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오후,서울에서 초대받은 역사 강의 세미나에 참석차 가던길에,잠시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창덕궁을 한번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창덕궁을 가고자, 종로 3가역에서 2번출구로 나가다보니,눈앞에 종묘가 보인다.
종묘는 생각치 않았던 곳인지라,대충 바깥 주변만 돌아보고,곧장 창덕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중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궁궐로 이름나 찾는이의 발길이 끊이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특히 창덕궁후원인 금원이라 부르던 비원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창덕궁은, 태종이 재천도를 위한 이궁으로 건설이 시작되어, 태종 5년에 완공되었고,광해군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비원까지는 가보질 못하고,창덕궁경내만을 한바퀴 돌고 나왔는데,나오는 길이 잘못되어 율곡터널 입구쪽으로 나오고 말았다.
율곡터널은, 종묘와 창덕궁사이에 있는 터널인데,길이가 만만치 않게 길어서 걸어 나오는데,무척 힘들기도 했다.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시대 역대 왕과 왕비및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조선왕실
의 유교사당이며,태묘라고도 부른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 정문앞 종묘광장공원은. 종로 탑골공원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마비
종묘정문
종묘의 창건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로 부터 시작되었다.
태조는 궁궐(경복궁),사직과 함께 태조 4년 9월에 새로운 종묘를 완공하였다.
종묘는 임진왜란때 방화로 인해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임진왜란이 발발되자,선조는 황급히 북쪽으로 몽진하면서, 종묘의 신주는 챙겨 갔으나,한성 종묘에 주둔했던 왜군 우키나 히데이에는 종묘를 불태우고 만다.
종묘방화사건은,우키나가 주둔했던 그곳에서 밤만되면 괴성과 곡소리가 들리고 병사들이 비명횡사하는 괴변의 속출로 인하여,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고 말았다.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방화사건은 종묘뿐 아니라,경복궁,창덕궁,창경궁까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소실된 궁궐복원작업은, 선조때 부터 시작되어, 고종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진행되어야만 했다.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의 동상
종묘 돌담길을 걷다 만난 한옥집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앞에서
인정문
인정전
노랗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멋스런 연못
이곳은 영화 촬영지이기도 하다
율곡터널 입구
원구단 팔각정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