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청시절 추억여행-2] 나와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는 고등학교 문예반 후배이다. 내가 다닌 대구고등학교 문예반 중에서 골수 문학도들이 따로 모여 활동하던 ‘계단문학동인회’라고 있는데 그 모임을 통해 이인화를 처음 대면했다.
당시에 그의 이름은 류철균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를 썼는데 내게 찾아와 시를 보여주면 영 아니라는 식으로 혹평을 해주곤 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쓰는 것을 보고 나중에 뭔가 될 놈이라고 손에 꼽았던 기억이 난다.
그가 군대에 가기 직전 얼마동안 내가 대구에서 경영하던 시인다방에 거의 매일 들리곤 했다. 자그마한 키의 가냘픈 여학생을 데리고 와서 커피 한잔 마시며 데이트나 즐기고 가려고 왔을 법한데 선배를 잘못 알고 지낸 죄로 데리고 온 여학생은 혼자 차를 마시게 버려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커피 잔을 나르고 주방 일을 돕거나 카운터를 봐주다가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 갸륵한 후배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밥 한 끼니 사주거나 집에 데려가서 고스톱 판에 끼워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나마 한 끼니 식사는 라면이 아니면 김밥, 그리고 고스톱은 판이 몰릴 때 쯤 틀어주는 문화영화에 한 눈을 팔도록 만드는 나의 전략에 휘말려서 가지고 온 돈을 몽땅 털리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인화가 군대 가기 며칠 전 시인다방을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에 사귀던 여대생과 함께 이별 커피 한잔 나누러 왔다고 해서 그날만큼은 내가 직접 서빙을 해주고 정중하게 손님 대우를 해주었다.
그날 인화가 사귀던 여자에게 군대 갔다 올 때까지 자신을 대신할 수호천사로 받아달라면서 가스총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 한참동안 웃었던 적이 있다.
50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가발을 쓰고 시인다방에 나타나곤 했는데 또 나의 강압에 못 이겨 장정일 구광본 시인 등과 <괴로운 시인>이라는 좀 웃기는 제호의 부정기간행물 발행을 맡아 무던히도 열심히 일해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뭔가 될 놈이라고 손꼽은 그는 나중에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아니다. 이미 그 전에 ‘류철균’이라는 본명으로 평론가가 되어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가 '이인화'로 탈바꿈한 것은 1992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작품으로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부터였다.
인화는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를 뿌리기도 한 출세작 <영원한 제국>을 출간하고 나서는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섰고 문단과 사회 각층에서 주목하는 신예작가가 되었다.
이인화란 필명은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들은 바 있는데, 평론과 소설을 겸하는 두 사람(이인화)이라는 뜻도 있고 그의 스승이기도 한 이문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때 이광수 전집을 독파했고, 야한 연애 소설부터 철학책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는 류철균이 '이문열'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성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내가 등장인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주로 악역(?)을 맡은 인물이 내가 아닌가 하는 지레짐작을 갖게 되는 것인데 아마도 과거에 나의 강압에 못 이겨(사실 강압한 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 만으로도 주눅이 들고 무언중에 그를 강압하는 행동을 보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배가 하는 다방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했던 복수(?)로 나를 나쁜 등장인물의 전형으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나쁜 놈!!!
나중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이후 발표한 그의 문학적 자서전 [계단 위의 성소(聖所)]를 읽으면서 나는 대구고등학교 문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의 옛 추억을 되새기기며 슬그머니 눈물을 닦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