리서 12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 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내 앞에 놓인 경주를 달려가 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에게 알맞는 은사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은사를 활 용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은 사대로 주님을 섬기면 될 것 이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 나,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월 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될것 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평신 도 지도자 가운데 워치만 니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찬을 세가지 타입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1)전도의 은 사를 가진 사람으로 베드로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한번 설교하여 3천명의 사 람을 예수믿게 했으며, 나중 에는 5천명의 사람을 예수믿 게 했습니다. 물론 사도바울 과, 바나바 그리고 빌립집사 와 같은 사람도 훌륭한 전도 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는 전도에 탁월한 은사를 가 진 사람이었습니다. 최근에 는 빌리 그래함같은 목사님은 전도설교에 뛰어날 분이십니 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미 국의 윌로 크릭교회의 빌 하 이벨목사, 세들벡교회의 릭 웨렌목사님은 구도자들을 예 수믿게하는데 뛰어난 은사를 가지고 계신분들입니다. Campus Crusade for Christ 라는 선교단체도 사영리 (Four Spiritual Law)라는 전 도방법을 통하여 전도에 매우 탁월한 사역을 행하고 있습니 다. 신학교로 말한다면 남침 례교계통의 신학교들이 전도 의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가르치고 양육하는데 은사 를 가진 사람으로 워치만 니 는 사도바울을 말하고 있습니 다. 물론 베드로도 가르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바 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잘 가 르치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 육하는데 가장 탁월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 의 쳑 스윈돌목사님, 죤 멕아 더목사님, 쳑 스미스목사님, 짐 보이스목사님 같은 분은 목사님은 가르치는데 탁월한 은사를 가지고 계신분들입니 다. 선교단체 가운데 Navigator, Intervarsity등은 가르치고 양육하는데 어느 설 교단체보다 더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로 말 한다면 달라스신학교, 트리니 티 복음주의 신학교들이 가르 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 다.
3)위치만 니는 사랑으로 봉사 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 사도요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 우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 1,2,3서를 통하여 그는 하나님 의 사랑을 가장 많이 강조하 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치유와 위로와 권면, 상 담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 습니다. 스위스에 L'Abri라 는 단체를 세운 유명한 Frnacis Schaeffer목사님 같 은 분들, 한국으로 말한다면 다일공통체를 세운 최일도목 사와 같은 분은 치유의 은사 를 가진분들입니다. 신학교 로 말한다면 클레어몬트신학 교, 에모리대학의 켄들러신학 교, 플러신학교들의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여 주님을 신실하게 섬 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나자신을 비교하면서 다른 사 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늘 관심이 많은 우리를 향하 여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 는지 너에게 무슨 상관이 있 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 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 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 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 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막 10:45)." 또한 "그러나 나 는 섬기는 자로 너희중에 있 노라"(눅 22:27)고 말씀하셨습 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향 하여 "너는 나를 따르라"말씀 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주 님을 따를 수 있습니까? 그 것은 섬기는 삶을 통해서입니 다. Hudson Taylor는 중국 선교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영국선교사였습니다. 어느 선교보고회의에서 어느분이 허드슨 테일러를 소개하면서 테일러 선교사님은 중국사람 들 사랑했기 때문에 중국선교 에 일생을 바친 분인입니다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허드 슨 테일러는 "아닙니다, 내가 중국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 라,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 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를 따르며 섬기 기를 기뻐하는 성도들 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