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七 章 하늘의 뜻
운학은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몽롱한 상태에서 그가 우선 느낀 것은 물씬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香氣)였다.
그의 머릿속은 어지럽고 마음은 번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이 이향(異香)을 너무 많이 호흡한 탓인 듯 했다.
잠시 후 가까스로 정신을 안정시킨 그는 자기가 이 향기에 취해 쓰러졌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석주(石柱) 위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져 오며, 천일대사의 유고(遺稿)……
새북대전기(塞北大戰記)도 종내는 완전히 읽지 못했음을 아울러 생각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묵묵히 내공(內功)을 운행시켜 보았다. 그리고 공력이 대단히 진보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사실 그는 조금 전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석실(石室) 속은 어둠침침한 암흑뿐이요,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고는 자신의 정신에 제법 정상의 상태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원석(圓石) 위에서 기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바닥을 짚고 몸을 지탱하려고 하다가 그 손이 허공만을 더듬게 되자……
그는 비로소 자기가 원석의 가(邊)에 쓰러져 있으며, 돌 아래의 자욱한 황사(黃沙)와 불과 한 자 남짓밖에 여분이 없는 곳에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느낀 순간, 그는 그 거대한 사류(沙流), 곧 모래의 흐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는 급히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몸을 움직이는 서슬에 품안에 무슨 물건이 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일까?)
창졸간에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급히 왼손을 써서 품속으로 더듬어 본다.
꺼낸 것은 한 권의 고서(古書)였다.
그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은 자기가 천일대사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아마 표지에는 단정한 글씨로 소림심법(少林心法)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얻은 후 잇따른 기이한 사전으로 하여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읽어 보지 못했다.
운학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이 少林心法이라는 책을 읽어야 옳으냐, 아니면 그 한편의 새북대전기(塞北大戰記)를 읽어야 좋으냐?
하지만 즉시로 결론을 얻었다.
(무공의 진수(眞髓)를 기록했을 소림심법도 궁금하지만, 그러나 새북대전기의 수수께끼는 더욱 마음이 끌리지 않느냐?)
이리하여 그는 대단히 신중하게 그 누렇게 바랜 고서(古書)를 품속에 다시 넣었다.
운학은 몸을 일으켰다. 손을 내밀어 석주의 벽을 더듬어 본다. 그리고 돌 머리(石頭) 한 치쯤 되는 곳에서 그 한 편의 문자(文字)를 찾아내었다.
그는 다시 위로 기어 올라가 다시 아까와 같은 실수를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갔다.
그리고 글씨가 쓰여진 종이 위에 손가락을 살며시 얹고 온 몸의 촉각을 그 손가락에 모아 차근차근 더듬어 나갔다.
종이에 쓰여진 글씨――
즉 먹물 자국을 촉각으로 더듬어 그 글씨의 내용을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얻어진 감각은 다음과 같았다.
『임술년(壬戌年) 七월 하순의 야반(夜半) 삼경, 빈승(貧僧)이 각파의 현능(賢能)과 함께 이 골짜기 동쪽에 모여 선배(先輩)의 소원(所願)에 따라 무림계의 명예로운 차서(次序)를 정하려고 했다. 그때 그 우열(優劣)을 정하는 방법으로 북요(北遼)의 김인달(金寅達)이라는 자가 있어 침사곡을 건너기를 제안했다. 그로 인하여 무림의 정령(精靈)들의 뼈를 이 모래바다(沙海)속에 무참히 묻게 했다.
노신(老身)과 김모(金某)는 서로 다투다가 이 골짜기를 건너다가 골짜기 가운데의 고봉(孤峰)에 이르러 암기(暗記)를 남겨 놓고 막 돌아서려는 때에 노신은 갑자기 김모(金某)의 독수(毒手)를 입었다. 허나 미리 짐작하고 있던 노신(老身)은 드디어 그 자를 죽여 돌아가신 천하 영호(英豪)에 사과(謝過)를 드리고자 함과 아울러 이 글로써 후인(後人)에게 경계를 삼고자 하느니라.』
이런 내용을 더듬어 낸 운학은 심중에 오싹 한기가 스며옴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입속으로 김인달(金寅達) 세 글자를 여러 번 되풀이 하여 외우고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다.
그는 이 글이 사실이라면 김모인(金某人)은 정말 악독한 사람이라고 외쳤다. 만일 천일대사(天一大師)의 공력이 신통하지 못했다면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여기서 목숨을 잃은 사실이며 또 그 원인이 그 김모의 궤계(詭計)에 있다는 것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고 말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이어서 다음 줄(行)을 더듬기 시작했다.
『소림심법은 지금으로 끓어졌으니 이후 무림에서 백십 년 사이엔 오직 전진파(全眞派)만이 숭앙(崇仰)을 받으리라. 홀로 다행히 복파보(伏波堡)의 장천행(張天行)에게 전수(傳授)하긴 하였으나 이 사람은 천성(天性)이 고고(孤高)하여 세상에 전파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이 책으로써 전진문하(全眞門下)에게 전해 주는 바이니 소림(少林)을 대신하여 노신(老身)의 뜻을 이루어 주기 바란다. 그렇지 못할진대, 이 오묘한 비밀은 끝내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운학은 천일대사의 사물(事物)을 꿰뚫어 짐작하는 그 심모(深謀)에 탄복을 했다.
그러는 한편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복파보(伏波堡)의 장천행(張天行)이 바로 복파보의 문하인(門下人)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요원은 틀림없이 선천기공(先天氣功)의 초보 무공으로서 청목도장을 도와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운학은 또 다른 한 방면으로 천일대사의 위대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그건 왜냐하면 그가 뭇 세인(世人)과 같은 인물이라면 자기 문파에 전하지 못하는 이상엔 이 책을 없애거나 혹은 감추거나 아니면 그림을 그려 암어(暗語)로 남겼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만 했다면 전진문하의 수중에 이렇게 쉽게 떨어져 들어올 수는 없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이 두 줄의 문자(文字) 중에는 비록 몇 마디 되지는 않지만 그 글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착상(着想)한 글이며, 이를 위해서는 죽어도 한이 없다는 글이었다.
이런 위대(偉大)한 인격(人格), 즉 대공무사(大公無私)한 마음은 진정한 무인이 가져야할 선결조건인 것이었다.
운학은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싶어지는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접촉한 사람 중에는 가히 영웅이라 하고 호걸이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원수를 맺고 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정말로 한 방에 범 두 마리를 수용하기 어려운 일일까?)
불현 듯 그는 전진파(全眞派)의 첫손으로 꼽히는 공적(公敵) 마교오웅(魔教五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전진문파와는 근 백 년간의 대적수(大敵手)였다.
그들은 일찍이 이대(二代)를 연이어서――구이진인(鳩夷眞人)과 청목도장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목도장으로 하여금 내상(內傷)을 입게 한 자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자기, 즉 운학과도 닥쳐오는 앞날 언젠가에는 사전(死戰)을 겪어야 할 상대들이었다.
그렇거늘, 그들은 한 번뿐이 아닌 두 번씩이나 운학을 도와주었다.
먼젓번에는 인도 임여가 운학의 위기를 두 번씩이나 구해 주었으니 제일차는 왕사성(枉死城)이며 제이차는 운학이 영호진(令狐眞)과의 큰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후였다.
이 외에도 오웅(五雄)들은 운학이 황산에서 복파문하의 포위를 받아 곤경에 빠졌을 때, 탈출하도록 도와 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그들이 힘을 합하여 무당파의 천년인삼으로 청목도장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운환마(雲幻魔) 구양종(歐陽宗)이 그들을 도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타통(打通)시켜 줌으로써 그 공력이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게 해 준 일 들이다.
그러나 오마(五魔)는 어째서 운학이 그들 자신의 최대의 적(敵)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들 오마(五魔)는 항상 전진문하의 사람을 거북하게 여기면서도 왜 또 적을 도와 기염을 돋구게 하였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옛 인자(仁者)의 풍도를 지닌 아량 넓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기실 운학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초의 오마(五魔) 그들은 청목도장의 상세(傷勢)를 만회하기 위하여 오웅(五雄)의 체통이나 명예도 돋보지 않고 복파보 중에서 그 침사곡 용연향장도(沈沙谷 龍延香藏圖)를 빼앗는 쟁탈전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운학의 돌발적인 개입으로 하여 사형령주와 위장(僞裝)의 선천기공을 써서 복파문하를 격퇴시키는 바 되어 사정은 갈수록 오리무중으로 복잡화시켰다.
장천행과 같은 기민한 사나이까지도 그 중의 하나만을 알고 둘은 알지 못하여 오히려 오웅(五雄)이 짐짓 전진문하인을 괴롭히려 했다고 여기고 있어, 오웅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웅이 복파문하에서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역시 자기들의 일신상에도 괴로움을 받게 되었으니, 즉 금년, 백세 생일의 잔치 때 황학루(黃鶴樓)의 회약(會約)을 결정한 그것이었다.
물론, 이런 사정을 운학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용연향은 뜻하지 않게도 운학의 수중에 들어왔다.
이것은 도룡수(屠龍手) 풍륜(風倫)이 천년 인삼을 보장한 서피 합(盒)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정세가 다급한 탓이라서――이 한 장의 양피(羊皮)로 그 인삼을 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운학은 오래지 않아 곧 이 한 장의 그림이 복파보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 청목도장은 이미 공력을 회복했기 때문에 천년용연도가 필요 없다. 그러므로 요원의 신분을 생각하더라도 이 물건은 역시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청목도장은 갑자기 그에게서 떠나버려 그는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를 몰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요원(姚畹)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로서는 사여명(查汝明)과 요원 두 사람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좋을지의 결심도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학의 시대에 있어서는 강호상에 드나드는 호협(豪俠)들의 거의 모두가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엄중하였다.
소위 호방(豪放)이라는 것도, 정(情)에서 나와 예(禮)에서 그쳤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편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때 오웅은 크게 관심을 움직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찍이 그들의 여섯째 의매(義妹) 요원에게 용연향장도(龍延香藏圖)를 복파보에 돌려보낼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운학은 다시 그의 사부 청목도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분 역시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이므로, 자기의 개인적인 은원(恩怨)으로 하여 결코 운학의 결정을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목도장 그는 두 번이나 자기를 굽히고 물러섰다. 생각해 보면 이게 모두 그 사람의 위대한 인격을 웅변으로 말해 주는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십 년 동안의 은퇴와 이대(二代)에 걸친 은원(恩怨)에 얽힌 사연 역시 청목도장의 인격을 추호도 손상시키지 못했다.
운학의 마음은 거센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의 두 뺨은 뜨거운 눈물로 하여 얼룩이 지고 그의 전신의 온갖 세포와 피부가 이 마음의 격동으로 하여 용솟음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멍하니 어두운 공간…… 그곳은 석벽(石壁)이었지만…… 을 바라보았다.
그는 또 고개를 낮추어 눈 아래 넘실대는 사류(沙流)를 응시했다.
(저 모래 속에 수많은 고수들이 그 생명을 묻었거니…… )
등골이 소연한 감개가 물결과 같이 그의 전신을 엄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영웅들과 수많은 사연을 삼킨 모래는 언제 그런 비극(悲劇)이 있었느냐는 듯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지 않는가.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소리는 마치 잡된 상념(想念)과 번거로운 회상을 한꺼번에 몰고 가듯 어둠 속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지금의 그의 심중은……
이 황막한 어둠에 싸인 공간인양 공허(空虛)만이 남고 있었다.
이 공허는 젊은이의 우수(憂愁)라고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우수는 망망한 전도(前途)에 대한 젊은이로서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몸은 밀폐된 석실 중에 두고 벗하느니 차가운 돌벽과 묵묵히 흐르는 죽음의 모래뿐이니 이런 정적의 분위기는 청년의 마음을 흔들기에 족했다.
운학은 더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가슴의 옷깃을 풀어 헤치며 이 광대하고 어둠에 싸인 공간을 향해 목구멍이 터지게 절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 가슴에 맺힌 울적한 심회를 쏟아 버리려고 했지만 막상 소리를 질러보니 그 음성은 목구멍 속에서 얼어붙은 듯 나오지를 않았다.
(인생이란 허무한 것인가?)
그는 생각한다.
한평생 글만 부지런히 읽던 서생(書生)이 자기의 온갖 심혈을 기울인 이 독서생활이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허무감을 느꼈을 때, 그의 심중에 일어나는 감상이 어떠하랴!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 서생이 글 속에서 어떤 밝은 계시(啓示)를 받고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 또 스스로 몸을 물러서는 것이 그 깨달음의 결과라고 믿고 스스로 책장을 덮었을 때,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 그 자체에 대한 항력(抗力)이 생겨지고 자신을 성장(成長)시키는 요소가 남게 될 것이다.
이런 내심의 모순은 한 청년으로 하여금 타락의 길을 밟게 하고, 늙은이처럼 정기(精氣)를 잃게 할 것이다.
지금 운학은 바로 이러한 위기와 마주 대하고 있었다.
그는 무공(武功)을 쌓는다는 것이 허무한 일인 양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부의 원수, 집안의 원수는 또 그로 하여금 무공을 열심히 연마하여 전일(前日)의 치욕을 씻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
그는 시시때때로 그 스스로가 멸망을 쫓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고민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적인 힘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사랑 때문인 경우도 있을 것이오, 때로는 미움 때문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욕심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고 자기만족(自己滿足)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다.
그럼 나로 하여금 이 생명을 유지시키고 더욱 더 살아나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이냐? 미움이냐? 아니면 이 두 가지 모두냐? 그렇다면 자기의 마음은 이 사랑과 미움으로 얼기설기 짜여진 그물이 아닌가?
사랑이면 사랑, 미움이면 미움, 어느 한 가지 만이라면 자기의 생명이 의의(意義)가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물(事物)이 엇갈려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공허와 번민으로 걷잡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선 무엇이 사랑이며 무엇이 미움인가.
말할 것도 없이 청목도장이 자기에게 준 은애(恩愛)와, 운학의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그 은애에의 보답지심(報答之心)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추악하고 살벌한 무림계에 대한 그의 증오(憎惡), 이것이야말로 미움이 아니겠는가?
한 마음 속에 이렇게도 큰 모순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무학(武學) 자체는 증오하면서도 그 무학을 가르쳐 준 청목도장에게는 크나큰 은애(恩愛)를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일찍이 세상의 뭇 사람들과 떠나 살아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일체의 은애(恩愛)와 원한(怨恨)을 망각하고 싶었다. 심지어 사부(師父), 요원(姚畹), 사여명(查汝明)까지도……
그러나 그는 그러한 마음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로 하여금 갑자기 속세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운소진(鄆小眞)이었다.
운학은 어려서부터 청목도장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탓으로 도가(道家)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체험한 바로는 이 도가의 수도생활(修道生活)이, 나이 어린 사람에 있어서는, 더욱이 운소진과 같은 미모의 여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멍에가 된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멍에…… 진정 멍에였다. 젊은이의 마음이란, 시사각각으로 폭발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생활은 그 발랄한 용기와 정기를 무자비하게 억누르는 생활이 아니던가.
물론 신앙에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심령(心靈)의 안식(安息)이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
운학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그의 누이동생 운소진이 결코 여도사(女道士)가 되기에는 합당치 않은 성품이요, 사람됨이라고 느꼈다.
부모가 없는 운학은 그의 누이동생의 평생의 행복을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의 손길을 뻗쳐 주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운학이 그녀를 위해 심중으로 선택한 가장 적당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곧 하마(何摩)였다.
처음, 무당산에 가서, 길에서 사형령주를 만나 복수하러 갔을 때, 운학은 고의(故意)로 하마로 하여금 산 위로 올라가 수색토록 했다.
이것은 하마에게 준 다시없는 기회였다. 그리고 무당산(武當山)을 떠난 이후의 정경으로 보아, 이번 상면은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또 무슨 해야 할 좋은 말이 있겠느냐?
하삼제(何三弟)는 이미 벼랑 아래에 몸을 묻고 만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운학 자신이 죽음의 고요가 깔린 석실 속에 밀폐되어 버렸으니…… .
여기까지 생각한 운학은 그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념(想念)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 자기가 처하고 있는 현실로 생각의 눈길을 돌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그는 끝이 없는 성 싶은 어둠속에 시선을 모인다.
이 천지에 땅덩어리가 생긴 아득한 옛날로부터 오늘날까지 이 무시무시한 어둠은 그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삼켰으며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참극을 삼킬 것인가.
얼마 전에는 천일대사의 목숨이 이 어둠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그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자신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에 생명을 묻을 차례는 바로 운학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속세를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따지고 보면보다 평온한 삶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그 평온한 삶은커녕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와 있지 않는가.
(이대로 앉아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느냐?)
『아니다!』
그는 외쳤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
만약에 그의 손 안에 있는 비도(秘圖)에 무슨 희망적인 표시가 있다면, 그리고 그의 정력이 버티고 나갈 가능한 기간 내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석벽 위로부터 탈출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마치 바다 가운데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인 것이다.
아니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저 모래의 흐름을 거슬러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역시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은 극도로 희박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로서는 저 사류(沙流)에서는 자신의 몸을 버틸만한 자신이 없었다. 사류에 휩쓸려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침사곡 밖 천 리 이내에선 한 가닥, 한 털의 사류의 흔적도 없었다. 가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류는 이 일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땅속으로 숨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만약에 모래도 물과 같이 땅 속으로 흐르고 있다면, 그 모래 역시 물처럼 멀리까지 흐르지 않겠는가?
『다 틀렸다!』
운학은 외쳤다. 이 넓고 넓은 석실이 가장 이상적인 죽음의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하늘은 나의 옷이 되고, 땅은 나의 집이 되는군!』
사실 그가 앉아있는 그 커다란 원석(圓石)은 마치 한 개의 석관(石棺) 내부의 밑바닥처럼 생겼으며 석실의 꼭대기 층 역시 관 뚜껑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엔 짙은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고대(古代)에 있어선 대부(大夫)나 열후(列侯)의 관속에 향(香)을 넣는다지만 지금이 석실에는 가득 찬 그 향기까지 구비되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향기에 이르자, 그는 기왕 살아날 가능이 없을 바엔 이 기이한 향기의 출처나 알아보리라, 생각했다.
그는 곧 서서히 돌기둥을 기어 올라갔다. 호흡을 정지시켰다. 그 향기에 또 취해 쓰러질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장검으로 깎아서 만든 둥근 동굴은 이때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향기는 곧 석주(石柱) 안으로 도도히 흘러 들어온다.
우선 머리를 동굴에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무언가 번쩍 빛나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석주 한 가운데에는 한 가닥의 극히 희미한 광선이 있었다. 그 빛은 대단히 미약했지만 그러나 석실 중의 먹물 같은 어둠보다는 그래도 밝다 할 수 있었다.
그 한 가락의 미약한 빛의 화살은 위로부터 비쳐 내려오고 있었다.
운학은 그 광선의 모양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이 한 줄기의 빛은 결코 직접 비추어지는 게 아니라 아마도 매끄러운 돌벽에 이리저리 반사되어 온다는 것이며 그 괴이한 향기 역시 그 빛깔의 스며드는 진로(進路)를 따라 이 석실 안에 풍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빛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지상(地上)과 통하는 공간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속이 텅 빈 돌기둥의 내벽(內壁)을 따라 기어나가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곧 짙은 향기 속에 몸을 묻게 될 것이다.
돌기둥 안의 향기는 기둥 밖보다 훨씬 짙었다.
『음……』
운학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 매끄러운 돌기둥 안을 기어 올라가는 것도 큰일이거니와 이 기둥 안에 가득히 서리고 있는 이 마향(魔香)의 장벽을 어떻게 뚫느냐가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운학으로 하여금 망설이게 한 이유는, 이 굴뚝같은 돌기둥이 지면과 일직선으로 직통되어 있다면 몰라도 몇 구비 꺾어 돌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었다.
이리하여 운학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가 하는 수 없이 내밀었던 머리를 움츠려 다시 원석 위로 내려왔다.
그는 발이 땅에 닿자 급히 가슴 속에 막았던 호흡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두어 차례 깊은 호흡을 했다.
운학이 모험을 바꾸지 않는 원인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방금 보고 내려온 그 희미한 빛이 그에게 어떤 영감(靈感)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석실 안에는 바람…… 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극히 미약하나마 공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까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기는 수천 년을 지내왔을 터인데도 아직 신선하여 사람이나 동물이 호흡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으니 반드시 바깥의 대기(大氣)와 연결되었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공기가 드나드는 다른 공간, 즉 구멍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운학은 비록 이 석실에서 벗어나려고 갈망은 하고 있었으나, 그러나 무턱대고 허둥거리거나 덤비지는 아니했다. 원래 타고난 성품도 침착하려니와 그를 가르친 청목도장의 영향력도 그의 후천성(後天性)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학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때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심한 주림과 허전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은데다가 모래의 흐름과 오랜 시간을 싸웠기 때문에 전신의 기력이 매우 쇠진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얼른 품속으로부터 비상용으로 휴대하고 있는 마른 음식, 즉 건량(乾糧)을 꺼내어 그것을 먹었다. 그러나 입속의 침이 메말라 쉽게 넘어가지를 않는다.
굶주림과 갈증은 동시에 오는 법이다.
운학은 잠시 공력을 운행시켜 입안에 침이 고이도록 하고는 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그런지 갈증이 한결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공력을 운행시켰다. 그러자 진기의 운행이 의외로 순조로워졌다는 것도 아울러 느꼈다. 아니 순조로운 정도가 아니었다. 갑자기 온 몸이 훈훈해지며 사지의 마디마디마다 청량한 기운이 솟아옴을 느꼈던 것이다.
이는 운환마(雲幻魔) 구양종(歐陽宗)이 그의 임독(任督) 양맥을 짚어 진기를 순환시켜 주었을 때보다 더 우렁찬 것을 즉시 깨달을 수 있었으니 그가 이러한 자신의 체내의 변화를 깨닫고 있는 순간에도 그 청량한 기운은 한 줄기의 열류(熱流)가 되어 샘솟듯 단전(丹田)에서 쏟아져 나오자 그의 몸은 지상에서 둥실 떠오르는 게 아닌가.
『연대허도(蓮台虛度)!』
그는 무의식 중에 부르짖었다.
연대허도! 왕년의 청목도장은 이 기이한 경공(輕功)으로 천일대사의 위명(威名)을 꺾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금의 운학은 그 당시의 청목도장의 무공보다 훨씬 멀리 미치지 못함을 스스로가 깨닫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이 연대허도로 지면에서 겨우 약간을 떠올랐음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청목도장은 어렵지 않게 팔 척(八尺)이나 떠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운학의 지금의 나이는 겨우 십구 세이고 당시의 청목도장은 벌써 중년에 들어선 몸과 마음과 기법(技法)이 한창 절정에 달하던 때이니 어찌 비길 수가 있겠는가? 무공이 정상(頂上)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이면 한 시각 한 식경의 흐름마다 그 무공의 진보가 있는 법이거늘, 하물며 삼십여 성상(星霜)의 차이가 있는 노련(老鍊)과 미숙(未熟)에 있어서랴!
하지만……
운학은 묵연히 생각을 더듬는다.
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공력은 어디에서 얻어진 것일까?
침사곡 가에 있을 때의 그가 만약 지금의 공력이 있었다면 결코 사형령주의 계략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 골짜기로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생각을 돌이켰다. 그렇다면 그의 몸의 변화는 석실에 들어온 이후에 일어난 변화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석실 안에 무슨 이상(異常)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그 까닭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가 어지러운 사색에 잠기고 있는 동안에도 체내의 진기는 계속 운행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기는 갑자기 더욱 힘찬 세력으로 운행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던 그는 퍼뜩
『혹시 이 기이한 향기가 인지(人智)로서는 헤아릴 수도 없는 어떤 작용을 일으킨 것이나 아닐까? 나의 주위엔 돌과 어둠과 이 불가사의한 향기뿐이니……』
사람의 약점이란 자기의 생각을 곧 옳다고 단정해 버리는데 있다. 그리고 이 어림만치는 단정은 실로 아주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우연히 진실을 발견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행(行)과 불행(不幸)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운학의 일생은 불행, 두 글자로 다했다. 그러니 이번의 단정도 그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그는 이 향기가 심상치 않는 것이라 여기고는 돌기둥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혹시 이 향기(香氣)의 진원(震源)은 바로 용연향이 아닐까?』
천하의 향기 중에 사람의 공력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연향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뻤다. 그는 그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는지 오른손으로 돌기둥을 쾅 치면서 크게 외쳤다.
『희망이 있다! 살아날 수 있다!』
저 향만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 향이 감추어진 곳을 가리키는 용연향장도는 자기의 품속에 있다.
당시 오웅(五雄)의 노대(老大) 도룡수(屠龍手) 풍륜은 서각(犀角)으로 된 합자(盒子)를 아까와 한 나머지 급히 한 장의 낡은 양피지(羊皮紙)로 인삼을 싼 적이 있었다.
그 한 장의 양피지는 풍륜이 복파보 밖에서 사형령주로부터 뺏어 온 것이었다.
이런 경로로 해서 그 양피지는 운학에게 들어와 있다. 즉 오웅 그들은 청목도장의 공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용연향장도(龍延香藏圖)를 빼앗아 왔고 청목도장은 그것이 필요치 않다고 하여 운학에게 주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것이 운학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천년의 지보(至寶)를 향수할 수 있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줄이야.
만약에, 사형령주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운학은 침사곡 중에 빠뜨리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사형형주, 그는 선천기공(先天氣功)이 몸에 없는 사람은 그 사류(沙流)의 괴상하고도 큰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명명지중(冥冥之中) 곧 가물가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에도 스스로 정해진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하늘의 정수(定數)요, 섭리가 아닐까?
그 한 장의 낡은 양피지…… 운학은 대수롭지도 않게 그것을 보아왔다. 그때는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급히 품속에서 용연향장도를 꺼냈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한다.
범인(凡人)은 모두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죽음…… 그러나 이 죽음이 다른 하나의 생명의 시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자기의 생명을 아까와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이 방면에 가능할 수 있다면 종교(宗敎)상의 영감을 얻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한낱, 나이 젊고 자기 외의 그 어떤 힘이나 존재를 믿지 않는 운학에 있어서는 안간힘을 쓰며 삶을 찾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었다.
운학은 눈에 힘을 주어 그 양피지를 살핀다.
보니까――.
‘용연향장도’의 옛 글씨로 쓴 넉 자를 제외하면 글씨라고는 하나도 없는 비교적 그 형태가 간단한 몇 개의 부호(符號)만 있을 뿐이었다.
그 부호란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할 지경으로 막연하기만 하다. 점(點)과 선(線) 뿐이었으니,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이 그림과 아울러서 다른 어떤 구전(口傳), 즉 입으로 전하는 방법으로 전하려고 그렸는지 아니면 자기만 잊지 않으려고 부호로서 남겨둔 것인지 모를 만큼 삭막한 것이었다.
이렇게 글씨도 없는 천서(天書)와 같은 형식의 수수께끼의 그림이니, 복파보에서 해득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양피지 윗부분에는 몇 글자로 주(註)를 달은 듯했지만 그것도 역시 고서(古書)여서 그림이나 진배없었다.
일찍이 고서를 많이 보지 못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특히 운학과 같은 사람에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형상(形傷)에 지나지 않았다.
『음, 모르겠는걸! 이럴 때 요원이가 있었으면 무슨 도움이 될 것을…… 그녀의 슬기와 총명이라면 이 그림을 해독할 수도 있을 것을……』
그러나 요원이 이 석실에 올 리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다.
운학은 심신을 가다듬고 이모저모로 그림을 뜯어본다.
이 그림은 심히 그 구도(構圖)가 간단하였다. 그림의 우상각(右上角), 즉 오른쪽 윗구석 용연향장도 네 글씨의 모퉁이에도 작은 점선(點線)으로 둘레가 그려져 있고 이 둘레 테두리 왼쪽가에는 화살표(箭頭) 모양의 기다란 선이 이어져 있었으며 화살표의 끝 부분이 되는 곳에는 엇갈린 작대기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화살대(箭柄) 위에는 조그마한 세모꼴의 부호가 있었다. 이 서로 이은 답호(答號)의 외각(外郭)엔 또 하나의 원선이 있으며 그 원선은 ×표의 교차점에서부터 비스듬히 좌하방(左下方)에 있는 또 하나의 원선(圖線)과 연결되는 허선(虛線=가정상의 선)이 있었다.
좌하방의 원선 안의 중심에는 또 두 개의 동심원(同心圓) 즉 ◎표시가 있다. 그 가운데에 별 모양의 그림이 있었다.
허선(虛線)이 둘레의 바깥 부분과 연결되는 곳에 또 하나의 ×표가 있어 그것이 원심(圓心)을 통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 ×표로서 그 원심의 직경(直徑)이 되어 있었으며 화살 끝에는 또 하나의 ×표로 연결되어 있었다.
백년을 걸쳐 무림계에서 쟁탈의 대상이 되었던 용연향장도(龍延香藏圖)는 뜻밖에도 이렇게 애매모호한 무더기의 부호(符號)가 아닌가?
운학은 두 번 세 번 살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아무리 살펴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아무튼 건량(乾糧)으로 며칠간은 버틸 수 있으니 천천히 연구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천일대사의 유저(遺著)를 꺼내들고 들여다보다 말고 돌기둥 위의 동굴로 다가갔다.
돌기둥 속은 꽤나 밝은 빛이 있었다. 또 그 향기에 취하는 기미가 보이면 즉 아래로 내려와 청량한 공기를 마실 작정으로 있었다.
운학은 피봉(皮封)을 뜯고 속에 들어있는 유저(遺著)를 펼쳐들고 읽었다.
『무릇 무학지도(武學之道)는 어찌 만단(萬端)에 그치리오. 그러나 그 번잡함을 덜어 버리고 그 청순(淸純)을 취하면 오직 기(氣) 하나만 남을 따름이니라. 무릇 기(氣)는 물(物)로 된 것이니 가히 밖에서 적을 취할 수 있고 안에서 이길(克) 수 있느니라. 연(然)이나 하늘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생긴 것은 그 기 가 있기 때문이니 이 선천(先天)의 기(氣)로써 후천(後天)의 힘을 점(占)하면 이기지 못할 적이 없으며 이루어지지 아니할 일이 없느니라……』
운학도 무학(武學)을 닦는 일개 무인(武人)이다. 이것을 읽고 어찌 미친 듯이 취하지 않았겠는가? 그는 읽을수록 더욱 흥분이 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는 생각한다.
『소림파(少林派)는 강(剛)을 위주로 하고, 전진파(全眞派)는 청정지기(淸淨之氣)를 으뜸으로 삼으니 이 두 파의 극의(極意)는 서로 대조적(對照的)이구나. 그러나 이제 보니 우리파의 유(柔)보다 소림의 강(剛)에 선천기공의 위력이 있음을 알겠도다. 만약에 선천기공으로써 양파의 똑같은 실력의 소유자가 만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전진파는 곧 우세(優勢)를 벌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진의 공력이 소림보다 우월하다면 그때는 가히 유(柔)가 능히 강(剛)을 이기는 증명이 될 것이다……』
운학은 타고난 성품에 무(武)를 숭상하는 바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비록 그가 세속의 어지러운 현상으로 하여 무학에 대한 회의(懷疑)와 한 가닥 공포는 가지고 있을망정, 즉 그러한 심중의 모순 때문으로 해서 결코 타고난 상무(尙武)의 본성(本性)을 잃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의 타고난 성품 속에 깊이 잠긴 운학은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그 유저를 탐독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전심 전령은 이 희대의 절학(絶學) 속에 융합되어 혼연히 일체가 된 듯했다.
지금의 그에게는,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이 한 권의 책이 있을 뿐이었다. 사부(師父), 요원, 사여명,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 무아무타(無我無他) 지경에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굶주렸던 사람이 감미(甘美)로운 음식을 탐(貪)하듯 그 유저(遺著) 속의 글자 하나하나며 각 장마다의 그림을 삼킴 듯이 쏘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뇌리엔 끊임없이 줄기줄기 열류(熱流)가 용솟음쳐 오른다.
육체는 오직 사상(思想)의 노예일 따름이다. 그것은 반드시 사상의 견제와 지배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육체는 사상의 압력으로 하여 파괴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리고 음식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외계(外界)의 환경을 내재(內在)의 생명, 즉 사상(思想)에 비교하면 정말로 미약하고 계산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전진파와 소림파는 비록 경쟁의 대상에 있고 유강(柔剛)의 구별이 있으나 천하의 무학(武學)은 이들 양 파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헤아려 생각해 보면, 이렇듯 천하에 관절(冠絶)한 양파의 무공의 진수라고도 할 선천기공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전진파(全眞派)의 무공에는 흡족치 못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운학은 소림심법(少林心法)의 진수(眞髓)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소림의 심법의 결점 역시 전진의 장점으로 보충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이리하여 천하 지고(至高)의 두 무학이 그의 뇌해(腦海) 중에서 엇갈렸다간 용합되고 융합되다간 다시 엇갈리곤 하였다.
이 안개와 같고 연기와도 같은 몽롱한 그것들이 점차로 뚜렷한 모습으로 형성되어 가기 시작할 때에는 곧 지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무학을 조성(造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것은 오직 시간상의 문제였다. 운학처럼 공력의 깊이를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두 것을 하나로 융합시키고 완전무결한 것으로서 형성시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며칠이 지났는지 몇십 일이 지났는지……
아무튼 운학에 있어서는 꽤나 길고 긴 시간이 있어야만 그의 머릿속을 소용돌이치고 있는 광렬(狂熱)을 냉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가 처하고 있는 현재의 환경을 고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운학은 벌써 몇 번째나, 몇 줄 안 되는 소림의 심법을 반복해 가며 보았다. 그리고 일일이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했다.
이윽고―― 그는 목표를 돌려 이번에는 그 용연향장도(龍延香藏圖)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 석실로 들어오게 되었는가의 전후 경과를 다시 한 번 생각하였다. 그리고 난 후 또 그림의 기호(記號)와 대조하여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한 장을 용연향장도라 부르는 것을 보니 반드시 용연향이 감추어진 위치를 지시하는 그림임이 분명하다. 바꾸어 말하면 그림에 표시된 기호 중에는 반드시 용연향을 감춘 곳의 지시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혹시 용연향은 두 곳에 나뉘어져 있으며 이 그림은 그 두 곳을 지시하는 그림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곧 부인했다. 왜냐하면 용연향은 드물게 보는 물건이며, 그 부피도 크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 곳에 분장(分藏)할 수가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림의 기호는 그리 많은 편도 아니고 복잡한 편도 아니었다. 크기가 같지 않은 원선(圓線), 즉 동그라미가 다섯 개, 화살촉이 두 개, 가위표(×)가 세 개, 세모꼴 기호가 한 개. 별표 기호가 한 개, 허선(虛線) 한 개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 그림에서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은 우상(右上) 구석의 큰 동그라미 가운데의 세모꼴과 좌하(左下) 구석의 이중(二重) 동그라미의 별표라고 생각했다.
오른쪽 아래의 동그라미의 외선(外線)의 왼쪽 아래에는 밖으로 향하고 있는 화살촉 하나가 있었다.
운학은 매우 대담한 가정(假定)을 세웠다. 즉 좌하의 대원권(大圓圈=큰 동그라미)을 응당 바로 저 아래의 석실일 것이다.
만약 이런 가정에 의해 추리(推理)를 한다면, 그 외의 기호까지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만약 별 표시가 용연향의 은닉처를 가리킨 것이라면 두 개의 조그만 동심원(同心圓) 중의 비교적 작은 한 개는, 공중을 가리키는 원주(圓柱)일 것이요, 큰 동그라미는 지금 그가 앉아 있는 대원석(大圓石)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상 구석의 큰 동그라미는 침사곡의 둘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원심(圓心)의 세모꼴은?
이것은 골짜기 안의 고봉(孤峰)을 가리킨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기타의 기호는 무엇일까?
운학은 생각한다.
×표는 분명히 나갈 수 있는 통로의 입구를 나타낸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나머지 문제는 우상의 원 둘레 가운데 그 화살촉과 그 조그마한 원둘레이다.
얼마를 또 생각했다. 그리고 화살촉은 세모꼴을 통과하는 하나의 정각(頂角) 즉 꼭지각(角)임에 주의하였다.
만약에 이 세모꼴이 골짜기 가운데 있는 고봉(孤峰) 이라면 이 꼭짓점은 곧 산봉우리의 꼭대기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는 만월(滿月)의 밤에 침사곡에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쪽의 작은 원선(圓線)은 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화살촉이라 생각했던 그림은 바로 달빛이라야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즉, …… 대원권(大圓圈) 중의 부호의 해석은 만월(滿月)의 밤이요, 그 달빛은 침사곡의 고봉(孤峰) 위를 비추고 있으며 화살촉의 (…… ) 기호는 응당 그 달빛을 받은 고봉이 모래 바닥에 비춰진 그림자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봉의 정상 즉 꼭대기의 그림자의 소재(所在)가 바로 용연향의 은닉처에 들어오는 입구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위에 ×표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심으로 소리쳤다.
(그렇다! 나는 고봉의 꼭대기가 투영(投影=그림자를 이루는)된 지점에 떨어진 것이다…… )
그는 기뻤다. 그가 가설(假說)에 따라서 풀어 나가보니 이렇게 훌륭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는 자기가 처음 이곳에 들어오던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는 돌기둥을 완전히 한 바퀴 돌아보고는 돌기둥 저편은 분명히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운학은 전신경을 두 눈에 모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인 석벽(石壁) 쪽을 바라보았다.
보니까 검은 막(幕)인양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석벽 한 곳에 더욱 짙은 검은 음영(陰影)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저, 더욱 짙은 부분은 필시 동혈(洞穴)일 것이다!)
그는 지도를 들고 다시 한 번 대조해 본다. 그리고 방향을 확실히 정한 뒤에 조심조심 그 지도를 품안에 넣었다. 왜냐하면 이 지도는 복파보의 것으로서 운학이 독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가는 통로는 바로 저기다!)
비로소 이 석실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중 어딘가에는 이곳을 빠져나가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도 이 석실을 떠난다는 한 가닥 미련의 정이 느껴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석실이 결코 오래도록 있을 데는 못 되지만 그가 나가야 하는 저 석실 밖의 세계도 그다지 유쾌한 곳은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발, 저 지상(地上)의 세계에 나서기만 하면 집안의 원수, 스승의 원수, 하삼제(何三弟)의 원수 등 허다한 번거로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가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살벌하기만 한 번거로움도 있겠지만 운소진(鄆小眞)이나 요원(姚畹)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청목도장의 그 크고 넓은 자애(慈愛)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천천히 원석을 걸어나와 가볍게 몸을 날려 모래 바닥에 내려섰다.
그의 두터운 짚신이 모래에 닿자 팍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난다.
그는 서서히 출구를 바라보고 걸어 나갔다. 바람이 은은하게 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모래의 물결 위로 걸어가기란 물 위를 걷기보다도 더욱 힘이 들었다. 그러나 운학의 경공법은 그 움직이는 모래 위를 어렵지 않게 그를 옮기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가볍고 날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납덩이보다 더 무거웠다.
이리하여 그는 그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던 속진(俗塵)의 세계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긴다.
바람은 더욱 세차지고 어둠도 더욱 짙어졌다. 운학은 그 어둠속으로 자태를 감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