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품'이 '배아품'을 이긴 인도의 비약적 발전을 보면서
인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던 탓에 1600년 英 女王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이 동양 무역의 독점과 인도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영국 제계를 대표하는 기업이자, 영국이 드넓은 인도를 지배할 수 있게 하고 중국에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울 수 있는 대영제국을 있게 한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와 목면(Cotton) 및 이들과 더불어 이 회사의 주 무역품 중 하나인 'Fortnum & Mason 홍차(Black Tea)' , 그리고 헐벗고 못사는 '인구와 수 많은 종교가 亂立'해 있는 나라라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인도가 어느새 식민지배의 대종주국이였던 영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가진 국가로 발돋음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마침내 식민지배 종주국 영국을 이기고 뛰어넘은 인도
내가 原絲구매차 처음 인도 땅을 밟은게 한국내 원사파동이 극에 달했던 1985년 여름이였다.
그때 실제로 가서보니 왜 인도에 그토록 수 많은 종교와 수 십억 명의 인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佛敎 敎祖인 고다마 싯달타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6년 고행 후 깨달음의 獅子喉로 "Caste제도(註1)를 없애야 된다"고 부르짖는지를 알겠드라.
뿐만아니라, 브라만교의 교리를 그대로 假借했던 불교에서 그 교주인 고다마 싯달타는 그의 피나는 6년 고행에서 얻은 것들 중에서 이 단 하나의 깨달음 즉 '브라만교의 수평적 윤회사상을 善行과 修行으로 수직적 윤회로 변경 가능하다'는 當時로서는 획기적인 아주 至大한 한가지를 깨달았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만큼 인도의 신분계급제는 골수까지 침범되어 있을 정도로 심각했기에 모든 인도 국민들이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브라만교에서는 승려계급인 브라만을 정점으로 그 아래 정치.군인.관리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있고, 크샤트리아 아래 보통 평인들인 바이샤가, 바이샤 아래에 소위 不可觸賤民인 수드라가 있어서 이들 계급은 三生(前生, 今生, 來生)을 현상 그대로 水平的輪廻를 한다. 즉 브라만은 살아서도 브라만으로 살고 죽은 후 다시 태어나도 브라만으로 태어난다. 반면 불가촉천민인 수드라는 살아서도 천민인 수드라로 살다가 죽은 후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천민인 수드라로 태어나서 온갖 괄시와 학대를 받으면서 온갖 굿은 일들은 도맡아서 하면서 그 상위계급인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및 바이샤를 섬겨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혹하고 혹독한 운명인가. 자기가 現生에서 아무리 선행을 쌓고 수행을 하드라도 한번 수드라는 영원히 수드라로 輪廻를 한다니!
결국 이들은 아무런 希望도 바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걸 宿命이라 여기고 체념하고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다마 싯달타가 보리수 아래서 皮骨이 相接한체 6년 苦行 끝에 브라만교의 이 수평적 윤회사상을 '善行을 쌓고 참 나(眞我)을 깨닫는 修行'을 한다면 설령 "불가촉천민일지라도 그 지은 業에 따른 報를 받아서 다음 생에서는 브라만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자기 안에 내在된 佛性을 완전히 깨닫는다면 陰陽五行의 굴레를 超脫하여 成佛하게 되어 神 卽 부처(佛)가 될수도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福된 소리' 즉 '福音'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기에 더하여 비록 "현재 브라만이라도 罪業을 짓고 修行을 거을리 한다면 다음 生에서는 그 지은 業(Carma)에 따라서 브라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수드라 등으로 태어난다"고 하니 바이샤나 수드라들에게는 이 얼마나 속 시원한 소리겠으며, 또 마치 수 십년 묵은 滯證이 뻥뚫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로, 기실 이 보다 더 큰 Catharsis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억눌렸던 民衆들은 고다마 싯달타의 法文(福音)을 듣기 위해서 수 많은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 고다마가 創始하고 說한 佛敎는 인도 전역으로 급속하게 펴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 부터 3000년 前인 기원전 6세기에 당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브라만교의 근본 교리(註2)를 假借해오면서 그 교리의 핵심 중 하나인 윤회설 중 '水平的 輪廻 思想'을 垂直的 輪廻思想으로 바꾼다'는 것은 當時로서는 驚天動地할만한 획기적 발상으로 발상의 대대적인 전환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닐수없다. 이점에서 민중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꿰뚫어 본 고다마의 빼어난 통찰력을 알수가 있다. 그래서 고다마 싯달타는 참으로 위대하며 인류의 큰 스승이 될만하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아주 當然한 歸結이겠지만 불교는 처음에는 헐벗고, 배고프고 못사는 바이샤, 수드라계급을 중심으로 펴져나갔는데, 이들의 세력화가 두려운 당시의 아소카왕을 비롯한 王과 귀족들의 지배층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점차 불교를 받아드리면서부터[소위 結集(註3)] 王權과 밀착되어 政敎癒着이 일어났던 것이다.
* 註1, 카스트(Caste)제도: 카스트(영어: Caste [kɑːst],< 포르투갈어: Casta [ˈkasta]는 세계의 수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일정한 신분 계층 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신분의 분류는 주로 집단의 경제력, 정치적 권력,
사회 및 문화에 기인되어 이루어진다. 카스트 아래에서, 특별한 정변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매우 우수한 사례 등의 예외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계층 이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부 국가에는 아직도 카스트의 풍습이 남아 있고, 주로 인도인들이 카스트로 인하여 차별 받고 있다.
이 제도는 본래 인도유럽계의 조상인 브라만들이 만든 제도이나 유럽에서는 소수 정도의 제도만 남고 사라지게 되었고 인도에서는 카스트가 계속 발전하게 되었다. 인도의 카스트는 전근대 수준의 문명이 가진 신분제로써는 정점에 선 신분제로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성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외부의 정복자들 역시 카스트를 부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인도 지배층과 협력하면 자발적으로 신분제를 지지하는 바이샤, 수드라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인도의 많은 상위 카스트가 외부 정복자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그 지위를 누렸다.
일반적으로, 카스트는 주로 인도의 신분계층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인도에서는 군주제 시절에도 카스트 제도를 합법화한 적이 없고 1947년에 카스트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금하였지만 아직도 카스트 제도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인도 문명에 정복되지 않은 다른 지역의 힌두교도들
은 카스트를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인도의 카스트는 전근대 이전의 지성이란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종교조차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 사라지기 어렵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영국인들은 인도인들보다 자신들의 입장을 더 중시했으며 그들은 인도식 카스트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했다. 근대적 민족주의가 없었던 인도인들은 영국 정부나 동인도회사를 위해 봉사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분이 낮았던 승려나 전사도 상위 카스트가 되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 註2, 브라만교(bhlaghmṇ교, 婆羅門敎라고도 함)의 주된 교리: 緣起法(因緣法), 因果法, 輪廻法, 해탈법 으로 業의 論理에 따른 카스트 제도의 브라만 계급을 주축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리아인의 출생, 결혼, 장례 등 각종 의례와 제사에 대한 규정을 기록하고 있다(리그베다).
힌두교의 母胎인 브라만교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기반한 고대 인도의 종교로 우주의 긍정적인 원인인 브라만과 개인에 내재하는 아트만이라는 원리가 동일한 것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緣起와 輪廻사상과 해탈설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 註 3, 結集: 고다마 싯달타의 入滅 후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개최한 불교집회를 말하며 合誦(saṃgīti)이라고도 한다.
본래 結集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상기티(saṃgīti)는 合誦을 의미한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고다마의 가르침을 함께 읊어 냄으로써 고다마의 말씀을 정리한 것으로, 고다마가 입멸하자 그의 가르침을 바르게 보존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출가 수행자가 모여 결집을 진행하였다. 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佛說의 진위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불설을 확립하여 후세에 바르게 전승
시키려는 시도였다. 고다마의 입멸 직후 이루어진 제1결집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결집이 이루어져 왔다.
불교 전승에 의하면, 제1결집(서기전 5세기)은 고다마의 입멸 직후 개최되었다. 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Ajātasattu) 왕의 후원에 힘입어 王舍城〔현재 라즈기르(Rajgir)〕칠엽굴(Sattapanni)
에서 마하캇사파(Mahākassapa: 大迦葉)가 주도
하였는데 고다마 在世時 고다마가 가르친 경(經, sutta)과 율(律, Vinaya)을 불설(佛說, Buddhavacana)로 확정하기 위한 모임으로 500여 명의 아라한이 결집에 참여하였는데, 經은 아난다
(Ānanda)에 의해, 그리고 律은 우팔리(Upāli)에 의해 송출되었다.
아난다가 먼저 암송하면 모두 따라 합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문헌에 의하면 論藏도 송출되었다고 한다. 결집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그 당시 일부 승려는 결집 내용에 만족하지 않았다. 傳承에 의하면 비구 아라한 500명이 모여 결집하였으므로 五百結集
이라고 한다. 칠엽굴에서 이루어진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비구들은 따로 한곳에 모여 窟外結集을 개최
하였다고 전한다.
제2결집(서기전 4세기)에 관한 내용은 주로 율장에 전해져 오고 있다. 佛滅 後 100년경 베살리(Vesālī) 지역의 승려가 돈을 받는 것을 계기로 律에 관한 분쟁이 일어나고 그 해결 과정에서 제2결집이 개최되었다. 700명의 승려가 결집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700結集이라고도 한다. 上座部( Theravada)는 金銀 등을 布施로 받는 행위 등 10가지 항목을 '佛法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데 비해 大衆部(Mahāsanghika)는 '佛法'이라고 주장하여 분열이 되었다. 상좌부에 불복한 대중부의 비구들이 모여 독자적인 결집을 열었다. 이 결집을 계기로 통일되어 있던 불교 교단은 분열하게 된다.
제3결집(서기전 251년)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차이가 나지만, 상좌부(Theravāda) 문헌에 의하면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Aśoka) 왕에 의해 성립되었다. 아쇼카왕 즉위 17년,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파탈리푸트라 (Pāṭaliputra:華氏城, 현재 Patna)에서 Moggaliputtatissa의 주도로 1,000명의 비구를 소집하여 결집을 행하였다. 제3결집은 異說로부터 불교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행하였으며, 고다마의 가르침을 分別說이라고 주장하는 승려는 불제자로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승려는 추방하였다.
이 결집 과정에서 논서인 『論事, Kathāvatthu』
가 저술되었고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제3결집에서는 論書들을 論藏으로 集成함으로써 비로소 三藏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삼장을 편찬하는 데는 총 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說一切有部(상좌부에서 분파된 일부파)의 문헌에 의하면 아쇼카왕 때 대중부가 아라한에 대한 5가지 결점을 주장하는 것을 계기로 분쟁이 일어나고, 그 해결 과정에서 결집이 일어났다고 한다.
제4결집(서기전 1세기)은 스리랑카의 Alu Vihara
에서 밧타가마니 아바야(Vattagamani Abaya) 왕 시절에 이루어졌다. 상좌부와 대승불교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집이 이루어졌다. 이 결집에서 처음으로 상좌부는 불교 경전을 문자화하였다고 전한다. 모든 팔리어 삼장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그 정확한 문헌의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설일체유부의 전승에 의하면 쿠샨 왕조의 Kanishka(재위 73~103년)왕에 의해 서기 후 78년에 카슈미르(Kaśmīra)의 環林寺에서 제4결집이 이루어졌다. 파르슈바(Pārśvā: 脇尊者)와 바수미트라(Vasumitra: 世友尊者)등이 카니슈카 왕의 후원을 받아, 삼장에 정통한 500명의 승려가 모여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등 설일체유부 논서를 12년에 걸쳐 결집하였다고 한다.
상좌부는 제5결집을 1871년에 Mindon 왕의 후원으로 미얀마(Myanmar)에서 개최하였다. 고다마의 가르침이 조금이라도 변형되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결집이 이루어졌다. 결집 결과 삼장 전체를 729장의 대리석에 새겼다. 이 결집은 미얀마에서만 인정되고 있다. 제6결집이 1954년
Yangon에서 개최되어 2년간 진행되었다. 스리랑카 등 8개국 출신의 상좌부 승려 2,500명이 모여 결집을 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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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500년 뒤에 태어난 예수는 불교가 브라만교의 교리를 그대로 假借했던 것을 그대로 본받아 불교의 교리를 그대로 가차해서 당시 예루살렘지역에 전해지던 히브리교의 교리와 접목시킨 후 불교의 '慈悲'를 '사랑'으로, '法文(福音)'을 '福音'으로, '極樂'을 '天堂'으로, '觀世音菩薩'을 '聖母 마리아'로 바꾼 후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 받아서 天堂을 간다"고 했으니 당시 이집트 파라오의 노예살이를 하면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속에 살고 있었던 이집트 노예들에게는 이 얼마나 '福된 하늘의 소리' 즉 '福音'이었겠는가.
이같은 연유로 佛經과 聖經은 50% 이상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
해서 기독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이들 노예들에서부터 전파되기 시작해서 종국에는 예루살렘에서 부터 광대한 로마제국 전역으로 요원의 불길(燎原之火)처럼 번져나가자 급기야 동로마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티누스가 종교를 지배의 도구(Tool)로 삼고자 國敎로 삼으니 이같은 政敎癒着 또한 불교의 전파 방식을 그대로 踏襲하여 전파하면서 이 또한 불교와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
그 결과, 로마황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독교는 당시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던 유럽과 중동 등 전세계의 1/3을 勢力 下에 두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도 인도는 철저히 신분계급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땅은 척박했으며, 삶은 궁핍하다 못해서 흙먼지가 풀풀날리는 개골창 움막에서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이 참혹한 광경을 보았는데, 당시 우리 시골집
에서 기르던 똥개 黃狗도 이들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와같은 연유로 인도인들은 約束 어기기를 밥먹듯이 했고, 뻔한 거짓말과 변명으로 순간을 모면하고자 했다. 비록 이는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민족들의 공통 사항이기도 했지만 그 정도가 도를 넘었을 정도로 아주 심했다.
한국인도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받아 오면서 거짓말과 변명과 詭辯을 밥먹듯이, 그것도 죄의식 하나없이 버젓이 하고 있지 않는가.
이들 거짓말과 변명 및 궤변은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기간에 정비례 하게 그 농도가 진해진다.
이는 지금도 그렇다.
정치 지도자란 놈이 국민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뻔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모두 다 남의 탓이고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人面獸心의 厚顔無恥한 짓을 버젓이 한다.
- 中略하고.
하여간,
그같은 인도가 유능한 지도자를 잘 뽑아서 오느날 괄목상대해야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8547억 달러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영국을 처음으로 추월(註4)해 세계 5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Caste란 신분계급제로 인해서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2342달러(韓貨 316만 원)로 전세계 138위에 그쳤다.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수 십년이 흘러도 변치 않을듯 하다.
* 註4, 인도와 영국의 GDP 비교
세계 5위 인도: 3,732,224백만불
세계 6위 영국: 3,332,059백만불
세계 13위 한국: 1,709,232백만분
(자료: 국제통화기금 2023 GDP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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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체 가계소비 지출도 2조 달러로 세계 5위 소비시장이지만 1인당 지출액은 1500달러에 불과하다. 비슷한 소비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의 1인당 소비지출액이 2만40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인도는 독일 구매력의 1/14인 셈이다. 인도는 G20(주요 20개국)에 속해 있지만 이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우리가 후진국으로 여기는 주변
국가인 방글라데시(2362달러)나 스리랑카
(3699달러) 보다도 1인당 국민소득이 낮다.
주별 국민소득 편차도 상당해 우타르프라데시주의 1인당 GDP는 1000달러 미만으로 네팔, 탄자니아
보다 못한 반면, 타밀나두주는 3000달러나 된다.
같은 의미에서 타밀나두주의 빈곤층 비율은 4%지만 우타르프라데시주는 29%의 소외 빈민계층이 존재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비슷한 인구 즉 14억 명의 인구大國이기에 인도가 견제할수밖에 없는 중국 경제는 19조9115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1인당 GDP도 1만4096달러로 인도를 크게 앞섰다. 반면, 인도에 추월당한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9000달러로 인도의 23배에 달했다. 또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4994달러로 세계 31위다
2, 인도의 놀라운 과학수준
인도는 지난 2023년 8월 23일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를 발사하여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인도는 열흘 뒤인 9월 2일 오전 11시 50분(현지시간)에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하리코타 우주기지에서 인공위성 ‘아디티아 L1’ 이륙에 성공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즉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우주 궤도에 머무르면서 관측 업무를 수행하는 태양관측 연구위성을 발사했고, 이를 통해 태양을 관측하고 태양풍과 같은 우주 날씨의 특징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로서 인도는 달에 이어서 이제는 태양까지 정복할려고 시도하는 우주위성강국이 되었다.태양 관측 임무를 지닌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 우주국(ESA)도 궤도선을 배치해 태양 연구 미션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인도의 이번 시도에는 몇몇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인도의 총인구수는 14억 2천만 명이고, 이들 14억 2천만 인구의 평균연령이 29세로 가장 젊고 왕성한 노동력을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3,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들
인도 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있다.
우리나라 처럼,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 아니고
바로 엔지니어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 학교에 들어가면 인생 역전
한다는 학교가 있으니, 바로 인도의 최상급 엔지니어들이 들어간다는 I IT 다.
입학시험이 수학, 화학, 물리 단 세 과목인 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입시를 위해 학생들이 한 도시의 학원에 모여서 공부하는데 '코타'란 都市다. 우리로 말하면 노량진이나 대치동 같은 곳이다.
학원 300곳, 숙소 3000곳이 있는 이곳에서, 인도 전국 150만 개에 달하는 고등학교 전교 1등인 수재들이 모여 미친 듯이 경쟁한다[인도 1인당 국민 총소득이 316만 원(환율 1,350원 계상)인데, 이 학교 1년 치 학원비는 무려 약 600만 원이니 가히 그 인기를 실감할수있다 하겠다].
여기에 더하여 학교에 들어간다고 끝이 아니다.
서울대 학점의 무려 3배인 432학점이라는 엄청난 학점을 이수해야만 한다.
참고로, 이를 미국 및 한국과 비교해보면,
MIT 공과대학은 180학점이고, 서울대공과대학생이
136학점을 이수할 때 인도의 IIT 공과대학은 무려 서울공대의 3.17배가 되는 432학점을 이수한다.
이같이 빡세게 하다보니 전교생, 전 교수와 교직원 모두 기숙사에서 공부한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그 결과 학생들은 4년간 엄청난 학업량을 성취하고 전 세계의 엔지니어로 취업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어도비의 CEO 샨타누 나라옌,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 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 마스터카드의 CEO 아자팔 싱 방가 등등 지금 세계 IT, 정보, 전자산업을 리딩하는 세계굴지의 회사 CEO는 모두 인도인들이다.
그뿐만아니라, 현재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업 CEO의 1/3은 인도인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진출이 활발하다.
또한, 대학을 보면, 위스콘신대학 정보통신학과 박사과정 학생 총 120명 중 인도학생이 80명, 이스라엘 30명, 미국 10명, 그 외 나라는 각 각 1- 2명씩이다.
여기에 더하여, 주임 교수도 인도 출신이다.
참으로 무서운 발전과 도약이 아닐수없다.
한국이 정치꾼들의 포풀리즘과 인권타령 및 종북바라보기에 더하여 전교조와 귀족노조들의 '下向평준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나라가 피멍들어갈때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깔보고 개무시했던 인도는 이제 괄목상대해야 할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했던 것이다.
때문에 인도의 교육을 보면서 '무조건 평준화'를 부르짖는 전교조 교육탓에 한국인의 타고난 천재성이 사라져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비교해보면 깊고 짙은 한숨 밖에 안나온다.
자연의 기본 윈칙은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으로 발전적 진화를 해가는 것이다. 해서 자연계에서는 경쟁이 아닌 平準이란 없다.
하다못해서, 하찮은 微物이나 草木인 풀이나 나무조차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인류도 이같은 경쟁원칙을 벗어난 것들은 그것이 國家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모두 다 망하거나 자연스럽게 지구상에서 사라져 갔다는 것을 5000년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전교조, 귀족노조들은 합리적인 경쟁보다는 安易한 평준화를 부르짖으면서 국가백년대계를 망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수없다.
비록, 간사스럽고 邪惡한 人間들은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지몰라도, 자연과 역사는 그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잊지말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게 有史이래의 5000년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않고 적자생존의 자연법칙대로 치열한 경쟁을 할때 그 국가와 민족은 번영을 누리면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발전해 나갈 것이다.
중세의 봉건 전제주의와 칼 막스 & 례닌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패하여 패망한 후 지구에서 사라진 것과 거대한 제국 舊 쏘비엣트 연방이 사라진 것은 모두 다 이같은 이유였기 때문이다.
4, '배고품'이 '배아품'을 이기는 나라 印道
"굶주림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이다" - 네루
오느날 인도의 괄목상대할 발전은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의 교육 철학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사람의 교육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자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인도의 가장 가난한 도시에서 일어난 기적이다.
돈이 없어 학원 공부는 엄두를 못내는 이 가난한 마을에, 최근 IIT 공과대학 합격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지 않는가?
어떻게 학원도 가지 않고 그 어려운 수학, 화학, 물리를 공부했을까?
가난한 동네에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궁금해서 알아봤드니 비결이 있었는데, 바로 '베푸는 지식'이었다.
가난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공과대학에 간 선배들이 일주일에 3번 마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체 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합격자가 마을공동체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해 주는 것이다.
이에 응답하듯, 후배 학생들은 그 가르침으로 善循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한국의 현실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인도인들이 자기 지식을 베풀 때 나타나는 기적이 정말 감동으로 다가온다.
해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때라고 생각된다. 과연 우리 자신도 이들처럼 우리의 지식을 주변에 베풀고 있는지를!
오늘 이 글도 이같은 차원의 일환으로 긴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랜 가난에 쪼달렸던 인도인들에게는 '배고품'이 '배아품'을 이긴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한국은 '남이 잘되고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픈 소위 '배아품'이 '배고품'을 이기는 '배아픈 病''이 만연하는 奇現象의 나라로 이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유일무이한 나라다.
하기사, 한국에서 세계 유래없는게 어디 이것 뿐일까만은.
굳이 인도인들이 아니드라도 한국인들과 반대로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주고 춤을 추는 나라가 있다.
바로, 나라를 잃고 1600여 년이란 오랜세월 동안 집시들처럼 전 세계 각국을 유랑하면서 천대
받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 결과 서울시 인구만도 못한 고작 인구 965만명인 이스라엘의 1인당 GDP는 53,195달러로 세계 18위로, 총인구 5,178만명에 1인당 GDP 34,994달러로 세계 31위인 한국을 까마득하게 뛰어넘었다.
무엇이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도록 만들었을까?
정답은 바로 배아품이 아니라 배고품을 우선시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이를 보면 '배아품'보다 '배고품'을 우선시 할때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현재 기초과학 분야는 프랑스(佛)가, 실용과학은 美國이 최고인데 내 생각에 향후 수 십년이 지나면 이 판도가 바뀔듯 하다.
그만큼 인도의 과학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도 하루 빨리 私心 가득한 정치꾼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을 탈피해서 쓸데없이 지역을 갈라치지 말고 통합하고, 또 특정지역을 정리하고, 전교조의 잘못된 교육으로 우물안 개구리가 된 외눈박이 학생.정치꾼들을 이 나라서 퇴출
시켜야만 선진국 진입의 문턱인 1인당 국민 소득 5만불을 넘어설수있을 것이고, 나아가서 G7 국가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세계 5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뿐이다.
해서 괄목상대해야 할 인도의 과학적 급성장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이 걱정스러워 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