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 고미자
연두의 싱그러움이 물들어가는 봄이다. 코끝을 스치는 간들바람이 겨우 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라고 속삭인다. 형형색색의 꽃들도 저마다의 잔치 준비로 망울을 터뜨리기에 부산하다. 코로나19의 빗장이 서서히 열리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들뜨게 한다.
코로나19로 미루어졌던 친정 조카 결혼식이 다가왔다. 식장은 천장과 사방이 투명한 유리 건물이라 야외 결혼식장 같은 신선함이 눈부시게 맑다. 백목련 자수의 한복차림으로 멋을 내고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랑 신부 어머니가 초에 점화하고 하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손뼉을 치는 하객과 다르게 나의 두 눈은 막 타오르는 촛불에 시선이 머문다. 고풍스러운 철제 촛대에 올곧게 서 있는 초는 여린 심지에 불꽃을 피워내고 있다. 촛불은 신부의 볼처럼 발그레하게 피어나면서 눈물방울을 떨군다.
자신을 태우며 흐르는 뜨거운 눈물은 꽃잎의 이슬처럼 영롱하다. 단상에 장식한 꽃은 불빛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생화인 듯 조화인 듯 구분이 어렵다. 찬찬히 살펴보니 모두 조화이다. 인조 잔디가 깔린 바닥에 꽃길과 단상을 장식한 꽃이 너무 정교하여 생화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향기를 맡기 위해 후각신경을 모아본다. 조화의 마른 향은 20여 년 전의 아스라한 추억의 향기를 품고 있다. 처녀 시절 취미로 배운 꽃꽂이가 좋아 가게를 열었다. 화사한 신부의 얼굴처럼 눈부신 어느 봄날이다. 결혼 전에 근무했던 직장 상사의 부름을 받았다. 취미와 사뭇 다른 생계형으로 꾸려가는 가게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알아갈 즈음이다.
호텔 연회장에 결혼식 꽃장식을 급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혼자 작업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거들어 준다며 다가왔다. 직원의 도움을 받으면 작업이 한결 수월 해지는 줄 알았다. 조화 줄기를 가위로 자르거나 굵은 가지는 니퍼로 절단해달라는 도움을 청했다.
호기롭게 팔을 걷어붙인 직원은 조화 몇 가지를 자르더니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어 보인다. 살갗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겨 아리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한다. 남자가 해도 힘든 일을 여인의 몸으로 해내는 게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꽃을 만지며 작업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조화 줄기를 자르는 가위질도 힘들지만, 니퍼로 해도 쉽게 절단이 안 되는 가지가 많다.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뿌리는 심지가 되어준다. 조화의 심지는 줄기 속에 감춰진 가늘고 굵은 철사이다. 철심이 튼실하게 줄기를 받쳐줄 때 꽃으로 피어난다. 쉽게 시드는 일이 없고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은 잠시일 뿐이다. 생화 소재도 억세고 단단한 가지를 자를 때는 힘이 들지만, 조화 작업의 최고 난관은 줄기 속에 철심을 자르는 일이다. 손바닥 살갗이 벗겨지고 물집이 터져 아리기도 다반사이다. 엄지손가락에는 옹이가 지고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는 훈장까지 생겨났다.
초의 여린 심지에서 불꽃이 피어날 때 세상은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것일까. 조화는 심지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다. 기둥이 되는 꽃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키 높이를 배려해야 하고 곡선을 부드럽게 살리면서 꽂아야 한다.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하는 질서의 아름다움을 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겸손한 자존심이 평행을 이룬다.
조화의 단단한 줄기를 자르면서 힘들 때마다 고달픈 삶이라는 푸념만 했다. 고달프다는 변명을 하면서 현실에 쫓기는 나날이었다. 정작 나의 봄날은 언제 올까. 나의 심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철심을 자르는 작업은 내 안의 곧은 심지를 심어 가는 일 이었다.
아름다운 꽃길은 우리가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진한 어둠을 밀어내는 여명이 밝아올 무렵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가꾼 꽃길을 걸으며 새롭게 탄생하는 신랑 신부에게 축복하는 마음을 보내 본다. 밤새워 마무리한 노고의 선물로 이마와 콧잔등에 이슬 꽃이 피어난다.
촛불은 절정에 달하며 뜨겁게 타오른다. 촛불의 심지가 아니어도 조화의 철심이 아니어도 좋다. 올곧은 심지만을 고집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의 계절도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가끔은 구부러지기도 하고 휘어졌다 다시 펴지는 유연한 심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의미하게 사는 삶이 힘들 때는 몰랐다. 지천명인 50대에는 나잇값을 하고 자기 얼굴과 삶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한때는 물집이 터져 허물로 덧나는 삶이 고통스러웠다. 욕심을 비워낸 마음자리의 고통이 사그라들고 있다. 새살이 돋아나는 환부에 넉넉하고 온화한 심지로 뿌리를 내리고 싶다.
꽃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가득하다. 꽃이 지고 다시 피어나는 계절을 기다리지 못해 시들지 않기만을 바란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못하는 조급함이 장생불로하는 조화로 피워낸 걸까. 강약의 균형을 이루며 부드러운 중심을 잡아주는 조화의 심지가 되어 주는 철사의 귀한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축복을 염원하며 타오르던 촛불이 살빛으로 사위어간다. 결혼식이 끝나고 걸어 나오는 우리가 모두 꽃이다. 내 안의 튼실한 심지가 싱그러운 봄날 피어나는 꽃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