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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서울신문 2005-12-22 08:42]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첫댓글 이재전전이나 이재궁궁이나...
윗글을 읽으면 현재 지식인들이 그렇게 위서라고 말하는 정감록에서 교리를 가져온듯한 내용도 있습니다..최제우도 궁을이 뭔지 제대로 알았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전봉준도 그렇고 동학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로가 별로 좋지 못했어요..현재 도인 부류들도 그렇고..당시는 노동자*농민계급이 어떤 합리적인 철학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변화는 요구하는데 변화시킬 구실이나 이념이 부족해서 서학(기독교)에도 의지해보고 동학에도 의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사회개혁을 명분으로 할때 가장 내세우기 쉬웠던 것이 "세상에 종말이 와서 다 뒤집어진다."이런 내용입니다..기독교가 탄생하던 시절도 역시 새세상을 바라던 하층민들의 염원이 기독교를 만들어 낸것처럼 한국의 혼란기에 풍수사상이나 동학이 탄생된것 같더군요. 그런 부류의 연장선이 송하비결인것 같고요..."세상뒤집어지는데 구세주가 와서 구원해준다."이런 논리인데 시기상으로는 아무래도 동학이 서학(기독교)의 영향을 받은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교리 구조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으니까요.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런 단순한 논리과 교리를 가진 종교단체들은 영원할것 같습니다.
프레데터님, 비결의 뜻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시는데 결코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2010년 2011년이면 모든 의문이 속 시원하게 전부 풀리고 해답을 다 얻게 됩니다. 이건 제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어봐야 2~3년 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거의 헛수고입니다...비결은 신뢰할것은 못되고 위서가 맞고요..."세상 종말이 와서 다 뒤집어지고 구세주가 믿는 사람들만 구해준다."이런 논리는 종교장사로 끝나더군요...보아하니 도인 같으신데 도인들이 구하는 구원은 어디에도 없을겁니다..그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잘압니다. 워낙에 험악한 사람들이라 말을 못할뿐이고요.
비결이란 신뢰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속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옥석(玉石)을 섞어 놓았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비결인 것이고 그것에 속인들이 속는 것입니다. 황박사님도 송하옹의 그 수에 속아 넘어간 거 아닙니까. 이런 걸 잘 구별해야 참된 해석을 하게 되지요./ 세상 이치란 음양법칙에 의해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워낙에 험악한 사람들이라 말을 안 할 줄은 아시면서 때가 아니라 들어내지 않는 사리는 왜 모르십니까?
눈을 더 크게 뜨시고 멀리 내다 보세요. 그러면 절대 헛수고 안 하십니다.
누구보다도 더 크게 뜨고 봤는데 전혀 아니올시다네요.. 비결서 본지가 20년이 넘었는데 맞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결국 헛수고 였지요...뭐 다른것 떠나서 2004년 한반도 전쟁, 2004년 미국대통령 저격사건, 2007년 핵폭발, 2007년 정씨대선주자의 당선과 천도, 2008년 한반도 주변의 전쟁 기타등등 모두 틀렸죠..어거지로 맞춰보려고 해도 뭔가 아무런 토대가 없는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예언과 비결은 전하고자 하는 뜻의 표현과 단어, 문구구성 등이 다릅니다. 예언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비결은 틀림이 없지요.(위서가 된 격암유록은 빼고요) 비결이 100% 맞는 대신에 비결은 아무나 풀 수가 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송하지돈은 비결이라기보다 예언에 속하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안 맞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것을 엉터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저의 말은 송하지돈을 더 연구해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왕에 연구하시려면 통찰하시라는 뜻입니다.
비결이 100% 맞는다 함은 비밀이 담겨진 단어를 제대로 풀었을 경우를 말 한 겁니다.
책이 출판된이후 예언을 제대로 푼사람은 아무도 없었죠..책이 맞는 다는 전제아래 그렇다는 것이고요..현재로서는 책이 틀릴가능성이 훨씬더큽니다. 그리고..<송하지돈>은 처음 들어봅니다..<송하유돈>은 들어봤어도요...<송하비결>을 제대로 안 읽어보신것 같네요..
동학,최제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우리가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것이 있습니다. 동학이 서학(기독교)에 대한 대립각에서 나왔고 그양태가 하늘님 천주님같이 기독교를 차용한듯한 것, 최제우가 죽고 30년간 민중은 뭘했을까요? 예언대로 기다렸을까요? 전봉준은 아주 수수께끼의 불명확한 인물 또는 조작된 인물일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중요인물과 고서적은 여기 한반도에 놓고 보면 절대 답이 안 나옵니다. 짧게 말하면 정약용선생이 유배당한곳은 운남성이고 그곳에서 상제학을 완성했고, 초의선사와 교의했고. 초의 제자가 홍수전이고 그가 상제회를 조직해서 외세와 부정부패한 조선조정에 대항해 태평천국혁명을
일으키고 광동광서 호남성등 중국남부에서 남접 신장쪽 중앙정부쪽이 북접으로 혁명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8개연합국 외세와 청국의 증국번등에 진압당해 수천만이 학살당했습니다. 그기간이 1850년무렵부터~1871년. 홍수전=예수의 아들 등은 역사왜곡이고 태평천국과 한반도의 동학은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역사적 사실을 사실로 알지 말고, 유보시키고, 왜곡된 역사에서 벗어나 깊이 연구해야겠습니다. 이상은 대륙조선사연구회에서 눈팅으로 봐온거 아는데로 써본겁니다.
헉! 이것은 또 뭔소리~/ 님! 제가 사이트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그 사이트 주인이 역사학도는 아니지만 역사학을 공부한 분으로 비현실적인 역사시각을 사정없이 반박하시는 분입니다. http://orumi.egloos.com/ 초록불의 잡학다식입니다. 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이라는 곳을 클릭하시거나 좌측 하단부 역사란에 들어가보세요
호 님이 소개한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삼국유사 삼국사기류의 왜곡된 역사, 초록불의 잡학다식이 아닌 진정한 재야연구자들의 얘기를 보시죠. 지레짐작은 좋지않은 태도입니다.
사이트 글을 읽어보시고 하시는 얘기신지~초록불글들은 지레짐작을 최소화한 글입니다. 대륙조선사연구회 일명 재야역사학자들의 해석이 지레짐작이 많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