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9(수) 오늘은 35도 이상의 폭염에 무리한 산행을 대신해 봉선사, 광릉숲길을 트레킹 하고
울창한 숲이 조성된 국립수목원의 전나무 숲길도 걸어면서 여러 종류의 수목도 관찰하고
수목박물관도 관람한 후 이조의 세조 광릉도 문화탐방하면서 그늘진 숲길로 해서 더위를 날려버리고
유익한 여름 트레킹을 가졌습니다.
"인생연습" 멜로디를 들어며 숲 속으로 출발~~~
국립수목원을 찾아서 잠시 추억의 포토를 담고서~~~
969년(고려 광종 20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세로 조성한 일주문이 봉선사의 이미지를 격상시키듯 웅장하게 세웠네요.
그 후 1469년(조선 예종 1년) 정희왕후 윤 씨가 광릉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고 하였다. 1551년(명종 6년)에는, 문정왕후에 의해 교종의 중심된 절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하여 교학을 진흥하는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다.
전철 4호선 오남역 3번 출구에서 10시에 반가이 만나서 버스 2번으로 봉선사입구 종점에 하차 후
봉선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시원한 연밭저수지가 잘 조성해 벌써 수련꽃이 피어 더욱 더위를 날려버리는 듯~~~
연꽃은 불교의정신을 상징하는 꽃이며 불교의 진리를 나타내는 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꽃은 꽃잎이 지고 씨방이 여물어가지만
연꽃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서 자라잡으니
원인과 결과가 늘 함께 하는 인과(因果)의 도리를 암시하는 것이지요.
연못 및 공원엔 곳곳에 석불들이 세워져 더욱 대사찰의 면모로 중창을 했네요.
봉선사찰의 사천문을 들어서며~~~
봉선사 큰법당을 둘러보고~~~
특이한 사항으로 보통 사찰에서 대웅전의 기능을 하는 전각의 현판이 봉선사에서는 한글로 그냥 '큰 법당'이라고 되어 있다. 봉선사를 재건한 운허는 경전의 뜻만 알면 되는데 경전을 보기 위해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굳이 한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이런 운허의 뜻으로 우리나라 사찰 중 최초로 한글 현판이 탄생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큰 법당은 주련에도 한글을 사용했음은 물론, 내부에도 화엄경과 법화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동판에 새겨 벽면에 붙여놓았다.
관음전(觀音殿)은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두는 사찰의 건물을 말한다.
저수지엔 시원한 분수가 솟아지고 미륵보살이 조성되어 봉선사찰이 아주 잘 중창이 되었습니다.
오능처럼 폭염에 시원하게 뿜어 되는 분수가 주인공이라~~~ 시원타~~~
봉선사의 유명스님들의 사리탑군입니다.
사리탑도 시류에 따라 많이 변화하고 있는 듯~~~
울창한 숲 속의 걷기 좋은 광릉 숲길을 들어서며 눈도 시원한 연둣빛 풍경으로 발걸음도 가벼이~~~
오늘도 무덥고 폭염이 예상되지만 우리 발걸음도 가벼이~~~
초입을 들어서니 잠시 산속으로 가는 오솔길이 새로 조성되어 숲 속과 산행을 맛보면서~~~
다시 데크길/숲길로 나와서 광릉냇가의 갈대가 무성하게 성장하는 풍경도 음미하며~~~
간간이 휴게소도 있고~~~
"머리조심"이란 팻말도 달리 나뭇가지 밑으로 통과하면서~~~
휴게소마다 자리가 없어 계속 발길을 걸어며~~~
용문대감 멋져유~~~~
재미있고 그린필드 같은 풍경이 배경으로 액자에서 잠시 추억도 담고서~~~ㅋ
주변에 재미있는 도깨비집도 있어 " 야~ 나 잡아 봐라~~~"
이 통나무를 지나가면 치매는 아닌 듯~~~ 다들 무사히 통과하고~~~ㅎㅎㅎ 동심도 발동하면서~~~
예전에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예약을 안 했어도 입장이 가능해 우린 경로이라
무료로 입장해서~~~ 우린 공짜는 무조건 최고야~~~ㅋㅋㅋ
다리를 건너면 국립수목원 숲 속으로 힐링의 환경 속으로~~~
국립수목원은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지리적으로는 중앙에는 소리봉(해발 536.8m), 남단에는 천점산(해발 392m), 서쪽에는 용암산(해발 479.6m)이 주봉으로 광릉숲의 한가운데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크고 울창한 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숲 내음도 좋고 그늘진 시원한 수목원 속으로~~~
호수가 있는 호젓한 레스또랑에서 오늘은 시원한 호프로 부라보!!!
"우리의 건강과 우정을 위해서 부라보!!!"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쭉쭉 뻗은 전나무숲길을 걸어보면서~~~
울창한 전나무숲이 우리 인간에 맑은 공기와 건강을 선물하는 보배로다~~~
박정희대통령이 조성한 호젓하고 멋진 데크숲길도 지나 보면서~~~
요즘 더위가 일찍 찾아오니 파란색 수국 꽃밭을 지나면서 잠시~~~포토를~~~
산림박물관 외부 전경현관 입구 천장은 낙엽송 간벌재를 집성하여 구조물을 만들어 간벌 소경재 이용의 좋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입구 산림박물관 표석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하천에서 수집한 화강암에 음각하였으며 “□”자형 건물의 중정에는 암석 표본 34종을 전시하였다.
산림박물관을 관람하며 나무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유용한지도 공부하면서~~~
각종 나무들의 나이테에 대한 것을 관람하며 나무의 나이와 방향도 공부해 보고~~~
거대한 고목으로 만든 거실 테이블도 만들어 인간에 도움을 주고~~~~
나무를 이용해 배를 만드는 포토도 공부하고~~~
나무로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최고의 예술품은 피아노이란 걸 알았습니다.
거대한 나무뿌리의 표본도 전시해 보면서~~~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오래전부터 크낙새가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광릉숲 일대에 서식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1962년 광릉 크낙새 서식지[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 99-1]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71년 5월 1일에는 지금의 광릉숲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먹이를 찾는 크낙새 수컷 한 마리를 발견하였고 사진 촬영에도 성공하였다. 크낙새는 현재 남양주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이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시의 마스코트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수목원을 둘러보고 시원한 물이 있는 냇가의 데크길을 걸어면서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수목원을 방문한 기념포토죤에서~~~~
오늘의 광릉 숲길 주인공들의 인증샷후~~~
귀로에 잠시 광릉을 찾아서 광릉전시관을 관람하고 광릉으로~~~
세조는 1417년에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왕자 시절에는 수양 대군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인 세종의 명을 받아 토지 제도 개혁을 이끌었고, 형인 문종 때에도 나랏일을 도왔다.
병약했던 문종이 임금이 된 지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의 어린 세자(단종)가 임금이 되었다. 이후 김종서와 황보인 등 의정부 대신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세종 때의 안정된 왕권과 정치는 크게 약화되었다. 이에 수양 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권람 등을 이끌고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그는 김종서와 황보인 등 권력을 잡고 있던 대신들과 강력한 경쟁자였던 안평 대군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1455년에는 단종을 압박해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세조에 반발하는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했고, 동생인 금성 대군도 단종 복위 운동을 벌였다. 결국 세조는 사육신과 금성 대군은 물론 어린 단종까지 죽였다. 이어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집현전, 임금이 신하들과 토론하며 공부하는 제도인 경연도 폐지했다. 최고 행정 기관인 의정부의 기능을 줄이고 왕이 직접 나랏일을 살피는 6조 직계제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아 세조에 대한 공부를 했으니 왕릉으로 올라갑시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서 세조왕릉으로~~~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으로 사적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릉 능역에 들어갔을 때 능역 왼쪽에 있는 무덤이 세조의 능이고 오른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 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
정희왕후의 능이다.
왼쪽에 있는 무덤이 세조의 능이고
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 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무인석·상석·망주석·석호(石虎)·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광릉에서 다시 봉선사입구로 트레킹 후 버스 2번으로 오남역으로 이동해 전철로 일정을 마쳤습니다.
6월의 때 이른 무더운 폭염 속에서도 울창한 광릉숲 속에서 잠시나마 더위를 날려버리고
건강하고 즐거운 트레킹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