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없다
하긴
5,1일 부터 5.5일까지는
하루만 제끼면 5일 휴무기 때문에
이렇케 좋은 봄날에
카페에 앉아
노닥거릴 청춘은 없다
오늘
여직원이 쉬는 날이라
하루종일
카페를 지켜야 한다
부랴부랴 나와
대청소를 하고는
지금까지 않아있는데
여섯사람만
잠시 들어오고는
지금
한 여학생만 자리를 지킨다
조금은 덮다는 느낌에
졸음만 스르르 온다
마음같아서는
나도
카페문을 닫고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려가고싶다
그래서
동해의 푸프픈 파도를 보고싶다
파프픗 튀는
마악 잡은 생선의 회를
시원한 맥주에 맛있게 먹고싶다
봄날은
아무리 피곤해 잠이 들엇어도
잠을 설쳤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거뜬하다
그런
이 봄은
느끼기도전에
뜨거운
여름이다가오는거 같아
느을
아슈ㅣㅂ다
카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봄날의 축제를
가보지 못했다
길가옆으로
하얀 벗꽃이 피어있는
강원도 산골의
1차선 아스팔트를 달리던 때가 생각난다
파아란 계곡물옆에
돗자리를 피고는
고기도 구워 먹고
발도 담그고
그리고 홀라당당 물속에도 들어갔었는데
그러다가
잠시 푸르른 숲속의
그늘진 돗자리위에 누워
아니
오도도돋통한 그녀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잠도자기도 했는데
다
꿈같은 이야기 같다
직장생활할때
자영업함는 친구를 보면
정말 부러워했는데
그래도
남밑에서 봉급받으며
탱자탱자하는 것이 좋을때라는 것을
카페를 차리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날
하다못해
호수공원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피고는 누워
과자를
빵을 먹으며
책을 펴보거나
마악 피어나는 이름모를 들풀들을 매만지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편하게 바라보고있어야 하는데
어느 시골에서는
한참 농사준비하느라
이른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게실
늙으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과한 생각이다
한 3년만
참고 도시생활하다가
그어르신들과 동참하리라
눈을 뜨면
아침공기를 깨우는 새소리와
역동하는 봄날의 숲속에서
이름 모를 산나물도 캐고
밭도 갈고
씨도 뿌리리라
난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변강쇠니까
돌쇠니까...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 Lobo I remember to this day 이 날을 기억해요 The bright red Georgia clay 죠지아의 붉은 진흙이 And how it stuck to the tires after the summer rain 여름비 온 뒤 타이어에 붙어 있는 것을 Will power made that old car go 어떤 힘이 낡은 자동차를 움직이고 A woman's mind told me that so 여인의 마음도 그와 같다네요 Oh how I wish we were back on the road again 우리 함께 다시 길을 나서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Traveling and living off the land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살아요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How I love being a free man 자유로운 삶이 좋아요 I can still recall the wheat fields of St. Paul 난 아직 기억나요 성 바울의 밀밭에서 And the day we all got caught robbing from an old hen 그날 우린 늙은 암탉 한마리 훔치다 잡혀 Old McDonald he made us work 늙은 맥도널드 아저씨가 시키는 일을 해야했죠 But then he paid us for what it was worth 그렇지만 일한 대가도 받아 Another tank of gas and back on the road again 자동차 기름을 넣고 다시 길을 나섰죠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Traveling and living off the land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살아요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How I love being a free man 자유로운 삶이 좋아요 I'll never forget the day 난 그날을 잊지 못해요 We motored stately into big L.A. L.A.란 큰 도시까지 차를 몰고 갔지요 The lights of the city put settling down in my brain 도시의 불빛은 머리 속에 자리잡고 Though it's only been a month or so 비록 한달 정도 머물렀지만 That old car's bugging us to go 우리 낡은 자동차는 또 가자고 성화네요 We've gotta get away and get back on the road again 우린 그곳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섰죠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Traveling and living off the land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살아요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How I love being a free man 자유로운 삶이 좋아요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Traveling and living off the land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살아요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나와 당신 그리고 부 라는 이름의 강아지 How I love being a free man 자유로운 삶이 좋아요 Lobo(로보)는 70년대 이지리스닝 뮤직의 대표적인 싱어 송라이터로 1943년 7월 31일 미국 플로리다주 탈라하시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인디언 혈통의 미국인이며 본명은 Roland Kent LaVoie (로랜드 켄트 라보에)이다. Lobo는 스페인어로 은빛 늑대라는 뜻이다. Lobo는 1961년에 Jim Stafford(짐 스태포드)와 Gram Parsons(그램 파슨스), 드러머 Jon Corneal(존 코닐)이 포함된 그룹 Legends(레전드)에서 연주 실력을 쌓았고 1970년에 공식 데뷔해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1974년에 음악 출판사 부 퍼블리싱을 설립하였다. 80년대에는 내슈빌에서 컨트리 가수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생활을 즐겼다. 다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에 동양적인 정서를 담은 앨범 Asian Moon(아시아의 달)을 내놓았고 그 후로도 신보를 출반하였다. 프로모션 투어에 이어 90년대 후반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Lobo는 흘러간 가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잊을수 없는 가수인것도 분명하다. 그는 서정성 짙은 발라드로 70년대 국내 팝송 팬을 사로잡았던 가수로 Carpenters(카펜터즈), John Denver(존 덴버), 그리고 C.C.R등과 함께 팝송의 시대 한복판에 서 있었던 추억의 인물이다. 당시 김세환은 그의 노래 Stoney를 개사해 불렀고 이용복도 We'll Be One By Two Today)를 우리 함께 간다네 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노래했었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사랑받은 그의 곡들은 엄청나게 많다. A Simple Man (평범한 남자), I'd Love You To Want Me(날 원해주었으면), There Ain't No Way(길이 없어)등이 70년대 말까지 줄기차게 애청되었다. 뒤이어 나온 곡들인 How Can I Tell Her (어찌 그녀에게 말하리), Don't Tell Me Good Night(내게 좋은 밤이라 말하지 마오)도 우리나라의 다운타운가를 완전히 강타했었다. 이처럼 국내에서 우대 받았던 Lobo는 정작 본고장 미국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부른 노래 가운데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에 올랐던 노래는 3곡에 불과했었다. Stoney 같은 곡은 싱글로도 발표되지 않아서 미국인들에게는 제목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이다. 몇년 전 앨범 홍보차 내한한 Lobo 자신도 내 노래가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었다. 그의 숨겨진 노래를 발굴해 우리나라의 애청 팝송으로 만든 주역은 당시 라디오와 다운타운가 음악 다방의 디스크 자키들의 공이 컸었다. 그들은 알려진 곡이든 묻혀 있는 곡이든 우리의 정서에 맞는 노래들을 뒤져내 전파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디제이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듣는 귀, 이른바 음악 청취의 패턴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팬들은 언제나 감미로운 선율 중심의 노래를 좋아했다. Lobo의 우리나라 애창곡은 바로 이에대한 산 증거이다. 요즘은 리퀘스트의 대열에서 좀 물러나 있다고는 하지만 70년대 정서의 실체를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노래가 갖는 의미가 퇴색했다고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