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최근 극장가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2014)의 작은 재미 중 하나는 뮤지션 출신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겁니다. 마룬 5 출신의 애덤 리바인이 신인급 연기자라면, 사울 역의 모스 데프는 유명한 힙합 뮤지션이자, 1980년대 말부터 TV로 시작해 1990년대엔 조금씩 영화 쪽으로 영역을 넓혔던 연기자입니다. [몬스터 볼](2001), [이탈리안 잡](200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등은 모스 데프가 나름 비중 있게 등장한 영화들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식스틴 블럭](2006)의 에디 벙커를 꼽고 싶네요. 브루스 윌리스와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법정 증언을 하는 범죄자 역을 맡았는데요, 윌리스와 거의 투 톱 주연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비긴 어게인]엔 역시 힙합 뮤지션인 씨 로 그린도 출연합니다.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할리우드는 물론, 자국의 음반 산업과 영화 산업이 어느 정도 발전된 국가에선 '액터-뮤지션' 혹은 '뮤지션-액터'들이 상당수 존재하니까요. 아예 홍콩 엔터테인먼트 산업처럼 웬만한 배우는 대부분 가수로 활동하고, 가수인가 싶으면 어느새 연기자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대거 상륙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들 중 몇 명은 연기자로서도 자리를 잡았죠. 사실 요즘 웬만한 TV 드라마는 아이돌 출신 배우 없인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고요. 한 국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면, 음악과 영화 사이의 교류 현상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리우드는 고전 시기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빙 크로스비와 프랭크 시나트라를 들 수 있겠죠. 두 배우 모두 오스카를 수상한 명배우였지만, 팝과 재즈 분야의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시작한 연기자들이었습니다. 크로스비는 뮤지션의 성격이 반영된 캐릭터들을 종종 맡았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나의 길을 가련다](1944)에선 빈민가 아이들과 성가대를 조직하는 신부 역을 맡기도 했고요. 반면 시나트라에게 '음악은 음악, 영화는 영화'였습니다. 액션, 코미디, 스릴러,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죠. 가수 출신 배우로서, 사실 지금까지도 프랭크 시나트라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배우로는 [오즈의 마법사](1939)의 '영원한 도로시' 주디 갈랜드가 있었죠. 그녀의 딸인 라이자 미넬리도 같은 길을 갔고요. 그들은 쇼 무대를 장악하는 엔터테이너이자 은막의 히로인이었습니다. 그다음 세대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나 다이아나 로스 같은 여걸들이 있는데요, 특히 스트라이샌드는 이후 감독으로도 족적을 남기죠.
고전 시기 이후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스크린으로 진출합니다. 그들은 종종 개성파 배우로 자리를 잡는데요, 아마도 데이빗 보위가 대표적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이 세상 사람 아닌 것 같은 그의 외모는 초기작인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1976)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는데요, 외계인으로 등장한 그는 [악마의 키스](1983)에선 뱀파이어가, [라비린스](1986)에선 판타지 세계의 왕이 됩니다. 이후 그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의 빌라도 총독이, [바스키아](1996)에선 앤디 워홀이 되고요. 스팅 같은 경우도 뮤지션에서 배우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입니다.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도 한때 주연급 배우였는데요, [행동](1970) 같은 영화에선 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컨트리 싱어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70년대부터 연기를 시작해 10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한 원로급 배우입니다. 요즘 관객들에겐 [블레이드] 시리즈의 위슬러 캐릭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네요. 한편 크리스토퍼슨이 출연한 샘 페킨파 감독의 [관계의 종말](1973)엔 밥 딜런도 등장합니다. [록키 호러 픽쳐 쇼](1975)의 미트 로프도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름이고요. 또 한 명의 개성파 연기자를 꼽자면 톰 웨이츠가 있을 텐데요,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이 뮤지션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알트만, 짐 자무쉬 같은 감독들의 영화에 종종 등장했습니다. 해리 코닉 주니어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배우고요, 비틀즈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도 적잖은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도 연기를 시도했고, 가펑클은 꽤 괜찮은 연기자였습니다.
여배우로는 쉐어가 단연 '갑'입니다. 섬세한 감정 연기에 큰 강점이 있는, 여성스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캐릭터를 뛰어나게 소화하는 배우죠. [실크우드](1983), [마스크](1985), [문스트럭](1987) 등이 이어졌던 1980년대가 배우로서 전성기인데요, 노래가 아닌 연기로 하나의 오스카와 두 개의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퀸 라티파도 음악에서 시작해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지니게 된 배우죠. 블론디의 보컬이었던 데보라 해리의 카리스마도 한때 대단했는데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1983)이나 존 워터스의 [헤어스프레이](1988) 같은 범상치 않은 영화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컨트리 가수인 돌리 파튼도 1980년대부터 '뮤지션-액터'로 활동 중인데요, 아무래도 대표작은 주제가까지 불렀던 [나인 투 파이브](1980)겠죠. 이후 [래리 플린트](1996)의 코트니 러브나 [드림걸즈](2006)의 비욘세, 그리고 로맨스 장르에 주로 출연하는 맨디 무어 등이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뮤지션으로 시작해 소박하게 연기자로 영역을 넓히는 경우도 있지만, 강한 스타성을 등에 업고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윌 스미스 같은 경우인데요, 힙합 뮤지션이었던 그는 TV를 통해 인기를 얻은 후 할리우드에서 급속하게 성장하며 한때 블록버스터의 보증 수표처럼 통했습니다. 지금은 뮤지션보다는 배우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는데요, 오로지 그의 스타 이미지를 이용한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잭슨도 [마법사](1978) 같은 영화에서 한때 연기 욕심을 냈지만, 다행히(?) 음악에 전념했습니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과 쌍벽을 이루었던 흑인 뮤지션인 프린스는 [퍼플 레인](1984)이나 직접 연출을 맡기도 한 [체리 문](1986) 등에서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최악의 영화를 뽑는 래지 어워즈에 이름을 올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프린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뮤지션에게 연기라는 영역은 매력적이지만 섣불리 시도했다간 낭패를 보기 쉬운 영역인데요,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마돈나는 대표적이죠.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팝 아이콘이지만, 그녀의 배우 인생은 상처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도 뮤지션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탓 아닐까 싶은데요, 아벨 페라라 감독의 [스네이크 아이](1993)처럼 이례적인 연기를 보여준 영화도 있었으며 [에비타](1996)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는 무려 7번이나 래지 어워즈에서 최악의 여배우로 선정되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도 비슷한 운명이었고요.
지금은 고인이 된 휘트니 휴스턴도 [보디가드](1992) 때는 발연기 논란에 휩싸였지만, [사랑을 기다리며](1995)나 [프리쳐스 와이프](1996)에선 심기일전하여 나름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제니퍼 로페즈도 왔다 갔다 하는 케이스인데요, [셀레나](1997) 같은 영화로는 찬사를 받았지만, 한때 연인이었던 벤 애플렉과 공연한 [갱스터 러버](2003)를 필두로 적지 않은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다지 평가받지 못 했습니다. 이런 가시밭길임에도 앨리샤 키스나 리한나 같은 여가수들이 연기에 도전하고 있고요.
그런 면에서 마크 월버그나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배우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 출신인 그들은 40대와 30대에 접어든 지금 배우로서 안정적인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마크의 형 도니도 TV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마크 월버그가 [부기 나이트](1997)에 나온다고 할 때만 해도,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의 역량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돌 출신 하나가 저렇게 소비되고 마는 건가 싶었는데, 이후 그의 행보는 정말 눈부셨습니다. 흥행은 물론 [디파티드](2006)와 [파이터](2010)로 벌써 두 번이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고요. 팀버레이크도 처음엔 조금 불안했지만 [소셜 네트워크](2010) 이후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가끔은 한 편의 영화로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 뮤지션이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댄서](2000)의 비요크가 대표적이죠. 1990년에 아이슬란드 영화 [주니퍼 트리]를 찍긴 했지만, 그녀는 [어둠 속의 댄서]로 영화사에 남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에미넴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반자전적인 영화 [8 마일](2002) 외엔 이렇다 할 출연작이 없지만, 그는 이 영화만으로 충분했죠.
에미넴 외에도 수많은 힙합 뮤지션과 래퍼들이 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모스 데프나 씨 로 그린 외에도 줄잡아 2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스눕 독이나 아이스 큐브 등이 대표적이고, 젊은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투팍도 연기 쪽으로 영역 확장을 한 바 있습니다. 아이스 티, 50 센트, 키드 커디, 안드레아 벤자민, LL 쿨 J, 네-요를 비롯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엔 타이레스와 루다크리스가 등장하죠.
이외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거의 동시에 연기를 시작하거나 처음부터 그 경계 없이 연기와 음악을 넘나들거나, 연기자로 토대를 쌓은 후 음악을 시도하곤 했습니다. 12월에 한국을 찾는 '터네이셔스 D'의 잭 블랙을 비롯, 조니 뎁, 러셀 크로우, 브루스 윌리스, 키아누 리브스, 케빈 베이컨, 자레드 레토, 주이 디샤넬, 라이언 고슬링, 빌리 밥 손튼 등 수많은 배우들이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그냥 취미 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을 갖춘 그들. 이럴 때 보면 신은 공평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A. 한국영화사 초기 악극단 출신 배우들이 충무로에 진출하긴 했지만, '가수 겸 배우'는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1950년대에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나애심(가수 김혜림의 어머니죠)이 그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후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남성 스타가 영화에 출연해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전영록은 아마도 '연기돌' 1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는 가수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돌아이]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 배우가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 인기 가수들이 마치 외도처럼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조용필, 송골매, 김범룡 등 많은 스타들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배우와 가수를 겸하는 엔터테이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90년대였는데요, 김민종, 손지창, 임창정, 엄정화 등이 가요 프로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게 되죠. 그리고 배우들이 음악 쪽으로 시도하는 경우들도 늘어났는데, 최민수나 허준호가 선배급이라면 그 아래로는 이병헌, 장동건 등이 음반을 낸 바 있고요. 장혁, 차태현, 양동근 등도 가수 활동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돌의 대공습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지만, 지금은 아이돌에 대한 영화계와 특히 방송계의 의존도는 상당한 수준이죠. 이젠 웬만한 아이돌은 모두 연기자라고 보면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