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발걸음 (김대우 모세 신부) 로마 지하철 B선을 타고 30여 분을 달리면 종점인 라우렌티나 역에 도착한다. 지하철 입구를 빠져나와 정면에 보이는 큰 교차로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트레 폰타네`라는 성지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굽어진 길 중간쯤 범상치 않은 조각상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유럽의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토 조각상이다. 왼손에는 지팡이와 규칙서를 들고 있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며 이곳을 찾는 이에게 무언의 말을 건넨다. 쉿!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침묵하라는 표시는 똑같다. 이 조각상 아래에 Ausculta o Fili obedientia sine mora ora et Labora. 라는 라틴어 문장이 쓰여있다. 자녁들아 들어라. 지체없이 순명하여라.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뜻으로 베네딕토 수도 규칙의 골자다. 베네딕토회 회원들은 정주. 정진. 순명..의 삶을 오롯이 살기위해 성베네딕토가 저술한 (수도규칙)의 삶의 잣대로 삼고 있다. 아직도 트레 폰타네 성지 안에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따르는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이 정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들어가는 길부터 순례자의 마음가짐을 준비시킬 정도로 엄숙한 트레 폰타네 성지. 이곳은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을 집필한 바오로 성인의 순교터다. 사도 바오로는 세번에 선교 여행 후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에 로마로 압송되어 이곳 트레 폰타네에서 처형되었으니. 이곳은 사도 바오로의 마지막 발자국이 새겨진 성스러운 땅이다. 학생 시절 논문 지도 교수님은 유학 시절에 외롭고 힘들면 트레 폰타네에서 기도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그 성지를 마음속으로 가끔 떠올려 보았고. 몇 년 후 트레 폰타네 성지를 직접 순례하게 된 것이다. 로마 외곽이라 한산하고 가로수도 운치가 있어서 유학 시절 외롭고 마음이 산란한 날이면 그 성지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트레 폰타네라는 명칭은 바오로가 참수를 당 할 때 그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면 세 번 튀었고 그 자리에 샘이 솟았다고 해서 셋...과 샘...이 합쳐서 생겨난 말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8년 6월 28일. 바오로 사도탄생 2000년을 맞아 `바오로 해`를 선포하면서 성인의 삶과 영성을 배우도록 온 세계에 권고했다. 이후 1년 동안 세계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로마로 몰려들었다. 여름방학 동안 내가 머물렀던 이탈리아 스피나 성당 공동체 또한 바오로 해를 맞아 로마로 성지 순례를 온다는 연락을 주었다. 본당 신부님은 순례단을 인솔해 달라는 청이 담긴 편지와 함께 성지 순례중...같은 증명서를 인편에 들려 보냈다. 순례단을 안내하려면 그만큼 바오로 사도의 삶과 영성에 대해 더 공부해야만 해서 내게도 축복의 시간이었다. 40명 가량의 성지 순례단은 버스로 두 시간 반을 달려 이른 아침 로마에 도착했다. 우리는 바티칸 광장 앞에서 만나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순례 일정은 성 베드로 대성당 납골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라우렌티나 역에서 나와 `구원의 샘물`이라는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트레 폰타네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전해준다. 구원의 샘물...길을 통과해 성지에 다다르니. 마치 그곳에서 천상 선물을 얻은 것만 같았다. 성지 입구. 예쁜 샤를 마뉴 아치를 지나면 왼편 정원에는 야자수 나무가 늘어서 있고 오른편 길 끝자락에 `천국의 계단`이라는 아담한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클레르보의 성 브레나르도가 기도 중에 한 영혼이 천국으로 오르는 환시를 보았다고 하여 천국의 계단...이라 불렸다. 성당 안쪽 제단 아래로 협소한 계단을 내려가면 바오로 사도가 순교하기 전. 며칠간 갇혀있던 지하 감옥에 도착한다. 2000년 전 바오로는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세가 보장된 유다인 지도자 사울.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다. 그 후 바오로는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 소아시아와 유럽을 세 바퀴나 돌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고 그 공동체에 편지를 보냈다. 훗날 편지들은 신약성경의 서간들이 되었고. 그가 편지에 담은 초대교회의 상황과 신자들을 향한 시랑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오로의 인생을 살펴보면 감옥에도 갇히고 매도 맞고 수많은 역경 중에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추앙하는 성인이지만 사실 유다인들에게는 반역자였다. 신흥 세력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상에 퍼뜨린 변절자였으니. 유다인들이 얼마나 미워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바오로를 `흑사병 같은 자`라고 불렀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어떤 모욕과 치욕을 겪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 그는 `천국의 계단`성당 아래 지하 감옥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으리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걸어다녔을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 걸음을 내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천국의 계단 성당 밖으로 나와 오솔길 앞에 서서 저 건너편에 있는 순교터를 보았으리라. 오십 미터쯤 될까? 바오로 사도는 한 발 한 발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지상에서 마지막 발걸음이 새겨질 죽음의 장소다. 2008년 가을. 스피나 성당 순례단은 그 길에 숙연한 마음으로 섰다. 나는 바오로의 삶과 길에 대하여 40여 명의 순례단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곳에서 저편 순교지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바오로 사도의 삶을 묵상 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각자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만한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임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은 사뭇 진지하게 바오로의 고백을 듣고 조용히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 또한 2000년 전 사도 바오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서로 부딛히는 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나무 사이로 쏟아지고 저편에서 누군가 손짓하는 듯했다. 바오로 사도는 힘차게 그 길을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아무 미련도. 후회도. 두려움도 없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나 또한 그렇게 마지막 길을 걷게 해달라고 청하며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겼다. 로마 곳곳의 대성당과 바오로 사도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순례의 마지막 코스는 트레 폰타네였다. 일부러 그곳을 마지막 장소로 정한 이유는 바오로 사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순례를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에 도착했다. 은계동성당 성모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