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귀환과 이야기의 힘
-양준일
송 명 희(문학평론가)
질베르 뒤랑(Gilbert Durand)은 이미지의 폭발 시대인 오늘날 오히려 ‘신화의 귀환’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최근 폭발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양준일을 보면서 ‘신화의 귀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 채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신드롬이 불붙은 신화적 인물이다. 더욱이 그가 영화나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같은 허구적 장르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은 더 몰입하여 환호하고 열광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좋은 스토리텔링의 기본 조건은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주인공을 찾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자극하는 인물의 유형은 완벽하고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결점을 지닌 자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양준일은 주인공으로서 대중이 몰입할 수 있는 관심과 공감을 자극하고 뭔가 보호해주고 싶은 결점을 지닌 인물 유형, 즉 신화적 주인공으로서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그는 JTBC의 <슈가맨> 프로그램에 영감을 주었던 <슈가맨을 찾아서>(2012)라는 오스카상을 수상(2013)한 장편 다큐영화의 주인공 로드리게즈를 너무도 닮아 있다. 로드리게즈는 1970년대 초 본고장 미국에서는 음반 판매가 단 6장에 불과했던,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히스패닉 출신의 가수였다. 하지만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밀리언셀러 히트가수이자 엘비스보다 유명한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공사장에서 음악도 잊은 채 노동자로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남자가 남아공에서는 억압받는 젊은 층을 대변하는 슈퍼스타라니….
양준일도 슈가맨 로드리게즈처럼 시대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가수였다. ‘뉴 잭 스윙’이라는 그의 첨단적 음악 실험은 1990년대 초반에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2001년에 V2로 복귀하여 가수로서 재기하고자 했지만 실패한 채 식당의 서버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우리 사회는 비로소 시대를 앞서 간 그의 음악적 천재성, 퍼포먼스, 패션 스타일링을 재평가하며 열광하고 있다. 더욱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노래와 퍼포먼스는 전혀 녹슬지 않고 오히려 트렌디하게 느껴지며 무대를 화려하게 장악하는 데서 팬덤(fandom)은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러니 그야말로 진정한 슈가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에 <슈가맨3>에서 양준일을 소환하여 무대에 세웠던 JTBC는 12월 9일,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을 통해서 신화적 주인공이 갖는 고난에 대해 시대적 의미를 부여했다. 즉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아예 견고한 벽을 쌓아버린 편협한 우리 사회가 그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손석희 앵커는 낱개의 에피소드들로 존재했던 양준일의 스토리에다 주제를 입힘으로써 대중들이 열광할 수 있는 신화적 주인공으로 그의 캐릭터와 서사를 완전하게 완성시킨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양준일의 무대를 본 사람들이 팬클럽을 조직하여 열광하자 여러 방송사들이 양준일 찾기에 나섰던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미국으로 떠나버린 그를 찾기도 힘들었지만 JTBC가 가까스로 찾아낸 그는 생계를 위해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 JTBC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그를 <슈가맨3> 무대에 세웠기 때문에 양준일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과거의 양준일에 홀릭된 팬들과 JTBC의 <슈가맨3>를 통해 여전히 매혹적인 무대를 선보인 그를 새롭게 접한 대중들의 환호성에 급기야 12월 31일에 팬미팅 일정이 잡혔고, 그는 12월 20일에 식당의 서빙 일을 그만두고 귀환했다. 손석희 앵커는 12월 25일 ‘뉴스 룸’에서 “지금 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양준일을 소개했다.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그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뉴스 룸’의 <문화초대석>에 손석희 앵커의 마지막 게스트로 초대된, 검정색 슈트 차림으로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인터뷰에 응한 그는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머릿속의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을 생활처럼 해왔다고 고백했다. 마치 선불교의 수행자처럼 머릿속의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그의 지난날, 그는 또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취급받으며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고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그 어떤 구체적 에피소드보다도 그가 겪었을 지난날 곤경에 처했던 삶이 실감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을 펑펑 울며 보았다는 그는 그를 바라봐 준 손석희 앵커와 그를 따뜻하게 받아준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로 인해 그동안의 설움과 분노가 다 녹여졌다고 토로했다. 손석희 앵커의 양준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앵커브리핑>과 <문화초대석> 초대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12월 25일 방송을 진행하는 사이사이 출연자 대기실을 세 차례나 찾아와 관심을 나타낸 데서 의심할 여지없이 확인되었다.
그 사이 그는 아이돌처럼 옥외광고의 주인공도 되었고, 팬미팅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광고모델이 되어 광고도 찍었다. 1991년 그의 데뷔무대였던 MBC의 무대에서 2020년 벽두에 아이돌 가수보다 더 큰 박수와 응원을 받는 가수로 화려하게 복귀도 했다. JTBC는 두 차례에 걸쳐 양준일의 복귀스토리 <특집 슈가맨 양준일 91‧19>를 특별 편성하여 방영하였다.
이제 그의 말 한 마디, 몸짓이나 손짓 하나에도 대중들은 열광하고 뉴스거리가 되고 있지만 만약 양준일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가수로서는 실패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여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이 지금처럼 그에게 환호할 수 있었을까. 나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종교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에 의하면 영웅신화는 “비정상적인 탄생⤑어린 시절의 고난⤑방황⤑조력자와의 만남⤑기적적인 권능의 획득⤑귀환”이라는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양준일은 보통의 한국인과 달리 1969년에 베트남에서 출생했고, 홍콩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지만 1978년에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하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에서 성장하는 동안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폭력을 경험하며 방황했고, 1991년에 한국으로 와 가수로 데뷔했지만 그의 시대를 앞선 음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추방당했다. 재미교포로서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출국을 당해야 했던 그의 시련, 다시 돌아와 가수로서 재기를 꿈꾸었지만 또 실패하고 기획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갔다는 것, 그도 여의치 않아 4년 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플로리다의 한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고단한 그의 삶이 <슈가맨3>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미국과 한국 두 사회로부터 모두 배제당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한국에 대해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다시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의 표정과 겸손한 태도에서 대중들은 가슴이 짠해지면서 연민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슈가맨3> 출연, 손석희의 <앵커브리핑>과 <문화초대석> 초대는 영웅신화의 구조에서 조력자와의 만남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와 JTBC라는 예기치 않던 조력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는 방황과 시련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을까. 가수로서 권능을 기적적으로 획득하고 귀환한 양준일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구조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양준일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난 실화임에도 마치 신화적인 판타지처럼 드라마틱하다. 양준일의 긴 세월 동안 겪어온 고난에 찬 삶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가 겪은 고난이야말로 그를 신화적 인물로 완성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캠벨은 신화란 내면의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현대인이 궁극적으로 걸어야 할 길을 알려주는 자상한 안내판이라고 하며, 모든 신화는 꿈과 동일한 문법을 갖는다고 했다.
판타지의 장르적 본성은 이야기의 환상성과 더불어 존재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가시화에 있다. 양준일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신화적 세계를 신화보다 더 실감나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신화로 만든 신화적 주인공이다. 20대에도 그랬지만 50이 된 나이에도 그는 냉동인간처럼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소년 같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고된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슬림한 체형으로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비주얼의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그의 신화를 가능하게 만든 매력의 한 축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유튜브가 소환한 뮤지션이다. 유뷰브(YouTube)는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사용자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시청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유튜브에 업로드 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은 개인이지만, 최근에는 방송국이나 비디오 호스팅 서비스들 또한 유튜브와 제휴하여 동영상을 업로드 하고 있다. 과거 양준일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S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SBS <KPOP 클래식>에서 90년대 인기가요를 스트리밍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양준일에 대한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2019년에 양준일을 소환한 팬은 과거의 그를 기억하는 40대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사용에 익숙한 젊은 층까지 연령의 폭이 매우 넓다.
현재 지상파 TV가 유튜브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추억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는 SBS <KPOP 클래식> 외에도 KBS의 <어게인 가요톱10>, MBC <추억의 가요순위> 등이 있다. 손쉽게 유뷰브의 영상콘텐츠를 불러내 감상할 수 있는 오늘날의 기술혁명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거리를 없애버렸다. 50대가 된 현재의 양준일과 과거 20대의 양준일을 유튜브에서 동시적으로 다운로드하여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향수 코드로 그에게 열광하거나 과거의 것을 새롭게 소비하는 뉴트로(new-tro)의 열풍에 기대 그의 신드롬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50대 현재에도 그는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의 힘이 있는 가수이다. 일시적인 신드롬을 넘어서서 진정 사랑받는 가수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그가 가수로서 능력과 소구력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신화의 귀환’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왜 하필 지금 양준일 이야기인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현재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양준일의 신화는 양준일이 20대의 양준일에게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자신의 꿈도 완벽하게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생활에 찌든 채 나이 먹어 가고 있는 중년층들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준 양준일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의 스토리에 정서적으로 참여해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동일시를 느끼면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와 정서적 해방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양준일에게서 위로를 얻어야 할 만큼 현재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고 현실은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시학》에서 말한 비극의 효과인 ‘공포와 연민’의 두 감정 가운데서 연민의 감정을 대중에게 촉발시켜 카타르시스라는 감정의 해소를 느끼게 해준 인물이다. 대중들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억압된 욕망을 양준일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 체험하는 데서 카타르시스와 힐링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결핍된 무엇이 있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삶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끌어들이는 요인이 된다.
1991년의 양준일과 달리 2019년의 양준일은 가수로 복귀하기 위해서 스스로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고 열광한 팬심과 JTBC라는 매체의 힘이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인생은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여러분의 사랑이 파도처럼 나를 치는데 숨을 못 쉬겠어요”라고 감격하는 양준일, ‘기적, 축복, 행복, 감사, 감동, 사랑’이라는 최상의 긍정적 단어들로 현재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 자체로 그는 대중들에게 최상의 힐링을 선물하고 있다.
더구나 성폭력, 성매매, 마약, 음주운전, 도박과 같은 남성 연예인들의 일탈 뉴스만을 접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노래와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의 신화적 스토리와 함께 선량하고 순진무구한 미소, 숱한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찌들지 않은 미모, 남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 고통에 찬 삶에서 얻어졌을 주옥같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그의 순수한 영혼에 대중들은 더 매혹을 느낀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sen)은 정보 사회에 뒤이어 도래할 미래를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예측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꿈과 이야기 등의 감성적 요소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즉 데이터나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공하게 되는 새로운 사회다. 양준일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호모 나랜스(homo narans), 즉 이야기하는 인간의 전성시대를 맞아 이야기가 가지는 강력한 힘과 드림 소사이어티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한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양준일 같은 진실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지닌 정치인이 등장하여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국민들을 위로해준다면 이번 총선에서 분명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수필과 비평》2020년도 2월호 <송명희 교수의 트렌드 읽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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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로자인건 분명해요 단순한 그런 차원이 아닌 사랑과 감동과 치유와 희망과 지혜....를 주시는것 같아요
글 하단 공유ㅡURL변경요.
..이전글도 모두 변경하셔야 됩니다^^
http://m.cafe.daum.net/joonilyang/ntyY/261035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감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머리도 제목 앞에 붙여주세요~♡
오빠가 가진 신화적 서사구조에 개인자체가 가진 내외면의 아름다움과 천재적인 능력까지 두루 다 분석했네요 꽤 시선이 애정있고 깊이 있어요♡
마지막에 정치얘기만 아니면 ㅎ;;
부경대 명예교수님이시구 치유의 문학 뭐 그런주제의 글도 쓰셨네요
그래선지 오빠에 대해 주의깊게 보신듯요.. 오빠 책도 나왔는데 관심있게 보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 저도 퍼올리고 싶었는데 이미 올라와있네요^^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눈이 침침한데 확대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동안 스쳐간 내 생각의 조각들을 피자 판을 완성하듯이 잘 표현해 주셨네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