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이야기 - 노자의 無爲自然 思想과 인간관계 5계명
기원전 6세기경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諸子百家의 시초 격으로 道家의 鼻祖라고 알려진
'老子 李耳(BC571 ~ ?)'는 사마천이 지은 '史記' '신한노장열전'에 의하면, 자는 伯陽, 시호는 聃이다. 또한, 도교의 太上老君 전설에도 李氏라고 나온다.
이후 儒敎의 開祖인 孔丘(BC551 ~ 479)가, 그리고 晉나라 사람으로 청계산 鬼谷山莊에 은거해 천문, 지리, 병법, 처세술에 능통해서 鬼谷先生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鬼谷子(,BC 400년~ BC 320년)가 나와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진, 장의,
손빈, 방연 등 戰國時代 중후반기에 활약한 네 수제자를 두어 전국시대의 사상계를 이끌어깄다.
李耳가 老子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후 선천태후
(註1)의 뱃속에서 70년을 태아 상태로 있다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옆 오얏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나의 성씨로 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姓이 오얏나무 '李'가 되고, 이후에 성장하면서 귀가 컸기 때문에 이름은 '귀 耳'자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에 따르면 본명은 李重耳, 자는 伯陽으로 楚나라 苦縣 曲仁里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
*註1, 당나라 황실이 노자의 후손을 자처하고 노자의 부모와 노자 본인을 황제(皇帝, Emperor)로 추존함으로서 老子와 唐皇의 가문도 皇家가 되었다.
父皇: 先天太上皇 李敬 - 당현종 추존.
母后: 先天太后 益壽氏 - 당현종 추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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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孔孟의 儒家哲學과 더불어 중국 고대 철학의 양대 산맥인 道家哲學의 창시자이며, 無爲自然을 바탕으로 道의 사상을 남겼으나 諸子百家 가운데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로, 實存有無에 대해서조차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周나라의 쇠퇴에 대한 실망으로 周나라를 떠나 은거하려던 길에 '병사 한명이 지키면 敵軍 萬명을 막을 수 있다'는
天下第一險關이라고 불리우는 函谷關을 기나가다 關門지기 尹喜를 만난다. 중국 하남성 서부 고원 지역에 세워진 函谷關은 중국 역사상 초기에 만들어진 관문 중 하나로 황하 남쪽의 靈寶시 남쪽 5㎞ 지점, 三门峡에서 75㎞ 지점에 위치한다. 과거 ‘两京古道(서안과 낙양을 연결하는 도로)’라 불린 이곳은 동서 8㎞ 황토층으로 깊은 골짜기가 벼랑 위 수목이 햇빛을 가려 낮에도 어두우며, 그 모양이 函처럼 깊이 깎아 세워져 있어 函谷關이란 이름이 지어졌는데, 전국시대 秦에서 山東 6국으로 통하던 관문이며, 험하기로 유명하여 ‘天下第一險關’이라 불렸다. 진나라 효공 때 세워진 함곡관은 당시 넓이가 마차 한 대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라서 “한 명이 지키면 만 명도 통과하지 못한다” 라는 말이 생겼다. 이러한 難攻不落의 함곡관은 秦 효왕때 만들어졌다. 이 難攻不落의 험준한 곳을 지나던 老子가 이때 만난 함곡관의 관문지기 尹喜의 청으로 남긴 것이 총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도덕경』이라는 說로, 상편 37장의 내용을 「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德經)」이라고 한다.
유랑의 길을 떠나며 쓴 심오한 지혜와 신비한 영감의 원천인 노자 도덕경의 사상은 한마디로 無爲自然 사상이다. 無爲는 ‘道는 언제나 無爲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의 무위이고, 自然은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天法道道法自然)’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도덕경』의 사상은 모든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좋다 · 나쁘다, 크다 · 작다, 높다 · 낮다 '등의 판단들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비교하여 만들어낸 상대적 개념이며, 이런 개념들로는 道를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상대적 개념들의 집합체이므로 『도덕경』에서는 언어에 대한 부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점에서 儒家思想과 현격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儒家사상에서는 人爲的 設定이 강조되는 禮學이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언어에 의한 규정이 강력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반면,『도덕경』
에서는 규정성의 파기와 언어에 대한 부정을 강조하는데, 유가사상이 중국 북방인 山東城 곡부 황하유역에서 형성된 것인 반면, 이런 무위자연의 사상은 중국 남방의 양쯔강유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기질적인 차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북방은 생존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투쟁적이어야 하지만, 남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 조건이 순조로워 평화적이고 낭만적이었는데, 이런 분위기의 차이가 사상 형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유가사상이 仁 · 義 · 禮 · 智의 덕목을 설정하여 禮敎를 강조하면서 현실적인 상쟁대립이 전제된 반면, 『도덕경』의 사상은 '상쟁의 대립이 인위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보고, 無와 자연의 不相爭논리를 펴나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도덕경』
의 사상은 학문적인 진리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위 · 진 남북조시대처럼 사회가 혼란과 역경에 빠져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밝혀 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피지배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사상 및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노자의 사상은 '백성들을 시켜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無爲自然'과, '권력과 재산을 더 가지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지 말라는 '功遂身退'로 요약되는데, 이는 《노자 도덕경》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장에서 쓴 處世術임을 알 수 있다.
處世術을 요약하자면, '남을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고, 나를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아라'는 뜻이며, 現代的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의 힘을 '매번' 100% 쓰지는 말라"는 것이 된다. 즉 "인생의 꼭대기(peak)를 만들어 놓으면 내려갈 일밖에 없으므로, 70~80%의 힘으로 오래가는 것이 인생을 사는 참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잡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자리에서 내려올 줄도 알고, 가진 게 많으면 주변에 적당히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고 老子는 助言한다. 소위 '知足不辱 知止不殆(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다.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하여, 여러 전설이 전해져오고 그런 연유로 노자로 추정되는 고대 인물들도 많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인데, 史記에는 "노자는 楚나라 출신으로 周나라에서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공자가 周나라에서 잠깐 머무를 때 노자에게 배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이때 노자와 공자는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겼는데 이게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노자는 공자에 대해 "사기꾼이자 위선자"와 같다고 비판한 반면, 공자는 노자를 가리켜 "용처럼 변화무쌍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극찬했다.
용은 假想의 동물이므로, 공자가 노자의 사상이 허무맹랑하다며 비판했다 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공자 자신이 가진 제한된 인식과 실천 수단을 초월하는 식견을 가진 인물로서 노자를 높이 평가했다고 해석된다.
참고로 사기 본문의 해당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가 잘 날아 다닌다는 것을 나는 알고, 고기가 잘 헤엄치는 줄 알며, 짐승이 잘 달리는 줄 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줄로 잡을 수 있으며, 날아다니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에 이르러서는 나는 능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龍과 같았다."
내가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인간과, 인간이 선택해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 공자가 노자에게 설득당한 모양으로 보인다.
사마천의 史記에 따르면 "공자는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이때 노자는 공자를 위선자라고 비판
했으나, 공자는 오히려 노자를 범접할 수 없는 龍같은 존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法家가 儒家와 道家를 동시에 까기 위해서 만들어낸, 以夷制夷的적 이야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韓非子의 책을 보면 道家의 처세술을 설명하면서, 유가의 고리타분함을 까는 글들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道家가 당대 제자백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기에 이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 역시도 적지 않다
노자는 이후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하는데, 出關하기 전에 문지기인 尹喜(註2)에게 5000자로 된 책을 전수하니, 이것이
소위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老子》이다.
이대로면 노자는 춘추 시대 末葉의 사람이 되나, 문제는 함곡관이 지어진 것은 춘추 시대가 끝난 戰國 시대인 秦나라 효공 시대의 일이라 시대적으로 맞지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설화는 후세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註2. 尹喜: 중국 周나라와 전국시대 진나라의 道家 철학자이다. 그가 맡았던 관직의 이름을 따서 關尹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씨 연원에 따르면 윤희가 관직 이름을 따서 關을 姓으로 지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史記》에 의하면 노자가 주나라가 쇠락한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나려고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關令이었던 尹喜의 부탁으로 도덕경 5천여 자를 저술하였고, 이후 이 관령 윤희가 곧 關尹으로 노자의 제자가 된다고 한다.
莊子(註3)의 '天下篇'에 關尹의 말이라 하여, "사람은 我執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동작이 발휘된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가 물과 같고, 그 고요함이 거울과 같으며, 고요함이 맑음과 같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雜家의 대표작인 《呂氏春秋》'不二篇'에는 "關尹은 맑음을 귀히 여긴다"고 평하고 있다. 사실 노자가 그와 친분이 있어서 미리 준 것은 아니고 노자가 은둔하기 위해 관문을 떠나려 할 때 문지기인 윤희가 "선생님께서는 이제 곧 은거하실 테니 쉬운 부탁은 아니겠지만 떠나시기 전에 소인을 위해 글을 남겨주고 가십시오."라고 부탁했는데 평소에 언어를 통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며 글 자체를 남기지 않았던 그도 윤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關門지기를 위해 자신의 유일한 저서를 집필한다. 사실 노자는 학문이나 책 자체를 그가 주장하는 道에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 아주 몹쓸 것으로 여겼다. 도덕경만 봐도 이미 책읽고 공부한 學者(혹은 智者 = 똑똑한 자)라는 인간들을 평범한 사람들 상대로 '(인)위'(현혹이나 선동에 가까운 것들을 의미한다)하려 하는 자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음모에 맞서 도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은 백성이 무지하고(無知) 바라는 게 없는 것(無欲), 즉 無爲라 봤다. 참고로 여기서 無知는 기존의 서술과 같이 무식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나 작위적인 것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근현대적인 의미의 作爲라는 것도 부족한 설명으로, 노자의 '무위'에서 핵심이 되는 관점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 판단할 기준을 두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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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史記 '노자한비열전(註3)'에는 이 외에도 전국 시대의 인물인 太史 儋이 노자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해진다. 이 때문에 노자가 한나라 이후 창조된 가공의 인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었으나, 기원전 3세기 초 이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노자 사본'이 발굴되어 이 설은 힘을 잃는 등 여전히 정확한 생존여부를 비롯한 실체 자체가 불분명하다.
* 註3, 실제로 老子는 사마천이 지은 史記에 韓非子와 함께 실렸다. 이로 미루어볼때 법가가 도가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당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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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老子'는 실존 인물의 기록이 아니라, 주나라 왕실문서에 전해지는 '처세술 모음집'이라고 주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노자가 서쪽으로 떠나 인도에 도착해 펼친 가르침이 불교가 되었다는 이른바 老子化胡說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시기에 퍼지기도 했다. 도교의 도사들은 이를 가지고 자신들이 불교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청정법행경》이라는 僞經을 지어 공자는 유동 보살(광정 보살)의 환생이고 노자는 가섭 보살의 환생이라는 三聖化現說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노자와 석가모니는 서로 사상이 다르다. 노자의 사상은 '無爲自然'과 功遂身退' 등이 핵심인 반면, 석가모니의 사상은 苦.集.滅.道의 '四聖諦'와 正見.正思惟.正語.正業. 正命.正精進.正念.正定의 '八正道'가 핵심이다. 다만, 불교의 空 사상만이 노자의 사상과 비슷한데, 空 사상은 인도불교 고유의 사상이기 때문에, 노자와 불교의 선후를 구별하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노자의 사상적 계승자로는 莊子(註4)나 列子를 거론한다.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게 보면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김이 일반적이다. 장자는 노자의 주요사상 중 상대주의를 극대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註4, 莊子 莊周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拒彼取此 精神, 즉 저것(=먼 것, 어려운 것)을 거부하고 이것(=가까운 것, 쉬운 것)을 취한다는 정신을 여러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상황에 적용되는 예로써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매우 보수적일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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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사상은 '억지로 하려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마음가짐과 '이름을 알리려하지 말고 혹시라도 명성을 얻더라도 유명세가 커질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는 공수신퇴(功遂身退)의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명성이나 재물을 가득채우면 이후에 잃어버릴 일만 남게 된다고 하여 '비어 있음'을 강조하였고, 모두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美醜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인데 이를 굳이 구분해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였다. 노자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비웃을 것이라 하였는데, 노자는 도리어 '뛰어난 재주는 오히려 서툴게 보인다'고 말하면서, 비웃음을 받지않으면 道라 하기 부족하다고 하였다.
또한 노자는 "上善은 물과 같다"고 말한다(上善若水). 물은 조건없이 모습을 바꾸며 손쉽게 적응한다. 또한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데로 흘러가 거기에 머물며, 약하고 순할지언정 공격해도 꿈쩍 않는다. 물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것이지만,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다. 이렇기에 물을 소중히하고 존중하며 물처럼 살면 인생 전체의 행복이 크다고 주장했다.
왕필본으로 대표되는 《노자》는 일반적으로 반 유가적이면서 역설적인 격언을 담은 문헌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는 특히 《장자》가 갖는 성격과 연동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토 문헌은 그러한 이해에 대하여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가령 왕필본의 "絶聖棄智, 民利百倍(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로움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란 문장이 "絶智棄辯, 民利百倍(지식을 끊고 변론함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라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으며, 왕필본의 "國家昏亂, 有忠臣(국가가 혼란해져야 충신이 생긴다)"란 문장도 "邦家昏亂,安有貞臣(나라가 혼란해지면 어디에 바른 신하가 있겠는가)"으로 바뀌어 있어 반유교적인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학자들 중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는 중이나, 지금까지 이해했던 노자의 모습은 최초의 노자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기초하여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언어, 개념,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강함, 단단함, 높음, 그리고 채움에 대비하여 약함, 부드러움, 낮음, 비움, 그리고 겸손함을 강조한다. 억지로 그리고 작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함을 반대하고 명예와 이익에 대한 추구 와 지나친 욕망 등을 비판하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여 일이 자발적 또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함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되니, 통치자는 헛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명령과 법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통치자와 관련된 구절이나 유, 무에 대한 구절들에 주목하여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왕필 등이고, 뒤의 '오래 사는 것'(長生不死)에 주목하여 養生論的, 종교적으로 보는 쪽이 하상공 그리고 도교의 노자에 대한 해석과 입장이다. 이밖에 노자의 정치 철학은 小國寡民이다. 이는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은 적게 하라는 말로써, 노자는 원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여기에서 간과되기 쉬운 사실은, 노자의 사상은 유가나 법가와는 확연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는 점이다. 노자 사상의 이른바 도교적, 양생론적 측면을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노자 사상의 이러한 통치 규범적 측면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래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道家"적이라고 묶이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장자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 등을 종합하여 노자의 상대성, 자연, 부드러움 등에 대한 태도가 결국 "부드러운" 형태의 통치술을 논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한비자의 "해로" 부분이나, 황로학파 등은 아예 노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보다도 더 섬세한 고도의 통치술을 이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이 때문에 후대의 왕필본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에 대한 서술인지, 자연적 원리에 대한 서술인지 애매하게 읽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애매한 몇몇 부분들은 죽간본에는 없다. 대표적으로 36장. 다만, 죽간본에 있는 부분들만 놓고 봐도 유가와는 대비되는 통치 기술서로 읽을 여지가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을 보면, 왜 한비자가 노자에 주석을 달았고, 병법가, 무술가들이 은근히 노자에서 영감을 얻거나 비유를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前漢 초기, 특히 한문제는 '無爲治之의 道'라고 해서 노장사상의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했고, 그의 부인인 효문황후 때문에 한무제 초기까지도 통치이념으로 남았다. 억지로 의도를 내비치면 상대가 반발할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때에 몇 수 앞을 읽어 행동하는 교활한 통치자나 전략가야말로 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병법서에서도 거국적인 외교술을 다룬다. 격투기나 무기술에서도 음양수라고 해서, 實로 虛를 치고, 虛로 實을 치며, 虛를 드러낸다. 도덕경을 이러한 맥락으로 읽을 가능성도 충분이 있음이 도덕경의 묘미이다. 당연하지만 말 그대로의 자연에 가까운 사회를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老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름을 싫어한다. 둘 다 노자를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은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또한 도덕경은 역사상의 고유 명사가 단 하나도 출현하지 않는다. 이는 저작 연대나 작자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하여,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처럼,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서들과는 달리 詩的 韻律이 중시되어 상당히 많은 구절에 압운이 되어 있고, 다소 말장난 같이 들릴 수 있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당시엔 책이 비쌌기 때문에 말을 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 말에 운율을 넣었고, 이게 四聲이 있는 중국어의 특성과 합쳐지며 그 효과가 한층 극대화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번역된 노자의 말이 아닌 원문은 문학적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며, 한국어로 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도덕경에서 이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문으로 낭송하며 읽기를 권한다.
이 운율이란게 참으로 묘해서 내가 6살에 書堂에 다닐때 訓長 따라서 뭣모르고 따라 읊었던 "子曰 爲善者는 天이 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이 報之以禍니라.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 중략" 등등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아마도 이 운율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老子 '道德經'은 보는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딱히 不老長生之術이라기 보다는 어찌보면 '自然에 부합하는 處世之術'
이기에 동양철학의 정수로 꼽히는 이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處世術 즉 '人間關係五戒論'을 알려주고 있으니 참고 하시길....
1. 진실함이 없는 말을 늘어놓지 말라.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사람을 추켜세우거나
머지않아 밝혀질 감언이설로 회유하면서
재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뢰를 받지 못하여
사람 위에 설 수 없게 된다.
2, 말 많음을 삼가라.
우리 속담에 "침묵은 金이라" 했고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라고 했듯이 老子도 "말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했다..
말없이 성의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하게 된다.
말보다 태도로서 나타내 보여야 한다.
3, 아는 체 하지 말라.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똑똑한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들은 더 그렇고 여기에 더하여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쁜 여자들을 싫어한다. 오죽했으면 '白雪公主와 일곱난장이'에 나오는 마귀왕비가 "7살 난 백설공주
가 더 아름답습니다."라는 거울의 대답을 듣고 질투심이 일어 화가 나서 사냥꾼을 불러 백설공주를 숲에 데리고 가서 죽이도록 명령했을까?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너무 아는 체 하기보다는 잠자코 있는 것이 낫다.
지혜 있는 자는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굳이 남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4,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돈은 인생의 윤활유로서는 필요한 것이나,
돈에 집착하여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오죽했으면 守錢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5, 다투지 말라.
老子는 도덕경 제8장에서 "上善若水"라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아래로만 흐르면서 다투지 않은 물을 가르켜 7가지 好德을 가졌다해서 "水有七德"이라고 칭송했다.
노자의 도덕경 제8장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머물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짊을 좋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한다.
그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여기서 노자의 도덕경 8장 내용을 다르게는 인간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으로서, 水有七德이라고도 해석한다.
첫째, 謙遜이다.
물은 욕심이 없다. 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찾아 흐른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을 때, 물은 자신을 낮추고 낮춰서 낮은 곳으로만 찾아흐르니 이를
겸손이라 한다.
둘째, 智慧이다.
물은 어떤경우에도 다투지 않는다. 흐르다가 막히면 곧장 돌아간다.
오늘날 자신을 거스른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폭행,
살인을 일삼고 있을 때 물은 폭력보다는 양보의 미덕으로 돌아갈 줄 아니 이를 지혜라고 한다.
셋째, 包容力이다.
물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 준다. 깨끗한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모두 다 받아준다.
오죽하면 다 받아준다는 의미로 큰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고 할까?
이것이 곧 포용력이다.
넷째, 融通性이다.
물은 담기는 그릇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에 맞는 예쁘고 아름다운 그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이나 깨진 그릇에도 서슴없이 담기니, 이를 곧 융통성이라 한다.
다섯째, 忍耐이다.
물은 끈기와 인내로 지칠 줄을 모른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지 않으면 끊임없이 흐른다.
물길을 따라 흐르고 떨어지는 落水는 단단한 바위도 뚫는다. 소위 柔能制剛이다.
하루 아침에 뚫는 것이 아니라 오랜시간 끈기를 가지고 결국 단단한 바위를 뚫어 내니 이를 忍耐라 한다.
여섯째, 勇氣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을 가졌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다보면 때로는 장엄한 폭포에서 자신을 투신해 작은 물방울로 부서지는 아픔을 참는다.
이를 勇氣라 한다.
칠곱번째, 大義이다.
작은 물줄기가 부서지고 깨지는 긴 여정을 견뎌 큰 강을 이루고 드디어 바다에 모이니 이를 大義라 한다.
위 내용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부터 現在까지 그 내용을 현실에 적용 해오면서 인간의 덕목으로서 가장 중요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간추려 낸 것들이고, 누구나 다 공감하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손해다. 어떠한 일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기주장을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이익보다 늘 손해를 많이 보는데 다투어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진실 없는 가식적인 말을 많이 하고, 유난히 아는 체하고, 守錢奴 즉 돈의 노예가 되어 다툼을 일삼는 것들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의식 중에 범할 수 있는 일들로 누구나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저 중 한 가지쯤은 해봤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본능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바꿔나간다면 더 큰 보람을 느끼면서 성공한 삶을 살수있으리라고 본다.
☆ 오늘의 명언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마라.
(老子나 셰익스피어나 똑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洋의 東西를 막론하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같은가 보다) "
– 셰익스피어 '리어왕'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